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새로 난 주막' 제1막

반응형

새로 난 주막

원작: 오유권 소설, 새로 난 주막(사상계, 1960. 05)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돈재
소쿨례: 돈재의 처
선애: 소쿨례 동네 친구
노인 내외: 주막 새 주인

대화 중에 나오는 인물

옥분이, 금순이: 소쿨례의 고향 친구들

주요 등장인물 성격

돈재: 군 하사관(중사) 출신으로 은성무공훈장까지 받은 30대 남자. 제대 후에 마음 먹은대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품팔이 노동을 하면서, 고달픈 삶을 해소하고자 술장사를 하고 싶어한다. 작은 마누라를 얻어 술장사를 하자고 아내 소쿨례에게 제안한다.

소쿨례: 친정 살림이 괜찮았던 탓에 스스로 여염집 아낙이라고 생각하는 30대 여자. 남편의 엉뚱한 제안에 처음에는 실없는 소리로 치부했으나 어려운 살림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 친구 선애를 남편의 첩으로 천거한다.

선애: 결혼 후 3개월 만에 남편이 죽고 홀로된 소쿨례의 동네 친구. 친정집에서 지내는데 친구 소쿨례가 찾아와서 같이 돈재네 집으로 놀러온다. 자기 돈으로 주막을 차려 돈재랑 술장사를 시작한다.

1950년대

장소

성안 돈재네 집, 새끼촌 들머리고개 주막

# 막이 열림

한길이 세 갈래로 뻗어나간 들머리고개엔 성안 장날은 물론 그렇지 않는 날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한 갈래는 새끼촌을 왼편에 끼고 장암면, 군산면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갈래는 남으로 잇달아서 질곡면, 서산면, 내동골로 들어가는데, 성안을 거쳐서 기차를 타고 혹은 자동차를 타고 광주로 여수로 서울로 드나드는 서남방 일대의 사람들은 이 고개에서 발을 쉬고 땀을 닦았다..

& 돈재 집 / 안방

돈재

마누라, 나, 작은마누라 하나 얻어주게.

소쿨례

돈재

이쁜 과부 말이시. 자네는 밤마다 자리를 같이해도 하로만 안 보면 서운해하는디 남편 없는 과부는 오죽하겄는가.

소쿨례(어이 없다는 표정)

아니, 뭣을 얻어주겄소!

돈재

술장시를 해서 편히 살림세.

소쿨례

말도 아닌 소린 하지도 마시요. 묵어도 같이 묵고 굶어도 같이 굶어야제.

물론 농담이거니 하면서도 그게 한두 번이 아닌지로 소쿨례는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딴은 남편 말이 한편으론 그럴듯한 말이기도 하다. 자기의 남편에 대한 집요한 애착만 덜 수 있다면 쓸쓸한 과부 하나쯤 동정해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실없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남편을 다른 여자와 나눠 가질 수 있을런지 큰 의문이기도 하다.

방안에는 웃목에 고리짝, 그 위에는 쪽빛 이불이 있다. 옆에는 인두판과 바가지와 빈 쌀동이가 있다. 소쿨례는 양말을 깁고 돈재는 아랫목에 비슴듬히 누워있다.

돈재

글 안 하면 자네가 술장시를 좀 할란가. 나, 암만해도 벌어묵을 길이 없은께 주막이나 하나 차릴라네.

소쿨례

그럼, 예편넬 폴아서 묵고살라우, 응? 예편네를 폴아서 묵고살어… (사이) 그런 말들 하지 말고 어서 진지나 듭시다.

돈재

나, 노름판에서 술 한잔 얻어묵고 왔더니 밥염이 없네. 자네나 들소.

돈재는 하사관으로 중사 제대를 했다. 오 년간 군 생활을 했기에 사회에 나서면 면서기나 지서 순경 같은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더욱 휴전 직전에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서 사선을 꿰뚫었다는 공로로 은성훈장까지 탔다. 그러나 제대 후에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품팔이 노동을 하는데 그 일도 자주 끊겨 노는 날이 많다. 마침내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술장사를 하자는 것이다. 젊고 예쁜 그리고 되도록이면 제 것도 좀 가진 과부를 얻어서. 돈재는 술장사할 위치까지 잡고 있었다. 새끼촌 근처 삼거리길이다. 이곳에서 길이 갈리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이 주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한다. 전에 주막이 있다가 인공통에 없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 빈터에 다시 주막을 세우기는 어렵지 않겠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소쿨례(혼잣말로)

하긴 살기도 팍팍한디… 작은 각시를 얻어 술장시를 해서 돈을 버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한디… 마누라까지 폴아 술장시를 하려는 남자들도 있단디…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알겄는디…
(사이)
작은 마누라라…(생각에 잠긴다.)

무대: 어두워진다.

& 돈재 집 / 마당 / 해질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소쿨례는 배를 만진다. 아침에 시래기죽 한 사발 먹고 점심은 굶었다. 저녁을 끓일 쌀 한 톨이 없다. 꾸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날마다 꾸다 보니 남에게 진 잔빚이 여기저기 연 걸리듯 많아 얼굴을 들고 나설 수가 없어 산만 보고 있는 것이다. 소쿨례의 눈시울이 뜨뜻해진다.

소쿨례(혼잣말로)

술장시로 나설 수도 없고… 여염집 아낙으로서…
(사이)
옥분이랑 금순이는 어찌 사까? 참 선애는 개가는 했을까?

선애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한 동기간 처럼 애지중지 감싸고 지내던 선애 소식이 더욱 궁금해진다.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탐탁했지만 팔자가 사나워서 남편이 결혼 3개월 만에 죽은 것이다. 돈재가 어깨에 자루를 맨체 집으로 들어서면서 먼 산을 보고 생각에 잠긴 선애를 향해 다가 온다.

돈재

이 사람아, 아직까지 불도 안 쓰고 뭣하는가?

소쿨례(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돈재를 외면하며)

돈재

어째, 저녁을 못 끓였제.

돈재는 쌀 말가웃가량은 들어 보이는 쌀자루를 내려 놓는다.

돈재(의기양양하게)

밥 짓소. 홍 생원 댁에서 여름에 모내주기로 하고 쌀 말가웃을 얻었네. 그라고 오늘은 노름판에서 개평으로 백 환을 뜯어서, 한몫 짚었더니 용케 돈이 천오백 환이 생겼네. 이놈 가지면 한 이십 일은 안 묵겄는가.

소쿨례는모처럼 보는 쌀에 공연히 서러운 생각이 들면서 목이 메인다. 그러나 애써 명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소쿨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법시다. 이렇게 굶고만 있은께 서러워서 못 살겄소.

돈재

그런께 이 사람아, 여자를 한 사람 알어보란 마시. 얼굴이 쓸 만하고 되도록이면 제 것도 좀 있는 여자를 말이시.

소쿨례

그러다가 당신이 마음까지 줘버리면 어쩌게라우.

돈재

에잇, 사람 같은 이라고! 자네가 있는디 마음까지야 줄 리 있는가.

소쿨례

허기사… 우리 친정에 마치맞은 젊은 홀어미가 한 사람 있기는 있소만…

돈재

나이가 몇인디?

소쿨례

나하고 동갑인디, 얼굴이 참 이빼라우.

돈재

어쩌다가 홀로 되었단가?

소쿨례

시집가 가지고 석달 만에 남자가 소한테 찔려서 죽어버렸다우.

돈재

그럼 그 여자가 어디가 있단가?

소쿨례

친정에 가 있는디 살림도 괜찬해라우.

돈재

자네가 그 여자를 잘 아는가?

소쿨례

나하고 친힌 친구여라우.

돈재

그럼 한 번 알어보소.

소쿨례

그렇지만…

돈재

괜찮은께 한 번 알아보란 마시.

소쿨례

그럼 주막은 얻다 짓고 그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줄라우?

돈재

봐둔 자리가 있네. 자네가 사람만 얻어주면 주막 하나는 넉넉히 지을 수 있단 마시.

소쿨례

어디 자리를 말하요.

돈재

들머리고개 이전 주막 자리가 인공통에 없어진 자리가 있단 마시.
(사이)
여자를 얻으면 닷새 만에 한 번씩 자리를 같이 할 텐께 염려 놓소.

소쿨례

그래도 그 여자는 좋다고 하께라우?

돈재

내가 군대에서 훈장까지 탔는디, 그런 수완이 없겄는가? 내가 살살 달래서 그렇게 잘 할텐께 염려 노란께.

소쿨례

그럼 꼭 닷새 만에 하룻밤씩 갈라우?

돈재

그런다 마시.

소쿨례

만일 그 이상 가거나 변심하면 어쩔라우?

돈재

에잇, 사람 같은 이라고! 자네하고 나하고 정분이 이렇게 두터운디, 그럴리가 있는가.

소쿨례

그럼 꼭 그렇게 하기요이!

돈재(새끼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면서)

맹세함세.

소쿨례(적이 안심이 된다는 표정)

돈재

마침 돈도 좀 생기고 했응께 이삼 일 새라도 친정엘 한 번 댕게 오소.

무대: 어두워진다. 음악: 드뷔시 현악4중주 2악장

& 소쿨례 친정 동네 / 선애 집

선애가 버선을 맞추면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소쿨례가 들어선다. 들어서는 친구 소쿨례를 보고 선애가 반갑게 맞이한다.

선애

어따, 반가운 사람도 보겄다이!

소쿨례

응, 너 아직도 그냥 있냐?

선애

그냥 있긴 뭐가 그냥 있어.

소쿨례

시집은 안 가고.

선애

미친 소릴…

소쿨례

미친 소리는 무슨 미친 소리야. 그럼 죽도록 혼자 살라냐?

선애

넌 그새 재미가 어떠냐?

소쿨례

나야 홀로 사는 너보담은 낫지. 먹든 굶든 남자가 위해주니까.

선애

사이가 무척 좋다매?... 나 다 들었어.

소쿨례

응, 사람이 슬기로워서.

선애

선애는 야들야들한 눈매에 애틋한 빛을 나타내 보인다. 소쿨례도 선애가 혼자 사는 것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이때는 남편과의 약속 같은 것은 거의 잊고 있다.)

소쿨례

아야! 빨리 서방을 얻어 가. 혼자 고생하고 살믄 누가 알어준다든.

선애

글쎄… 어디가 마땅한 남자가 있어야제.

소쿨례

그렇든 저렇든 혼자야 적적해서 살겄냐?

선애

글쎄…

선애는 고구마를 가질러 나간다. 혼자 거처하는 선애방을 둘러보는 소쿨례. (사이) 선애가 고구마를 가지고 다시 들어온다.

선애

고구마가 모조리 잔 것밖에 안 남었다.

소쿨례

죽은 남편은 널 많이 사랑했었니?

선애

사랑했지. 밤이면 꼭꼭 묵을 것을 껴두었다가 놀고 난 뒤에는 꺼내 줬다. 그래 밤엔 뭘 묵을라면 그 사람이 떠올라야…

소쿨례

그보다도 몸이 있을라고 하면 더 안 보고 싶냐?

선애(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야도, 인잔 못할 말이 없구나.

소쿨례

말은 까놓고 말이지 뭐야.

선애(얼굴을 붉히면서)

아닌 게 아니라…

소쿨례

선애

근디 또 닷새만 있음 그것이 비칠 건데, 어떻게 하믄 좋을지 몰르겄다.

소쿨례(작정했다는 듯이)

그럼 우리 같이 살까?

선애

미친 소릴… 넌 인잔 못할 말이 없구나.

소쿨례(설득조로)

친구 새, 정의가 좋면 천하도 반분한다는디, 그것 좀 못할라드라고.

선애

그런 쓸디없는 말은 말고… 나, 적적한께 놀러나 좀 자주 온나.

소쿨례

늬나 우리 집에 좀 놀러온나. 대접할 것은 없어도.

선애

남자 있는 집에 뭣하러 가냐.

소쿨례

밤낮 놀러만 댕기고 집에가 잘 안 붙어 있어야.

선애

정말 요샌 날씨가 훈훈한디, 바람이라도 좀 쐴까.

소쿨례

오늘 길에 참 꽃도 많이 피었더라.

선애

가면 뭣 줄 테냐?

소쿨례

저녁에 닭 잡아주지.

선애

저녁까지 놀면 되니… 너의 남자가 있는디.

소쿨례

이샌 마슬에 가서 자고, 잘 안 온다. 가서 한 이틀 놀자구나. 산에도 올라가고.

선애

그럼 언제 가냐?

소쿨례

모레나 글피쯤.

선애

정말 닭 잡아줘야 한다.

두 사람은 어릴 적 같이 놀았던 시절을 생각한다. 둘이 모두 옛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무대: 어두워진다. 음악: 드뷔시 현악4중주 2악장이 계속 흐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