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난 주막, 선애의 독백
(어두운 무대. 희미한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며 선애가 무대 중앙에 서 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움과 애틋함이 섞인 표정으로 말을 시작한다.)
선애
나는 선애입니다. 이름은 참 곱지요. 내 삶도 이름만큼 고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찍 결혼을 했어요. 그 사람은... 참 다정했죠. 밤마다 손을 꼭 잡고 “내가 널 세상 끝까지 지켜줄게”라고 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결혼 석 달 만에 남편은 소한테 찔려 죽었어요.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죠. 친정으로 돌아가 살면서… 늘 같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잠시 침묵. 그녀는 두 손을 꽉 쥐었다가 풀며 이어간다.)
선애
그런데 어느 날, 소쿨례가 찾아왔어요. 제일 친한 친구였죠.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하더군요. 마음은 있었지만, 남자 있는 집에 가는 게... 아, 정말 가야 하나 망설였어요.
(천천히 걸으며 관객 쪽으로 다가간다.)
선애
그 집에 갔을 때 처음 돈재씨를 봤어요. 큰 체격에 목소리는 걸걸했죠.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끌었어요. 나는… 참 부끄러웠어요. 친구의 남편인데… 아니, 애초에 내가 그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사람인가 싶었죠.
(고개를 숙였다가 작게 웃으며 이어간다.)
선애
하지만 소쿨례가 먼저 말을 꺼냈어요. “우리 같이 살자. 친구끼리 의리를 지키자”라고요.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몰랐어요. 친한 친구에 대한 정리로만 생각했는데, 소쿨례는 한 가족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한참을 고민하듯 손끝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든다.)
선애
그날 밤, 돈재씨가 내 방에 들어왔어요. 나는 자는 척했죠. 사실은 모든 걸 알고 있었어요. 그 사람이 내 손을 잡고,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부끄럽고, 겁이 났어요.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나는 그 손길이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래 기다렸던 것 같았어요.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이어간다.)
선애
다음 날 아침, 소쿨례를 보기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녀는 나를 위로했어요. “몸과 마음은 별개야”라면서요. 그 말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그리고 나도… 그 집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 한 발 걸으며 말을 이어간다.)
선애
우리는 주막을 열었어요. 나는 돈을 대고, 돈재씨는 일을 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돈재씨를 향한 내 마음이 더 커졌어요. 그런데도 나는 항상 스스로를 다그쳤어요. ‘넌 친구의 남편을 탐내고 있어. 넌 부끄러운 여자야.’
(잠시 멈춰 고개를 든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선애
하지만... 그가 내 손을 잡아줄 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나는 너무 행복했어요. 이런 내가 정말 나쁜 걸까요?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선애
그 주막에 소쿨례가 온 뒤로, 돈재씨와 나만 남았을 때, 나가 얘기했어요. 성님보기 민망하다고... 친구 사이지만 같은 남자를 모시면서부터는 친구 소쿨례를 '성님'으로 깍듯이 모셨지요. 하지만 내 이야기는 돈재씨의 화를 돋구고 말았어요. 그날 이후 돈재씨는 소쿨례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나에 대한 애정은 더 커졌고.
(잠시 말을 끊고 얼굴을 붉히며 말을 잇는다.)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 정말 행복했어요. 부끄럽지만, 그 순간순간은 내 인생의 작은 빛이었어요. 놓치고 싶지 않아요.
(조명이 완전히 꺼지고, 선애의 마지막 말이 어둠 속에서 들려온다.)
선애
사랑은, 부끄러운 것일까요? 아니면… 용기일까요?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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