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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이역의 산장_모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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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의 산장_모노드라마

원작: 오유권 소설 ‘이역의 산장’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참고 인물들


여인(40대 여자, 집 주인)
노인(60대 남자)
사내(30대 남자)
색시(20대 새댁)
흰둥이(7년생 수캐)


시간

1951년 겨울에서 1952년 봄

장소

국사봉 아래 외딴집

화자

영산포 골모실에서 사는 이야기꾼

[서막: 개괄적인 상황]


무대는 어두운 조명 속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무대 중앙에는 낡고 외딴 집을 상징하는 소품들이 놓여 있다. 배우는 무대 중앙에 서서 꽹과리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배우

(느긋하게)  
1951년 겨울, 국사봉 아래 작은 산장이랑께. 산장은 무슨 산장? 오두막 집인디, 대충 ‘산장'이라고 하드라고.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산에 있는 집인께, ‘산장'도 말이 되제. 전쟁이 휘몰아치더니 사람들 몇이 이리로 흘러왔지라. 이 집이 피난처가 되겄다 싶었는디, 점점 이 산장이 삶의 각축장이 됐당께. 여그서 뭔 일들이 있었는지 한 번 들어볼랑가? …  박수 치면 들려주고 없으면 들어가께.

(박수)

[장면 0: 노인의 독백]

자식이 웬수제. 지가 좌익을 했으면 그거나 제대로 하든지. 바람은 왜 펴~ 처자식이 있는 놈이. 그 자식 새끼 살리려고 피신 시키다가 나도 이리 됐당께. 무자식이 상팔자란 옛말이 그른 것이 없어.

[꽹과리]


자식 놈은 강진 쪽으로 내빼고, 나는 장흥쪽으로 빠지다가 돌아봉께, 집은 불타고. 할멈과 내 새끼들은…  내가 말을 못해.(운다) 오매오매 내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여~ 그래 안 죽을라고 뛰다 보니께 여기 도착 했당께.

[꽹과리]


여인이 받아줘서 망정이지 죽은 목심이었제. 여인이 사랑채로 끌고 갈 때 ‘살았다’ 싶었어…

[장면 1: 여인의 독백]


배우는 여인의 가면을 쓴다. 여인은 허리가 굽고, 손에는 누군가를 돌보던 흔적이 남아 있다.

여인

(고즈넉하게)  
전쟁이 우리 집을 다 망쳐부렀어. 남편은 인민군한테 끌려가고, 우리 아들... 다시 못 볼 곳으로 갔당께. 이 산장에서 나는 그저 살아남아보자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 아무도 안 찾아오는 이 집이 내 마지막 피난처요.

고개를 들어 무대를 바라보며


그러던 어느 날, 그 노인이 와부렀어. 피투성이가 돼가지고… 나처럼 전쟁에 휘말린 거지. 나는 그를 받아들였지라. 하지만… 그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모르겄소.

(잠시 침묵 후)  
그리고 또 다른 사내가 찾아왔제. 젊고 힘센 사내... 처음엔 나를 도와준다고 하더니 점점 이 집을 지가 차지하려고 하더란 말이여. 나는 그냥 지켜보기만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를 꼭 쥐며)  
이 산장이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보여. 난 모든 걸 잃었고, 이젠 이곳에서도 내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겄소. 하지만… 내가 어디로 가겄소. 이게 내 마지막 자린디...

조명이 어두워지며 여인은 무대 한쪽으로 물러난다.

[장면 2: 노인의 독백]


배우는 노인의 가면을 쓴다. 노인은 허리가 약간 굽었고, 걸음걸이가 느리며 몸에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다.

노인

(힘겹게)  
이리로 피신해온 것은... 그냥 살아남아볼라고 한 것뿐이요. 내 아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집도 잃고, 가족도 잃어부렀어. 남은 건 이 늙은 몸뚱이 하나뿐이제… 그 여인이 날 받아주긴 했는데, 그게 오래가진 않더라고.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어느 날, 젊은 사내가 이 집으로 들어와부렀어. 그 놈이 나를 밀어내고, 이 집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더라고. 나는 사랑채로 밀려나서... 내 자리가 점점 사라져부렀어.

(한숨을 내쉬며)  
전쟁이… 내게서 다 뺏어가 분거여. 내 가족, 내 집… 그리고 이 산장에서도 더 이상 내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 그래도 갈 데가 없으니깐, 이리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

조명이 어두워지며 노인은 무대 한쪽으로 물러난다.

[장면 3: 사내의 독백]


배우는 사내의 가면을 쓴다. 사내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강한 몸짓을 하며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사내

(단호하게)  
난 여기 숨으러 온 거 아니여. 이 전쟁 속에서 나는 살아남아야 했고, 그걸 위해선 이 산장이 필요했제. 여인의 동정이나 노인의 나약함은 나한텐 아무 상관없어. 나는 그저 이 집의 주인이 되야 했어.(독하게 주위를 살핌) 그들을 밀어내고 내가 원하는 걸 얻어야 했어.

(조금 더 강한 어조로)  
그래서 그 노인을 밀어내부렀지. 그의 자리는 이제 내 것이여. 여인한테 친절한 척하면서 나는 이 집을 점점 내 것으로 만들었어. 그런디… 젊은 여자가 나타났어. 여들여들한 그녀는 나한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더라고. 그녀와 함께라면… 나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았지. 나무를 같이 하면서 설득했제. 젊은 우리가 힘을 보태 노인과 여인을 부모처럼 모시자고. 처음에는 듣는 시늉도 안 터니만 갈수록 넘어 오드라고. 열 번 찍어 안 넘어지는 나무가 있던감.

(고개를 들고 관객을 바라보며)  
하지만… 이 산장에서의 삶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일랑가? 나한테 필요한 것은 힘과 권력이여, 다른 것들은 필요 없어. 근디… 통바지처녀가 연희 소식을 들고 왔어. 연희 소식을 듣는 순간 일이 꼬이기 시작했지. 연희는 내가 입산한 줄 알고 갔더라고. 어째야 쓰까?

알켜 주더라고. 젊은 여자여, 연희여. 아니면 주인 여자…

조명이 어두워지며 사내는 무대 한쪽으로 물러난다.

[장면 4: 색시의 독백]


배우는 색시의 가면을 쓴다. 색시는 불안한 태도로, 주위를 살피며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색시

(불안하게)  
나는 그저 살아남아볼라고 이리 왔어. 전쟁통에 삶이 다 망가져버렸으니… 이 산장이 나한텐 피난처가 될 거라 생각했지. 근디…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고. 그 노인과 사내…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내 자리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어.

(조용히)  
사내가 나한테 잘해주는 척 했지만, 그가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인지는 모르겄어. 그와 함께라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정말 옳은 선택인지… 난 여전히 알 수가 없어.

(손을 떨며)  
이 산장에서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걸었어. 근디 그 선택이 진짜 옳았을까?… 이제는 모르겠어. 내가 이리서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여기서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될까?

조명이 어두워지며 색시는 무대 한쪽으로 물러난다.

[장면 5: 흰둥이의 독백]


배우는 흰둥이의 가면을 쓴다. 네 발로 걷는 흉내를 내며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흰둥이는 단순하고 순수한 본능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흰둥이

(순수하게)  
난 그저 주인을 지키려고 했어. 그게 내가 할 일이니까.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여기서 모든 게 낯설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어. 낯선 사람들이 오고, 주인은 나한테 신경을 덜 쓰기 시작했지. 난 그걸 느꼈어. 돌아가는 판이 개판이여. 아니지… 사람판이여. 요즘 사랑들이 개 알기를 우습게 아는디, 사람들 하는 것을 봐! 개판이 훨씬 낫지.

(주위를 킁킁거리며)  
그 노인은 처음엔 날 무서워하지 않았어. 난 그를 지켜봤지. 근데… 그 사내는 다르더라고. 그의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어. 난 그가 주인한테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느꼈지. 그러고 나서... 내가 이 집에서 밀려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조용히)  
그 사내는 나를 없애려고 했어. 그래서 난 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 근데… 난 여전히 주인이 그리워… 난 다시 돌아가고 싶어. 주인이 날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주인을 지켜야 해… 그게 내 일이니까.

조명이 어두워지며 흰둥이는 무대 한쪽으로 물러난다

꽹과리를 울리면서 배우는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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