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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가난한 형제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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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형제

원작: 오유권 소설, 가난한 형제(사상계, 1963. 07)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인수(30)
평수(19)
인수 어머니
아내: 인수 처
용팔이
판대
부치골 친구
공사장감독
지게꾼들
애꾸 지게꾼
고수머리 영감
이장
면사무소 직원
마을 사람들

대화 중에 나오는 인물

판대 어매
살구나무집 옥분네

주요 등장인물 성격

인수(30): 꼭두말집 장남. 늦장가를 들어 갓난아이가 있는 가장으로 책임을 크게 느낀다.

평수(19): 인수의 동생. 형을 돕고 싶어 자진하여 동냥을 다니며 가족 끼니를 돕는다.

용팔이: 성격이 불같은 성격의 인수 친구. 불의를 보면 못참고 앞장선다.

 

1960년대 초

장소

영산포와 영산강, 노봉산 꼭두말집, 푸대골, 부치골

# 제1막

따사로운 봄볕을 등지고 둑을 가는 한 떼의 일꾼이 있다. 혹은 바지게를 지고 혹은 삽을 메고 망태기를 들고 있다. 앞에는 들이 천 리 같이 트여 있고 이랑마다 아지랑이가 굼실거린다. 일꾼들 일행 중에 꼭두말집 인수가 있다. 인수 뒤에는 인수 동생 평수가 형의 발자국을 좇아서 걸어간다.

& 영산강 / 둑

인부 1

오늘도 일이 없는 것이네.

인수

그럼 또 다 살었게.

공사장 문 앞에는 감독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사장 감독(심드렁하게)

공사가 중단된 모양입니다. 자금이 조달 안 돼서… 어저께도 책임자가 도에 가서 싸웠드랍니다만, 언제 융자될지 거기서도 모르드랍니다.

인부 2

언제 또 가망이 있을지 모르요?

공사장 감독

모르겄소. 수리자금이 재책정되어야 한다는디, 언제 책정될지.

인부 2

그럼 남은 노임은 어떻게 돼요?

공사장 감독

곧 나올 겁니다.

인부 2

일을 않게 되면 노임이라도 빨리 줘야 할 것 아니요.

용팔이(다구지게)

안 돼요. 지금 내주시요.

판대

그런 법이 어딨소. 지금 내주시요.

공사장 감독

그것이 내 책임이요?... 곧 나올 것인께 그때 찾으시요.

용팔이

그것이 내 책임이라니?... (거친 어투로) 일을 시킨 놈은 누군디 책임이 아니여. 응? 당장 내놔라. 뼈 싸쥐기 전에.

인수

가세. 갔다 기별 있으면 찾으러 오세.

용팔이

늦어도 사흘 안엔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모조리 곡괭이로 뱃대기를 긁어버릴 텐께. 일도 안 시킨 놈들이 노임조차 안 주다니! 소위 정부에서 한다는 놈들이…

인수는 동생 평수를 데리고 무대 한곁으로 걸어간다. 인수의 여윈 얼굴에 눈물이 돌 것 같다. 평수는 그런 형을 보면서 생각한다. 필시 어머니의 애처러운 정상을 생각하면서 가는 것이라고. 평수는 누렇게 뜬 형수를 생각한다. 가엾은 형수는 쌀밥은 고사하고 돗바늘 하나가 없어서 누더기를 꿰매려면 항상 이웃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평수(인수에게)

형님, 일이 언제 있을지 모른다지요.

인수

바람 끝이 차다. 곁으로 붙어서라.

인수는 홑바지 차림의 평수의 드러난 다리를 내려다 본다. 이른 봄이긴 하지만 강에서 부는 바람은 차갑다. 일이 제대로 계속 됐으면 동생 평수가 얼마나 재미져 할까 하는 생각 중이다.

평수

형님, 눈이 갑자기 침침해진 것 같어요.

인수(두 어금니를 물면서)

차다. 내 곁으로 바싹 더 붙어서라.

평수

형수씨는 초산 애까지 낳고 얼마나 허기진지 모르겠어요.

인수

늙은 어머님은 어쩌시겠냐.

평수

일이 없으께 내일부터 저는 좀 나가 돌아댕겠으면 싶어요.

인수

나간들 어디 갈 데가 있나.(한숨)

무대: 어두워진다.

& 노봉산 / 꼭두말집

무대에는 큰방과 작은방이 보인다. 작은방에는 인수 아내가 허리를 내놓고 누워 있다. 그 옆에는 백일이 간 애가 보채고 있다. 인수는 작은방으로 들어선다.

인수

죄다. (사이) 사는 것이 죄다!

인수는 어금니를 물고 큰방으로 건너간다. 큰방에는 인수 어머니가 속옷을 펼쳐 이를 잡고 있다. 평수는 그 옆에서 손깍지를 벤 체 천장만 깜박깜박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

일이 중단되어서 어쩔거나.(한숨)

인수

글쎄올시다…

어머니(속옷을 옆으로 치우며)

허리 꼬부라질라 해서 못 잡겄다.

어머니는 베개를 배에 대고 사르르 쓰러지듯 눕는다. 순간 인수는 건넛마을 목수 노인의 죽음이 뒷통수를 치고 든다. 온통 사흘을 굶은 목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장터에 나갔다가 빈속에 담배 얻어 피우고 숨을 거뒀다.

인수(혼잣말로)

목수 노인이 잠들 듯이 누웠다가 숨을 거뒀다는디…(걱정스런 눈빛으로 어머니를 본다.)

무대: 어두워진다.

& 장터 / 정류소 거리

전봇대 아래 지게꾼 셋이 곰방대를 물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곁으로 지게를 맨 인수가 눈치를 보면서 다가선다.

인수

(말을 더듬으며) 나 짐… 한 짐만 집시다.

지게꾼 1

우리도 하로네 짐 한 짐 못 졌소.

애꾸 지게꾼

(불만투로) 허가 맡었소?

인수

아따! 그런저런 걸 가리겄소. 한 짐만 집시다.

애꾸 지게꾼(눈을 흩뜨며)

이 양반이…

버스 2대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지게꾼들 곰방대를 떨고 일어서서 버스 쪽으로 간다. 인수도 붐비는 손님들 사이에서 짐 한 짝을 졌다. 영호리까지 쳐다주기로 하고 삼십 원에 맡은 것이다. 지게에 짐을 올리고 작대기에 힘을 모으고 막 일어서는 순간이다. 애꾸 지게꾼 발길이 종아리를 친다. 그 바람에 인수는 지게와 함께 넘어진다.

애꾸 지게꾼

이 새끼가 누 것을 뺏어 묵을라고!

인수(새근거리며)

오메… 하!

짐을 애꾸 지게꾼에게 넘기고 절뚝거리며 무대 한쪽으로 나간다.

인수(혼잣말)

어떻게든 쌀되를 사들고 가야겄는디… 고수머리 영감네라도 가서 사정해볼까…

무대: 어두워진다.

& 고수머리 영감네

영감네 집은 올라가기도 숨이 가빴다. 고수머리 영감 집은 마을 한편 꼭대기에 뒷쪽으로 높은 돌벼랑을 지고 있다. 영감네 집은 마당 이쪽 저쪽으로 부검지 둥우리가 넷이 있다. 소가 먹는 여물에는 보리가 반쯤 섞여 있다.

인수(소 여물을 보고)

쩟쩟, 사람도 못 먹는 것을…

인수

영감님, 나 고지 한 마지기만 주시요.

고수머리 영감

고지?... 이 사람아 해 안에 벌써 나가버렸네.

인수

그럼 하루 품이라도 좀 주시요. 늙은 모친하고 굶다 못해서 왔소.

고수머리 영감

우리 손주놈 세발자전거 하나를 못 사주고 있네. 미안하네.

무대: 어두워진다.

& 어떤 마을

무대에는 어떤 마을과 꼭두말집을 같이 배치한다. 어떤 마을은 아래에, 노봉산 꼭두말집은 윗쪽에 있다.(가능하면 다락 형태면 좋음) 평수는 중절모를 우그려 쓰고 어떤 마을 부자집 대문 앞에서 어깨에 자루를 매고 서있다. 손에는 하얀 깡통이 들려 있다. 밥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돌고 있는 것이다.

평수

밥 한 술 주시요.

아낙

밥을 먹고 난 뒤요.

평수

그럼 보리라도 좀 떠주시요.

아낙

저 양반이 어떤 숭년인 줄 알고 보리를 주락 한다냐.

아낙은 푸념하면서도 광으로 가서 보리쌀 한 웅큼을 떠 온다. 평수는 모아지는 곡식에 마음이 흐뭇하다. 자기도 가족 끼니를 도울 수 있게 됐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평수(혼잣말)

땅거미가 깃드네. 그런데로 저녁꺼리는 되겠는걸. (사이) 어서 가서 굶주린 형수께 갖다주자.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에 평수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꼭두말집 가까이 온 평수는 모자와 깡통을 감춰 든다. 평수는 문을 열고 형 인수를 부른다.

평수

형님.

집에는 불 하나 없이 쓸쓸하다.

평수

형님!

어머니(힘 없는 가는 목소리로 어둠 속에서)

오야.

성냥 더듬는 소리가 난다.(음향) 불이 켜진다.(조명)

평수

그새들 주무시오?

어머니

어디 갔다 인자 오냐.

평수

밥 얻어가지고 오요. 일어나시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데롱데롱 맺힌다. 평수는 옆방 형을 깨운다. 그리고 형에게 형수도 깨우게 한다. 어머니 곁으로 모여 평수가 얻어온 밥을 먹으려 둘러 앉았다. 평수는 그런 모습에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평수

형님 드십시오.

어머니

어서들 들자.
(사이)
(밥 한덩이를 들고) 이놈, 애기엄씨 먹어라.

인수

어머니 잡수시오.

무대: 어두워진다.

# 제2막

& 영산포 / 일 나가는 길

인수와 평수는 바지게를 지고 들로 나왔다. 먼 산이 바람결에 흐려 보인다. 인수가 평수를 돌아본다.

인수

엊저녁에 밥을 얻어 와서 잘 먹었다만 뭘라고 나갔디야.

평수

전들 나가고 싶어서 갔겄어요.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젖 뜯기는 형수씨 볼 낯이 없어서… 나갔습니다.

인수

그것은 없는 우리 탓만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니가 고생이다. (사이) 못난 형을 두어서.

평수

아닙니다. 제가 형님을 못 도와드려서 죄송합니다.

인수

밥을 그렇게 얻었으면 너나 거기서 좀 먹제 그랬냐.

평수

전 거기서도 먹었어요.

인수

나도 어제 그랬더니라. 생각다 못해 지게를 지고 정류소에 나갔더니라. 그랬더니 누가 짐 한 짐 지게 하냐. 헐수없이 돌아오다 푸대골 고수머리 영감한테 갔더니라. 어떻게 고지 한 마지기만 주십사 하고. 그랬더니 영감이 손주… 세발자전거 하나를 못 사주고 있다고 인정 없이 안 떼어버리냐.

평수

그 집은 지금도 부검지 둥치가 많지요?

인수

많드라.

평수

그런 사람 것 백 칸에 한 칸만 있어도 살겄습니다.

인수

그걸 좀 덜어다 나눠 먹었으면 좋겄다 그렇게 쟁여두고 있느니…

평수

그 집 곳간이 낭떠러지 쪽에 가 붙었지요?

인수

그럴 것이다.

인수는 고수머리 영감 집을 생각하는 듯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다.

평수는 오늘도 동냥을 나가야지 생각으로 뒤집어썼던 모자를 그리면서 머리를 만진다.

인수

어젯밤에 또 판대 어메가 죽었다 않냐.

평수

하아!... 그래라우.

인수

부황나서 죽었단다. 죽으면서도 밥… 밥 하더락 않냐.

무대: 어두워진다.

& 노봉산 / 꼭두말집

인수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방에는 아내가 허리를 구부리고 양말을 꿰매고 있다.

아내

일거리 없습디여?

인수

없데.

아내

이러다간 나도 죽겄소예. 오늘은 정신이 더 어지럽고 방이 도는 것 갔소.

인수는 가슴을 찧고 싶다. 이런 꼴을 더 안 보게 아주 아내와 갓난애까지 죽이고 싶은 충동에 쌓인다. 해서는 안될 생각에 머리를 흔든다. 밖에 인기척이 난다.

용팔이(소리만)

인수!

인수가 문을 열고 용팔이를 반긴다. 아내는 꿰매던 양말을 가지고 나간다. 용팔이 방으로 들어온다.

인수

들오소.

용팔이

자네 반에선 영농자금 말 없던가?

인수

그런 말 못 들었네.

용팔이

영농자금이 나왔다는디 우리 같은 사람은 냄새도 없다며.

인수

영농자금이라면 농사짓는 사람 밖에 더 주겄는가.

용팔이

그럼 우리같이 농사를 안 짓는 놈은 아주 죽으란 말인가.

인수

죽은들 누가 눈썹 하나 까닥할 줄 아나.

용팔이

아아, 이건 억울하다. 판대 어매도 어젯밤 부황나서 죽었닥 않는가. 판대 그놈도 안됐어. 가서 우리도 자금을 좀 노놔달락 하자.

용팔이 어깨를 들먹이며 흥분한다.

용팔이

이 못난 자석아. 가자. 가서 우리도 영농자금을 좀 노놔달래자. 농삿마지기라도 짓는 사람은 어쨌든 우리보담 나을 것 아니야. 우리보다 나은 사람은 주고 우리는 안 주면 노아 안 짓는 사람은 더더구나 죽으란 말이냐. 안 될 일이다. 농협에 가든지 면소에 가서 싸우자.

용팔이 얼굴에 미미한 경련이 인다. 인수도 가슴이 후들후들 떨린다. 두 사람은 집을 나선다.

& 이장집

이장이 면사무소 직원하고 술상을 받고 있다. 용팔이와 인수가 들어선다.

이장

어서들 오게.

용팔이

상의할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장

무슨 말인가? 앉게.

용팔이

영농자금은 어떻게 노놔준 겁니까?

이장

농가의 작농비로 나온 것이네. 농사짓는 평수에 따라서 대부해준다네.

용팔이

그럼 농사 안 짓는 사람은 한 잎도 안 주나요?

이장

농사짓는데… 그러니까 영농을 위해서 대부해주는 것이지 극빈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네.

용팔이

영농도 좋지만 당장 굶어죽는 사람은 그대로 두긴가요.

이장

그야, 내가 알 일인가.

용팔이(말투가 올라가며)

하천부지 공사도 중단되었다! 품 하루 들 데도 없다! 자, 그럼 우리같은 사람은 죽으란 겁니까.

인수

그럼 극빈자 구호미는 안 나오나요?

이장

모를래?... 장차 밀가릿근씩이라도 노놔줄는지.

인수

어쨌든 농삿마지기라도 짓는 사람은 우리보담 나을 것 아니요.

이때 면사무소 직원이 나선다. 제법 점잖은 어투로 대화에 낀다.

면사무소 직원

그렇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이리 앉으시오. 앉어서 내 이야기를 좀 들으시오.
(사이… 술 한모금 마신다.)
영농자금이란 원래 농사를 경영하는 데 쓰라는 자금으로 대부해 주는 것이요. 지금 정부에서는 영농자금만 아니라 잠업비, 육축사업비 같은 농가 발전을 위해서 방대한 자금을 지출하고 있소. (자기 말에 자부심을 느끼며) 여러분들이 보다시피 우리가 이렇게 핍박을 받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이요. 다 농촌 부흥이 안 된 때문 아니오. 이와 같은 자금 방출은 장차 여러분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기초가 되는 것이요. 그걸 지금 다 같이 노놔달래면 어떻게 되겠소. 우선 곤란하더라도 참고 정부 방안에 협력해야 하오.

말이 끝나기 전에 용팔이가 끼어든다.

용팔이

누가 지금 그런 설굘 들으러 온 줄 아시오. 농촌 형편이 어떻게 돼 있는 알고나 말하요. 우선 참고 협력하라고?... 죽 떠서 식힐 동안이 어려운 건디 굶어죽는 사람은 놔두고 장차를 위하자는 거야.(말이 거칠어진다.) 그게 도대체 될 말이야. 당신도 공무원이면 이런 민정을 정부에 건의하시요. 객쩍은 소릴 지꺼리지 말고.

면사무소 직원

여보!

용팔이(거칠게)

여보고 지랄이고 닥쳐!

면사무소 직원

아니!

분위기가 이리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 이장이 나선다.

이장

용팔이, 진정하게. 진정하고 돌아가게. 곧 극빈자 무상분배도 나온다네.

용팔이(면사무소 직원을 향해)

그래, 우리는 못 노놔준단 말이요?

면사무소 직원

못 준다.

면사무소 직원이 핏대를 세우고 일어선다.

용팔이

요노무 새끼 봐라.

면사무소 직원

이 자식 보소.

용팔이

나오너라. 밥은 안 먹었다만 너 따위 하나는…

용팔이 팔을 걷어 부친다.

마을 사람 1

워이마시 워이. 그러는 것 아니네. 참게.

마을 사람들이 우우하니 몰려왔다. 영농자금을 알아보러 온 사람들이 싸움을 말리는 것이다.

마을 사람 2

웬일들이라우?

용팔이

영농자금을 농가에만 준닥 해서 이러요.

마을 사람 3

그건 안 될 일이요.

마을 사람 4

다 같이 노놔주시오.

용팔이

그럼 갑시다. 다 같이 가서 진정합시다.

용팔이가 선두에 서서 면사무소로 향한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따라 나선다. 무대: 어두워진다.

& 장터와 노봉산 꼭두말집

무대는 한쪽에 장터를 오른쪽 위로 꼭두말집을 배치한다. 노봉산 꼭두말집은 되도록 무대 상단에 올리면 좋다. 공사장에서 노임을 찾아가지고 온 인수는 장터에서 장을 본다. 평수 노임까지 합해 육백 원 중에서 이백 원으로 보리 넉 되, 돼지고기 한 근을 샀다. 그리고 오 원어치 인절미도 샀다. 인절미는 아내에게 줄 선물이다. 집에 도착한 인수는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인수

오늘 저녁은 죽 쑤지 말고 밥하소.

아내(미소를 지으며)

고기까지 사 왔소?

인수

우거지랑 많이 넣어서 볶으소.

어머니도 허리를 구부리고 나와서 우거지를 씻고 인수는 아궁이를 지폈다. 그러나 평수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평수는 구걸하러 나갔다.

어머니(며느리를 보고)

나는 국 뜰랑께 어서 밥 차려라.

그때, 평수가 중절모를 우그려 쓴 채 깡통을 들고 들어온다. 왼쪽 가랑이에 피가 낭자하다. 평수는 들어오자마자 쓰러진다.

평수

형님.

어머니

아니!

가족들 모두 평수를 둘러싸고 인수는 평수의 다친 다리를 살핀다.

인수

평수야.

평수

인수

평수야.

평수

예.

인수

이, 웬일이냐?

평수

개한테 물려서.

인수

쩟쩟.

인수는 눈에 눈물이 돈다. 아내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는다. 어머니는 넋 나간 사람 모양 멍청히 앉아 있다. 인수는 평수 가랑이를 벗긴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개 이빨자국이 까매지고 있었다.

인수

세상에!

인수는 동생을 둘러 업고 병원으로 내 달았다.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어두워진다.

& 병원

의사는 평수 상처를 보고 주사를 놓았다. 피를 닦고 소독을 한다.

의사

아직 독이 퍼진 것은 아니요. 보혈 주사도 맞는 것이 좋겠소.

인수

돈이야 얼마가 들든 잘 좀 봐주시요.

의사

개 임자한테 말해서 치료비나 좀 받제 그러요.

인수

우리 같은 촌민이 그러고저러고 하겄습니까.

인수는 평수가 동냥을 하다가 물린 것이 시끄럽게 떠들 것이 못된다는 생각이다. 몇 푼 안되는 노임이나마 있어서 병원에 올 엄두를 냈던 것이다.

인수

이만하기 다행이다. 나는 그새 독이 들었으면 어쩔고 했다.

평수

나 같은 동생을 두어서 형님이 고생입니다.

인수

그런 말 마라.

인수는 평수를 부축해 집으로 향한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 노봉산 꼭두말집

인수가 평수를 부축하고 들어선다. 아내는 밥상을 준비한다. 평수를 어머니 곁에 두고 인수는 작은방으로 들어선다.

 

아내

함께 먹을라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먼저 먹었소.

인수

잘 했네. 어머니랑도 잘 잡수시던가?

아내

잘 잡사겠다우.

인수(동생 생각을 하며, 혼잣말로)

망할 자식, 고깃국 한 그릇 먹을 복이 없어서!

병원에서 고기는 먹지 말라는 처방이 있었다.

인수

자네 먹소.(반쯤 남은 국을 아내에게 넘긴다.)

아내

당신 잡수시오.

인수

먹소.

아내

그새 젖이 더 난 것 같소예.

인수

그럴 것이네.

무대: 어두워진다.

인수는 따로 구입한 인절미를 어떻게 분배할 지 궁리한다. 본래는 아내를 위해 5개를 구입했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결국 어머니에게 하나, 동생 평수에게 2개를 주고 아내에게 2개를 주기로 작정한다.

& 꼭두말집 / 작은방

인수는 잠이 든 아내를 깨운다.

인수(인절미를 내밀며)

들게

아내

당신 잡수시요.

인수

먹게.

인절미 2개로 행복을 느끼는 인수와 그 아내. 꼭두말집 가족들은 인절미 두 개로도 행복을 느낀다.

무대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세 번 한다. 시간이 흘렀다. 다시 꼭두말집에는 밥 굶기가 계속된다. 인수는 가장으로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노임 육백 원에서 남은 사백 원은 평수 병원비로 썼던 것이다. 인수는 부치골 친구집을 찾기로 한다.

& 부치골 / 친구 집

인수가 들어선다. 친구가 맞이한다.

친구

어떻게! 자네가 여기를.

인수

오랜만에 보고 싶기도 하고 해서.

친구

이 마을서도 굶어죽은 사람이 서이나 났네.

인수

이렇게들 살 줄을 누가 알었는가.

친구

어쩔께! 자네가 왔는디. 대접도 못하고.

인수

나도 나지만 식구들이… 하루에도 죽고 싶은 생각이 몇 번씩 일어나네.

친구

쩟쩟쩟

친구는 눈물을 글썽인다.

친구

가세. 상가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세.

친구 역시 조의금이 있어 가는 상가가 아니다. 형편이 이 지경인데 돈 없는 상가 술 한잔이 죄랴 싶은 것이다.

& 노봉산 꼭두말집

상가에서 먹은 술로 귀밑이 후끈거리고 다리가 떨리면서 인수는 집에 왔다. 주머니에는 상가에서 몰래 싼 전 몇 조각과 떡 부스러기가 들어 있다. 그것을 만지작 거리면서 방에 들어섰다.

인수

어머니.

어머니(나직한 목소리)

어디 갔다 인자 오냐.

인수

아무 데도 안 갔소.

어머니

저 건네 좀 가 봐라. 무슨 배급이 나왔닥 않냐.

인수(반갑게)

그래라우?

인수는 주머니에서 떡을 내놓을 사이도 없이 바쁘게 일어섰다. 이장댁에 가는 길에 살구나무집 앞에서 용팔이를 만났다.

인수

어디 갔다 오는가?

용팔이

이 집이 닷새째 굶었닥 않는가. 좀 들여다보고 나오네.

인수

쩟쩟쩟.
(사이)
무슨 배급이 나왔담서?

용팔이

나왔다네. 가보세.

이장댁으로 향한다.

& 이장댁

인수(이장을 향해)

얼마씩 나왔습니껴?

이장

절량농가 대여곡이라네.

인수

절량농가 대여곡이라니요?

이장(귀찮다는 듯이)

식량이 다된 세농가에 노놔주라고 나온 것이라네.

용팔이

그럼 또 농사 안 짓는 사람은 안 주요?

이장(자꾸 캐묻는 것이 귀찮다는 듯이)

극빈자 구호미가 아니란 말이. 타고 싶으면 군수나 도지사한테 가서 말하소.

용팔이

그럼 농사 안 짓는 사람은 굶어죽으라 말이요. 또 농사짓는 사람만 주게.

이장

그런께 군수나 도지사한테 가서 말하라 말이요. 공연히 나만 잡고 이러지 말고.

용팔이

뭐요!
(이장에게 다가서면서)
군수나 도지사한테 가서 말해, 응? 당신은 뭔데 군수나 도지사한테 가서 말해. 당신도 저그나마 관록을 먹고 있는 사람 아니요. 동 회비에서 당신 월급을 보태주고 있지 않소. 그게 말이라고 하요.

이장

이 사람 보소!

이장이 장부에서 눈을 들고 돌아본다.

용팔이

이 사람이라니?... 그럼 그러지 않소. 영농자금도 농가에만 주겄다. 대여곡도 농가에만 주겄다. 그럼 농사 안 짓는 사람은 모두 죽일 판이요. 하루 이틀 굶는 것은 보통이고 나흘 닷새씩 굶고 있는 것을 이장이 모르요.

이장

그래 내가 어쩌라 말인가.

용팔이

그러니까 당신이 서둘러서 면에나 군에 가서 곡식 되라도 갖다주어야 할 것 아니요.

그 사이에도 세농가들은 자루나 망태기를 들고 다투어 보리를 되어 받아간다.

이장

내가 서둘러서 갖다주라고… 내가 자네들 하인인 줄 아는가, 심부름꾼인 줄 아는가?

용팔이

하인은 아니어도 심부름꾼은 못돼요?

이장(약이 올라)

나는 네놈들 심부름꾼 아니다.

용팔이

심부름꾼이 못된 이장은 물러가시오. 국민의 심부름꾼이 못된 공무원은 다 물러가거라.

이장

개새끼들 보소.

‘개새끼들’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배급 못 탄 사람들이 와아하고 일어섰다.

사람들(각각)

개새끼들! 개새끼들!... 아니, 개새끼들!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사람들

저놈 죽여라아!
당장 끌어내라아!

용팔이

배급은 못줄망정, 개새끼들?... 다 나오너라아.

성급한 사람은 작대기를 찾아 들기도 했다. 그 바람에 대여곡 분배가 중단되었다. 인수는 용팔이를 달래고 작대기를 든 사람에게도 자제를 부탁했다. 일은 일단락 되고 더 이상 불상사는 터지지 않았다.

무대: 어두워진다.

# 제3막

& 골모실 / 살구나무 집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있다.

주민 1

어따메에!

주민 2

어따메, 무슨 일이랑가?

주민 1

어따어따 옥분네가 죽다니 웬 말이랑가!

판대(사람들을 헤치면서 나오며)

개새끼들!

용팔이(판대 뒤에서 나오면서)

망할 놈의 세상!

인수는 등신처럼 서서 살구나무집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남의 일 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인수는 돌아서서 집을 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노봉산 꼭두말집

인수는 얻어 온 짚 두 뭇을 가지고 새끼를 꼬기 시작한다. 평수가 옆에서 돕는다.

평수

얻다 쓸라고 이러요?

인수

글쎄 나 꼬는 대로만 꽈라. 또룩또룩 꽈라.

손가락 정도 되게 꼰 새끼를 다시 함해 두 겹으로 꼬았다. 그걸 또 합쳐서 겹으로 꼬았다. 여섯 발이 넉넉하게 비튼 것이다. 인수는 처마에 꽂힌 낫을 빼서 숫돌에 간다. 그리고 낫의 칼날을 비슴듬히 비껴본다.

무대: 어두워진다.

& 꼭두말집 / 마당

인수(평수에게)

지게를 지고 가자.

평수

어디?

인수

고수머리 영감네 집에 가서 곡식 가마니만 지고 오자.

평수(고개를 끄덕이며)

갑시다.

인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냐.

평수(비장한 결의를 보이며)

갑시다.

인수는 지게에 새끼와 낫, 그리고 톱을 지고 집을 나선다. 평수는 지게만 지고 형을 따른다. 둥근 달이 중천에서 기울고 사방이 죽은 듯 교교하다. 살구나무집 불빛이 졸고 있다. 내일이 출상이라 사람들이 시체를 지키고 있다. 용팔이와 판대가 호상을 돌보고 장례비는 마을과 면에서 나눠 내기로 했다.

두 형제는 살구나무집을 옆에두고 조심조심 푸대골로 향했다.

무대: 어두워진다.

& 푸대골 / 고수머리 영감 집 / 곳간 벽

벽 아래서 인수가 높이를 가늠한다.

인수

이만하면 안 올라가겄냐.

평수

올라가겄습니다.

인수

몸이 가벼운께 니가 먼저 올라가거라. 올라가서 저 가운데 기중에 새끼를 매라.

인수는 지게를 세워놓고 평수를 올려보낸다. 평수가 새끼를 달고 두어 발 올라가기를 기다려 인수가 또 지게에 올라섰다. 그리고 평수 발을 받쳐준다. 올라선 형제는 주위 형편을 둘러보고 귀를 기울인다. 인수는 낫을 이용해서 벽을 판다.(효과음)

평수

내가 좀 파께요.

인수

그냥 서 있거라.

인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혔다.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역시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벽이 헐렸다. 가마니 하나 드나들 만하게 헐어진 곳간으로 인수는 들어간다.

인수(소리만)

내린다.

평수

예.

퍽!(가마니 떨어지는 효과음) 퍽! 퍽!

퍽!

인수(얼굴을 내보이며)

그만 내려가자.

평수가 먼저 내려간다. 이어서 인수가 내려오기 위해 새끼줄을 잡고 준비를 한다. 줄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철버덕(효과음)

인수가 고개를 처박고 평수 옆에 고꾸라졌다. 줄을 잡다가 손이 빠진 것이다.

평수

형님!

인수

평수

형님!

인수

평수는 형 인수의 어깨를 흔든다. 인수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다. 손발이 풀려 있다. 평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평수는 형을 등 뒤로 둘러 업고 뛰기 시작한다.

평수(소리만)

형님

인수(소리만)

오야.

평수

죽지 마시요이…

무대: 어두워진다.

& 노봉산 꼭두말집

집에 온 평수는 형을 방 안에 눕히고 형수를 앞세우고 푸대골로 간다.

평수(소리만)

힘이 부치시겄소만 이놈 지시요.

꼬끼오(음향)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닭이 세 홰째 홰를 울렸다. 땀이 비오듯 흠뻑 적신 평수와 그 뒤를 따르는 지게에 짐을 실은 형수가 나타난다. 평수와 형수는 가마니를 부척에 내려놓는다.

평수

형수씨, 어서 나눠 감춥시다. 동이, 항아리, 옹배기 할 것 없이 담을 수 있는대로 담읍시다.

평수는 방에 누워있는 형 곁으로 가서 살핀다.

평수

형님, 형수랑 옮겼어라우. 이제 염려 안 하셔도 되라우.

인수

평수

형님.

아내

어떠시요?

평수

형님! 형님!

인수(가는 소리로)

오야.

평수

이대로 죽으실라우!

인수

평수야아.

평수가 인수 손을 꽉 쥔다.

인수

잘하고 있거라. 어머니 잘 모시고. (사이) 네 형수 가련히 여겨라.

평수

형니임, 밥 한 그릇 안 잡수고 죽으실라우!

인수

인수는 점점 몸이 굳어간다. 동구 앞에서는 구슬픈 상여 소리가 들린다.

상여소리

가네 가네 아주 가네, 우리 동네 살구남 집 너와널.

뒷소리

어이 어이 어허이야, 어허 넘자 너와널

무대 아래 살구나무집에 상여가 오색 찬란한 꽃송이가 눈부시고 마을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어서 함성 소리가 들린다.

함성 소리

극빈자에게 구호미를 달라!
노동자에게 일을 달라!

상여꾼들은 어느덧 데모화하여 상여를 맨 체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상여 앞에는 명정과 함께 플래카드가 두 개 나란히 가고 있다.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에 날려 플래카드가 명정인지 명정이 플래카드인지 구분이 안된다.

음악: 쇼팽 장송행진곡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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