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죽은 남편의 이야기
무대 배경
무대는 어두운 조명 아래 간소한 상방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한쪽에는 옛 물건들이 놓여 있고, 그 옆에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위패가 있다. 무대는 죽은 남편의 관점에서 회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조명과 음향 효과로 현생과 사후를 넘나드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죽은 남편의 독백 (무대 중앙)
(상방 위에 놓인 위패에서 희미한 조명이 비친다. 위패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천천히 일어난다. 무대를 천천히 걸으며 관객을 향해 말한다.)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라 해야 할까. 한때 이 집의 기둥이었고, 자식들에게 아비였으며, 그 여자의 남편이었던 내가… 이렇게 위패에 이름만 남은 존재가 되다니."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근디 말이요, 죽고 나서 보니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더구먼. 어차피 고단한 건 마찬가지요. 내 아내, 그 돌방구네 말이요. 나 없이 이 집을 어떻게 꾸려갈까 싶었는디… (웃으며) 그 여자가 참 대단하긴 대단하더이다."
무대 조명 변화: 생전에 대한 회상
(조명이 밝아지며 남편이 생전에 농사일을 하던 모습을 재현한다. 남편은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그 시절을 회고한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이 집 꼴이 지금 같지는 않았소. 논마지기 몇 뙤기라도 붙잡고 살아보려고 애를 썼다니까. 근디, 우리 집사람은… 아휴, 게으름이 몸에 뱄으니 말 다 했지. 내가 나무 한 짐을 해오면, 그걸 이틀이고 삼일이고 정리하기 귀찮다고 방치해 놓고는, 나한테 잔소리를 퍼붓곤 했소. 나도 기운이 빠질 때가 많았다니까."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는다.)
"근디 뭐... 그런 게 돌방구네 아니겠소. 남들 험담하고 동네 소문 퍼뜨리는 데는 그렇게 부지런하면서, 막상 집안일에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더이다. 참 기가 막혔지."
무대 조명 변화: 죽음 이후
(조명이 어두워지고 위패 쪽에서 빛이 난다. 남편이 다시 위패 쪽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내가 죽고 나서도 그 여자는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살더구먼. 천주교? 그거 믿으면 천당 간다고, 강냉이 가루 한 말 타먹으려고 교리문답 외우고 있는 꼴이라니. 글도 모르는 여자가 국민학교 다니는 막내한테 책을 읽으라고 시키면서 따라 외우는디, 그게 참 우스우면서도 기특하더이다."
(웃음이 사그라들며 목소리가 깊어진다.)
"근디 말이요, 내가 제일 가슴 아팠던 건… 내 상방을 없애겠다고 하더구먼. 아니, 상방을 치우면 영세를 받을 수 있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내가 죽고 나서도 이 집을 지켜준 상방을 없앤다니, 그건 너무한 거 아니요?"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쉰다.)
"그날 밤, 내가 꿈에 나타났더랬소. 담배 한 대 못 피운 지가 몇 날 며칠인지, 참다못해 내가 나타나서 따졌지. 아니, 내가 아무리 죽었기로서니, 이렇게 하찮은 존재가 된단 말이오?"
무대 조명 변화: 상방이 불타는 장면
(불빛 효과와 함께 남편의 표정이 변한다. 화난 듯이 관객을 향해 몸을 돌린다.)
"아이고, 그 상방 태우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구먼. 내 곰방대며 상복이며 모조리 불살라 버렸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죽은 기분이었소. 그 여자, 자식들 살리겠다고 그랬다지만, 나 같으면 차라리 굶어 죽더라도 그런 짓은 안 했을 거요."
(화가 난 듯 한동안 침묵하다가, 차분해진 목소리로 이어간다.)
"그런데도… 내가 용서를 해야 하지 않겄소. 그래, 자식들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겄소. 내가 죽고 나서도 그놈들 살려 보겠다고 한 몸 놀려가면서 애쓴 거, 그건 내가 이해해 줘야지."
무대 조명 변화: 현재로 돌아옴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며 남편이 관객을 향해 고개를 든다.)
"이제와 보니, 사는 게 별거 아니더이다. 내가 뭘 지켜주겠다고, 상방 하나에 연연했던 게 다 무슨 소용이오. 그 여자는 자기 방식대로, 자식들 먹여 살리고 살았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겄소."
(짧은 미소를 지으며 관객을 바라본다.)
"근디 말이요, 가끔은 그 여자가 성당 가는 길에 내 생각 한 번쯤은 해줬으면 싶소. 상방을 없앤 그날 밤, 내 담배 찾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을 테니까."
(위패 옆으로 돌아가 다시 앉으며 조명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래도 그 여자는 그 여자의 삶을 살았소. 나도 이제는 내 길을 가야겄소. 돌방구네, 그 여자의 남편이었던 내가 이렇게 끝인사를 하오. 다음 생에라도 만난다면, 이번엔 조금 덜 싸우고 살 수 있을까."
(무대는 완전히 어두워지고,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울린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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