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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돌방구네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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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방구네

원작: 오유권 소설 ‘돌방구네’(1959)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돌방구네
세 딸
세 아들
아낙들
여신도회장
의사
간호부
무당

대화 중에 나오는 인물

죽은 남편

주요 등장인물 성격

돌방구네: 천성이 게으르나 많이 싸대는 읍내 40대 여인. 신앙보다는 천주교회에서 배급해주는 식량이나 물건을 받기 위해 열심히 교리 공부를 한다. 말 퍼뜨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틈나는 대로 주위 아낙들에게 동네 소문을 주워 나르기도 하면서 자신의 교리 공부에 대해 자랑한다.

셋째 아들: 아들 셋 중에서 엄마 돌방구네 교리공부를 도와주는 착한 아들. 국민학교 3학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 ‘교리문답’을 먼저 읽어주면 돌방구네가 따라 암송한다.

딸들: 모두 시집을 가서 어머니 돌방구네를 극진히 모심. 돌방구네가 앓아 누웠을때 셋째 딸은 무당을 데려온다.

1950년 대

장소

영산포와 나주

# 제1막

게으른 여편네가 있다. 그녀는 속곳 가랑이 하나 깨끗이 빨아 입는 법이 없다. 끼니 끓일 나무가 없어도 나무 걱정도 없다. 장마통에 담벼락이 무너져도 그걸 수리할 생각도 없다. 그저 어린 자식들이 지게 품을 팔고 나무를 해다 주면 그것을 바라고 산다. 그녀를 동네 사람들은 돌방구네라 부른다. 그녀는 게으르지만 말을 물어 나르는데는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여기 말 저기다 옮기고, 저기 말 여기다 퍼뜨렸다. 마을 사람들 살림 속이나 어떤 변이 생겼다는 것은 거의 돌방구네를 통해 퍼졌다. 돌방구네는 세 딸과 세 아들이 있다. 딸 셋은 효성이 극진하다. 명절마다 성안의 장을 봐서 돌방구네에 들여주고 간다. 사내애들은 딸들과 달리 게으르고 놀기를 즐겼다. 물론 스물이 안된 미성년자이다. 아들 셋은 어미 돌방구네를 똑 닮은 것이다.

& 마을 회관

동네 아낙들과 돌방구네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돌방구네는 마을의 교우회 회장이다. 천주교를 열심히 다니는 것은 교회에서 무엇인가를 자주 나눠주기 때문이다. 돌방구네가 돌아다니기를 즐기고 입심이 세기 때문에 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돌방구네

천주교를 믿으면 세상의 괴로움을 잊고, 죽어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긴당께.

아낙 둘이 열심히 듣고 있다.

아낙1

그런당가.

돌방구네

예수가 높은 디, 천주교는 예수보다 더 높은 예수 엄니가 있어. 마리아 성모를 받들기 땜에 예수만 믿는 교회당보다 높당께.

아낙2

(고개를 끄덕이며) 성모 마리아…(되낸다)

돌방구네

교회당보다 더 조용하당께. (사이) 깨끗하기도 더 하고… 그리고 신사들이 더 많이 댕기네.

아낙들(고개를 끄덕인다.)

돌방구네(잘난 척을 하면서)

그래서 신부님은 깨끗하게 살라고 장가도 안 든당께. (사이)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여.(말을 돌리려고 밑자락을 깐다.)

아낙1

또 뭐가 있당가.

돌방구네

한 달에 강냉이가리 타 묵는 것만 해도 돈 천 환은 되네. (사이, 소리를 죽여서) 거기다 밀가리 나오겄다. 옷가지 타겄다…
(사이)
그렇지만 그런 것을 바라고 댕기면 못쓴당께. 이녁 맘속으로 진실하게 믿어야제.(스스로 만족한 듯 웃음을 짓는다.)

아낙3

게으른 예펜네야, 자네가 진심으로 믿긴 뭘 진심으로 믿어. 남의 일 하러 댕기기 싫고. 배고픈 게 그러제.

아낙4

남 가르칠라 말고, 죽은 남편 상방이나 깨끗이 좀 손봐놓소. 상방 꼬라지를 보면…

아낙들 중에는 돌방구네 얘기에 솔깃해서 귀를 기울이는 이들도 있고, 아낙3이나 아낙4처럼 돌방구네가 콩으로 메주를 쓴다해도 믿지 않는 이들도 있다.

& 돌방구네 집 / 저녁

개다리 밥상에는 희멀건 강냉이 죽을 먹고 난 빈 그릇과 싱건지 반찬 그릇이 있다. 돌방구네는 밥 먹고 빈둥거리는 자식들을 닥달한다.

돌방구네

아, 이 썩을 놈들아. 오늘같이 따뜻한 날, 무슨 지랄을 하고 놀러만 댕기냐, 응?

큰놈과 둘째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나갈 궁리를 한다.

돌방구네

가 부엌에 좀 가봐라. 나무 하나가 있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니 애비 상방 좀 손봐놓으라 해도… (사이) 상복이나 만사가 비에 젖어서 쓰것디야. 내년에 대상인디 네놈들이 상방 한번이나 깨끗이 닦어봤냐.

큰놈과 둘째놈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어린 셋째만 웃목에서 못 들은 척 공을 굴리고 있다.

돌방구네(나가는 아들들 들으라고 더 큰 소리로)

내가 천주교회라도 안 댕기면 벌써 굶어 죽었을 것이다. (더 크게) 굶어 죽어! 에이 오살 놈들.
(사이)
시상에 복도, 복도 나같이 없는 년은 없을 것이다.

돌방구네는 웃목에서 노는 막내놈을 힐끗 본다.

돌방구네(막내를 향해)

이놈아 인나서 ‘교리문답’ 가져오니라.

막내는 못 들은 척하고 공만 굴리고 있다.

돌방구네

냉큼 가져와야, 이놈아!

막내는 문갑에서 교리문답 책을 가지고 온다.

돌방구네

대사 다음이 뭣이냐? 거기부터 읽어봐라.

셋째 아들

성체여!

돌방구네

그래, 어서 읽어봐.

셋째 아들이 책을 보고 읽고 돌방구네는 따라 소리낸다. 돌방구네는 글자를 몰랐다. 집안에 글자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녀석은 국민학교 3학년에 다니는 셋째 아들 밖에 없다.

셋째 아들

성체는 무엇이뇨?

돌방구네

성체는 무엇이뇨?

셋째 아들

면주 현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니라.

돌방구네

면주 현상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니라.

셋째 아들

성체성사는 무엇이뇨?

돌방구네

성체성사는 무엇이뇨?

셋째 아들

칠성사 중에 제일 큰 성사요. 천주교회의 제사요, 또한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니라.

돌방구네

칠성사 중에 제일 큰 성사요. (사이) 다음이 뭣이드라…

셋째 아들(다시 읽는다)

천주교회의 제사요, 또한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니라.

돌방구네

천주교회의 제사요, 또한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니라.

무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셋째 아들은 웃목에서 뻗어 자고 돌방구네는 눈을 반쯤 감고 성모송을 외고 있다.

돌방구네

전능하신 천주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상생에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돌방구네는 성모송을 마치고 십자성호를 긋는다.

& 성당 / 밖

미사를 끝내고 성당 문을 나서는 교우들이 끼리끼리 얘기를 나눈다. 그 가운데 돌방구네도 있다. 여신도회장이 문에서 나가는 교우들에게 인사하다.

여신도회장(미사를 끝내고 나가는 교우들 향해)

이달 배급이 나왔는데 틈나는 대로 타 가세요들.

돌방구네

알았구만이라우.

여신도회장(돌방구네를 향해)

이번 부활절에 영세 주는 것을 알죠?(다정한 눈초리로)

돌방구네

아먼요. 이번에는 통과할라우.

돌방구네는 영세를 받은 교우들은 배급 강냉이 가루가 두 말이다. 영세를 아직 못 받은 돌방구네는 한 말을 받는다. 돌방구네는 어떻게든 이번 영세는 통과하리라 마음을 다짐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돌방구네 집 / 저녁

셋째 아들은 교리문답 책을 들고 있고 돌방구네는 눈을 굴리면서 열심히 교리문답을 따라 외운다.

셋째 아들

종부는 무엇이뇨?

돌방구네

종부는 무엇이뇨?

셋째 아들

명오 열린 교우를 병으로 인하여 죽을 위험 있을 때에 돕는 성사니라.

돌방구네

명오 열린 교우를 병으로 인하여 (사이) 죽 죽을 위험 있을 때에 돕는 성사니라.

셋째 아들

부부 지킬 의무는 무엇이뇨?

돌방구네

부부 지킬 의무는 무엇이뇨?

셋째 아들

서로 사랑하여 동거하고 화목함이요, 서로 신의를 지킴이니라.

돌방구네

서로 사랑하여 동거하고 화목함이요, 서로 신의를 지킴이니라.

셋째 아들

성사는 몇 가지 있느뇨?

돌방구네

성사… 몇 가지 인느뇨?

셋째 아들

일곱 가지 있는니, 성세와 견진과 고해와 성체와 종부와 신품과 혼배니라.

돌방구네

일곱 가지 있느니, 성세… 견진… 고해…(사이) 다음이 뭐드라.

셋째 아들

성체…

돌방구네

그렇지… (사이) 성체… 종부… 신품… 혼배니라.

셋째 아들

그럼 엄니가 인자, 십이단 한번 외어봐.

돌방구네

(만족한 표정으로) 십이단 뭣을 욀꺼나?

셋째 아들

망덕송

돌망구네

망덕송…
(사이)
우리 천주여 네 인자하심과 오 주 예수의 무한하신 공로를 인하여, 네 허락하심과 같이 이 세상에서 내게 은총을 베푸시고, 후세에는 상생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더듬 거리며 왼다.)
(사이, 셋째를 향해) 어째, 맞지야?

셋째 아들

맞어 그럼 또 소회죄경.

무대: 어두워진다.

무대가 어두워진 상태에서 돌방구네가 이웃들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자랑하는 말이 들린다.

돌방구네

워이마시 워이. 나는 인자 ‘교리문답’을 다 외우네… 외어.

무대: 어두워진다

음악: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 제2막

신부에게 찰고를 바친 돌방구네는 심사에 합격했다. 게다가 하늘같이 우러르는 신부로부터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외운다는 칭친까지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에 상방이 있으면 부활절 영세를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하루, 보름에 상식하는 남편의 상방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 천주교회 / 문 앞

여신도회장과 돌방구네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돌방구네

그럼 제사는 누구든지 못 지낼 것이요잉?

여신도회장

제사는 일 년에 한 번씩, 다 같이 교회에 모여서 지내면 돼요. 그렇게 모셔야 죽은 임자도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당께요.

돌방구네

정말 그러께라우?

여신도회장

천주교회에서 거짓말하는 법 봤소. 교우님도 공부는 됐으니 상방만 없애면 부활절 영세를 받을 수 있단게요.

돌방구네(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래라우!

돌방구네는 하룻밤 하룻날을 골똘히 궁리하였다. 영세를 안 받기도 딱하거니와 남편의 상방을 없애기는 더구나 딱하였다. 대상이 명년이니까 한 해만 상식을 하면 상방은 절로 걷어진다. 천주교도 예수교 모양 제사를 못 지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맞닥치고 보니 난처하다.

& 돌방구네 집 / 상방

돌방구네(혼잣말로)

여회장이 분명히 말했는디, 교회에서 일 년에 한 번 같이 제사를 지낸다고 했응께… 그나저나 내년이면 철상인디…(망설이며 왔다갔다 하면서)
(사이)
(상방을 보면서 죽은 남편에게 이야기 걸듯이)자기가 살아 생전에 논마지기 밭뙤기만 붙여뒀어도 천주를 섬기진 않았을 것 아니요.
(사이)
자기가 참으쇼. 자석들하고 살아보자고 하는 일인께.

돌방구네는 백지로 덮은 위패를 비롯하여 남편의 신던 신, 곰방대, 요절, 상장, 만사, 행건, 상복을 모조리 뜯어가지고 뒤꼍으로 간다. 무대 뒤에서 불 태우는 소리가 난다.(음향)

돌방구네(소리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쇼. 다 자석들 살리자고 하는 일인께.

돌방구네가 다시 무대로 나온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 돌방구네 집 / 안방

돌방구네가 머리에 흰 수건으로 잡아매고 누워 있다. 동네 아낙 둘(아낙1, 아낙2)이 위문차 방문해서 돌방구네를 걱정어린 표정으로 내려본다. 상방을 없애고 난 뒤부터 머리가 찌잉하고 당기는 것 같더니만 한속이 일고 열이 올랐다. 결국 자리보전을 하고 눕게 됐다. 큰아들을 시켜 한약 세 첩을 지어다 먹었지만 효험이 없었다. 다음다음 날은 양약 한 곽을 사다가 사흘을 복용했다. 아침나절만 열이 좀 내릴 뿐 효과가 없었다.

아낙1

언제부터 그러요예?

돌방구네(힘 없는 소리로)

예니레 돼요.

아낙2

오메, 얼굴 못쓰게 되었는 것!

아낙1

아니, 무슨 약이라도 좀 쓰제 그러시오?

돌방구네

첩약도 쓰고 양약도 묵었소.

아낙2

그래도 안 났소?

돌방구네

안 났구만이라우.

아낙1

그럼 어디 가서 점이나 한번 쳐보시오. 뭣 놓인 것 없능가.

아낙2

교를 믿는디 점은 무슨 점을 쳐. 병원에를 가야제.

돌방구네

대체…

아낙2

내일은 병원에나 좀 가보시오. 신도회장도 병이 나면 병원으로 가락 안 합디여.

돌방구네

병원에 가재도 돈이 있어야 가제라우.

아낙2

오늘 집에 나무 판 돈 몇 닢이 있은께 그놈 좀 돌려 쓰시오.

무대: 어두워진다.

& 병원 / 진찰실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가 돌방구네를 진찰을 한다. 의사는 체온기를 돌방구네 겨드랑이에 끼운다.

의사

왜 진작 오지 안 했소. 열이 많이 오르는데.

돌방구네

돈이 없어서 그랬어라우.

의사

그래도 빨리 와야지.

의사는 청진기를 귀에 걸고 돌방구네 가슴을 진단한다. 손가락으로 갈비뼈를 울려본다.

돌방구네

어째, 그냥 났겄소?

의사

쉽게 회복하겠소.

돌방구네

모진 병은 아니지라우?

의사

학질기니까 주사 맞고 약 먹으면 괜찮을 것이요.

의사는 처방전을 써서 간호부한테 준다. 간호부는 주사를 놓는다.

돌방구네(약을 주는 간호부를 향해)

이놈만 묵으면 그냥 낫으께라우.

간호부는 손을 씻는다.

간호부

낫어요. 괜찮아요.

간호부는 손 씻은 물을 버린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 돌방구네 집 / 안방

돌방구네는 잠을 자고 있다. 꿈 속에서 남편을 만났다.

돌방구네(꿈결에)

뭣이요오?(소리치면서 잠에서 깬다.)

돌방구네(윗몸을 일으키면서 혼잣말로)

영락없네. 어쩌면 그리 멀쩡할까… 그런디, 저 세상에서도 담배를 피운가… 담배 못 피운 지가 여드레째라고…
(사이)
오메메… (손을 꼽아 본다.) 상방 없앤 날수네… (사이) 오메메… 기와집이 잿더미가 됐다고 하더그만… (사이) 오메메…

돌방구네는 오들오들 떤다.(학질기에 꿈에서 남편 이야기가 겹쳐 더 떨린다.) 약 먹고 잠시 잠이 들었다가 꿈 속에서 남편을 보고 난 뒤 다시 아파온 것이다. 땀이 송알송알 내돋고 두 어깨가 빠개지는 것 같다. 돌방구네는 병원에 지어온 가루약 두 봉지를 한 꺼번에 입 안에 털고 물을 마신다. 그러나 효험이 없다.

무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돌방구네(혼잣말로)

오늘은 주사를 의사가 나주드만… (사이) 걱정 말라고 하드만은… (사이) 망할 놈의 의사, 아구구… (머리를 짚으며 눕는다.)
(사이)
영세가 닷새 밖에 안 남었는디… 오메메 뽀개지네…(손으로 아픈 머리를 집는다.)

& 돌방구네 집 / 다음 날

수선스럽다. 두 딸(둘째와 셋째)이 혼절해 있는 돌방구네를 둘러서 내려 보고 있다. 큰 아들과 둘째는 누님들을 보고 있다. 셋째는 공을 굴리고 있다. 돌방구네는 감은 눈을 뜬다. 딸들이 일제히 돌방구네를 향한다.

둘째 딸과 셋째 딸

오메, 엄니!

둘째 딸

엄니, 정신 채리시오. 어디가 언제부터 편찮아서 이러시오.

셋째 딸

진작 좀 기별하지 않고… 이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짤꼬잉!

부엌에서 큰 딸이 방으로 들어온다.

큰 딸(돌방구네 손을 잡으면서)

오메메, 엄니! 몸이 어짜요.

아들 둘도 옆에서 누님들은 번갈아 보고 있다. 셋째 아들은 역시 공을 굴리고 있다.

돌방구네(힘 없이)

왔냐들.

큰 딸

진작 좀 알리제 그래겠소!

돌방구네

이렇게 정신을 놓을 줄 몰랐다.

큰 딸

약도 쓰고 병원에도 가셨다름서라우?

돌방구네

그랬어야.

큰 딸

그래도 효험이 없었구만이라우이?

돌방구네

다 소용없더라.

큰 딸

그럼 엄니, 우리 가서 점이나 한번 쳐보고 올라우?

돌방구네

교를 믿는디 점은 무슨 점을 쳐야. 그만둬라.

둘째 딸

그래도 혹 안다우. 우리 얼른 좀 갔다 올라우.
(사이)
언니!(큰 딸에게) 우리 둘이 점치고 오께, 언니가 엄니 좀 보고 있으소~

큰 딸

그래, 안창리에 가면 용한 점쟁이가 있다더라.

셋째 딸

응, 알았어. 우리가 알아서 보고 오께. 엄니 잘 지키소.

두 동생이 점을 치러 간 사이에 부엌에서 내온 미음을 돌방구네 입에 흘려 넣는다.

큰 딸

잡수신 것이 오죽했으면 얼굴이 이래.(얼굴을 쓰다듬으며)

무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점을 치고 돌아온 둘째가 들어온다.

둘째 딸(방에 들어서자마자)

(급한 소리로)엄니, 아부지 상방을 없애겠소?

돌방구네

오냐, 영세를 받을라고 한 열흘 전에 뜯었다.

둘째 딸

어따! 어쩔라고 상방을 다 없앴오 예? 점을 친께 그것이 곧 드러납디다. 상방을 새로 지어놓지 않으면 이달을 넘기시기가 어렵겄다고 합디다.

큰 딸

어따, 상방을 없애겠네이! 겁결에 들오니라고 나는 그것도 짐작꼴로 봤네.

돌방구네는 이틀 전 꿈에 나타난 남편 생각에 뜨악하다. 곰방대와 집이 잿더미가 되어버렷다고 두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졸라매려 드는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돌방구네는 고개를 돌려서 눈물을 참는다. 그리고 머리를 흔든다. 그 사이 셋째 딸도 급하게 들어온다. 두 딸은 각각 따로 점을 치러 갔었다. 두 점쟁이 말을 종합하자는 취지였다.

셋째 딸

오매매, 엄니!
(사이)
어따 엄니, 아부지 상방을 불살라겠소?

큰 딸

너도 뭐라디야?

셋째 딸

아, 천주교에 다니신다고 아부지 상방을 불살라겠담서라우. 언제 어디서 불살랐다는 것까지 소상하게 말해라우.

큰 딸

저런!

셋째 딸

그래 당장 상방을 새로 꾸미고, 비손을 하지 않으면 내일을 넘기기가 어렵겠다고 합디다. 그래 바쁘다는 사람(무당)을 졸라서 지금 아주 같이 데리고 왔오 예.

마을 무당이 커다란 징을 머리에 이고 들어온다. 그 징 안에는 쌀 담을 전대와 굿에 쓸 고깔이 들어 있다. 돌방구네는 눈을 감고 누워 있다. 아무 말도 듣기 싫다는 듯 모로 돌아눕는다. 큰 딸만 돌방구네와 남고 두 딸과 무당은 상방을 차리려고 밖으로 나간다. 밖에서는 상방을 새로 짓는 소리가 나고 두 딸이 음식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음향) 방에서는 돌방구네는 모로 누워있고 큰 딸은 옆에서 돌방구네 어깨를 주므르고 있다.

무당(소리만)

징징징징(징소리 음향)
아본축귀백마대장군(我本逐鬼白馬大將軍)으로 익수천명(益受天命)하여 옥황상제전거래시(玉皇上帝前去來時)에 패룡천검(佩龍泉劒)하야 자산즉산붕(刺山則山崩)하고…
(사이)
거래잡귀잡색신(去來雜鬼雜色神)은 속거천리(速去千里) 원거만리(遠去萬里) 암암급급여울령사파가(唵唵喼喼如律令娑婆呵)

오방신장을 부르는 갖가지 경문이 되풀이된다. 무대 어두워진다.

& 돌방구네 집 / 마당

무당은 천지팔양경을 왼다.

무당

징징징징(징소리 음향)
불설천지팔양신주경자(佛說天地八陽神呪經者) 부일월성진숙(夫日月星辰宿) 명명시어음약사절(明明示於陰陽四節)…

징소리 점점 멀어지면서 무대가 어두워진다. 다시 밝아질 때는 다음날 새벽이다.무당은 징을 거두고 쌀을 전대에 담는다.

& 천주교회 / 입구

돌방구네는 무당이 살풀이를 한 후 한결 열이 내리고 정신이 돌아왔다. 삭신도 풀리고 입의 침도 돌았다. 이삼일 후에는 거동하기 시작했다. 이틀이 지난 뒤에는 ‘교리문답’을 옆구리에 끼고 나선 것이다. 남편 상방 때문에 완전한 영세교우는 못 될망정 우선 절반의 배급이라도 타서 자식들과 굶어 죽지 않고 지내려면 천주교회에 열심히 다녀야 한다. 돌방구네가 옆구리에 ‘교리문답’을 끼고 천주교회로 가는 길에 부활절 새벽 종소리가 울린다.

종소리(소리만)
땡~땡~

무대: 어두워지면서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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