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형제
원작: 오유권 소설, 가난한 형제(사상계, 1963. 07)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인수(30)
평수(19)
인수 어머니
아내: 인수 처
용팔이
판대
부치골 친구
공사장감독
지게꾼들
애꾸 지게꾼
고수머리 영감
이장
면사무소 직원
마을 사람들
대화 중에 나오는 인물
판대 어매
살구나무집 옥분네
주요 등장인물 성격
인수(30): 꼭두말집 장남. 늦장가를 들어 갓난아이가 있는 가장으로 책임을 크게 느낀다.
평수(19): 인수의 동생. 형을 돕고 싶어 자진하여 동냥을 다니며 가족 끼니를 돕는다.
용팔이: 성격이 불같은 성격의 인수 친구. 불의를 보면 못참고 앞장선다.
때
1960년대 초
장소
영산포와 영산강, 노봉산 꼭두말집, 푸대골, 부치골
# 제1막
따사로운 봄볕을 등지고 둑을 가는 한 떼의 일꾼이 있다. 혹은 바지게를 지고 혹은 삽을 메고 망태기를 들고 있다. 앞에는 들이 천 리 같이 트여 있고 이랑마다 아지랑이가 굼실거린다. 일꾼들 일행 중에 꼭두말집 인수가 있다. 인수 뒤에는 인수 동생 평수가 형의 발자국을 좇아서 걸어간다.
& 영산강 / 둑
인부 1
오늘도 일이 없는 것이네.
인수
그럼 또 다 살었게.
공사장 문 앞에는 감독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사장 감독(심드렁하게)
공사가 중단된 모양입니다. 자금이 조달 안 돼서… 어저께도 책임자가 도에 가서 싸웠드랍니다만, 언제 융자될지 거기서도 모르드랍니다.
인부 2
언제 또 가망이 있을지 모르요?
공사장 감독
모르겄소. 수리자금이 재책정되어야 한다는디, 언제 책정될지.
인부 2
그럼 남은 노임은 어떻게 돼요?
공사장 감독
곧 나올 겁니다.
인부 2
일을 않게 되면 노임이라도 빨리 줘야 할 것 아니요.
용팔이(다구지게)
안 돼요. 지금 내주시요.
판대
그런 법이 어딨소. 지금 내주시요.
공사장 감독
그것이 내 책임이요?... 곧 나올 것인께 그때 찾으시요.
용팔이
그것이 내 책임이라니?... (거친 어투로) 일을 시킨 놈은 누군디 책임이 아니여. 응? 당장 내놔라. 뼈 싸쥐기 전에.
인수
가세. 갔다 기별 있으면 찾으러 오세.
용팔이
늦어도 사흘 안엔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모조리 곡괭이로 뱃대기를 긁어버릴 텐께. 일도 안 시킨 놈들이 노임조차 안 주다니! 소위 정부에서 한다는 놈들이…
인수는 동생 평수를 데리고 무대 한곁으로 걸어간다. 인수의 여윈 얼굴에 눈물이 돌 것 같다. 평수는 그런 형을 보면서 생각한다. 필시 어머니의 애처러운 정상을 생각하면서 가는 것이라고. 평수는 누렇게 뜬 형수를 생각한다. 가엾은 형수는 쌀밥은 고사하고 돗바늘 하나가 없어서 누더기를 꿰매려면 항상 이웃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평수(인수에게)
형님, 일이 언제 있을지 모른다지요.
인수
바람 끝이 차다. 곁으로 붙어서라.
인수는 홑바지 차림의 평수의 드러난 다리를 내려다 본다. 이른 봄이긴 하지만 강에서 부는 바람은 차갑다. 일이 제대로 계속 됐으면 동생 평수가 얼마나 재미져 할까 하는 생각 중이다.
평수
형님, 눈이 갑자기 침침해진 것 같어요.
인수(두 어금니를 물면서)
차다. 내 곁으로 바싹 더 붙어서라.
평수
형수씨는 초산 애까지 낳고 얼마나 허기진지 모르겠어요.
인수
늙은 어머님은 어쩌시겠냐.
평수
일이 없으께 내일부터 저는 좀 나가 돌아댕겠으면 싶어요.
인수
나간들 어디 갈 데가 있나.(한숨)
무대: 어두워진다.
& 노봉산 / 꼭두말집
무대에는 큰방과 작은방이 보인다. 작은방에는 인수 아내가 허리를 내놓고 누워 있다. 그 옆에는 백일이 간 애가 보채고 있다. 인수는 작은방으로 들어선다.
인수
죄다. (사이) 사는 것이 죄다!
인수는 어금니를 물고 큰방으로 건너간다. 큰방에는 인수 어머니가 속옷을 펼쳐 이를 잡고 있다. 평수는 그 옆에서 손깍지를 벤 체 천장만 깜박깜박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
일이 중단되어서 어쩔거나.(한숨)
인수
글쎄올시다…
어머니(속옷을 옆으로 치우며)
허리 꼬부라질라 해서 못 잡겄다.
어머니는 베개를 배에 대고 사르르 쓰러지듯 눕는다. 순간 인수는 건넛마을 목수 노인의 죽음이 뒷통수를 치고 든다. 온통 사흘을 굶은 목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장터에 나갔다가 빈속에 담배 얻어 피우고 숨을 거뒀다.
인수(혼잣말로)
목수 노인이 잠들 듯이 누웠다가 숨을 거뒀다는디…(걱정스런 눈빛으로 어머니를 본다.)
무대: 어두워진다.
& 장터 / 정류소 거리
전봇대 아래 지게꾼 셋이 곰방대를 물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곁으로 지게를 맨 인수가 눈치를 보면서 다가선다.
인수
(말을 더듬으며) 나 짐… 한 짐만 집시다.
지게꾼 1
우리도 하로네 짐 한 짐 못 졌소.
애꾸 지게꾼
(불만투로) 허가 맡었소?
인수
아따! 그런저런 걸 가리겄소. 한 짐만 집시다.
애꾸 지게꾼(눈을 흩뜨며)
이 양반이…
버스 2대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지게꾼들 곰방대를 떨고 일어서서 버스 쪽으로 간다. 인수도 붐비는 손님들 사이에서 짐 한 짝을 졌다. 영호리까지 쳐다주기로 하고 삼십 원에 맡은 것이다. 지게에 짐을 올리고 작대기에 힘을 모으고 막 일어서는 순간이다. 애꾸 지게꾼 발길이 종아리를 친다. 그 바람에 인수는 지게와 함께 넘어진다.
애꾸 지게꾼
이 새끼가 누 것을 뺏어 묵을라고!
인수(새근거리며)
오메… 하!
짐을 애꾸 지게꾼에게 넘기고 절뚝거리며 무대 한쪽으로 나간다.
인수(혼잣말)
어떻게든 쌀되를 사들고 가야겄는디… 고수머리 영감네라도 가서 사정해볼까…
무대: 어두워진다.
& 고수머리 영감네
영감네 집은 올라가기도 숨이 가빴다. 고수머리 영감 집은 마을 한편 꼭대기에 뒷쪽으로 높은 돌벼랑을 지고 있다. 영감네 집은 마당 이쪽 저쪽으로 부검지 둥우리가 넷이 있다. 소가 먹는 여물에는 보리가 반쯤 섞여 있다.
인수(소 여물을 보고)
쩟쩟, 사람도 못 먹는 것을…
인수
영감님, 나 고지 한 마지기만 주시요.
고수머리 영감
고지?... 이 사람아 해 안에 벌써 나가버렸네.
인수
그럼 하루 품이라도 좀 주시요. 늙은 모친하고 굶다 못해서 왔소.
고수머리 영감
우리 손주놈 세발자전거 하나를 못 사주고 있네. 미안하네.
무대: 어두워진다.
& 어떤 마을
무대에는 어떤 마을과 꼭두말집을 같이 배치한다. 어떤 마을은 아래에, 노봉산 꼭두말집은 윗쪽에 있다.(가능하면 다락 형태면 좋음) 평수는 중절모를 우그려 쓰고 어떤 마을 부자집 대문 앞에서 어깨에 자루를 매고 서있다. 손에는 하얀 깡통이 들려 있다. 밥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돌고 있는 것이다.
평수
밥 한 술 주시요.
아낙
밥을 먹고 난 뒤요.
평수
그럼 보리라도 좀 떠주시요.
아낙
저 양반이 어떤 숭년인 줄 알고 보리를 주락 한다냐.
아낙은 푸념하면서도 광으로 가서 보리쌀 한 웅큼을 떠 온다. 평수는 모아지는 곡식에 마음이 흐뭇하다. 자기도 가족 끼니를 도울 수 있게 됐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평수(혼잣말)
땅거미가 깃드네. 그런데로 저녁꺼리는 되겠는걸. (사이) 어서 가서 굶주린 형수께 갖다주자.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에 평수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꼭두말집 가까이 온 평수는 모자와 깡통을 감춰 든다. 평수는 문을 열고 형 인수를 부른다.
평수
형님.
집에는 불 하나 없이 쓸쓸하다.
평수
형님!
어머니(힘 없는 가는 목소리로 어둠 속에서)
오야.
성냥 더듬는 소리가 난다.(음향) 불이 켜진다.(조명)
평수
그새들 주무시오?
어머니
어디 갔다 인자 오냐.
평수
밥 얻어가지고 오요. 일어나시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데롱데롱 맺힌다. 평수는 옆방 형을 깨운다. 그리고 형에게 형수도 깨우게 한다. 어머니 곁으로 모여 평수가 얻어온 밥을 먹으려 둘러 앉았다. 평수는 그런 모습에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평수
형님 드십시오.
어머니
어서들 들자.
(사이)
(밥 한덩이를 들고) 이놈, 애기엄씨 먹어라.
인수
어머니 잡수시오.
무대: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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