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죽은 농우의 독백, 농우부고장
(무대 위에는 어두운 조명이 깔려 있다. 중앙에는 도살당한 소의 형상이 놓여 있다. 소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농우
나는 농우(農牛)다.
삶이란 것이 원래 이리 허망한 것인지.
평생 이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고 밭을 갈고 짐을 싣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내 마지막은, 내가 사랑했던 주인의 손에 이루어졌다.
그 손이 내 목을 내려치던 순간에도, 나는 그가 미워지지 않았다.
(조명이 살짝 밝아지며, 소의 형상 주변에 마을 풍경이 비치기 시작한다. 경운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농우
나는 이 마을의 역사를 알고 있다.
우리 소들은 이곳의 땅을 갈고, 논과 밭을 일구며, 인간들의 배를 채우고, 삶을 이어오게 했다.
그런데 경운기라는 것이 들어왔다.
쇳덩어리로 만든 기계가 우리를 대체하고, 사람들은 그 편리함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 주인, 또갑이 형님은… 갈수록 일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점점 지쳐갔다.
(무대 배경이 변하며, 또갑이와 경운기를 몰던 동환이의 대립 장면이 흐릿하게 재현된다. 또갑이가 소를 몰며 경운기와 다투던 모습이 비친다.)
농우
또갑이 형님은 자존심이 강했다.
소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그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분노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마음속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소의 공적을 경시하지 말라.”
그의 외침 속에는, 나를 향한 미안함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소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고, 조명이 또갑이가 소를 죽이는 장면으로 옮겨간다. 도끼가 내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농우
그날, 나는 그의 눈에서 고통을 보았다.
그러나 그 고통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경운기가 빼앗아간 그의 삶, 그의 희망, 그의 존엄을 애도하는 눈물이었다.
그가 도끼를 들어올릴 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패배 선언이자, 나와 함께했던 삶의 종말이었다.
(조명이 다시 어두워지며, 슬픈 거문고 산조가 흐른다. 조명은 천천히 밝아지며 소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농우
내 주인도, 경운기를 모는 동환이도, 모두 시대의 희생자였다.
경운기는 분명 편리하고 효율적이었지만, 그 편리함이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줄은 몰랐다.
나는 이해한다.
동환이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경운기를 선택했고, 또갑이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소를 택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길 위를 걸으며 서로의 길을 막아섰던 것이다.
(조명은 다시 어두워지며, 소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농우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내 마지막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죽음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기를.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며,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
그 답을 찾는 것이,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리라.
(조명이 완전히 꺼지고, 거문고 산조가 끝난다. 관객석에 정적이 흐른다. 무대에 희미하게 또갑이의 실루엣이 비치며 막이 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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