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그네_모노드라마
원작: 오유권 소설 ‘두 나그네’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참고 인물들
큰 사내(유재현: 46세)
작은 사내(한유홍: 40세)
주막주인1, 2, 3
시간
1950년대 초반 늦가을
장소
고막원역과 영산포 사이 어디
화자
고막원역에서 내려 오봉리까지 걸어가는 40대 남자 한유홍
[서막: 개괄적인 상황]
무대는 어두운 조명에서 점점 밝아지면서 시작된다. 길을 배경으로 삼고 배우(한유홍 역)는 무대 중앙에 서서 꽹과리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배우
(소심하게)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저 사람하고 같이 가면 좋겄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네. 곧 땅검이 지겠는디… 어서 가서 말을 걸어보자. 실은 제가 나이 사십이 되어도 으슥한 산길을 혼자 걸으면 무섭거든요. 마침 앞서가는 떡대가 좋은 사나이가 있으니 벗 삼아 넘어가면 좋지 싶구만요.
[두 사내의 만남]
“장형! 어디까지 가시요?”
“서성리 넘어서 대머리까지 가신다고요. 나는 서성리 밑에 오봉까지 가네요. 동행 삼아 같이 갑시다.”
큰 사내가 걸음을 늦추네요. 재빨리 옆으로 따라 붙어서서 얘기를 걸었습니다. “아 이놈의 재가 작은 재지만 인공 시절부터 소문이 흉흉한 디 아니요. 당초 여그를 지날라면 소름이 끼쳐서…” 하니, 큰 사내 왈 “지금이야 머 상관 있간디라우.”(굵은 목소리로) 대범한 한 마디.
내 기가 팍 꺾이더이다.
이어 큰 사내가 “헌데 노형은 오늘 어서 나서서 오시요?” 묻는다.
기다렸던 차라, “요 며칠 전에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아들 면회를 갔다가 오늘 오요. 고막원에서 내려 차가 없어 걸어오는 길이요.” 했겄다. 큰 사내도 아들 면회를 갔다 온다나.
마침 잘 됐다 싶어 얘기를 꺼내는데, 큰사내가 내 위아래를 훑어 보더니 “그랴, 어서 본 듯하요” 그러지 않소. 나도 마찬가지로 본 듯 한디... 워낙 덕대가 커서 빤히 쳐다보지 못하고 “집이 아들은 몇 부대에 가 있습디까?”하고 물었습디다. 근디 같은 부대더라니까요. 그래 반가워서 “더욱 반갑소” 했겠다. 근디 큰 사내는 예사롭게 “반갑소” 하지 않겄소.
두 번째 기가 꺾입디다.
등치에도 밀리고 행티도 더 여유로와 보여 주눅이 드는차에 사내가 “우리 약주나 한 잔씩 하고 갑시다.”(묵직한 어조로)하지 않겄소. 막 주막을 지나치는 순간인데, 내 눈에는 띄지 않았었던 것이외다.
주막에 먼저 들어가는 사내 뒤를 따라 들어갔더니, 사내가 ‘멋 좀 있소?’하고 묻습디다. 주막 주인은 “다 떨어지고 소주하고 수루멧 마리 밖에는 없다”고 하더이다. 우리는 쇠주 두 잔씩을 거푸 걸치고 큰 사내가 값을 치르고 나오면서 자기 소개부터 하지 않겄소. “대머리 방죽골서 사는 유재현이오”라고.
세 번째 기가 꺾입디다.
나도 얼른 두루마기를 걷잡고 “전 오봉리 삼거리에 사는 한유홍이올시다.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매번 기회를 놓치는 내 스스로가 찐따같은 생각이 들어 기가 죽드란 말이요.
이런저런 얘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나는 주머니 속을 만지작 거리지 않았겄소. 큰 사내가 먼저 냈으니 다음에는 내가 내야할 차례다 싶어. 근디 만져지는 돈은 150환. 그중 백환은 마누라에게 약속한 고무신을 사고, 남저지는 애들 과자봉지라도 쥐어줄라고 애껴온 것이지라우. 사실은 아내가 진날 마른날 할 것 없이 짚신 하나로 끌고 다니면서 흙과 먼지더미 속에서 살면서 모아온 푼돈을 아들에게 보태라고 준 것이여라우.
면회간 아들에게 돈 백환 덜 쓰고, 돌아가 마누라 고무신이라도 살라고 애껴 돌아오는 길인디… 에라 그래도 저 사람만 술값 내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도 한 번 내야지… 쇠주는 아니드라도 막걸리라도. 그러면 오십 환이면 되지 싶어서.
이런 생각을 하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한 사이에 다시 돌꼬지 주막이 놔와 버렸당께라우. “여기 잠시 들렸다 갑시다.” 소리가 들리지 않소. 이번 만은 내가 내야지 하고 따라 갔는디. 또 큰 사내가 내지 않겄소.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는디, 큰 사내가 “대장부의 보짱이라니!”라고 하지 않소. 그러고 보니 큰 사내도 술값 계산에 약간 성이 가시긴 했는 갑디다. 속으로 생각한 것이 말이 되어 불쑥 밖으로 튀어 나왔는가 얼른 수습을 합디다. 근디 듣는 나는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장형!” 하고 큰 사내가 나를 부릅디다. 대답을 했더니 사내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고 하지 않겠소. 뭐 그럽시다 했지라우.
사내 얘기는 군대간 남자 결혼 얘긴디, 내 머리에는 잘 들어오지 않습디다. 어떻게 하면 깎인 체면을 세울 수 있을까 생각 중에, ‘옳지, 방앗골 주막에서는 내가 내야지.’ 작정하지 않았겠소. 마음을 그렇게 먹었더니 사내 얘기가 다시 들리기 시작합디다. 근디 사내가 “노형, 잠깐 여기서 우리 술 한 잔씩만 더 들고 갑시다.” 하지 않겄소. 고개를 들어보니 방앗골 주막이 앞에 있드랑께라우. 순간 ‘앗차!’ 했소.
[방앗골 주막]
주막 여인이 따라주는 소주 두 고뿌 씩을 마시지 않았겄소. 큰 사내가 나룻 끝에 엉긴 술 방울을 닦고는 바로 손이 두루마기 속으로 가져가라우. 나도 얼른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고 계산을 해야지 하고 손을 호주머니로 가져갔지라우. 근디 사내가 돈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곰방대와 담배쌈지를 꺼냅디다. 나는 잡았던 지갑을 놓고 같이 있던 담배말이 종이를 꺼내고 말았습디다. 이윽고 큰 사내가 곰방대를 톡톡 떨어 호주머니 속에 넣는가 하자 곧 지갑에서 백 환짜리 지 폐 한 장을 내어 “애씨요, 아주머니. 술값” 하지 않겄소. 나는 깜짝 놀라 그걸 한 손으로 가로막으며 “아니 장형, 거 넣어두시오. 예 있소 예 있어. 아주머니! 게 놔두고 예 있소 예 있소” 하면서 내가 계산하겠다고 나섰소. 큰 사내는 그런 나를 무시하고 돈을 치루는데, 내 손은 호주머니에서 나오지 않고 말았소.
큰 사내가 계산을 치르고 “웬 그런 말씀을… 우리가 것 좀 누가 낸들 상관있간디라우.” 하더란께요. 어찌나 얼굴이 뜻뜻한지.
[갈림길에서]
‘사람이 이래선 안 된다. 이래선 안 된다’ 되뇌이면서 “장형 번번이 미안합니다 그랴” 인사치레는 했소. 서로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다시 한 잔 마시면서도 결국은 큰 사내가 값을 치뤘소. 나야 역시 “예 있소, 예 있소. 그거 받지 말고 이것 받으란 말이요.” 했지만 내 손은 역시 주머니에서 꺼내질 못하고 주춤주춤 거리고 말았소. 큰 사내는 거기서도 “것 좀 누가 낸들 상관있겠소. 우리 아들네들이 한 부대에 가 있다니 형제간이나 다름없소 그랴” 하지 않겄소.
“번번이 이래서야 넣두시래도, 아니 넣어두시래도.”라고 미안한 표시는 했소…
근디, 헤어지는 마당에 그려집디다.
기뻐할 마누라와 아들들 모습이…
“허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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