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막
& 소롱골 마포잠방이 집
이튿날까지 계속된 싸움은 결과적으로 시우네가 이긴 것이다. 면장과 교장이 보증을 서고 정 삼 개월 후에 신체를 이장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최씨네는 신체는 물론이고 상주까지도 살해하고 싶었으나 무엇보다 신체를 일단 하관한 뒤였고, 상주와 주변 조객들이 밤새 사화를 청하는 바람에 부득이 계약서로써 응한 것이다. 마포잠방이는 묏자리 양보보다도 사화 과정에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상대쪽이 앞세운 서장, 면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의 위력에 압도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찜찜했다. 마포잠방이는 사촌 동생 고수머리를 불렀다.
무대에는 고민에 빠진 마포잠방이가 어찌하면 좋을 지 생각에 잠겨있다. 이어서 고수머리가 등장한다.
마포잠방이
동생, 나 상의할 일이 있네.
고수머리
계약서는 받았다지만 썩 내키지 않지라우. 성님!
마포잠방이
암만 생각해도 저놈들이 엊저녁에 사과한 것하고는 달리 처음부터 우리를 업수이 여기고 온 것만 같어.
고수머리
글쎄 말이요. 나도 한편 그런 생각은 듭디다만…
마포잠방이
이래서야 어디 분해서 쓰겄는가… 그 자리에다 묏을 썼다고 해서 누가 꼭 잘되고 못되고야 할라든가만, 암만해도 안 되겠네.
고수머리
가만있으씨요.
마포잠방이 아들이 들어온다.
마포잠방이 아들
아부지, 학다리서 작은할아부지가 오셔가지고 산소로 바로 올라 갔어라우.
마포잠방이와 고수머리는 부리나케 산소를 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최씨네 산소
최씨네 일행이 무덤을 둘러싸고 숙부를 향해 섰다. 숙부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조카들을 나무란다.
마포잠방이 숙부
으흥!
마포잠방이
꼭 요. 팔대조부님의 묏머리란 말이요.
마포잠방이 숙부
그래 너희들은 하관할 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디야?
마포잠방이
우리는 그날 마침, 남은 나락을 좀 저들이니라고 모르고 있었는디, 고숙이 어디 갔다 오다 보시고 말씀하지 않소.
마포잠방이 숙부
면장을 지내던 누구?
마포잠방이
엄상렬이라고요.
숙부는 번쩍이는 안경테 너머로 묏등을 한참 본다.
마포잠방이 숙부
그럼 조객들도 많었겄구나?
마포잠방이와 고수머리 함께
예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 건너편에서 나무를 하던 검정조끼를 입은 소년이 차츰 일행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얘기에 팔려있고,고수머리만 그 소년을 유심히 살펴본다.
마포잠방이 숙부
그럼 조객들은 무슨 말들을 않디야?
마포잠방이
그저 이렇게 된 일 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사정을 좀 봐준 것이 낫겠다고들 해쌉디다.
마포잠방이 숙부
그래서 계약서를 썼다?(불만이 가득한 어투로)
마포잠방이
예. 석 달 후에 파기로요.
숙부는 지팡이로 땅을 짓찧으며 ‘삼 개월 후라, 삼 개월 후라…’ 이렇게 연신 혼잣말을 뇌인다.
마포잠방이 숙부
삼 개월 후라… 삼 개월 후라… (사이) 그럼 할 수 없는 사정이었구나… (사이) 이놈들아, 조상 묏머리를 패이고도 삼 개월 후에 파주십사아 하고 계약서를 써 줘?
마포잠방이와 고수머리(고개를 숙이며)
…
마포잠방이 숙부
에이, 병신 같은 녀러 자식들.
무대 어두워진다. 모두 퇴장한다.
무대 다시 밝아지면서 이번에는 마포잠방이와 고수머리 외에 무안에서 온 일가들이 삽이며 괭이를 들고 등장한다.
무안 일가
(삽을 들이대면서) 저놈들이 면장질만 했으면 장땡인가?... (삽으로 무덤을 파헤칠 기세로) 우리도 다 면장도 있고 서장도 있지 않는가.
종가 연중
(무안 일가를 말리면서) 그래도 천천히 하게 그대로 나두란 마시. 계약서까지 써줬는디, 그래서는 못써.
무안 일가
그까짓 계약서가 무슨 소용 있당가?... 다 죽에부릴라네.
이렇게 법석이는 사이에 나무하는 검정 조끼 소년이 근처에서 나무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것을 고수머리가 유심히 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종가 연중
워이,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보랑께.
무안 일가
무슨 말을 듣고 말고 해… 파버리제.
종가 연중(무안 일가 어깨를 끌어당기며)
그래도 대낮에 그래서는 못쓴단 마시.
무안 일가
…
종가 연중
파드라도 밤에 파
이 광경을 지켜보는 검은 조끼 소년에게 조명이 비쳤다가 무대는 어두워진다.
& 시우네 집
시우와 시우 아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얘기를 나눈다.
시우 아내
그렇게 당신이 약하제 어째라우. 시외숙이 뭐라시든지 밤에 갔다 모셨으면 됐을 것 아니요. 그랬으면 뒤에 혹 저쪽에서 알드라도 사정하기가 더 나을 것 아니요. 그런디 대낮에 갖다 딱 그래 농께, 누구든지 자기들을 업수이 여긴 것 같고 분할 것 아니요.
엄시우
허기사 남의 체면도 좀 곤란하기는 했단 마시.
시우 아내
이녁이 죽는 판에 남의 체면은 무슨 체면이어라우. 그리고 석 달 후에 옮기면 또 돈만 몽땅 들제 그 자리에다 묻었으나마나 아니요.
엄시우
가만있소. 저 사람들이 섟이 좀 삭이면 다시 가서 사정해볼라네.
시우 아내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씨요.(불만이 가득 담긴 말투로)
엄시우
어쨌든 그만 떠들고 자소 어이. 내가 다 알어서 할 텡께.
무대는 어두워진다. 시우는 잠이 들고 시우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이 어두운 가운데 소리가 들린다.
시우 아내(소리만)
당신은 무슨 잠이 그리 많소.
엄시우(소리만)
나, 통. 잠을 못 자서 그래.
시우 아내(소리만)
당신도 좀 생각해보씨요. 어쨌으면 좋겄는가.
엄시우(소리만)
아, 내가 다 알어서 할 텡께, 잠이나 자랑께.
무대는 어두운 상태로 시우 아내의 궁리하는 장면을 연상케하는 음악이 흐른다. 음악: 생상스 ‘죽음의 무도’
& 소문
면 일대에 소문이 퍼졌다. 무대는 어두운 가운데 소문 소리가 괴기하게 울린다.
소문
엊저녁에 누가 최첨지네 묏을 파가부렀다네에.
무대 밝아진다
& 엄시우 집 / 마당
마포잠방이를 비롯 최씨네 일행이 시우 집으로 달려왔다. 마포잠방이 육촌형이 칼을 빼든다.
육촌형
너 이놈, 이리 나오니라. (사이) 이놈 당장 안 나올래!
마포잠방이
(방으로 달려 들어가는 육촌형을 말리며) 성님 (육촌형 어깨를 잡는다.) 잠깐만 기다리씨요. (그리고 시우에게) 잠깐 이리 나오씨요.
시우가 얼떨결해가지고 마당으로 나온다. 시우 아내는 한쪽에서 떨고 있다.
육촌형
너 이놈, 엊저녁에 우리 묏 팠냐? 안 팠냐?(칼로 찌르려듯이)
마포잠방이
아따! 성님은 좀 가만있으란 말이요.
(시우를 향해) 엊저녁에 우리 묏을 팠소? 안 팠소?
엄시우
아니! 묏은 무슨 묏이라우.
마포잠방이
이전 날 우리 묏 말이요.
엄시우가 깜짝 놀란다. 사실 시우는 어젯밤 술집에 가서 밤을 새고 아침에 들어왔다.
육촌형
너 이놈! 바른대로 말해라. 당장 배를 찔러 죽일 텡께.
엄시우
허허이! 기막힌 말을 다 듣겄네이. 파기는 누가 무슨 묏을 팠어라우? (사이) 우리는 지금 거그다 묏을 쓰게 한 것도 얼마나 감사한디.
마포잠방이
…
엄시우
절대 우리는 그런 일 없소.
마포잠방이
여보시오, 큰일 날 것잉께 바른대로 말하씨요잉.
엄시우
허허 이런!
시우는 목이 탄다. 쓴침을 한번 삼킨다.
엄시우
원, 생각해보씨요. 우리는 거그다 묏을 쓰게 한 것만도 감사해서 이제, 오늘이나 낼 새 가서 다시 사과 말씀이라도 좀 디릴까 하는디. 뭣 땜에 그 묏을 팠을 것이요.
마포잠방이
정말이요?
엄시우
정 의심스러우면 바로 저 건네 술집에 가서 물어보씨요. 엊저녁에 거그서 장난을 하니라고 밤샜응께.
마포잠방이
꼭이요?
엄시우
초저녁에 가 가지고 아침에 돌아왔응께. 가 물어보란 말이요.
마포잠방이
그럼, 당신이 사람이라도 사 가지고 묏을 파라고 시킨 것 아니요?
엄시우
천만에 말씀이요.
마포잠방이
…
엄시우
아니, 내가 무슨 원수졌다고 묏을 팔 것이요. 술집에 가서 물어보면 알 것 아니요.
마포잠방이
가봅시다.
시우 아내는 남고 시우와 마포잠방이와 그 일행은 모두 퇴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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