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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모노드라마: 돌방구네, 셋째 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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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돌방구네, 셋째 아들의 이야기

무대 배경

무대는 돌방구네의 소박한 집을 재현한다. 가운데는 개다리 밥상이 놓여 있고, 한쪽에는 책장이 아닌 낡은 문갑이 있다. 무대의 다른 한쪽에는 성당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작은 장식이 배치된다. 무대는 셋째 아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집과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셋째 아들의 독백 (무대 중앙)

(셋째 아들이 무대 중앙에 앉아 공을 굴리고 있다. 잠시 굴리다가 관객을 향해 고개를 들며 이야기한다.)


"나는 이 집의 막내아들, 돌방구네 셋째 아들입니다. 국민학교 3학년이고요. 우리 집을 말하자면, 참 뭐랄까… 좀 엉망인 집이에요. 특히 엄마를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공을 멈추고 밥상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엄마는요, 어찌나 게으른지, 속옷 하나 깨끗이 빨아 입는 법이 없어요. 그러면서도 말은 잘해요. 동네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가 제일 먼저 알고, 또 제일 빨리 퍼뜨리죠.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엄마를 '돌방구네'라고 불러요. 내가 봐도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무대 조명 변화: 엄마의 교리 공부 장면

(무대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셋째 아들이 문갑에서 교리문답 책을 꺼내 관객에게 보여준다.)


"요즘 엄마가 제일 열심히 하는 건 바로 이거예요. '교리문답' 외우기요. 왜냐고요? 천주교회에서 배급해주는 강냉이 가루랑 밀가루를 더 많이 받으려고요. 엄마는 글을 못 읽으니까 내가 읽어주면 그걸 따라 외워요."

(책을 펴서 한 구절을 읽으며 관객을 본다.)


"'성체는 무엇이뇨?'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따라 하죠. '성체는 무엇이뇨?' (작은 목소리로) '면주 현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니라.' 이렇게요."

(잠시 책을 내려놓고 웃으며 고개를 저음.)


"처음엔 귀찮았는데요, 이제는 조금 재미있어요. 엄마가 내 말을 듣고 똑같이 따라 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우리 집에 공부하는 사람은 나뿐이라서, 내가 엄마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좀 뿌듯해요."


무대 조명 변화: 가족 이야기

(셋째 아들이 밥상 옆에 앉아 팔짱을 끼고 관객을 향해 이야기한다.)


"우리 집에는 형 둘과 누나 셋이 있어요. 형들은 엄마를 똑 닮아서 게으르고, 누나들은 엄마를 극진히 모셔요. 특히 누나들은 명절마다 장을 봐서 우리 집에 와요. 그런데 형들은 맨날 놀기만 하고, 나무를 해 오라는 엄마 말도 잘 안 듣죠. 결국, 이런 집안일은 나한테 넘어오곤 해요."

(공을 다시 굴리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착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엄마가 아프면 내가 도와드려야 하니까 그냥 하는 거죠. 엄마는 맨날 '내가 천주교회라도 안 다녔으면 우리 집은 벌써 굶어 죽었을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그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무대 조명 변화: 상방 사건 회상

(셋째 아들이 조용히 일어나 무대 한쪽에 놓인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 큰일이 있었어요. 엄마가 교회에서 영세를 받으려면 상방을 없애야 한다고 했거든요. 우리 아버지 상방이요. 엄마는 결국 상방을 치우고 모든 걸 태워 버렸어요. 그날 이후로 엄마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어요."

(잠시 침묵하며 땅을 바라본다.)


"엄마가 아프니까 우리 형들이 그제야 조금 도와주는 척하더라고요. 하지만 진짜 걱정한 사람은 누나들이었어요. 누나들은 점쟁이까지 찾아가고, 무당을 데려와서 상방을 다시 차렸어요. 솔직히 그때 엄마를 위해 누나들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무대 조명 변화: 현재로 돌아옴

(셋째 아들이 다시 자리에 앉아 교리문답 책을 펴서 관객을 향한다.)


"요즘 엄마는 다시 교리문답을 외우고 있어요. 이번 부활절에는 꼭 영세를 받겠다고 하세요. 엄마가 이걸 외우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안쓰럽기도 해요. 아마 엄마는 정말 천주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교회에 다니는 걸 거예요."

(책을 덮고 미소를 지으며 관객을 바라본다.)


"근데요, 저는 가끔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게으른 것처럼 보여도 결국 우리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다 하잖아요. 나중에 내가 커서 돈을 벌면,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게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때쯤이면 엄마도 더 이상 교리문답을 외우지 않아도 될까요?"


무대 조명 변화: 엔딩

(셋째 아들이 조용히 공을 굴리며 관객을 향해 마지막으로 말을 건다.)


"나는 이 집의 막내아들이에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어요. 엄마가 이걸 보면 나를 칭찬해 주실까요? 아니면 그냥 또 '교리문답'을 읽어달라고 하실까요?"

(공을 굴리다 멈추고 조명을 따라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간다. 무대는 점점 어두워지고,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희미하게 울린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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