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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돌방구네 제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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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막

신부에게 찰고를 바친 돌방구네는 심사에 합격했다. 더욱 하늘같이 우러르는 신부로부터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외운다는 칭친까지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에 상방이 있으면 부활절 영세를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하루, 보름에 상식하는 남편의 상방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 천주교회 / 문 앞

여신도회장과 돌방구네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돌방구네

그럼 제사는 누구든지 못 지낼 것이요?

여신도회장

제사는 일 년에 한 번씩, 다 같이 교회에 모여서 지내면 돼요. 그렇게 모셔야 죽은 임자도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당께요.

돌방구네

정말 그러께라우?

여신도회장

천주교회에서 거짓말하는 법 봤소. 교우님도 공부는 됐으니 상방만 없애면 부활절 영세를 받을 수 있단게요.

돌방구네(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래라우!

돌방구네는 하룻밤 하룻날을 골똘히 궁리하였다. 영세를 안 받기도 딱하거니와 남편의 상방을 없애기는 더구나 딱하였다. 대상이 명년이니까 한 해만 상식을 하면 상방은 절로 걷어진다. 천주교도 예수교 모양 제사를 못 지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맞닥치고 보니 난처하다.

& 돌방구네 집 / 상방

돌방구네(혼잣말로)

여회장이 분명히 말했는디, 교회에서 일 년에 한 번 같이 제사를 지낸다고 했응께… 그나저나 내년이면 철상인디…
(사이)
(상방을 보면서 죽은 남편에게 이야기 걸듯이)자기가 살아 생전에 논마지기 밭뙤기만 붙여뒀어도 천주를 섬기진 않았을 것 아니요.
(사이)
자기가 참으쇼. 자석들하고 살아보자고 하는 일인께.

돌방구네는 백지로 덮은 위패를 비롯하여 남편의 신던 신, 곰방대, 요절, 상장, 만사, 행건, 상복을 모조리 뜯어가지고 뒤꼍으로 간다. 무대 뒤에서 불 태우는 소리가 난다.(음향)

돌방구네(소리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쇼. 다 살자고 하는 일인께.

돌방구네가 다시 무대로 나온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 돌방구네 집 / 안방

돌방구네가 머리에 흰 수건으로 잡아매고 누워 있다. 동네 아낙 둘이 위문차 방문해서 돌방구네를 걱정어린 표정으로 내려본다. 상방을 없애고 난 뒤부터 머리가 찌잉하고 당기는 것 같더니만 한속이 일고 열이 올랐다. 결국 자리보전을 하고 눕게 됐다. 큰아들을 시켜 한약 세 첩을 지어다 먹었지만 효험이 없었다. 다음다음 날은 양약 한 곽을 사다가 사흘을 복용했다. 아침나절만 열이 좀 내릴 뿐 효과가 없었다.

아낙1

언제부터 그러요예?

돌방구네(힘 없는 소리로)

예니레 돼요.

아낙2

오메, 얼굴 못쓰게 되었는 것!

아낙1

아니, 무슨 약이라도 좀 쓰제 그러시오?

돌방구네

첩약도 쓰고 양약도 묵었소.

아낙2

그래도 안 났소?

돌방구네

안 났구만이라우.

아낙1

그럼 어디 가서 점이나 한번 쳐보시오. 뭣 놓인 것 없능가.

아낙2

교를 믿는디 점은 무슨 점을 쳐. 병원에를 가야제.

돌방구네

대체…

아낙2

내일은 병원에나 좀 가보시오. 신도회장도 병이 나면 병원으로 가락 안 합디여.

돌방구네

병원에 가재도 돈이 있어야 가제라우.

아낙2

오늘 집에 나무 판 돈 몇 닢이 있은께 그놈 좀 돌려 쓰시오.

무대: 어두워진다.

& 병원 / 진찰실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가 돌방구네를 진찰을 한다. 의사는 체온기를 돌방구네 겨드랑이에 끼운다.

의사

왜 진작 오지 안 했소. 열이 많이 오르는데.

돌방구네

돈이 없어서 그랬어라우.

의사

그래도 빨리 와야지.

의사는 청진기를 귀에 걸고 돌방구네 가슴을 진단한다. 손가락으로 갈비뼈를 울려본다.

돌방구네

어째, 그냥 났겄소?

의사

쉽게 회복하겠소.

돌방구네

모진 병은 아니지라우?

의사

학질기니까 주사 맞고 약 먹으면 괜찮을 것이요.

의사는 처방전을 써서 간호부한테 준다. 간호부는 주사를 놓는다.

돌방구네(약을 주는 간호부를 향해)

이놈만 묵으면 그냥 낫으께라우.

간호부는 손을 씻는다.

간호부

낫어요. 괜찮아요.

간호부는 손 씻은 물을 버린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 돌방구네 집 / 안방

돌방구네는 잠을 자고 있다. 꿈 속에서 남편을 만났다.

돌방구네(꿈결에)

뭣이요오?(소리치면서 잠에서 깬다.)

돌방구네(윗몸을 일으키면서 혼잣말로)

영락없네. 어쩌면 그리 멀쩡할까… 그런디, 저 세상에서도 담배를 피운가… 담배 못 피운 지가 여드레째라고…
(사이)
오메메… (손을 꼽아 본다.) 상방 없앤 날수네… (사이) 오메메… 기와집이 잿더미가 됐다고 하더그만… (사이) 오메메…

돌방구네는 오들오들 떤다.(학질기에 꿈에서 남편 이야기가 겹쳐 떨린다.) 약 먹고 잠시 잠이 들었다가 꿈 속에서 남편을 보고 난 뒤 다시 아파온 것이다. 땀이 송알송알 내돋고 두 어깨가 빠개지는 것 같다. 돌방구네는 병원에 지어온 가루약 두 봉지를 한 꺼번에 입 안에 털고 물을 마신다. 그러나 효험이 없다.

무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돌방구네(혼잣말로)

오늘은 주사를 의사가 나주드만… (사이) 걱정 말라고 하드만… (사이) 망할 놈의 의사, 아구구… (머리를 짚으며 눕는다.)
(사이)
영세가 닷새 밖에 안 남었는디… 오메메 뽀개지네…(손으로 아픈 머리를 집는다.)

& 돌방구네 집 / 다음 날

수선스럽다. 두 딸(둘째와 셋째)이 잠 들어 있는 돌방구네를 둘러서 내려 보고 있다. 돌방구네는 감은 눈을 뜬다. 딸들이 일제히 돌방구네를 향한다.

딸들

오메, 엄니!

둘째 딸

엄니, 정신 채리시오. 어디가 언제부터 편찮아서 이러시오.

셋째 딸

진작 좀 기별하지 않고… 이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짤꼬잉!

부엌에서 큰 딸이 방으로 들어온다.

큰 딸(돌방구네 손을 잡으면서)

오메메, 엄니! 몸이 어짜요.

아들 둘도 옆에서 누님들은 번갈아 보고 있다. 셋째 아들은 역시 공을 굴리고 있다.

돌방구네

왔냐들.

큰 딸

진작 좀 알리제 그래겠소!

돌방구네

이렇게 정신을 놓을 줄 몰랐다.

큰 딸

약도 쓰고 병원에도 가셨다름서라우?

돌방구네

그랬어야.

큰 딸

그래도 효험이 없었구만이라우이?

돌방구네

다 소용없더라.

큰 딸

그럼 엄니, 우리 가서 점이나 한번 쳐보고 올라우?

돌방구네

교를 믿는디 점은 무슨 점을 쳐야. 그만둬라.

둘째 딸

그래도 혹 안다우. 우리 얼른 좀 갔다 올라우.
(사이)
언니!(큰 딸에게) 우리 둘이 점치고 오께, 언니가 엄니 좀 보고 있으소~

큰 딸

그래, 안창리에 가면 용한 점쟁이가 있다더라.

셋째 딸

응, 알았어. 우리가 알아서 보고 오께. 엄니 잘 지키소.

두 동생이 점을 치러 간 사이에 부엌에서 내온 미음을 돌방구네 입에 흘려 넣는다.

큰 딸

잡수신 것이 오죽했으면 얼굴이 이래.(얼굴을 쓰다듬으며)

무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점을 치고 돌아온 둘째가 들어온다.

둘째 딸(방에 들어서자마자)

(급한 소리로)엄니, 아부지 상방을 없애겠소?

돌방구네

오냐, 영세를 받을라고 한 열흘 전에 뜯었다.

둘째 딸

어따! 어쩔라고 상방을 다 없앴오 예? 점을 친께 그것이 곧 드러납디다. 상방을 새로 지어놓지 않으면 이달을 넘기시기가 어렵겄다고 합디다.

큰 딸

어따, 상방을 없애겠네이! 겁결에 들오니라고 나는 그것도 짐작꼴로 봤네.

돌방구네는 이틀 전 꿈에 나타난 남편 생각에 뜨악하다. 곰방대와 집이 잿더미가 되어버렷다고 두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졸라매려 드는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돌방구네는 고개를 돌려서 눈물을 참는다. 그리고 머리를 흔든다. 그 사이 셋째 딸도 급하게 들어온다. 두 딸은 각각 따로 점을 치러 갔다. 두 점쟁이 말을 종합하자는 취지였다.

셋째 딸

오매매, 엄니!
(사이)
어따 엄니, 아부지 상방을 불살라겠소?

큰 딸

너도 뭐라디야?

셋째 딸

아, 천주교에 다니신다고 아부지 상방을 불살라겠담서라우. 언제 어디서 불살랐다는 것까지 소상하게 말해라우.

큰 딸

저런!

셋째 딸

그래 당장 상방을 새로 꾸미고, 비손을 하지 않으면 내일을 넘기기가 어렵겠다고 합디다. 그래 바쁘다는 사람(무당)을 졸라서 지금 아주 같이 데리고 왔오 예.

마을 무당이 커다란 징을 머리에 이고 들어온다. 그 징 안에는 쌀 담을 전대와 굿에 쓸 고깔이 들어 있다. 돌방구네는 눈을 감고 누워 있다. 아무 말도 듣기 싫다는 듯 모로 돌아눕는다. 큰 딸만 돌방구네와 남고 두 딸과 무당은 상방을 차리려고 밖으로 나간다. 밖에서는 상방을 새로 짓는 소리가 나고 두 딸이 음식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음향) 방에서는 돌방구네는 모로 누워있고 큰 딸은 옆에서 돌방구네 어깨를 주므르고 있다.

무당(소리만)

징징징징(징소리 음향)
아본축귀백마대장군(我本逐鬼白馬大將軍)으로 익수천명(益受天命)하여 옥황상제전거래시(玉皇上帝前去來時)에 패룡천검(佩龍泉劒)하야 자산즉산붕(刺山則山崩)하고…
(사이)
거래잡귀잡색신(去來雜鬼雜色神)은 속거천리(速去千里) 원거만리(遠去萬里) 암암급급여울령사파가(唵唵喼喼如律令娑婆呵)

오방신장을 부르는 갖가지 경문이 되풀이된다. 무대 어두워진다.

& 돌방구네 집 / 마당

무당은 천지팔양경을 왼다.

무당

징징징징(징소리 음향)
불설천지팔양신주경자(佛說天地八陽神呪經者) 부일월성진숙(夫日月星辰宿) 명명시어음약사절(明明示於陰陽四節)…

징소리 점점 멀어지면서 무대가 어두워진다. 다시 밝아질 때는 다음날 새벽이다.무당은 징을 거두고 쌀을 전대에 담는다.

& 천주교회 / 입구

돌방구네는 무당이 살풀이를 한 후 한결 열이 내리고 정신이 돌아왔다. 삭신도 풀리고 입의 침도 돌았다. 이삼일 후에는 거동하기 시작했다. 이틀이 지난 뒤에는 ‘교리문답’을 옆구리에 끼고 나선 것이다. 남편 상방 때문에 완전한 영세교우는 못 될망정 우선 절반의 배급이라도 타서 자식들과 굶어 죽지 않고 지내려면 천주교회에 열심히 다녀야 한다. 돌방구네가 옆구리에 ‘교리문답’을 끼고 천주교회로 가는 길에 부활절 새벽 종소리가 울린다.

종소리(소리만)
땡~땡~

무대: 어두워지면서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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