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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막
& 골모실 / 살구나무 집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있다.
주민 1
어따메에!
주민 2
어따메, 무슨 일이랑가?
주민 1
어따어따 옥분네가 죽다니 웬 말이랑가!
판대(사람들을 헤치면서 나오며)
개새끼들!
용팔이(판대 뒤에서 나오면서)
망할 놈의 세상!
인수는 등신처럼 서서 살구나무집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남의 일 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인수는 돌아서서 집을 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노봉산 꼭두말집
인수는 얻어 온 짚 두 뭇을 가지고 새끼를 꼬기 시작한다. 평수가 옆에서 돕는다.
평수
얻다 쓸라고 이러요?
인수
글쎄 나 꼬는 대로만 꽈라. 또룩또룩 꽈라.
손가락 정도 되게 꼰 새끼를 다시 함해 두 겹으로 꼬았다. 그걸 또 합쳐서 겹으로 꼬았다. 여섯 발이 넉넉하게 비튼 것이다. 인수는 처마에 꽂힌 낫을 빼서 숫돌에 간다. 그리고 낫의 칼날을 비슴듬히 비껴본다.
무대: 어두워진다.
& 꼭두말집 / 마당
인수(평수에게)
지게를 지고 가자.
평수
어디?
인수
고수머리 영감네 집에 가서 곡식 가마니만 지고 오자.
평수(고개를 끄덕이며)
갑시다.
인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냐.
평수(비장한 결의를 보이며)
갑시다.
인수는 지게에 새끼와 낫, 그리고 톱을 지고 집을 나선다. 평수는 지게만 지고 형을 따른다. 둥근 달이 중천에서 기울고 사방이 죽은 듯 교교하다. 살구나무집 불빛이 졸고 있다. 내일이 출상이라 사람들이 시체를 지키고 있다. 용팔이와 판대가 호상을 돌보고 장례비는 마을과 면에서 나눠 내기로 했다.
두 형제는 살구나무집을 옆에두고 조심조심 푸대골로 향했다.
무대: 어두워진다.
& 푸대골 / 고수머리 영감 집 / 곳간 벽
벽 아래서 인수가 높이를 가늠한다.
인수
이만하면 안 올라가겄냐.
평수
올라가겄습니다.
인수
몸이 가벼운께 니가 먼저 올라가거라. 올라가서 저 가운데 기중에 새끼를 매라.
인수는 지게를 세워놓고 평수를 올려보낸다. 평수가 새끼를 달고 두어 발 올라가기를 기다려 인수가 또 지게에 올라섰다. 그리고 평수 발을 받쳐준다. 올라선 형제는 주위 형편을 둘러보고 귀를 기울인다. 인수는 낫을 이용해서 벽을 판다.(효과음)
평수
내가 좀 파께요.
인수
그냥 서 있거라.
인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혔다.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역시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벽이 헐렸다. 가마니 하나 드나들 만하게 헐어진 곳간으로 인수는 들어간다.
인수(소리만)
내린다.
평수
예.
퍽!(가마니 떨어지는 효과음) 퍽! 퍽!
퍽!
인수(얼굴을 내보이며)
그만 내려가자.
평수가 먼저 내려간다. 이어서 인수가 내려오기 위해 새끼줄을 잡고 준비를 한다. 줄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철버덕(효과음)
인수가 고개를 처박고 평수 옆에 고꾸라졌다. 줄을 잡다가 손이 빠진 것이다.
평수
형님!
인수
…
평수
형님!
인수
…
평수는 형 인수의 어깨를 흔든다. 인수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다. 손발이 풀려 있다. 평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평수는 형을 등 뒤로 둘러 업고 뛰기 시작한다.
평수(소리만)
형님
인수(소리만)
오야.
평수
죽지 마시요이…
무대: 어두워진다.
& 노봉산 꼭두말집
집에 온 평수는 형을 방 안에 눕히고 형수를 앞세우고 푸대골로 간다.
평수(소리만)
힘이 부치시겄소만 이놈 지시요.
꼬끼오(음향)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닭이 세 홰째 홰를 울렸다. 땀이 비오듯 흠뻑 적신 평수와 그 뒤를 따르는 지게에 짐을 실은 형수가 나타난다. 평수와 형수는 가마니를 부척에 내려놓는다.
평수
형수씨, 어서 나눠 감춥시다. 동이, 항아리, 옹배기 할 것 없이 담을 수 있는대로 담읍시다.
평수는 방에 누워있는 형 곁으로 가서 살핀다.
평수
형님, 형수랑 옮겼어라우. 이제 염려 안 하셔도 되라우.
인수
…
평수
형님.
아내
어떠시요?
평수
형님! 형님!
인수(가는 소리로)
오야.
평수
이대로 죽으실라우!
인수
평수야아.
평수가 인수 손을 꽉 쥔다.
인수
잘하고 있거라. 어머니 잘 모시고. (사이) 네 형수 가련히 여겨라.
평수
형니임, 밥 한 그릇 안 잡수고 죽으실라우!
인수
…
인수는 점점 몸이 굳어간다. 동구 앞에서는 구슬픈 상여 소리가 들린다.
상여소리
가네 가네 아주 가네, 우리 동네 살구남 집 너와널.
뒷소리
어이 어이 어허이야, 어허 넘자 너와널
무대 아래 살구나무집에 상여가 오색 찬란한 꽃송이가 눈부시고 마을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어서 함성 소리가 들린다.
함성 소리
극빈자에게 구호미를 달라!
노동자에게 일을 달라!
상여꾼들은 어느덧 데모화하여 상여를 맨 체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상여 앞에는 명정과 함께 플래카드가 두 개 나란히 가고 있다.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에 날려 플래카드가 명정인지 명정이 플래카드인지 구분이 안된다.
음악: 쇼팽 장송행진곡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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