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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맨발로 오유권 읽기] 황량한 촌락_표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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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촌락_표류족 줄거리


1951년 전쟁 중, 앵두나무집의 노인은 산사람과 경찰의 겁박 속에서 가족을 지키려 애쓴다. 밤사람들은 쌀을 강탈하며 아들과 며느리를 추궁하고, 경찰은 노인을 빨갱이로 몰아세운다. 노인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쌀을 내놓으며 고통 속에서 가족을 기다린다. 아들과 며느리가 돌아오자 노인은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가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뒤로하고, 다른 삶을 찾아 떠나 표류족이 된다.

이념으로 나뉜 사회에서 민초가 겪는 아픔을 콩트 형식으로 쓴 짧은 작품이다.


오유권, '표류족'

답사 기획


표류족에 나온 300년 이어 내려온 고향은 앞에는 문전옥답이 있지만 뒤에는 산세가 험해 입산이 가능한 지역이다. 영산포를 중심으로 10킬로 이내로 원을 그리면 잡히는 곳이 있다.

바로 봉황면 철천리 '철애'다.

뒤에는 덕룡산이 있고 앞에는 나주평야가 펼쳐진 철천리에는 두 점의 보물이 있다. 유홍준은 자기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 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보물이라도 되는 듯 버려진 듯 버티고 있는 국가유산이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과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이다.

국가 유산 포털에서

들판 끝나는 능선에 뭐가 있을까 싶은 곳에 가까이 붙어 있는 두 점의 보물이다.

나주 철천리 석조여래입상


국보는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 중 독창성과 희소성이 뛰어난 국가적 상징물이다. 국보에 이은 보물은 국보보다 범위가 넓고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이 큰 문화재를 포함하며, 지역적·분야별 중요성을 나타낸다.

물론 지금은 '미륵사'를 개창해서 큰 절집의 부속물로 보이나, 과거에는 허름한 절 구색도 갖추지 못한 양철지붕의 마름집 같은 것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과연 우리 국토 어디에나 조상들의 숨결이 잡히지 않는 곳이 없다는 유홍준의 표현은 부족함이 없다.

이곳 철천리에서 조금 더 산 쪽으로 들어가면 '각동리'가 있다. 이곳이 '표류족'의 배경이라고 장담한다. 답사 삽십년의 촉으로 말이다.

각동리와 덕룡산


영산포에서 금정으로 넘어가는 작은 길(지금은 넓은 길이 됐지만, 과거에는 수레나 다니는 작은 길)을 시오리 가면 나오는 구릉에 두 보물이 나란히 있다.

영산포와 철천리

답사는 영산포 오유권 생가인 노봉산에 올라 덕룡산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이다. 덕룡산 왼쪽으로 무등산, 오른쪽으로 솟은 월출산은 광활한 평야에 세워진 삼불상처럼 위세가 대단하다. 덕룡산은 천년고찰 불회사가 있는 곳이다. 또한 녹차의 본거지를 이루고 있는 운흥사가 있기도 하다. 당연히 '차의 명인' 박계수 회장님의 '차 이야기'가 답사에 빠질 수가 없다.

이곳을 지나 또 하나의 유물을 찾는다. 이번 답사 컨셉인 '전 국토가 박물관'에 어울리는 유물이 '나주만봉리석조여래입상'이다. 철천리에서 세지면을 향해 조금 가다가 만봉천 상류로 접으면 나오는 초라한 절간에 있는 부처상이다.

소박한 고려시대 민불

귀가 얼굴 반만큼 크지만 얼굴 구석구석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리쩍 할머니 모습 그대로다. 만봉리를 발딱 넘으면 수계가 탐진강으로 바뀐다.

맨발로 오유권 읽기

https://youtube.com/shorts/a6e3FvvYtkQ?si=XCd7FLkvoytjUn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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