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돌방구네 이야기
무대 배경
1950년대 영산포 작은 초가집 마루가 무대 중앙에 놓여 있다. 주변에는 낡은 상방의 흔적과 돌방구네의 살림살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무대 오른편에는 성당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 모형이 배치된다. 배경 음악으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가 흐른다.
무대 조명
장면 전환은 조명으로 이루어진다. 돌방구네의 집에서는 따뜻한 황갈색 조명, 성당이나 마을에는 희미한 흰색 조명이 쓰인다.
돌방구네의 독백 (무대 중앙)
(등장. 나무 의자에 털썩 앉아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쉰다.)
"어휴, 세상이 참 팍팍해라. 사람이 살자면 뭘 믿든 믿고 살아야지. 아이고, 내가 천주교를 안 믿었으면 벌써 굶어 죽었을 거다. 강냉이 가루 한 말이라도 받으려면 신부님 말씀 잘 들어야지, 암."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며 웃음을 띠고 관객을 향한다.)
"나를 뭐라고 하냐고라우? 동네 사람들은 나보고 돌방구네라 불러라우. 어째, 이름 하나 잘 붙였지? 맨날 싸돌아다니며 동네 소식 전하니까 그런가 봐. 근디 말이요, 나만큼 이 동네에 필요한 사람이 또 어디 있어? 나 없으면 동네 소식이 안 돌아요, 안 돌아!"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손을 내저음.)
"내 자식들 말이요? 에이, 그놈들은 정말이지… 큰놈이나 둘째놈이나, 어휴, 뭘 하나 지 손으로 하는 게 없어. 그래도 우리 막내는 좀 다르지. 그 녀석이 국민학교 3학년인데 글을 읽을 줄 아니까 내가 그놈한테 교리문답을 배운다니까요. 아이고, 그걸 읽어주면 내가 따라 외우는 꼴이란! 그래도 내가 이 동네에서 교리문답 제일 잘 외우는 여자가 된 거라우!"
무대 조명 변화: 성당 밖
(돌방구네가 무대 왼편으로 이동하며 십자가 쪽을 향해 두 손을 올리고 십자성호를 긋는다.)
"근데 이 천주교라는 게 참 재미있어요. 예수님도 계시지만 예수님 엄니, 성모 마리아님을 받들잖아요. 그래서 내가 천주교를 믿기로 했어라우. 근데 진짜 이유는 말이요… 신부님이 강냉이 가루랑 밀가루, 옷가지도 나눠주시거든요. 이게 우리가 먹고살게 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시요?"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근데, 그거 바라고 믿으면 안 된다고는 하더라고요. 아, 그래도 뭐 어때요. 어차피 내 맘속으로 진실하게 믿으면 되는 거잖아요? 나도 진심으로 기도한다니께라우!"
무대 조명 변화: 돌방구네 집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이불을 뒤집어쓴다. 아픈 몸짓으로 한숨을 쉰다.)
"근디 이게 웬일이래? 상방을 없애면 부활절 영세를 받을 수 있다 해서 상방을 다 치워버렸더니, 아휴, 그날부터 몸이 그냥 찌뿌둥하고 열이 펄펄 나지 뭐요. 병원도 가보고 약도 써봤는디 아무 소용이 없당께라우. 결국 딸내미들이 무당까지 데려와서 상방을 새로 꾸미고 굿까지 했어라우. 진짜로 상방 때문에 그런가 봐요. 하늘같이 무서운 남편 꿈에도 나타났더라고요. 상방이 없어진 걸 알고는 화가 단단히 난 얼굴로 담배를 찾는디, 오메메, 그 꼴을 보고 나니 등골이 서늘했지라우."
(잠시 침묵. 먼 곳을 응시하며.)
"근디요, 그러고 나니 또 몸이 괜찮아지는 거라우. 아휴, 사람 일이란 참 알 수가 없다니까. 천주교도 좋고 뭐든 좋지만, 자식들하고 살려면 뭐라도 다 해야 하는 거지라우."
무대 조명 변화: 성당 앞
(다시 성당 앞에 서서 십자가를 올려다본다. 주머니에서 교리문답 책을 꺼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래도 나 돌방구네, 절대 포기 안 하요. 이번 부활절에는 영세 꼭 받아야지요. 교리문답도 이렇게 다 외웠다니까요! 누가 뭐래도 나 같은 여편네도 천주님이 돌봐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뭐든 포기하지 말아요.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뒤돌아서 성당 쪽으로 걸어가며 종소리가 울린다. 무대는 어두워지고 마지막 장면으로 바흐 첼로 음악이 흐른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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