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난 주막
원작: 오유권 소설, 새로 난 주막(사상계, 1960. 05)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돈재
소쿨례: 돈재의 처
선애: 소쿨례 동네 친구
노인 내외: 주막 새 주인
대화 중에 나오는 인물
옥분이, 금순이: 소쿨례의 고향 친구들
주요 등장인물 성격
돈재: 군 하사관(중사) 출신으로 은성무공훈장까지 받은 30대 남자. 제대 후에 마음 먹은대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품팔이 노동을 하면서, 고달픈 삶을 해소하고자 술장사를 하고 싶어한다. 작은 마누라를 얻어 술장사를 하자고 아내 소쿨례에게 제안한다.
소쿨례: 친정 살림이 괜찮았던 탓에 스스로 여염집 아낙이라고 생각하는 30대 여자. 남편의 엉뚱한 제안에 처음에는 실없는 소리로 치부했으나 어려운 살림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 친구 선애를 남편의 첩으로 천거한다.
선애: 결혼 후 3개월 만에 남편이 죽고 홀로된 소쿨례의 동네 친구. 친정집에서 지내는데 친구 소쿨례가 찾아와서 같이 돈재네 집으로 놀러온다. 자기 돈으로 주막을 차려 돈재랑 술장사를 시작한다.
때
1950년대
장소
성안 돈재네 집, 새끼촌 들머리고개 주막
# 막이 열림
한길이 세 갈래로 뻗어나간 들머리고개엔 성안 장날은 물론 그렇지 않는 날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한 갈래는 새끼촌을 왼편에 끼고 장암면, 군산면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갈래는 남으로 잇달아서 질곡면, 서산면, 내동골로 들어가는데, 성안을 거쳐서 기차를 타고 혹은 자동차를 타고 광주로 여수로 서울로 드나드는 서남방 일대의 사람들은 이 고개에서 발을 쉬고 땀을 닦았다..
& 돈재 집 / 안방
돈재
마누라, 나, 작은마누라 하나 얻어주게.
소쿨례
…
돈재
이쁜 과부 말이시. 자네는 밤마다 자리를 같이해도 하로만 안 보면 서운해하는디 남편 없는 과부는 오죽하겄는가.
소쿨례(어이 없다는 표정)
아니, 뭣을 얻어주겄소!
돈재
술장시를 해서 편히 살림세.
소쿨례
말도 아닌 소린 하지도 마시요. 묵어도 같이 묵고 굶어도 같이 굶어야제.
물론 농담이거니 하면서도 그게 한두 번이 아닌지로 소쿨례는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딴은 남편 말이 한편으론 그럴듯한 말이기도 하다. 자기의 남편에 대한 집요한 애착만 덜 수 있다면 쓸쓸한 과부 하나쯤 동정해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실없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남편을 다른 여자와 나눠 가질 수 있을런지 큰 의문이기도 하다.
방안에는 웃목에 고리짝, 그 위에는 쪽빛 이불이 있다. 옆에는 인두판과 바가지와 빈 쌀동이가 있다. 소쿨례는 양말을 깁고 돈재는 아랫목에 비슴듬히 누워있다.
돈재
글 안 하면 자네가 술장시를 좀 할란가. 나, 암만해도 벌어묵을 길이 없은께 주막이나 하나 차릴라네.
소쿨례
그럼, 예편넬 폴아서 묵고살라우, 응? 예편네를 폴아서 묵고살어… (사이) 그런 말들 하지 말고 어서 진지나 듭시다.
돈재
나, 노름판에서 술 한잔 얻어묵고 왔더니 밥염이 없네. 자네나 들소.
돈재는 하사관으로 중사 제대를 했다. 오 년간 군 생활을 했기에 사회에 나서면 면서기나 지서 순경 같은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더욱 휴전 직전에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서 사선을 꿰뚫었다는 공로로 은성훈장까지 탔다. 그러나 제대 후에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품팔이 노동을 하는데 그 일도 자주 끊겨 노는 날이 많다. 마침내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술장사를 하자는 것이다. 젊고 예쁜 그리고 되도록이면 제 것도 좀 가진 과부를 얻어서. 돈재는 술장사할 위치까지 잡고 있었다. 새끼촌 근처 삼거리길이다. 이곳에서 길이 갈리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이 주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한다. 전에 주막이 있다가 인공통에 없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 빈터에 다시 주막을 세우기는 어렵지 않겠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소쿨례(혼잣말로)
하긴 살기도 팍팍한디… 작은 각시를 얻어 술장시를 해서 돈을 버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한디… 마누라까지 폴아 술장시를 하려는 남자들도 있단디…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알겄는디…
(사이)
작은 마누라라…(생각에 잠긴다.)
무대: 어두워진다.
& 돈재 집 / 마당 / 해질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소쿨례는 배를 만진다. 아침에 시래기죽 한 사발 먹고 점심은 굶었다. 저녁을 끓일 쌀 한 톨이 없다. 꾸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날마다 꾸다 보니 남에게 진 잔빚이 여기저기 연 걸리듯 많아 얼굴을 들고 나설 수가 없어 산만 보고 있는 것이다. 소쿨례의 눈시울이 뜨뜻해진다.
소쿨례(혼잣말로)
술장시로 나설 수도 없고… 여염집 아낙으로서…
(사이)
옥분이랑 금순이는 어찌 사까? 참 선애는 개가는 했을까?
선애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한 동기간 처럼 애지중지 감싸고 지내던 선애 소식이 더욱 궁금해진다.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탐탁했지만 팔자가 사나워서 남편이 결혼 3개월 만에 죽은 것이다. 돈재가 어깨에 자루를 맨체 집으로 들어서면서 먼 산을 보고 생각에 잠긴 선애를 향해 다가 온다.
돈재
이 사람아, 아직까지 불도 안 쓰고 뭣하는가?
소쿨례(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돈재를 외면하며)
…
돈재
어째, 저녁을 못 끓였제.
돈재는 쌀 말가웃가량은 들어 보이는 쌀자루를 내려 놓는다.
돈재(의기양양하게)
밥 짓소. 홍 생원 댁에서 여름에 모내주기로 하고 쌀 말가웃을 얻었네. 그라고 오늘은 노름판에서 개평으로 백 환을 뜯어서, 한몫 짚었더니 용케 돈이 천오백 환이 생겼네. 이놈 가지면 한 이십 일은 안 묵겄는가.
소쿨례는모처럼 보는 쌀에 공연히 서러운 생각이 들면서 목이 메인다. 그러나 애써 명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소쿨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법시다. 이렇게 굶고만 있은께 서러워서 못 살겄소.
돈재
그런께 이 사람아, 여자를 한 사람 알어보란 마시. 얼굴이 쓸 만하고 되도록이면 제 것도 좀 있는 여자를 말이시.
소쿨례
그러다가 당신이 마음까지 줘버리면 어쩌게라우.
돈재
에잇, 사람 같은 이라고! 자네가 있는디 마음까지야 줄 리 있는가.
소쿨례
허기사… 우리 친정에 마치맞은 젊은 홀어미가 한 사람 있기는 있소만…
돈재
나이가 몇인디?
소쿨례
나하고 동갑인디, 얼굴이 참 이빼라우.
돈재
어쩌다가 홀로 되었단가?
소쿨례
시집가 가지고 석달 만에 남자가 소한테 찔려서 죽어버렸다우.
돈재
그럼 그 여자가 어디가 있단가?
소쿨례
친정에 가 있는디 살림도 괜찬해라우.
돈재
자네가 그 여자를 잘 아는가?
소쿨례
나하고 친힌 친구여라우.
돈재
그럼 한 번 알어보소.
소쿨례
그렇지만…
돈재
괜찮은께 한 번 알아보란 마시.
소쿨례
그럼 주막은 얻다 짓고 그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줄라우?
돈재
봐둔 자리가 있네. 자네가 사람만 얻어주면 주막 하나는 넉넉히 지을 수 있단 마시.
소쿨례
어디 자리를 말하요.
돈재
들머리고개 이전 주막 자리가 인공통에 없어진 자리가 있단 마시.
(사이)
여자를 얻으면 닷새 만에 한 번씩 자리를 같이 할 텐께 염려 놓소.
소쿨례
그래도 그 여자는 좋다고 하께라우?
돈재
내가 군대에서 훈장까지 탔는디, 그런 수완이 없겄는가? 내가 살살 달래서 그렇게 잘 할텐께 염려 노란께.
소쿨례
그럼 꼭 닷새 만에 하룻밤씩 갈라우?
돈재
그런다 마시.
소쿨례
만일 그 이상 가거나 변심하면 어쩔라우?
돈재
에잇, 사람 같은 이라고! 자네하고 나하고 정분이 이렇게 두터운디, 그럴리가 있는가.
소쿨례
그럼 꼭 그렇게 하기요이!
돈재(새끼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면서)
맹세함세.
소쿨례(적이 안심이 된다는 표정)
…
돈재
마침 돈도 좀 생기고 했응께 이삼 일 새라도 친정엘 한 번 댕게 오소.
무대: 어두워진다. 음악: 드뷔시 현악4중주 2악장
& 소쿨례 친정 동네 / 선애 집
선애가 버선을 맞추면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소쿨례가 들어선다. 들어서는 친구 소쿨례를 보고 선애가 반갑게 맞이한다.
선애
어따, 반가운 사람도 보겄다이!
소쿨례
응, 너 아직도 그냥 있냐?
선애
그냥 있긴 뭐가 그냥 있어.
소쿨례
시집은 안 가고.
선애
미친 소릴…
소쿨례
미친 소리는 무슨 미친 소리야. 그럼 죽도록 혼자 살라냐?
선애
넌 그새 재미가 어떠냐?
소쿨례
나야 홀로 사는 너보담은 낫지. 먹든 굶든 남자가 위해주니까.
선애
사이가 무척 좋다매?... 나 다 들었어.
소쿨례
응, 사람이 슬기로워서.
선애
…
선애는 야들야들한 눈매에 애틋한 빛을 나타내 보인다. 소쿨례도 선애가 혼자 사는 것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이때는 남편과의 약속 같은 것은 거의 잊고 있다.)
소쿨례
아야! 빨리 서방을 얻어 가. 혼자 고생하고 살믄 누가 알어준다든.
선애
글쎄… 어디가 마땅한 남자가 있어야제.
소쿨례
그렇든 저렇든 혼자야 적적해서 살겄냐?
선애
글쎄…
선애는 고구마를 가질러 나간다. 혼자 거처하는 선애방을 둘러보는 소쿨례. (사이) 선애가 고구마를 가지고 다시 들어온다.
선애
고구마가 모조리 잔 것밖에 안 남었다.
소쿨례
죽은 남편은 널 많이 사랑했었니?
선애
사랑했지. 밤이면 꼭꼭 묵을 것을 껴두었다가 놀고 난 뒤에는 꺼내 줬다. 그래 밤엔 뭘 묵을라면 그 사람이 떠올라야…
소쿨례
그보다도 몸이 있을라고 하면 더 안 보고 싶냐?
선애(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야도, 인잔 못할 말이 없구나.
소쿨례
말은 까놓고 말이지 뭐야.
선애(얼굴을 붉히면서)
아닌 게 아니라…
소쿨례
…
선애
근디 또 닷새만 있음 그것이 비칠 건데, 어떻게 하믄 좋을지 몰르겄다.
소쿨례(작정했다는 듯이)
그럼 우리 같이 살까?
선애
미친 소릴… 넌 인잔 못할 말이 없구나.
소쿨례(설득조로)
친구 새, 정의가 좋면 천하도 반분한다는디, 그것 좀 못할라드라고.
선애
그런 쓸디없는 말은 말고… 나, 적적한께 놀러나 좀 자주 온나.
소쿨례
늬나 우리 집에 좀 놀러온나. 대접할 것은 없어도.
선애
남자 있는 집에 뭣하러 가냐.
소쿨례
밤낮 놀러만 댕기고 집에가 잘 안 붙어 있어야.
선애
정말 요샌 날씨가 훈훈한디, 바람이라도 좀 쐴까.
소쿨례
오늘 길에 참 꽃도 많이 피었더라.
선애
가면 뭣 줄 테냐?
소쿨례
저녁에 닭 잡아주지.
선애
저녁까지 놀면 되니… 너의 남자가 있는디.
소쿨례
이샌 마슬에 가서 자고, 잘 안 온다. 가서 한 이틀 놀자구나. 산에도 올라가고.
선애
그럼 언제 가냐?
소쿨례
모레나 글피쯤.
선애
정말 닭 잡아줘야 한다.
두 사람은 어릴 적 같이 놀았던 시절을 생각한다. 둘이 모두 옛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무대: 어두워진다. 음악: 드뷔시 현악4중주 2악장이 계속 흐른다.
# 제2막
이틀이 지난 뒤, 선애와 함께 집으로 온 쏘쿨레는 남편을 미리 만나 귀뜸을 한다.
& 돈재 집
소쿨례
둘이 있으께 당신은 저녁만 잡수면 그냥 사랑으로 가이시오. 그랬다가 첫닭이 울면 뒤란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그럼 내가 친구를 재워놓고 나오께.
돈재
그러면?
소쿨례
그때 당신이 슬쩍 들어가제 어째라우.
돈재
알았네 그럼. 그르치잖게 잘해두게.
용변을 마친 선애가 들어온다. 돈제는 이내 담배 한 대를 붙여 분다. 어색한 듯한 표정으로 선애를 본다.
돈재
(선애에게) 모처럼 오셨는디 반찬도 소박하고 대접이 말이 아니요.
(사이)
(소쿨례에게) 그럼 난 사랑으로 갈란께 아주머니랑 고단하신디 일찍이 쉬소.
선애
아저씨가 여기서 쉬이시오. 나는 이웃으로 갈란께.
돈재
웬이요. 그냥 쉬이시오.
선애
댁에서 쉬시란 말이요.
돈재는 무대에서 퇴장한다.
소쿨례(선애 손을 끌면서)
괜찮해, 앉어.
선애는 앉으면서 주위를 살핀다. 소쿨례의 살림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을 파악한다. 반상도 그렇고 방자리도 허름하다. 옷벌이라도 들었음직한 농짝 하나가 없다. 그러나 선애는 소쿨례가 부럽다. 남편과 더불어 다정스레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선애는 물끄러미 바람벽을 바라보고 있다.
소쿨례
야,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소쿨례는 선애를 따뜻한 데로 내려 앉자고 권한다.
소쿨례
하고 사는 꼴이 이래서 부끄럽다.
선애
있음 뭘하고 없음 뭘한다냐. 남자만 위해주면 됐지.
소쿨례
그래 주막을 하나 차리재는데 어째야 쓸지 모르겄다.
선애
어디다?
소쿨례
성안으로 가는 들머리고개에 내재는데 술장사는 죽어도 못하겄어.
선애
요즘 세상에 가릴 게 뭐가 있니?
소쿨례
그래도…
선애
그런 생각은 묵은 생각들이야. 나는 남자만 위해주면 뭐든지 하겄다.
소쿨례
도부 장시도?
선애
그럼 벌어 묵고사는 데 무슨 숭허물이 있다니. 하다못하면 마누라도 폴아묵고, 남편도 폴아묵는 세상에 장시가 무슨 숭이니.
소쿨례
허기사 친구의 남자를 뺏어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다드라.
선애
그것은 문제도 아니야. 동생이 언니 남편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대.
소쿨례
세상에, 그런 일들도오!
소쿨례는 입을 헤벌쭉 벌리고 놀라워한다.
소쿨례
참, 닭을 잡아야지.
친정에서 남편 고아주라고 보낸 영계를 잡으려는 것이다.
선애
뒀다 니 남편 해주제, 그러냐.
소쿨례
남겨뒀다 주면 돼.
소쿨례 닭을 잡으로 나간다. 선애도 소쿨례를 따라 나간다. 무대는 어두워지고 음악이 흐른다. 음모가 싹트는 듯한 분위기의 ‘드뷔시 현악4중주 2악장’이 약하게 배경으로 흐른다.
& 돈재 집 / 뒤란과 방 / 밤
무대는 뒤란과 방이 둘로 나눠져 있다. 방에는 선애가 누워서 자고 있다.
뒤란에는 돈재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선애 잠을 재우고 소쿨례가 방에서 나와 남편 돈재에게 온다. 소쿨례가 돈재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소쿨례
지금 한창 자고 있으니께 가만히 들어가서 살짝 보듬어보시오.
돈재
뭐라고 말해뒀는가?
소쿨례
말은 무슨 말을 해둬라우. 깨면 절로 알 것인디.
돈재
그러다 안 보듬길라고 버티면 어쩌게?
소쿨례
어쩜 보듬길 것이요. 마침 내일모레 새 몸도 있을 것 같다고 합디다.
돈재
그래… 그럼 자네는?
소쿨례
나는 밖에서 좀 있다 이웃집으로 갈라우.
소쿨례는 선애가 남편을 뿌리치지 않는가 엿만 보고 이웃집으로 피해줄 생각인 것이다.
돈재는 슬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선애는 이불을 아랫배에 걸치고 자고 있다. 선애 가슴이 소복하게 부풀어 보인다. 선애의 자는 얼굴은 윤기가 번들하다. 발그레한 볼이며 매끈한 눈썹이 탐스럽다. 그를 바라보는 돈재는 침을 꿀꺽 삼킨다. 돈재는 가만히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선애는 움직임이 없다. 돈재는 선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젖이 주먹 가득히 만져진다. 그래도 선애는 조용하다. 돈재는 선애의 젖을 주물럭 거린다. 그래도 선애는 자는지 움직임이 없다. 소쿨례는 뒤안에서 방 동정을 살피다가 살며시 자리를 뜬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음악 소리가 커진다. 무대는 완전히 어두워진다.
& 돈재 집 / 이튿날 아침
선애는 돈재를 마주 대하기가 민망하고 부끄럽다. 소쿨례를 보기도 어색하다. 선애는 버선등만 만지작 거린다.
소쿨례
친구 새 의리가 좋면 천하도 반분한다 않든.
소쿨례가 민망해하는 선애를 위로 한다.
선애
…
소쿨례
몸과 마음과는 또 다른 거니까 괜찮아야.
선애는 여전히 버선등만 만지작거리면서 어를어름해 한다.
선애
난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소쿨례
혼자 고생하고 있음 뭘하니. 사람이 그 한 낙을 바라고 산대도 과언이 아닌디.
선애
그렇지만…
소쿨례
예, 그러지 말고 웬만하면 둘이 같이 살자야.
선애
…
소쿨례
응, 선애야!
선애
그러는 수도 있니?
소쿨례
서로 이해만 하면 되잖아.
선애
그렇지만…
선애는 고개를 들지 않고 버선등을 만지작 거리면서 망설인다. 부끄러워하는 선애를 남기고 소쿨례는 퇴장한다.
소쿨례(소리만)
나는 그새 친정으로 좀 가 있을란께 여그서 한 며칠 쉬었다 오니라.
방에 남은 선애는 멍하니 벽을 쳐다보다가 미소를 띤다. 고마워하는 빛이 역력하다. 사실은 어제 자는 척 했을 뿐이다. 소쿨례가 일전에 같이 살자는 얘기가 있었기에 은근히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돈재가 자신의 가슴을 주무를 때도 사실은 자지 않고 있었다. 밖에 소쿨례의 인기척이 느껴져 조용히 참고 있다가 떠나는 것 같아서 살며시 돈재를 끌어 안았었다. 돈재의 억센 팔이 등을 조여올 때는 그동안 고팠던 욕정이 풀리면서 세상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선애는 살며시 자신의 허벅지를 만져본다.
무대: 어두워지고 음악(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이 흐른다.
# 제3막
& 돈재 집 / 밤
소쿨례 내외의 계획은 맞아들어 두 달이 지난 뒤에는 주막을 열었다. 돈은 예상했던대로 선애가 부담하고 주막은 돈재가 지었다. 세 사람이 합의해서 잠자리 조건도 변경했다. 본래 5일에 한 번씩 잠자리를 하기로 했던 것을 3일에 한 번씩 자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선애가 돈재에게 부탁했고, 돈재가 소쿨례의 허락을 얻었다. 소쿨례와 선애는 친구 사이에 같은 남자를 섬기니까 끝까지 사이좋게 살자고 약조까지 했다.
소쿨례(혼잣말)
혼자 자려니 허전하네… 선애는 지금 뭐 하까?
자꾸 상상하게 된다. 소쿨례는 머리를 흔들면서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뿐이다.
소쿨례(혼잣말)
그래도 선애가 나를 성님! 성님! 하면서 존대를 하는 것이 기특하기는 해. (사이) 어제는 버선 한 켤레를 지어가지고 오기도 하고… 선애가 착하기는 해…
소쿨례는 잠을 청한다.
소쿨례(혼잣말)
벌써 석달이나 됐는디. 내일은 주막을 한 번 가볼까… 선애가 바람도 쏘일 겸 한번 오라고 하든디… 그런디 여염집 아낙이 주막을 갈 수가 있어야제. 나를 술집 여자로 알면 어쩔것이여.
(사이)
그래도 내일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한번 보러 가야지…
무대 어두워진다.
& 들머리고개 / 주막
주막에는 좁고 긴 탁자 앞에서 세 사람의 손님이 술을 마시고 있다. 그 안쪽에서 돈재는 찌개를 끓이고 있다. 선애는 반찬을 준비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소쿨례를 반가이 맞아들인다.
선애
아고, 성님! 오시네요.
돈재(돌아보면서)
아따, 자네가 다 주막에 나올 때도 있네이!
(사이)
들어가소, 방으로.
돈재는 선애에게 소쿨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눈짓을 한다. 선애는 소쿨례를 방으로 모시려고 나선다.
선애
들어가입시다. 성님!
소쿨례
…
소쿨례는 선애가 주인이고 자신은 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허전하고 어색하다.
선애
드러가시잔 말이요. 성님!
소쿨례
…
소쿨례가 어물어물하고 있는 사이에 선애는 새 손님을 접대하고 돈재 곁으로 가서 술 따를 준비를 한다. 소쿨례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갑자기 두 남녀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뒤집힐려 한다.
소쿨례
일들 보소.
소쿨례는 그냥 술청을 나오려고 한다. 그런 소쿨례를 보고 선애가 손님 시중을 들다말고 소쿨례를 향해 온다.
선애(소쿨례 팔을 잡으면서)
아니, 들어가시잔께 어째 그냥 가실라고 그러시오. 성님!
돈재
이 사람아, 좀 놀다 가소.
소쿨례
아니 그냥 가께.
소쿨례는 쫓기듯이 돌아서 나간다.
무대: 어두워지다.
& 돈재 집 / 밤
그동안 잠자리 약속을 잘 지키던 돈재가 이틀이 넘고 사흘이 되도 오지 않다가 술이 취해 들어온다. 소쿨례는 일어나서 돈재를 맞아들인다. 돈재는 소쿨례의 손을 뿌리치고 다짜고짜 소쿨례를 나무란다.
돈재
너 왜 거기까지 와 가지고 방에도 좀 안 들어갔냐.
소쿨례
…
돈재
술장시가 그렇게 더럽디야. 응? 술장시가 더러워… 왜 방에도 좀 안 들어오고 그렇게 맹숭맹숭 서 있다 그냥 와버렸냐.
소쿨례
당신들이 바뻐서 그랬지 어째라우.
돈재
뭐! 바빠서 그래? 에잇 괘씸한 년! 아무리 그렇지만 주막을 차린 지 석달이 되도록 주막엘 한번 안 나와 보다니… (사이) 나오면 누가 침 뱉을 것 같디야, 응? 이 썩을 년아.
무대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날이 지나 며칠 후에 온 돈재다.)
돈재
안 굶고 사는 것이 누구 덕인디, 네 년이 그렇게 나와, 이년아! 이제 네 년이 나와서 장사를 해라. 처 먹고 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소쿨례는 기가 막혔다. 이제는 약속했던 사흘에 한번씩 가기로 했던 선애네에서 아예 뒤바뀌어 소쿨례를 찾는 것이 사흘에, 나흘에, 오일에 하루로 달라졌다. 그것도 오랜만에 와서는 행패만 부린다. 소쿨례는 이러다가 주객이 바뀌겠다 싶어 내일부터라도 주막에 나가리라 작심한다. 돈재가 오지 않은지가 이레는 됐다. 소쿨례는 주막에 나갈 것을 결정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가 이제는 선애를 데리고 주막에서 일을 처리하는 주인이 되려니하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 들머리고개 / 주막 / 다음날 아침
소쿨례는 아침을 먹고 주막으로 나갔다. 주막에는 돈재와 선애는 없고 모르는 노인 내외가 있다.
소쿨례(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아니, 이 집 주인은 어디 가고 당신네가 여기 있소?
노인(정신 나간 여인을 대하듯이)
우리가 이사 온 지 벌써 닷새째요.
소쿨례
그럼 먼저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다우?
노인
서울 어디로 이사 간다고 떠납디다.
무대 막이 내린다. 음악(드뷔시 현악4중주 2악장)이 크레센도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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