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어린 남매, 노인의 독백
(무대는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 낡은 기와집이 배경으로 보인다. 노인은 무대 중앙에 서서 천천히 관객을 향해 고개를 든다. 그의 얼굴엔 피로와 고통이 깃들어 있다.)
노인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침묵, 고개를 돌리며 문 쪽을 본다.)
어두운 밤, 모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난 몸이 먼저 얼어붙는다.
"쥔 양반, 하룻밤만 자고 갑시다."
어린애 목소리였어. 아마도 열두 살쯤 되었으려나? 아니, 그 옆에 더 어린애도 있는 것 같았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쉰다.)
내가 차갑게 대답했지. "잘 데 없다."
그랬더니 또 문을 두드리는 거야. 이번엔 더 간절하게.
"밥이라도 한술 주시요."
밥? 내가 누구 밥줄이라도 되는가?
(고개를 들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 애들은 몰랐겠지. 내가 왜 이렇게 냉정한지.
왜… 아무도,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지.
(천천히 걸어 다니며 관객을 바라본다.)
얼마 전 일이었어. 경찰이 마을을 뒤졌고, 나는 낯모르는 사람을 숨겨줬다.
그게 내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어.
(고개를 떨군다.)
내 아들, 내 혈육이… 죽었어.
난 그날을 잊을 수 없어.
(고개를 휙 젖히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이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나? "네가 숨겨준 그놈이 빨갱이다."
빨갱이라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난 사람을 도와준 것뿐이었어. 그런데 그 대가로 내 아들을 잃었다고!
(잠시 침묵, 목소리를 낮춘다.)
그 후로는 아무도 거두지 않기로 결심했지.
내가 문을 열어주면 그게 화근이 될 테니까. 내가 손을 내밀면 또다시 모든 걸 잃을 테니까.
(다시 고개를 들어 관객을 응시한다.)
그래서 두 애를 밖으로 내몰았어.
난 그들을 도울 수 없었어. 내 손으로 또 누군가의 불행을 불러올 수는 없으니까.
(한참을 생각하며 걸음을 멈춘다.)
그런데… 그 애들이 떠나던 아침. 난 그들을 보면서 알았어.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로)
그 눈빛.
그 애들은 내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이미 겪고 있었어.
그 앙상한 몸, 얼어붙은 손발, 그리고 꼭 쥔 보자기. 그게 뭐였을까?
내 아들이 떠나기 전에도 저런 눈빛이었을까?
(갑자기 관객을 향해 말한다.)
내가 잘한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잔인했나?
내 아들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아버지, 그들을 도와야죠." 그렇게 말했을까?
(다시 혼잣말하듯)
하지만 내가 손을 내밀었다면, 그 애들에게 더 큰 화를 부르게 되었을지도 몰라.
그 애들은 족보를 꼭 끌어안고 갔어. 그게 무슨 희망이 되겠지.
그걸 믿고 어디론가, 어딘가로 가겠지.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천천히 숙인다.)
난 오늘도 홀로 남아 있다.
사람을 도울 수도 없고,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내가…
이 초가집 안에 웅크리고 있다.
그 애들이 내게 남긴 건 후회와 의문뿐이다.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며 노인은 무대 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가 어둠 속에서 들린다.)
노인
"내가 잘한 걸까… 아니면, 내가 또 한 번 잘못한 걸까…"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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