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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모노드라마: 새로 난 주막 - 소쿨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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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새로 난 주막 - 소쿨례의 이야기


배경


무대는 단조롭게 구성된다. 중앙에는 낡은 이부자리와 바가지, 빈 쌀독,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무대 왼편에는 작은 주막의 이미지가 그려진 배경이 있고, 오른편에는 산과 먼 길로 이어지는 배경이 그려져 있다. 조명은 은은한 빛으로 소박한 삶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등장인물

소쿨례 (독백의 화자)


서막


(무대가 어두운 상태에서 서서히 조명이 비친다. 소쿨례가 낡은 이부자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바느질을 하다 멈춘다. 한숨을 내쉬며 관객을 향해 고개를 들고 말을 시작한다.)

소쿨례:

"내 이름은 소쿨례. 여염집 아낙으로 나름 잘 살아보려 했던 여자지. 그랬던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해야 하게 될 줄이야."

(바느질감을 내려놓고 손을 무릎 위에 얹으며 고개를 젖힌다.)
"남편 돈재. 군에서 중사로 제대한 사람이라 기대가 컸지. 은성훈장까지 받았다며 어깨를 으쓱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디? 제대 후엔 일자리를 못 잡고, 노름판을 전전하며 쌀 한 톨 구해오기도 힘든 신세가 되었으니…"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는다.)
"그런 남편이 주막을 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미친 소리로 여겼어. 작은마누라를 얻어 술장사를 하자는 말에 귀를 의심했지."


작은마누라 이야기


(소쿨례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무대를 걸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녀의 표정은 복잡하고, 때론 쓴웃음을 짓는다.)

소쿨례:

"남편은 작은마누라를 얻겠다고 했어. 그것도 예쁜 과부를 말이지. 처음엔 농담이겠거니 했지. 그런데 그 말이 한두 번이 아니더라고. 그 사람이 얼마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는지… 나도 모르게 ‘혹시…’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

(고개를 떨구며 잠시 멈춘다.)
"그래, 그럴듯했지. 혼자 사는 과부를 돕는 셈 치고, 술장사라도 해서 살림을 나아지게 한다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어. 그런데…"
(고개를 들어 관객을 바라보며)
"내가 그 사람과 다른 여자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한 이불속에 든다는 걸 참아낼 수 있을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


친구 선애


(조명이 바뀌고, 소쿨례는 무대 한쪽에 있는 상자를 열어 무언가를 꺼내는 동작을 한다. 그리운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소쿨례:

"그러다 생각난 사람이 있었어. 내 친구 선애. 예쁘고 곱게 자란 동네 친구였지. 그런데 팔자가 사나워서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되었어. 그녀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지.

‘그래, 선애라면… 나를 이해해 주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했어. 그리고 친정을 찾아갔지."

(소쿨례가 무대를 천천히 걸으며 선애를 떠올린다.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죄책감과 기대감이 섞여 있다.)

소쿨례:

"친구는 여전히 고운 얼굴로 날 맞아줬어. 혼자서 외로웠을 그녀가 얼마나 쓸쓸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군. 그래서 그녀에게 말했어. 우리집에 놀러 가자고"
(고개를 떨구며 작게 한숨을 쉰다.)
"처음엔 남자 있는 집에 어떻게 가냐고 하드라고. 내가 괜찮다고 했지. 그녀는 결국 나와 함께 집으로 갔어.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지."


선애와의 공존


(조명이 어두워지고, 소쿨례는 천천히 무대 중앙의 상자에 앉는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지만 내면의 고뇌가 엿보인다.)

소쿨례:

"선애와 함께 사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녀는 내가 가진 모든 걸 함께 나누길 원하게 됐지. 처음에는 몰랐지. '성님 성님' 하면서 내게 잘해주던 선애가 결국. 남편도, 집도, 그리고 삶의 자리도."

(손으로 얼굴을 만지며 작게 웃는다.)
"남편과 첨에는 약속했지. 닷새에 한 번씩만 그녀와 함께하겠다고. 그 약속이 처음엔 지켜지는 듯했어. 그런데…"

(고개를 들어 관객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내 곁을 떠나는 날이 많아졌어. 선애는 남편을 점점 더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저 방관자가 되어갔지. 모든 게 어긋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무기력했어."


주막의 배신


(조명이 점점 어두워진다. 소쿨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꽉 쥔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떨린다.)

소쿨례: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서 주막에 갔어. 선애와 남편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었지. 그런데…"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그곳엔 내가 설 자리가 없었어. 선애와 남편은 이미 한 가족처럼 보였고, 나는 그저… 낯선 손님일 뿐이었어. 그 모습이 어찌나 서럽던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왔어."

(걸음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며칠 후, 주막으로 다시 갔어. 그런데… 그곳엔 남편도, 선애도 없었어. 주막은 낯선 노인 내외가 차지하고 있었지. 남편과 선애는… 서울로 떠났다고 하더군. 나를 버리고, 내 친구와 함께 떠나버린 거야."


결말


(소쿨례는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가 낡은 이부자리에 앉는다.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관객을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한다.)

소쿨례:

"나는 모든 걸 잃었어. 남편도, 친구도, 삶의 자리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후련한 마음이 들더군. 내가 그들의 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제는 혼자 살아가야지. 다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을 거야. 나는 나대로, 내 방식대로 살아가겠어. 그게 힘들지라도… 적어도 내 삶은 나의 것이니까."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소쿨례는 고개를 숙인 채 바느질감을 손에 든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막이 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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