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원작: 오유권 소설, 농우부고장(현대문학, 1968. 08)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또갑이
또을이
동환이
주막 여인: 탑골 주막
박 순경
양 순경
용학 양반
중만이
동환이 조카
화산 양반
화산 양반 며느리
마을 주민 1, 2, 3
대화 중에 나오는 인물
경운기 등장으로 짐 싣기를 포기한 구르마꾼
주요 등장인물 성격
또갑이: 소갈이와 소구르마를 운영하는 남자. 동생 또을이와 함께 경운기 출현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운기 동환이와 격렬하게 다툰다 막판에 분에 못이겨 불쌍한 자기 소를 죽인다.
또을이: 또갑이 동생으로 말 구르마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형을 잘 따르는 동생으로 형과 함께 경운기를 모는 동환이와 대적한다.
동환이: 정부지원금과 자비 부담을 보태 경운기를 구입해 운영하는 남자. 경운기 생산성이 높아 또갑이와 또을이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때
1960년대 초반 경운기가 처음 보급되던 시기
장소
영산포 인근 지역(이십오리 정도)의 300여 호되는 마을
# 제1막
읍으로 벼 한 구르마를 싣고 나온 또갑이는 탑골 주막에 앉아서 박 순경 사이드카를 기다린다. 또갑이는 동환이 처사에 대해 따지려고 박 순경을 기다리는 것이다.
& 주막
또갑이
안주 존거 없소?
주막 여인
돼지근을 사다놨는디, 오늘 장날이라 떨어져분저서라우.
또갑이
달구새끼라도 하나 삶읍시다.
주막여인이 나갔다 온다.
주막여인
주먹만한 것이 한 마리 있긴 헌디.
또갑이
그놈이라도 뜯읍시다.
박 순경 사이드카 소리(음향)가 난다. 사이드카가 소 구르마 앞에 와서 멈춘다. 또갑이 주막 문턱으로 내려서고 박 순경은 사이드카에 한 발을 걸치고 묻는다.
박 순경
구르마 당신 거야?
또갑이
안녕하십니까.
박 순경
이런 데다 매두면 안 되지.
또갑이
오십쇼. 약주 한잔 하시게.
박 순경
짐 끄는 사람이 술 살 돈 있어.
또갑이
구르마꾼이라고 그런 돈 없을지 아요. 오십쇼.
박 순경이 사이드카를 끌어다 뒤편에 세우고 마루로 오른다.
또갑이
까치메 사는 김또갑입니다.
박 순경
공안계 박 순경이요.
또갑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박 순경
천만의 말씀이요.
또갑이
이런 데서 죄송합니다.
또갑이 박 순경에게 술을 권한다. 박 순경은 술을 들이킨다.
또갑이
경운기는 도대체 뭣하라는 것이요?
박 순경
뭣하라는 것이라니?
또갑이
땅을 갈라는 것이요? 짐을 실어 나르라는 것이요?
박 순경
땅도 갈고 짐도 싣지 뭐.
또갑이
짐은 어떤 짐을 싣소?
박 순경
농사짓는 데 필요한 짐을 다 싣지 뭐.
또갑이(아는 척 하며)
운수법상이나 국가에서 보조해준 것으로 봐선 영리 목적을 위해서 짐을 실으란 것은 아니지 않소.
박 순경이 멈칫 당황한다. 이 한계를 명백히 안 가려본 것이다. 박 순경이 생각해도 또갑이 이야기가 일리가 있다. 운반에 편의를 제공한 것이지 영리행위를 하라고 내준 것은 아닐 것 같았다.
박 순경
영리 목적으로 운반하는 사람이 있소?
또갑이
있다 뿐입니까. 날마다 영산포읍에까지 짐을 안 싣고 나옵니까.
박 순경(직감적으로)
그건 안 되는데.
또갑이
그럼 왜 방치해두고 있습니까?
박 순경(말투를 달리하며)
그런 실정은 미처 몰랐소.
또갑이
까치메 윗동네 사는 나동환이란 사람이 경운기로 영업을 한닥 말이요. 단속 좀 부탁합니다.
박 순경
그래, 알았소.
또갑이
이러다간 소갈이는 물론 마바리도 굶어죽게 생겼소.
박 순경
알았소.
박 순경은 다시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킨다. 또갑이는 닭다리를 얼른 집어 박 순경에게 건넨다.
무대 어두워진다.
& 길 거리
또갑이가 구르마를 몰고 간다. 뒤에서 동환이 경운기가 다가온다. 또갑이 구르마를 추월하려는 것이다.
또갑이
이라야! 쩟쩟.
동환이
딸딸딸딸…(음향)
또갑이(혼잣말)
이놈 보자!
또갑이는 소의 잔등머리를 채찍으로 갈긴다.
또갑이
가자, 이놈의 소야
어느덧 경운기가 다가오자, 또갑이는 소를 길 가운데로 몬다. 경운기 추월을 막겠다는 것이다.
동환이
안 비킬래?
또갑이
…
동환이
안 비켜?
또갑이는 못 들은 척한다. 동환이는 운전대를 놓고 내려온다. 또갑이도 소의 멍에를 내려놓고 돌아선다. 둘이는 서로 척을 지면서 주막으로 간다.
또갑이
술 한 잔 주시요.
동환이
자네 꼭 그러긴가?
또갑이
나도 옹니가 돋은 놈이여.
동환이
그러지 마소.
또갑이
밥그릇 뺏어가는디 눈감고 있을 놈이 어딨어.
동환이
무슨 짐을 실으면 어째서?
또갑이(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그 짓이 오래가는가 봐라.
동환이
턱도 아닌 소릴…
동환이는 턱을 파르르 떤다.
동환이
마을 사람들이 요청하니까 내가 나선 것이제, 자네 밥그릇을 내가 뺏았능가? 움직이는 기계가 빠른께 사람들이 고른 것이제.
또갑이
밭가는 기계를 가지고 운수 영업을 하면 안 되제.
동환이
누가 느리고 비싼 구르마 쓴단가, 경운기에 싣제… 사람들이 다 말해…
그도 그럴 것이 구르마에는 겨우 천사오백 근 정도밖에 못 싣는데 그 운임은 천 원이다. 게다가 운반하는 시간도 하루가 다 걸린다. 이에 비해 경운기는 이천 근을 싣고도 구백 원이다. 게다가 한나절이면 읍까지 왕복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동환이
글고 개인 이득만 따질 것이 아니제, 마을 부흥도 생각해야 된당께.
말문이 막힌 또갑이는 운수업까지 할 수는 없다고 막아 서는 것이다.
또갑이
그래도 경운기로 운수업까지 하게 됐는가? 안 되제.
동환이
운수업을 하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딨단가?
또갑이
농로에서 운반만 하지 국도까지 나와서 영업행위를 하게 돼 있어?(소리를 높힘)
동환이
자네는 법도 잘 아네.
또갑이
법 아니라도 이치상 그렇잖은가. 자네 한 사람 때문에 몇 사람이 희생된지 아는가.
동환이
삼백 호 마을이 다 편리한 것은 안 생각하고.
또갑이가 술잔을 거칠게 밀면서 말도 거칠어진다.
또갑이
니가 이 새끼. 니 돈 벌라고 경운기 샀제 마을 사람들 생각해서 사왔냐.
동환이(악에 받혀)
너는 그럼 마을 사람들 생각해서 소 부리냐.
또갑이(동환이 멱살을 잡고)
나와, 이 새끼!
동환이(같이 붙들고)
요새끼 봐라!
무대: 어두워진다.
# 제2막
& 또을이 집
또갑이
또을이 있냐?
동생 또을이가 문을 열고 나온다.
또을이
이제 와겠소. 근디, 웬 옷을 찢어겠소?
또을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형의 옷을 살핀다.
또갑이
동환이하고 싸웠다.
또을이
무슨 쌈을 하고 다니시요. 앉읍시다.
또갑이
천불이 나서 살 수가 있냐. 오늘도 영촌 양반네 나락 일곱 섬 싣고 가서 칠백 원밖에 못 받았다. 사람 소가 하루 일하고 돈 그것 받아서 살겄냐. 그놈도 사정사정해서 실었다.
또을이
나도 오늘 고삐 한 번을 못 잡었소. 이대로 가면 말을 팔든가 집을 팔든가 해야 쓰겄소.
경운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하루 걸러 한 번씩은 짐을 실었다. 소도 경작기에는 서로 먼저 갈려고 야단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경운기가 들어오자 일이 반의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싼값으로 갈아야 하고 싼값으로 실어야 했다.
또을이
어쩌다가 싸웠습디여?
또갑이
양수다리를 건너려는데 경운기가 따라 오더라. 먼저 가려는 것을 내가 잡았다. 그리고 주막으로 데리고 갔냐 안! 술 한잔을 같이 딸면서, 너 한 사람 때문에 몇 사람이 희생된지 아냐고 따졌다.
또을이
그래서요.
또갑이
국도까지 침범하지 말라고 했어야. 그랬더니, 삼백호 마을이 다 편리한 것은 생각 안 하고 개인 이득만 생각하냐고 않냐. 나, 더러워서.
또을이
제놈은 그래 제 이득 안 생각하고 마을 위해서 봉사한답디여. 더 많이 벌라고 읍에까지 싣고 다니면서.
또갑이
화가 나서 한 대 먹여버렸다.
또을이
잘해겠소. 나쁜 자식.
또갑이
오늘 탑골 주막에서 교통순경 만났어야.
또을이
뭣이랍디여?
또갑이
경운기로 영업행위까지 해서는 안 된닥 하드라.
또을이
그럼 그렇지라우.
또갑이
여코여코한께 잘 좀 단속해달라고 했다.
또을이
그럼 인자 쓰겄소.
또갑이
닭 한 마리 잡고 돈이 사백 원이나 들었다.
또을이
그것도 좋지만 저녁에 회합을 한번 엽시다. 구르마꾼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겠는가 말입니다.
또갑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또을이
법에 호소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합시다.
또갑이
그럴 꺼나 그럼.
또을이
그것이 좋겄습니다.
무대: 어두워진다.
& 안골짝 술집
또갑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또을이는 가죽나무 집 중만이 집과 용학 양반네 집을 들러 같이 안골짝 술집으로 온다. 모두 4명이 남은 것이다. 한 집이 더 있었는데 짐 싣는 것을 포기했었다.
또갑이(중만이 보고)
바쁘신디 오시락 해서 미안하네.
중만이
우리 일 아닌가.
또갑이
갈수록 짐을 못 실어묵겄는디 어떻게들 했으면 좋겄소?
일동
…
또갑이
오늘 교통순경을 만났는디, 거기다만 밀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해결해보면…
중만이
자체적이라니?
용학양반
마을 짐은 싣지 마라고 해도 어떻게 할 것인가…
또갑이
그런께 못 싣게 하는 방안을 연구하잔 말이요.
용학양반
교통순경이 뭐라든가?
또갑이
위반이라고 합디다.
용학양반
그럼 되었네 그래. 이제 못 싣고 다니겄는가.
또갑이
법에서 막기 전에 우리가 의논해서 해결합시다. 마을 사람들 일이니까.
용학양반
술들 들세.
(사이)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요즘 밥맛이 없네. 이놈의 말을 팔아버리든가 동환이놈한테 삶아 먹이든가 해야 쓰겄네.
또을이
항의서를 하나 만듭시다.
중만이
항의서?
또을이
경운기는 농토 경작에만 치중하라는 뜻으로…
또갑이
그거 좋네.
네 사람이 머리를 모으고 논의를 한다. 그리고 또을이가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작성된 항의서는 빔 프로젝트로 벽에 비춰진다.
항의서 첫째, 경운기는 경운기 본래의 사명에 입각하여 농토 경작에 치중하라. 둘째, 경운기는 경운기의 본래의 사명에 입각하여 농로에서 농산물만 운반하라. 셋째, 경운기는 경운기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국도에까지 나와서 운수영업하는 것을 즉각 중지하라. 넷째, 경운기는 농촌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농토의 유일한 봉사자였던 소의 공적을 경시 마라. 이상과 같이 엄중 항의하고 즉각 시정 않는 경우엔 마소를 동원해서 실력 행사할 것도 불사한다. 까치메 구르마꾼 일동 경운기 주인 나동환 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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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어두워진다.
& 마을 공동 작업장
동환이가 경운기를 몰고 나온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볏가마니 싣는 사람, 쟁기를 고치러 가는 사람, 분무기를 가지고 오르는 사람, 고구마를 싣는 사람, 또 가마니를 나르는 사람 등이다.
동환이
까치메 구르마꾼 일동, 흥! 일동은 뭔 일동, 제놈들 형제가 다지… (조카에게) 어서 계산 맞춰라.
동환이 조카는 삯을 받는다. 짐은 대소를 막론하고 삼십 원, 사람은 이십 원을 받는다. 정자나무 아래에서 짐을 기다리는 또을이 구르마가 있다. 경운기 짐이 만재되자 탈곡기 하나를 얻어 실었다. 그것보고 읍까지 나갈 수는 없었으나 오가다 짐 하나나 걸릴까 하고 나선다.
동환이 조카
아제 다 됐소. 오라이요!
동환이
그럼 간다. 다들 탔지라우!(경운기 음향)
앞서가는 또을이 구르마를 추월하면서 ‘딸딸딸’ 거리며 나아간다.(음향) 경운기를 타고 장에 가는 마을 사람들은 이런 편리함이 없다고 떠들썩하다. 구석진 삼등도로가 되어서 국도까지 나가는 이십리 길은 버스가 없다. 아무리 급해도 걸어 다녀야 했던 것이 경운기로 가게되니 감회가 새롭다.
마을 주민들(소리만)
아따메, 좋아부네. 구르마는 이놈 따르려면 한참 걸리겄구만.
다른 주민(소리만)
세상 좋아분지네.
뒤따르는 또을이 인상이 구겨지면서 무대에서 사라진다.
& 국도 / 탑골 앞
경운기가 탈탈거리고 가고 있다. 뒤에서 경찰 사이드카가 붕하고 날아온다.
박 순경
멈춰!
경운기가 멈춘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한 눈빛이다.
박 순경
누가 이렇게 사람을 싣고 짐을 실으라고 했어. 무슨 짐이야?
장꾼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경운기에서 내린다.
동환이
장 짐입니다.
박 순경
왜? 이런 떼까지 나와?
동환이
발 달린 기곈디, 어디는 못 옵니까.
박 순경
오는 것은 좋지만 누가 사람을 싣고 짐을 실으라 했어. 국도에서 비료나 농구 같은 것밖에 못 싣잖아.
동환이
그런 명문은 못 보았습니다.
박 순경
그럼 운수 세금을 물고 있나?
동환이는 선뜻 당황한다.
동환이(당황해서 더듬거리며)
안… 물고 있는디요.
박 순경
세금뿐 아니야. 트럭에도 사람을 못 태우는데 이런 데 사람을 태우게 돼 있어?
동환이
…
박 순경
상식 문제 아닌가?...
동환이
잘못됐습니다.
박 순경
또 이러면 즉심에 회부해.
동환이
알겠습니다.
박 순경
빨리 부리고 가.
동환이는 사람들은 따로 가게 하고 짐만 싣고 읍으로 향한다. 경찰 사이드카도 퇴장한다. 마을 사람들도 퇴장하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 제3막
& 읍내 정미소
동환이 짐을 부린 상태로 마을 사람들을 기다린다. 탑골서 내렸던 마을 사람들이 도착한다.
마을 주민 1
전에도 이렇게 못 싣고 나오게 하든가?
동환이
이런 일이 없었는디…
마을 주민 2
그럼 한번 알어보소.
동환이
알아봐야겄네.
동환이는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짐을 챙겨 싣는다. 마을 사람들은 타지 못하게 막는다.
마을 주민 3
왜? 빈 차로 그냥 갈라고 해?
동환이
순경이 안 된다고 한당께요.
그때 또을이 구르마가 읍내에 도착한다. 마을에서 실었던 탈곡기 외에 오는 도중에 벼 다섯 가마니를 얻어 실고 느릿느릿 들어온다. 동환이와 동환이 경운기를 본 또을이 얼굴이 찌그러진다. 동환이는 옆 주막으로 들어가서 술을 청한다.
동환이
술 한잔 주시요.
그때 읍 쪽에서 사이드카 한대가 주막 쪽을 향해 온다. 박 순경 사이드카가 아니다. 동환이 술잔을 놓고 길가로 나온다.
동환이
잠깐이요!
양 순경
무슨 일이요?
동환이
물어볼 말씀이 있는디, 술 한 잔 드십시다.
양 순경
바쁘요.
동환이
잠깐만 오십쇼.
양 순경
바쁜데…
동환이는 양 순경을 데리고 술청으로 들어선다.
동환이
아짐, 여기 전 하난 부쳐주쇼.
(이어서 양 순경을 보고)
보시다시피 내가 저 경운기를 부리고 있다 말씀입니다.
양 순경
예.
동환이
경운기에 짐을 싣고 다니는 것이 위법이요?
양 순경
위법이 아닐 것이요.
동환이
그럼 돈 받고 남의 짐을 싣는 것은 위법이요?
양 순경
그것도 괜찮을 것이요.
주막 아낙이 안주를 갖다 놓고 들어간다.
동환이(안주와 술을 양 순경에게 권하며)
근디, 아침에 어떤 교통순경이 운수영업을 하는 것이라고 위반이라고 한단 말이요.
양 순경
…
동환이
그러면 세금은 물어야 하오?
양 순경(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그렇게 안 될 것인디. 경운기 운영은 운수법에 저촉 안 될 것이요.
동환이
그럼 아무데서 무슨 짐을 실어도 상관없것구만이라우?
양 순경
상관없을 것이요.(술을 들이킨다.)
양 순경도 분명한 해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별 문제도 아닌 것을 따진다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동환이
근디 그 양반은 그렇게 말합디다.
양 순경
가서 의논해보겠습니다만 내 생각이 옳을 것이요.
동환이(술을 더 따르며)
그럼 되겠습니다. 어서 드십시다.
양 순경
낮에 술 들면 안 되는데…
동환이
한 잔만 더 하십시다.
양 순경이 술을 들고 일어서는데, 동환이가 담배 두 갑을 양 순경 주머니에 넣어 준다. 양 순경은 모른 척하고 사이드카로 간다.
동환이
잘 부탁합니다.
양 순경
실례 많았소.
동환이는 ‘그럼 그렇지’하고 아침 사이드카를 속으로 저주한다.
동환이(주막 아낙에게)
술값 얼마요?
주막 아낙
백육십 원이요. 왜 누가 차를 못 부리게 합디여?
동환이
까치메 또갑이란 놈이 경찰이 그러더라고 안 하요.
주막 아낙
까치메 구르마꾼이 앞서날 여기서 교통순경을 만나서 단속해달라고 부탁한 것 같습디다.
동환이
말 구르맙디여? 소 구르맙디여?
주막 아내
소 구르맙디다.
동환이
그 사람 얼굴이 검고 깁디여?
주막 아내
검습디다.
동환이
필경 또갑이 그놈이구만…
(사이)
교통순경은 어떻게 생겼습디여?
주막 아내
살이 오동포동하고 눈이 큽디다.
동환이
술을 어떻게 대접합디여?
주막 아내
닭 한 마리 잡었어라우.
동환이는 또갑이가 경찰을 매수했다고 생각한다. 마을에 가면 또갑이를 우세를 시켜놓으리라 생각한다.
동환이
술 한 잔 더 주시요.
술청에서 기다리는 동안 장을 보고 돌아가는 마을 주민들이 들어온다. 동환이를 보고 묻는다.
마을 주민 1
왜 안 가고 계시요?
동환이
장꾼들 기다리요.
마을 주민 1
여기서는 타도 되께라우?
동환이
탑시다.
동환이와 동환이 조카는 오는대로 마을 사람들을 경운기에 태운다.
동환이(마을 주민들을 향해)
세상에 그런 못된 놈이 있으께라우!
마을 주민 2
누구라우?
동환이
또갑이 그놈이 교통순경을 매수해가지고 이 차를 못 부리게 했닥 않소.
마을 주민 3
오메에!
동환이
마을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서 될 것이요?
마을 주민 1
그럼 사람 태우는 것도 괜찮답디여?
동환이
…
마을 주민 2
괜찮다면 얼마나들 좋겄소.
동환이
…
동환이는 이 대답은 못 했다.
동환이
자, 마을로 갑시다. 다들 잘 잡으쇼.
경운기는 ‘딸딸딸’ 거리고 나아간다.
& 마을로 돌아가는 길
경운기가 딸딸거리고 가고 있다. 반대쪽에서 또갑이 구르마가 다가온다. 볏가마니 몇 개를 싣고 느릿느릿 다가선다. 구르마가 코 앞에 이르자 동환이는 경운기를 구르마 앞에 멈춘다.
또갑이(동환이를 째려 보며)
왜 길을 막지?
동환이
오니라, 이 새끼.
동환이는 또갑이 손을 이끌고 가로수 밑으로 간다.
동환이
나도 오늘 교통순경을 만났다. 짐 싣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더라. 왜 나를 못 살게 하냐?
또갑이
어느 놈이 그러든?
동환이
너만 이놈 교통순경 아냐! 닭 잡아 먹이면서 내 차 단속해달라고 했다며.
또갑이(의아하다는 표정으로)
… (사이)
너는 그럼 돼지 잡아 먹이고 짐 싣고 다니냐.
동환이
술 한 잔 나눈 일밖에 없다. 무슨 원수가 져서 나를 죽일라고 하냐.
또갑이
요새끼가 도둑놈 제 발 저린다고 되려 나를 잡을라고 하네. 누가 짐 실어도 좋다든?
동환이
양 순경이 그러더라.
또갑이
새끼야, 입 틀어진 소리 작작해. 나는 박 순경한테 들었다.
동환이
그런께 닭 잡아 먹이고 매수했냐?
또갑이
… 이 새끼야 매수는 누가 매수해.
또갑이가 동환이 멱살을 잡는다. 또갑이가 이를 악문다.
또갑이
죽인다. 너 이 새끼!
동환이(얼굴이 빨개지며)
손 안 놀래?
또갑이
죽여, 이 새끼.
경운기에 타고 있던 장꾼들이 하나둘씩 내린다. 싸우는 두 사람을 말린다.
마을 주민 1
그러지 마소들. 일촌에 살면서.
두 사람을 뜯어 말린다. 동환이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멱살을 잡힌 것이 더 분하다. 말리는 사람을 떼밀고 무작정 또갑이에게 달겨든다.
동환이
때려라, 때려!
또갑이(하늘을 보며)
허허이!
동환이
너 같은 악질은 이 세상에 없어야, 남 잘살고 마을 잘되는 것이 뭣이 나뻐서 모략을 하고 협박장(항의서)을 냈냐.
또갑이
칵! 주둥아리 닥쳐라이. 안 죽을라면.
마을 주민 2
이러지들 말고 어서들 가소.
마을 주민 1
한 동네서 삼서 왜 이러까이!
마을 주민 3(또갑이를 보고)
자네가 먼저 코뚜레 잡소. 오늘 해도 다 되었네.
한사코 말리는 주민들 때문에 또갑이는 못 이긴 듯이 돌아선다.
또갑이
(혼잣말로) 칵! 그저…
(사이)
이랴!(소를 몬다.)
(사이)
(혼잣말로) 닭 잡아 먹인 것을 어떻게 알았지. 주막 아낙이…
또갑이는 주막 아낙이 괘씸하다. 처음부터 교통순경을 먹이기 위해 주문한 안주가 아니었다. 적당한 안주가 없다고해서 그럼 닭이라도 잡으라고 했던 것이다. 미리 계획했던 닭안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박 순경 역시 술 한 잔 정도를 무슨 교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서 무심코 안주와 술을 한 것이다. 또갑이는 오히려 동환이가 교제를 했지 싶었다.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군다나 경운기 운행을 통해서 돈을 벌었으니 그것으로 양 순경을 매수했지 하는 생각을 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제4막
소는 주인이 딱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무심한 눈을 껌벅거리며 일한다. 땀흘려 일하고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소를보며 또갑이는 측은한 생각이 든다. 이 순진무구한 소 본연의 역할을 빼앗은 경운기가 더없이 원망스럽다.
& 탑골 주막
또갑이가 동생 또을이를 기다린다. 술상에는 막걸리 두잔이 있다. 종지기에 김치가 안주로 김치가 담겨있다. 또을이가 들어선다.
또갑이
다른 짐 하나나 실었디야?
또을이
가다가 벼 두 섬 얻어 실었습니다. 형님은 누 벼요?
또갑이
용산댁네 것이다. 급하게 돈 쓸데가 있다고 내자고 않냐.
또을이
이렇게 짐이 없고 일이 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히지라우.
또갑이
긍께 말이다. 배운 도둑이 이것 뿐인디. 쭈욱 한 잔 들거라.
(사이)
오다가 동환이 놈하고 만나서 싸웠다.
또을이
그놈하고만 싸우면 뭣할 것이요.
또갑이
지도 교통순경을 만나서 물어봤는디 짐을 실어도 된닥하드락 않냐.
또을이
그럼 왜 형님한테는 못 싣는다고 했다우?
또갑이
다른 사람인갑더라.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아짐!
주막 아낙
예
또갑이
나 물어볼 말이 있소.
주막 아낙
무슨 말이요?
또갑이
오늘 경운기가 여그서 교통순경 만나서 뭣이락 했지라우?
주막 아낙
술 한잔 대접합디다.
또갑이
무슨 말 않습디여?
주막 아낙
나는 못 들었어라우.
또갑이
집이가 경운기 주인한테 내 말 했지라우?
주막 아낙
무슨 말을 해라우.
또갑이
앞서 닭놓고 술대접했다고 했지라우?
주막 아낙
…
또갑이
했지라우?
주막 아낙
…
또갑이
옛기 여보슈! 아무리 술 파는 아낙네라고 그렇게 입이 싸서 쓰겄소.
주막 아낙
경운기 주인은 담배 사서 넣어줍디다.
또갑이
그래라우이.
무대: 어두워진다.
& 화산 양반네 밭 / 봄
밭갈이가 시작됐다. 소로 밭갈이를 했던 사람들이 경운기가 나오고부터는 경운기로 부탁한다. 그도 그럴것이 삯이 절반 밖에 안 든다.
경운기
딸딸딸딸…(음향)
동환이 조카
속이 떨리요.
동환이
해장이 날 때가 됐는디, 안 나온다.
동환이 조카
어서 식전에 다 끝냅시다.
화산 양반이 며느리를 뒷세우고 등장한다. 며느리는 머리에 인 새참을 내려 보자기를 벗긴다. 동환이와 동환이 조카는 발동을 끄고 밭둑으로 나온다.
화산 양반
그새 이렇게 갈았는가. 늦었네. 앉소들.
된장에 끓인 시래기국에 막걸리가 틉틉하다.
동환이
(국물을 들이키며) 구수하니 좋소야.
화산 양반
밥이랑 놓소이. 갈수록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네 그랴! 소 사람이 갈면 며칠씩 걸리는 걸 하루아침에 다 가는 것 보면.
동환이
이래서 기계를 사들인 것인디, 또갑이 그놈이 한사코 못 부리게 하요 그랴.
화산 양반
그것들이 지 조부 때부터 오장이 바른 내림이 아니지. (사이) 담배들 태우소.
동환이
붙입시다.
화산 양반
글페는 영호리 밭을 갈아야 한디, 기계 사정이 어떤가?
동환이
사흘 뒤에까지 맡었어라우.
화산 양반
한참 갈아주소
동환이는 일이 많아 감당하기 어렵다. 밭갈이는 장짐 나르는 것에 비해 약했다. 기계에 무리가 많은데 수입도 장짐에 절반 밖에 안된다. 그래서 장날이면 장짐 나르기는 빠지지 않는다. 반면에 토갑이네는 소 밭갈이마저 일이 없다. 장짐 나르기도, 밭갈이도 경운기가 다 차지하는 것이다. 게다가 마을 주인들에게 욕까지 먹는 신세다. 저렴한 경운기 사용을 방해한다고.
& 또갑이 집
또갑이가 또을이와 함께 상의한다.
또갑이
이대로 말겄냐. 니가 용학 양반하고 중만이 좀 오락 해라.
또을이
무슨 의논할라우.
또갑이
소를 갖다 팔아버리든가 서에 들가서 한계를 명백히 가려 달라고 할란다.
또을이 나가고 또갑이는 아이들을 시켜 술 두되를 사오게 한다.
무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시간이 지남)
용학 양반과 중만이 들어온다.
또갑이
앉읍시다.
용학 양반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겄는가?
중만이
구르마 끄는 우리만이 아니라 쟁기질꾼들도 다 소를 못 부리겄다고 않소.
용학 양반
이녁 논이나 갈라면 모를까 소 키울 것 있겄는가…
중만이
두동이네도 소를 팔든가 머슴을 내보내든가 해야 쓰겄닥 하네요.
용학 양반
그래 같이 서에 가서 한계를 좀 가려달라고 하세.
또갑이
그러고저러고 할 것 없이 첨에 항의서 낸 대로 실력 행사를 합시다.
용학 양반
어떻게?
또갑이
마소를 끌고 가서 탑골 국도 앞을 가로막고 경운기가 못 나가게 합시다. 지놈이 마소를 깔아 뭉게고 나가지는 못할 것 아니요.
중만이
짐 많은 장날이면 꼭꼭 나가서 모조리 가로채니 이것이나 저것이나 해먹겄어.
또갑이
그런께 마소를 동원해서 데모를 벌이자 마시.(중만이를 향해) 이래도 못살고 저래도 못살 바에야 데모라도 해서 우리들 의사를 보이는 것이 안 낫겄는가.
중만이
그럼 쟁기질하는 소도 나오라고 해서 한 며칠 못 나가게 해불까?...
무대: 어두워진다.
& 양수다리 / 길 / 탑골 앞 길
구호
경운기의 횡포를 가로막자.
농촌 유일의 봉사자였던 마소의 공적에 보답하라.
또갑이를 비롯 구르마꾼 중만이 용학 양반 소들이 앞서고 또을이 말도 뒤에 섰다. 쟁기질 소들도 세 마리가 행동을 같이 한다. 무대는 소 형상의 박스가 길을 가로 막는다. 그 무리 저쪽으로 경운기가 ‘딸딸딸딸’ 거리고 오고 있다.
또갑이
이라! 쩟쩟.
중만이
요놈의 새끼!
또갑이
옆으로들 길게 섭시다.
데모 일동은 옆으로 줄을 정비한다. 사이가 뜬 경우는 또을이가 나서서 오와 열을 맞춘다. 경운기가 그 대열 앞에 멈춰선다.
마소들의 울음 소리(음향)가 울린다.
동환이
…(멍하니 쳐다 본다)
마을 주민 1
웬일이라우?
또갑이
건방지게 높은 데 있지 말고 내려와.
동환이
…
또갑이
못 내려오겄냐?
동환이
…
또갑이
못 내려와?
동환이
…
또갑이
내려와, 이 새끼야!(거칠게)
또갑이가 동환이 손을 잡아서 끌어내린다. 동환이는 버티다가 내려선다.
또갑이
너 이 새끼 경운기 부릴라면 이 마소 다 벌어먹여라.
동환이
허허이!
중만이
웃기는! 이 새끼!
한창 실랑이질을 한다.
‘부웅’하고 사이드카 두 대가 날아온다. 박 순경과 양 순경이다.
박 순경
무슨 일이야?
또갑이
옆구리 구호를 보시요.
또갑이가 박 순경에게 구호를 보라고 한다. 동환이는 양 순경한테 간다. 그리고 귓속말을 한다. 양 순경이 박 순경을 데리고 구석으로 가서 의논을 한다. 박 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양 순경
고삐를 풀고 길 비켜주시오. 경운기는 국가에서 장려하고 있어서 다각도로 활용하게 되어 있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또갑이가 주막집 헛간으로 간다. 다른 사람들은 경찰 눈치만 보고 우왕좌왕한다. 동환이는 ‘거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둘러본다.
또갑이 도끼를 들고 자기 소 앞으로 온다. 그리고 도끼로 소의 머리를 친다.
또갑이
이 미련한 놈의 소야. 어서 뒈져라!
또갑이 다시 한번 사정없이 소머리를 친다. 소가 풀썩 앞발을 꿇고 옆으로 나가 쓰러진다. 눈을 뒤집고 버르적거리자 옆에 있던 마을 사람들과 데모꾼들이 우우하니 몰려든다.
양 순경
가시오, 가.
양 순경과 박 순경이 사람들을 밀어낸다. 그리고 또갑이를 데리고 간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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