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막
& 읍내 정미소
동환이 짐을 부린 상태로 마을 사람들을 기다린다. 탑골서 내렸던 마을 사람들이 도착한다.
마을 주민 1
전에도 이렇게 못 싣고 나오게 하든가?
동환이
이런 일이 없었는디…
마을 주민 2
그럼 한번 알어보소.
동환이
알아봐야겄네.
동환이는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짐을 챙겨 싣는다. 마을 사람들은 타지 못하게 막는다.
마을 주민 3
왜? 빈 차로 그냥 갈라고 해?
동환이
순경이 안 된다고 한당께요.
그때 또을이 구르마가 읍내에 도착한다. 마을에서 실었던 탈곡기 외에 오는 도중에 벼 다섯 가마니를 얻어 실고 느릿느릿 들어온다. 동환이와 동환이 경운기를 본 또을이 얼굴이 찌그러진다. 동환이는 옆 주막으로 들어가서 술을 청한다.
동환이
술 한잔 주시요.
그때 읍 쪽에서 사이드카 한대가 주막 쪽을 향해 온다. 박 순경 사이드카가 아니다. 동환이 술잔을 놓고 길가로 나온다.
동환이
잠깐이요!
양 순경
무슨 일이요?
동환이
물어볼 말씀이 있는디, 술 한 잔 드십시다.
양 순경
바쁘요.
동환이
잠깐만 오십쇼.
양 순경
바쁜데…
동환이는 양 순경을 데리고 술청으로 들어선다.
동환이
아짐, 여기 전 하난 부쳐주쇼.
(이어서 양 순경을 보고)
보시다시피 내가 저 경운기를 부리고 있다 말씀입니다.
양 순경
예.
동환이
경운기에 짐을 싣고 다니는 것이 위법이요?
양 순경
위법이 아닐 것이요.
동환이
그럼 돈 받고 남의 짐을 싣는 것은 위법이요?
양 순경
그것도 괜찮을 것이요.
주막 아낙이 안주를 갖다 놓고 들어간다.
동환이(안주와 술을 양 순경에게 권하며)
근디, 아침에 어떤 교통순경이 운수영업을 하는 것이라고 위반이라고 한단 말이요.
양 순경
…
동환이
그러면 세금은 물어야 하오?
양 순경(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그렇게 안 될 것인디. 경운기 운영은 운수법에 저촉 안 될 것이요.
동환이
그럼 아무데서 무슨 짐을 실어도 상관없것구만이라우?
양 순경
상관없을 것이요.(술을 들이킨다.)
양 순경도 분명한 해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별 문제도 아닌 것을 따진다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동환이
근디 그 양반은 그렇게 말합디다.
양 순경
가서 의논해보겠습니다만 내 생각이 옳을 것이요.
동환이(술을 더 따르며)
그럼 되겠습니다. 어서 드십시다.
양 순경
낮에 술 들면 안 되는데…
동환이
한 잔만 더 하십시다.
양 순경이 술을 들고 일어서는데, 동환이가 담배 두 갑을 양 순경 주머니에 넣어 준다. 양 순경은 모른 척하고 사이드카로 간다.
동환이
잘 부탁합니다.
양 순경
실례 많았소.
동환이는 ‘그럼 그렇지’하고 아침 사이드카를 속으로 저주한다.
동환이(주막 아낙에게)
술값 얼마요?
주막 아낙
백육십 원이요. 왜 누가 차를 못 부리게 합디여?
동환이
까치메 또갑이란 놈이 경찰이 그러더라고 안 하요.
주막 아낙
까치메 구르마꾼이 앞서날 여기서 교통순경을 만나서 단속해달라고 부탁한 것 같습디다.
동환이
말 구르맙디여? 소 구르맙디여?
주막 아내
소 구르맙디다.
동환이
그 사람 얼굴이 검고 깁디여?
주막 아내
검습디다.
동환이
필경 또갑이 그놈이구만…
(사이)
교통순경은 어떻게 생겼습디여?
주막 아내
살이 오동포동하고 눈이 큽디다.
동환이
술을 어떻게 대접합디여?
주막 아내
닭 한 마리 잡었어라우.
동환이는 또갑이가 경찰을 매수했다고 생각한다. 마을에 가면 또갑이를 우세를 시켜놓으리라 생각한다.
동환이
술 한 잔 더 주시요.
술청에서 기다리는 동안 장을 보고 돌아가는 마을 주민들이 들어온다. 동환이를 보고 묻는다.
마을 주민 1
왜 안 가고 계시요?
동환이
장꾼들 기다리요.
마을 주민 1
여기서는 타도 되께라우?
동환이
탑시다.
동환이와 동환이 조카는 오는대로 마을 사람들을 경운기에 태운다.
동환이(마을 주민들을 향해)
세상에 그런 못된 놈이 있으께라우!
마을 주민 2
누구라우?
동환이
또갑이 그놈이 교통순경을 매수해가지고 이 차를 못 부리게 했닥 않소.
마을 주민 3
오메에!
동환이
마을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서 될 것이요?
마을 주민 1
그럼 사람 태우는 것도 괜찮답디여?
동환이
…
마을 주민 2
괜찮다면 얼마나들 좋겄소.
동환이
…
동환이는 이 대답은 못 했다.
동환이
자, 마을로 갑시다. 다들 잘 잡으쇼.
경운기는 ‘딸딸딸’ 거리고 나아간다.
& 마을로 돌아가는 길
경운기가 딸딸거리고 가고 있다. 반대쪽에서 또갑이 구르마가 다가온다. 볏가마니 몇 개를 싣고 느릿느릿 다가선다. 구르마가 코 앞에 이르자 동환이는 경운기를 구르마 앞에 멈춘다.
또갑이(동환이를 째려 보며)
왜 길을 막지?
동환이
오니라, 이 새끼.
동환이는 또갑이 손을 이끌고 가로수 밑으로 간다.
동환이
나도 오늘 교통순경을 만났다. 짐 싣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더라. 왜 나를 못 살게 하냐?
또갑이
어느 놈이 그러든?
동환이
너만 이놈 교통순경 아냐! 닭 잡아 먹이면서 내 차 단속해달라고 했다며.
또갑이(의아하다는 표정으로)
… (사이)
너는 그럼 돼지 잡아 먹이고 짐 싣고 다니냐.
동환이
술 한 잔 나눈 일밖에 없다. 무슨 원수가 져서 나를 죽일라고 하냐.
또갑이
요새끼가 도둑놈 제 발 저린다고 되려 나를 잡을라고 하네. 누가 짐 실어도 좋다든?
동환이
양 순경이 그러더라.
또갑이
새끼야, 입 틀어진 소리 작작해. 나는 박 순경한테 들었다.
동환이
그런께 닭 잡아 먹이고 매수했냐?
또갑이
… 이 새끼야 매수는 누가 매수해.
또갑이가 동환이 멱살을 잡는다. 또갑이가 이를 악문다.
또갑이
죽인다. 너 이 새끼!
동환이(얼굴이 빨개지며)
손 안 놀래?
또갑이
죽여, 이 새끼.
경운기에 타고 있던 장꾼들이 하나둘씩 내린다. 싸우는 두 사람을 말린다.
마을 주민 1
그러지 마소들. 일촌에 살면서.
두 사람을 뜯어 말린다. 동환이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멱살을 잡힌 것이 더 분하다. 말리는 사람을 떼밀고 무작정 또갑이에게 달겨든다.
동환이
때려라, 때려!
또갑이(하늘을 보며)
허허이!
동환이
너 같은 악질은 이 세상에 없어야, 남 잘살고 마을 잘되는 것이 뭣이 나뻐서 모략을 하고 협박장(항의서)을 냈냐.
또갑이
칵! 주둥아리 닥쳐라이. 안 죽을라면.
마을 주민 2
이러지들 말고 어서들 가소.
마을 주민 1
한 동네서 삼서 왜 이러까이!
마을 주민 3(또갑이를 보고)
자네가 먼저 코뚜레 잡소. 오늘 해도 다 되었네.
한사코 말리는 주민들 때문에 또갑이는 못 이긴 듯이 돌아선다.
또갑이
(혼잣말로) 칵! 그저…
(사이)
이랴!(소를 몬다.)
(사이)
(혼잣말로) 닭 잡아 먹인 것을 어떻게 알았지. 주막 아낙이…
또갑이는 주막 아낙이 괘씸하다. 처음부터 교통순경을 먹이기 위해 주문한 안주가 아니었다. 우연히 안주를 시켰는데, 경찰을 만나서 대접했던 것이다. 박 순경 역시 술 한 잔 정도를 무슨 교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서 무심코 안주와 술을 한 것이다. 또갑이는 오히려 동환이가 교제를 했지 싶었다.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군다나 경운기 운행을 통해서 돈을 벌었으니 그것으로 양 순경을 매수했지 하는 생각을 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시나리오와 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유권 원작, 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전체] (38) | 2024.10.19 |
---|---|
오유권 원작, 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제4막 (24) | 2024.10.18 |
오유권 원작, 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제2막 (22) | 2024.10.16 |
오유권 원작, 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제1막 (30) | 2024.10.15 |
오유권 원작, 기계방아 도는 마을 전체 (32) | 2024.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