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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모노드라마: 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박 순경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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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박 순경의 독백


1. 도입


(박 순경이 무대 한쪽에서 천천히 등장한다. 순경복을 입고, 모자를 손에 들고 혼잣말을 시작한다.)

박 순경

사람들 사는 일이란, 참 복잡하지. 특히 이 마을에 와 보니, 경운기 한 대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끝이 없구먼.
나는 박 순경이요. 공안계에서 일하는 순경인데, 이 까치메 마을에 일이 잦아져서 참 곤란하다니까.

(천천히 관객을 향해 걸어 나와 말을 이어간다.)
여기, 또갑이라는 구르마꾼이 있소. 소를 끌고 다니며 짐을 나르는 사람이요. 그런데 경운기 한 대 들어오니 이 또갑이가 하루하루가 전쟁터지.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더니만, 경운기를 모는 동환이와 싸우다 못해... 아휴, 그래도 소를 죽일 줄이야. 참,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들어보소.


2. 사건의 시작: 탑골 주막에서


(주막을 배경으로 서서 기억을 더듬는 듯 말한다.)

박 순경

그날도 마을을 한 바퀴 돌다 주막에 들렀소. 그런데 또갑이가 나를 보자마자 막걸리를 권하지 않겠소?
"순경님, 한 잔 하십쇼."
난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 그래도 근무 중이라 꺼림칙했는데... 아이고, 거절 못 했지.

(한 모금 마시는 흉내를 낸다.)
그러더니 또갑이가 묻더군. "경운기로 돈 버는 게 법적으로 맞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명확한 답을 몰랐소. "글쎄, 영리 목적으로 쓰면 문제 될 수도 있겠지."
또갑이는 그 말에 불붙은 듯하더라고. 경운기 몰던 동환이를 단속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요. 이러니 일이 꼬이기 시작했지.


3. 갈등의 심화


(걷다가 멈춰, 관객에게 강하게 호소하듯 말한다.)

박 순경

경운기냐, 구르마냐. 문제는 간단했소. 경운기는 빠르고 값도 싸지. 구르마는 소가 끌고 다니니 시간이 더 걸리지 않소? 하지만, 또갑이와 또을이 같은 구르마꾼들에겐 생계가 달린 일이었지.

며칠 뒤, 동환이가 경운기로 국도까지 나왔다길래 단속을 나갔소. 사람까지 태우고 짐도 가득 싣고 있더라고. 내가 멈춰 세우니 동환이가 말하길, "발 달린 기계가 왜 못 나오냐"고 하대. 거기서 싸움이 시작됐지.


4. 마을의 데모


(손을 들어 올리며 강하게 외친다.)

박 순경

그러더니, 또갑이가 사람들과 소를 끌고 나와 길을 막더라고. 국도 앞에서 데모를 벌이면서 경운기를 못 지나가게 하는데... 소들이 길을 막고 서 있는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구먼.
"경운기의 횡포를 막아라!"
"마소의 공적을 무시하지 마라!"
구호를 외치는데, 참 난감했소.

(한숨을 내쉬며 관객에게 다가간다.)
결국 내가 나섰지. "길 비켜라. 경운기는 국가에서 장려하는 기계다."
그 말에 또갑이가 주막으로 뛰어가더라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도끼를 들고 자기 소를 치더라니.
(목소리를 낮춘다.)
참, 그 소는 무슨 죄가 있다고...


5. 결말: 박 순경의 회한


(무대 중심에 서서 고개를 떨군다.)

박 순경

결국 또갑이는 경찰서로 끌려갔고, 경운기는 마을에 뿌리내렸소. 하지만 그날, 또갑이가 소를 치며 외친 말이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소.
"이 미련한 놈의 소야, 어서 뒈져라!"
그게 소한테 하는 말 같았소? 아니, 자기 자신한테 하는 말 같았소.

(관객을 천천히 둘러보며 조용히 말한다.)
이 마을 사람들, 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오. 하지만 열심히 산다는 게 꼭 옳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소.
경운기가 편리하다지만, 사람이 사람을 밟고 올라가는 게 맞는지... 나도 참 답답하구먼.


6. 마무리


(고개를 들고 관객에게 작별을 고한다.)

박 순경

이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진 않소.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마을 사람들 마음속엔 아직 상처가 남아 있겠지.
(잠시 멈춘 뒤)
그게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까. 아휴, 또 순찰이나 나가봐야겠소.

(모자를 쓰고 천천히 퇴장하며 무대가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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