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젊은 홀어미들
화자: 유복자네
(무대 중앙, 유복자네가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아이의 작은 옷가지를 접고 있다. 조명이 점차 밝아지며 그녀가 관객을 향해 고개를 든다. 표정에는 잔잔한 미소가 있지만 그 속엔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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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자네
사람이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면,
나는 그 짐을 일찍 짊어지게 된 사람이오.
스물여섯.
남들 같으면 한창 남편과 웃으며 살 나이인데,
난 벌써부터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인생이오.
(잠시 아이의 옷가지를 매만지다, 고개를 들며 미소 짓는다.)
그래도… 나에겐 이 아이가 있소.
내게 남편이 남긴 마지막 선물.
내 유복자.
(아이의 옷가지를 접어 옆에 놓으며 천천히 관객을 향해 걸어온다.)
이 애송이골엔 나 같은 여인이 나뿐만이 아니오.
내 동생같은 아낙들, 동강댁과 문평댁도 그래요.
우린 셋이 모여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살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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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오른편에서 작은 불빛이 켜지며, 유복자네가 그쪽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문평댁은 말이 많고 재주가 많지요.
그런데 그 말과 웃음 뒤엔 외로움이 가득했소.
가끔은 동강댁과 나를 보며 말하더이다.
“성님들은 그래도 친정도 있고, 자식도 있응께 쓰겄소만,
나는 아무도 없어서 어째야 할지 모르겄소.”
(조금 고개를 숙이며)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미안했소.
내게 남은 이 아이가…
그 아이를 부러워하는 문평댁의 눈빛이 가끔 마음을 찌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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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무대 중앙으로 다시 집중된다. 유복자네는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생각하며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동강댁.
우리 중에서 가장 씩씩한 사람이오.
겉으로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친정으로 가면 뭐든 다 해줄 거”라고 말하지만…
가끔 나지막이 읊조리는 말투 속엔 어딘가 불안함이 느껴졌소.
친정이 있긴 해도,
그게 늘 기댈 수 있는 곳은 아닌 듯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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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자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관객을 향해 걸어간다. 목소리가 낮아지고 무겁다.)
우린 늘 뚝보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소.
박선달네 머슴, 뚝보.
무뚝뚝한데다 농담도 서슴지 않게 던지곤 하더이다.
그 양반이 참… 이상한 사람이지요.
일도 억척스럽게 잘하고,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농담을 주고받지만,
정작 자기 얘긴 절대 하지 않더이다.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요,
문평댁이 그 뚝보 양반을 은근히 마음에 뒀는 갑디다.
문평댁은 뚝보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을 붙였소.
“뚝보 양반, 우리 집에도 놀러 오씨요.”
“성님들만 챙기지 말고 나도 좀 봐주씨요.”
(조금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긴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웃었지만,
가끔은 마음이 복잡했소.
뚝보가 우리 셋의 삶을 모두 아는 듯,
때론 문평댁을 달래주고,
때론 나를 놀리며,
때론 동강댁의 이야기를 들어주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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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왼편에서 희미하게 창문 너머로 뚝보와 문평댁의 대화가 들려온다. 유복자네는 그 쪽을 잠시 바라보다 관객을 향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소.
문평댁 집 앞에 서서 그 안을 들여다봤소.
뚝보 양반이 문평댁 집 안에 앉아 있더이다.
그 둘이 웃고 얘기하며 무언가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소.
나도 모르게 발길을 돌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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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 후, 유복자네는 다시 중심으로 돌아와 관객을 향해 말한다.)
그런 날들이 몇 번 더 있었소.
문평댁은 결국 뚝보 양반과 함께 떠나기로 했소.
탈상을 지내고 나서 말이오.
그리고… 뚝보 양반은 그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세밑 전에 떠나버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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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점점 어두워지며 유복자네는 관객을 향해 조용히 말한다.)
이제 남은 건 나와 이 아이뿐이오.
하지만 괜찮소.
난 이미 내 삶의 짐을 짊어졌으니까.
내 아이와 함께라면,
다른 사람들이 떠난 이 애송이골에서도
난 살아갈 수 있소.
(그녀는 아이의 옷가지를 들고 천천히 무대 밖으로 걸어간다. 조명이 완전히 꺼진다. 문평댁의 웃는 소리가 들리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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