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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농우부고장(農牛訃告狀) 제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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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막

& 또을이 집

또갑이

또을이 있냐?

동생 또을이가 문을 열고 나온다.

또을이

이제 와겠소. 근디, 웬 옷을 찢어겠소?

또을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형의 옷을 살핀다.

또갑이

동환이하고 싸웠다.

또을이

무슨 쌈을 하고 다니시요. 앉읍시다.

또갑이

천불이 나서 살 수가 있냐. 오늘도 영촌 양반네 나락 일곱 섬 싣고 가서 칠백 원밖에 못 받았다. 사람 소가 하루 일하고 돈 그것 받아서 살겄냐. 그놈도 사정사정해서 실었다.

또을이

나도 오늘 고삐 한 번을 못 잡었소. 이대로 가면 말을 팔든가 집을 팔든가 해야 쓰겄소.

경운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하루 걸러 한 번씩은 짐을 실었다. 소도 경작기에는 서로 먼저 갈려고 야단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경운기가 들어오자 일이 반의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싼값으로 갈아야 하고 싼값으로 실어야 했다.

또을이

어쩌다가 싸웠습디여?

또갑이

양수다리를 건너려는데 경운기가 따라 오더라. 먼저 가려는 것을 내가 잡았다. 그리고 주막으로 데리고 갔냐 안! 술 한잔을 같이 딸면서, 너 한 사람 때문에 몇 사람이 희생된지 아냐고 따졌다.

또을이

그래서요.

또갑이

국도까지 침범하지 말라고 했어야. 그랬더니, 삼백호 마을이 다 편리한 것은 생각 안 하고 개인 이득만 생각하냐고 않냐. 나, 더러워서.

또을이

제놈은 그래 제 이득 안 생각하고 마을 위해서 봉사한답디여. 더 많이 벌라고 읍에까지 싣고 다니면서.

또갑이

화가 나서 한 대 먹여버렸다.

또을이

잘해겠소. 나쁜 자식.

또갑이

오늘 탑골 주막에서 교통순경 만났어야.

또을이

뭣이랍디여?

또갑이

경운기로 영업행위까지 해서는 안 된닥 하드라.

또을이

그럼 그렇지라우.

또갑이

여코여코한께 잘 좀 단속해달라고 했다.

또을이

그럼 인자 쓰겄소.

또갑이

닭 한 마리 잡고 돈이 사백 원이나 들었다.

또을이

그것도 좋지만 저녁에 회합을 한번 엽시다. 구르마꾼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겠는가 말입니다.

또갑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또을이

법에 호소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합시다.

또갑이

그럴 꺼나 그럼.

또을이

그것이 좋겄습니다.

무대: 어두워진다.

& 안골짝 술집

또갑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또을이는 가죽나무 집 중만이 집과 용학 양반네 집을 들러 같이 안골짝 술집으로 온다. 모두 4명이 남은 것이다. 한 집이 더 있었는데 짐 싣는 것을 포기했었다.

또갑이(중만이 보고)

바쁘신디 오시락 해서 미안하네.

중만이

우리 일 아닌가.

또갑이

갈수록 짐을 못 실어묵겄는디 어떻게들 했으면 좋겄소?

일동

또갑이

오늘 교통순경을 만났는디, 거기다만 밀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해결해보면…

중만이

자체적이라니?

용학양반

마을 짐은 싣지 마라고 해도 어떻게 할 것인가…

또갑이

그런께 못 싣게 하는 방안을 연구하잔 말이요.

용학양반

교통순경이 뭐라든가?

또갑이

위반이라고 합디다.

용학양반

그럼 되었네 그래. 이제 못 싣고 다니겄는가.

또갑이

법에서 막기 전에 우리가 의논해서 해결합시다. 마을 사람들 일이니까.

용학양반

술들 들세.
(사이)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요즘 밥맛이 없네. 이놈의 말을 팔아버리든가 동환이놈한테 삶아 먹이든가 해야 쓰겄네.

또을이

항의서를 하나 만듭시다.

중만이

항의서?

또을이

경운기는 농토 경작에만 치중하라는 뜻으로…

또갑이

그거 좋네.

네 사람이 머리를 모으고 논의를 한다. 그리고 또을이가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작성된 항의서는 빔 프로젝트로 벽에 비춰진다.

항의서 첫째, 경운기는 경운기 본래의 사명에 입각하여 농토 경작에 치중하라. 둘째, 경운기는 경운기의 본래의 사명에 입각하여 농로에서 농산물만 운반하라. 셋째, 경운기는 경운기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국도에까지 나와서 운수영업하는 것을 즉각 중지하라. 넷째, 경운기는 농촌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농토의 유일한 봉사자였던 소의 공적을 경시 마라. 이상과 같이 엄중 항의하고 즉각 시정 않는 경우엔 마소를 동원해서 실력 행사할 것도 불사한다. 까치메 구르마꾼 일동 경운기 주인 나동환 귀하

무대: 어두워진다.

& 마을 공동 작업장

동환이가 경운기를 몰고 나온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볏가마니 싣는 사람, 쟁기를 고치러 가는 사람, 분무기를 가지고 오르는 사람, 고구마를 싣는 사람, 또 가마니를 나르는 사람 등이다.

동환이

까치메 구르마꾼 일동, 흥! 일동은 뭔 일동, 제놈들 형제가 다지… (조카에게) 어서 계산 맞춰라.

동환이 조카는 삯을 받는다. 짐은 대소를 막론하고 삼십 원, 사람은 이십 원을 받는다. 정자나무 아래에서 짐을 기다리는 또을이 구르마가 있다. 경운기 짐이 만재되자 탈곡기 하나를 얻어 실었다. 그것보고 읍까지 나갈 수는 없었으나 오가다 짐 하나나 걸릴까 하고 나선다.

동환이 조카

아제 다 됐소. 오라이요!

동환이

그럼 간다. 다들 탔지라우!(경운기 음향)

앞서가는 또을이 구르마를 추월하면서 ‘딸딸딸’ 거리며 나아간다.(음향) 경운기를 타고 장에 가는 마을 사람들은 이런 편리함이 없다고 떠들썩하다. 구석진 삼등도로가 되어서 국도까지 나가는 이십리 길은 버스가 없다. 아무리 급해도 걸어 다녀야 했던 것이 경운기로 가게되니 감회가 새롭다.

마을 주민들(소리만)

아따메, 좋아부네. 구르마는 이놈 따르려면 한참 걸리겄구만.

다른 주민(소리만)

세상 좋아분지네.

뒤따르는 또을이 인상이 구겨지면서 무대에서 사라진다.

& 국도 / 탑골 앞

경운기가 탈탈거리고 가고 있다. 뒤에서 경찰 사이드카가 붕하고 날아온다.

박 순경

멈춰!

경운기가 멈춘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한 눈빛이다.

박 순경

누가 이렇게 사람을 싣고 짐을 실으라고 했어. 무슨 짐이야?

장꾼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경운기에서 내린다.

동환이

장 짐입니다.

박 순경

왜? 이런 떼까지 나와?

동환이

발 달린 기곈디, 어디는 못 옵니까.

박 순경

오는 것은 좋지만 누가 사람을 싣고 짐을 실으라 했어. 국도에서 비료나 농구 같은 것밖에 못 싣잖아.

동환이

그런 명문은 못 보았습니다.

박 순경

그럼 운수 세금을 물고 있나?

동환이는 선뜻 당황한다.

동환이(당황해서 더듬거리며)

안… 물고 있는디요.

박 순경

세금뿐 아니야. 트럭에도 사람을 못 태우는데 이런 데 사람을 태우게 돼 있어?

동환이

박 순경

상식 문제 아닌가?...

동환이

잘못됐습니다.

박 순경

또 이러면 즉심에 회부해.

동환이

알겠습니다.

박 순경

빨리 부리고 가.

동환이는 사람들은 따로 가게 하고 짐만 싣고 읍으로 향한다. 경찰 사이드카도 퇴장한다. 마을 사람들도 퇴장하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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