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막
이틀이 지난 뒤, 선애와 함께 집으로 온 쏘쿨레는 남편을 미리 만나 귀뜸을 한다.
& 돈재 집
소쿨례
둘이 있으께 당신은 저녁만 잡수면 그냥 사랑으로 가이시오. 그랬다가 첫닭이 울면 뒤란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그럼 내가 친구를 재워놓고 나오께.
돈재
그러면?
소쿨례
그때 당신이 슬쩍 들어가제 어째라우.
돈재
알았네 그럼. 그르치잖게 잘해두게.
용변을 마친 선애가 들어온다. 돈제는 이내 담배 한 대를 붙여 분다. 어색한 듯한 표정으로 선애를 본다.
돈재
(선애에게) 모처럼 오셨는디 반찬도 소박하고 대접이 말이 아니요.
(사이)
(소쿨례에게) 그럼 난 사랑으로 갈란께 아주머니랑 고단하신디 일찍이 쉬소.
선애
아저씨가 여기서 쉬이시오. 나는 이웃으로 갈란께.
돈재
웬이요. 그냥 쉬이시오.
선애
댁에서 쉬시란 말이요.
돈재는 무대에서 퇴장한다.
소쿨례(선애 손을 끌면서)
괜찮해, 앉어.
선애는 앉으면서 주위를 살핀다. 소쿨례의 살림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을 파악한다. 반상도 그렇고 방자리도 허름하다. 옷벌이라도 들었음직한 농짝 하나가 없다. 그러나 선애는 소쿨례가 부럽다. 남편과 더불어 다정스레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선애는 물끄러미 바람벽을 바라보고 있다.
소쿨례
야,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소쿨례는 선애를 따뜻한 데로 내려 앉자고 권한다.
소쿨례
하고 사는 꼴이 이래서 부끄럽다.
선애
있음 뭘하고 없음 뭘한다냐. 남자만 위해주면 됐지.
소쿨례
그래 주막을 하나 차리재는데 어째야 쓸지 모르겄다.
선애
어디다?
소쿨례
성안으로 가는 들머리고개에 내재는데 술장사는 죽어도 못하겄어.
선애
요즘 세상에 가릴 게 뭐가 있니?
소쿨례
그래도…
선애
그런 생각은 묵은 생각들이야. 나는 남자만 위해주면 뭐든지 하겄다.
소쿨례
도부 장시도?
선애
그럼 벌어 묵고사는 데 무슨 숭허물이 있다니. 하다못하면 마누라도 폴아묵고, 남편도 폴아묵는 세상에 장시가 무슨 숭이니.
소쿨례
허기사 친구의 남자를 뺏어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다드라.
선애
그것은 문제도 아니야. 동생이 언니 남편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대.
소쿨례
세상에, 그런 일들도오!
소쿨례는 입을 헤벌쭉 벌리고 놀라워한다.
소쿨례
참, 닭을 잡아야지.
친정에서 남편 고아주라고 보낸 영계를 잡으려는 것이다.
선애
뒀다 니 남편 해주제, 그러냐.
소쿨례
남겨뒀다 주면 돼.
소쿨례 닭을 잡으로 나간다. 선애도 소쿨례를 따라 나간다. 무대는 어두워지고 음악이 흐른다. 음모가 싹트는 듯한 분위기의 ‘드뷔시 현악4중주 2악장’이 약하게 배경으로 흐른다.
& 돈재 집 / 뒤란과 방 / 밤
무대는 뒤란과 방이 둘로 나눠져 있다. 방에는 선애가 누워서 자고 있다.
뒤란에는 돈재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선애 잠을 재우고 소쿨례가 방에서 나와 남편 돈재에게 온다. 소쿨례가 돈재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소쿨례
지금 한창 자고 있으니께 가만히 들어가서 살짝 보듬어보시오.
돈재
뭐라고 말해뒀는가?
소쿨례
말은 무슨 말을 해둬라우. 깨면 절로 알 것인디.
돈재
그러다 안 보듬길라고 버티면 어쩌게?
소쿨례
어쩜 보듬길 것이요. 마침 내일모레 새 몸도 있을 것 같다고 합디다.
돈재
그래… 그럼 자네는?
소쿨례
나는 밖에서 좀 있다 이웃집으로 갈라우.
소쿨례는 선애가 남편을 뿌리치지 않는가 엿만 보고 이웃집으로 피해줄 생각인 것이다.
돈재는 슬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선애는 이불을 아랫배에 걸치고 자고 있다. 선애 가슴이 소복하게 부풀어 보인다. 선애의 자는 얼굴은 윤기가 번들하다. 발그레한 볼이며 매끈한 눈썹이 탐스럽다. 그를 바라보는 돈재는 침을 꿀꺽 삼킨다. 돈재는 가만히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선애는 움직임이 없다. 돈재는 선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젖이 주먹 가득히 만져진다. 그래도 선애는 조용하다. 돈재는 선애의 젖을 주물럭 거린다. 그래도 선애는 자는지 움직임이 없다. 소쿨례는 뒤안에서 방 동정을 살피다가 살며시 자리를 뜬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음악 소리가 커진다. 무대는 완전히 어두워진다.
& 돈재 집 / 이튿날 아침
선애는 돈재를 마주 대하기가 민망하고 부끄럽다. 소쿨례를 보기도 어색하다. 선애는 버선등만 만지작 거린다.
소쿨례
친구 새 의리가 좋면 천하도 반분한다 않든.
소쿨례가 민망해하는 선애를 위로 한다.
선애
…
소쿨례
몸과 마음과는 또 다른 거니까 괜찮아야.
선애는 여전히 버선등만 만지작거리면서 어를어름해 한다.
선애
난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소쿨례
혼자 고생하고 있음 뭘하니. 사람이 그 한 낙을 바라고 산대도 과언이 아닌디.
선애
그렇지만…
소쿨례
예, 그러지 말고 웬만하면 둘이 같이 살자야.
선애
…
소쿨례
응, 선애야!
선애
그러는 수도 있니?
소쿨례
서로 이해만 하면 되잖아.
선애
그렇지만…
선애는 고개를 들지 않고 버선등을 만지작 거리면서 망설인다. 부끄러워하는 선애를 남기고 소쿨례는 퇴장한다.
소쿨례(소리만)
나는 그새 친정으로 좀 가 있을란께 여그서 한 며칠 쉬었다 오니라.
방에 남은 선애는 멍하니 벽을 쳐다보다가 미소를 띤다. 고마워하는 빛이 역력하다. 사실은 어제 자는 척 했을 뿐이다. 소쿨례가 일전에 같이 살자는 얘기가 있었기에 은근히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돈재가 자신의 가슴을 주무를 때도 사실은 자지 않고 있었다. 밖에 소쿨례의 인기척이 느껴져 조용히 참고 있다가 떠나는 것 같아서 살며시 돈재를 끌어 안았었다. 돈재의 억센 팔이 등을 조여올 때는 그동안 고팠던 욕정이 풀리면서 세상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선애는 살며시 자신의 허벅지를 만져본다.
무대: 어두워지고 음악(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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