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족(漂流族)
원작: 오유권 소설 황량한 촌락
옴니버스 3: 표류족(漂流族)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영감
아들
며느리
손주들
경찰들
밤사람들
주요 등장인물 성격
영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없이 밤사람과 경찰의 비위를 맞춘다. 다행히 죽음은 면하고 살아남아 손주들을 돌본다. 끌려간 아들과 며느리에게 조상 대대로 300년 살아온 고향을 떠날 것을 선언한다.
아들과 며느리: 아들은 경찰에, 며느리는 산사람들에게 끌려간다. 집에 돌아온 후 고향을 뜨자는 노인의 의견에 동의한다.
때
1951년 경(전쟁 중)
장소
앵두나무집
# 막이 열림
밤사람 두 명이 앵두나무집 노인을 닥달한다. 아들을 어디에 숨겼냐는 것이다.
& 앵두나무집 / 밤
영감은 밤사람들에게 사정한다. 어린 손주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두손으로 빌고 있다.
영감
용서해주시요. 용서해주시요. 천한 농민이 뭣을 알겠습니까. 그저 순경들이 와서 밥을 지어 달라고 해서 목숨 하나 살라고 지어줬습니다.
밤사람1
그럼 아들은 어따 감췄어? 아들 내놔.
영감
예, 자식놈은 진작 잡혀갔습니다. 동무양반들께 쌀 져다주고, 옷 갖다줬다고 순경들이 와서 진작 잡어갔습니다.
밤사람1
그럼 광에 있는 쌀가마니 지고 나와.
영감
어따어따, 동무 양반. 이리 뺏기고 저리 뺏기고 남은 것이라곤 그저 그것뿐입니다. 어린 손자들하고 묵고살랍니다.
밤사람2
그럼 집의 며누리는 어디 갔어?
영감
동무 양반들이 그저께 밤에 쌀을 이우고 가더니 아직 안 보내줬습니다. 어린 젖먹이놈을 어떻게 살릴지 그저 난감합니다. 가시거든 우리 자부나 좀 돌려주시요. 예, 그저 빌고 빌고 비나이다.
밤사람1
그럼 어서 쌀가마니 지고 나와.
밤사람들은 투덕투덕 방을 나간다. 밤사람1은 대문으로 나가고 또 한 사람은 문 앞에서 노인을 기다린다. 노인은 마루에서 망서리고 있다.
영감
어따어따, 용서해주시요. 어린 손자들 하고 안 굶어죽고 살랍니다. 미천하고 멍청한 농민을 용서해주시요.
밤사람1
빨리 안 나와? 쏜다.
밤사람이 노리쇠를 잡아 당기며(효과음) 눈을 부릅뜬다. 옆의 손자들이 와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영감(손주를 향해)
우지 말고 있거라.
밤사람1
얼른 안 나와.
영감
예, 그저 목숨 하나만 살려주시요.
영감은 마침내 쌀가마니를 끌고 문쪽으로 향한다.
밤사람1
꾸물거리지 말고 어저 져.
영감은 쌀가마니를 어깨에 들쳐 맨다.
손주들(울면서)
하내(할아버지) 하내 하내하내.
손주들이 질겁을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어두운 밖으로 몰려 나온다.
영감
우지들 마라. 갔다 오마.
손주들
하내하내 하내하내. 어따어따 우리 하내.
애들은 아버지, 어머니가 붙들려 가던 때처럼 땅바닥에 뒹굴며 발을 버둥거린다.
영감
우지들 마라.(소리가 죽어 나옴)
앵두나무집 영감의 말이 소리가 돼 나오는데 목이 막혀 뒷끝이 흐려진다.
& 앵두나무집 / 낮
앵두나무집 영감은 새벽에 무사히 놓여 나왔다. 마루에 있는 영감을 순경 셋이 닥달한다.
영감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미련한 백성이 뭣을 알겄습니까? 그저 산사람들이 와서 그 쌀을 안 지고 가면 쏴 죽인다고 해서 천한 목숨 하나 살라고 져다줬습니다.
순경1
그럼 아들은 어디 갔어? 아들 찾아내.
영감
예, 자식놈은 진작 붙잡혀 갔습니다. 산사람들께 쌀 져다주고 옷 갖다줬다고 지서에서 진작 붙잡어 갔습니다.
순경2
이 집이 장춘수 집인가?
영감
예, 장이라고 합네다. 이 어린 손주놈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그저 난감합니다. 가시거든 우리 자석놈 좀 석방해주시요. 예 그저 빌고 빌고 비나니다.
순경3
그럼 집의 자부는 어디 갔어?
영감
예, 산사람들이 이전 날 밤에 쌀을 이우고 가더니 아직 안 보내줬습니다. 어린 젖먹이놈을 살리기가 더욱 난감합니다. 가시거든 부디 내 자석 좀 석방해주시요.
순경2
이 빨갱이 놈의 새끼들, 나와 이리.
순경들이 투덕투덕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두 사람은 뒤뜰로 돌아가고 한 사람은 노인이 마당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영감
어따어따, 용서하십시오. 목숨 하나 살라고 이 늙은 것이 그 머언 골짝까지 져다주고 왔습니다. 나까지 마저 가면 이 어린 것들이 어찌되겄습니까? 그저 멍청하고 우직한 백성을 용서하십시오.
순경2
아들은 쌀 져다주고 옷 갖다주고. 또 며누리는 쌀 여다주고, 거기다 노인까지 쌀 갖다주고… 나와 이리. 이 빨갱이놈의 새끼들.
개머리판으로 쾅하고 마루를 굴렀다. 옆의 손자들이 또 와아 울음을 터뜨린다.
영감
그래서 우직하고 천한 농민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저 목숨 하나만 살려주시요.
순경3
빨리 나오지 못해.
영감
예, 그저 목숨 하나만 살려주시요.
앵두나무집 노인은 또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순경2
이 빨갱이 새끼야, 빨리 가.
손주들
하내하내 하내하내.
손자애들이 질겁을 하고 마당으로 몰려나온다.
영감
우지 말고들 있거라.
손주들
어따어따 우리 하내. 가지 마러 가지 마러.
애들은 밤사람에게 붙들려 가던 때 모양 또 땅바닥에 뒹굴며 발을 버둥거린다.
영감
우지들 마라.(소리가 죽어 나옴)
앵두나무집 노인의 목메인 말이 소리가 돼 나오다가 끝이 흐려진다. 노인은 이튿날 무사히 놓여 나왔다.
& 앵두나무집 / 다음 날
아들
아버지, 왔습네다.
영감
어따어따, 애비 오냐, 어서 오너라.
아들은 뜰 아래서 허리를 구부리고 정중히 문안부터 드린다.
영감(인사를 받으며)
오냐, 어서 오니라. 우린 잘 있었다만 얼마나 고생을 했냐?
아들
아부지 아부지.
손자들이 울 밖으로 몰려 나온다.
아들
불효는 무사했습니다만, 그새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영감
어서 앉거라. 나는 잘 있었다.
부자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 고인다. 그뿐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가서 빈 외양간을 쓸쓸히 기웃거린다. 아버지는 뒤꼍으로 가 땅광 속에서 좁쌀 한 바가지를 떠 온다.
무대 어두어졌다 다시 밝아진다.
며느리
아버님, 왔소이다.
영감
어따어따, 어미 오냐. 어서 오너라.
며느리는 뜰아래 꿇고 앉아 정중히 문안부터 올린다.
영감(인사를 받으며)
오냐, 어서 오너라. 얼마나 욕을 보고 왔냐?
손주들
엄니엄니!
손자들이 또 울 밖으로 몰려나온다.
며느리(영감을 향해)
불효부는 걱정 없었소이다만 어린아이들하고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영감
어서 앉거라. 어서 앉어서 젖부터 물려라.
그런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눈물이 철철 흘러내린다. 그뿐 며느리는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시아버지는 아들이 방아를 찧고 있는 절구로 가서 좁쌀을 우겨 넣는다.
무대 어두워진다.
& 앵두나무집 / 석양
영감(아들 며느리를 향해)
가자. 아무 데로라도 가자. 이보다 덜 괴롭고 더 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아무 데라도 가자.
아들
아버지, 어차피 그런 것이 낫겠습니다. 해가 저물면 또들 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젠 순경들이 와도 밥 지어줄 쌀 한 톨도 없습니다.
며느리
불효부도 그렇게 생각되나이다.
영감
가자 그럼. 어서들 짐을 챙겨들고 가자.
이윽고 앵두나무 집 일족은 등이며 머리에 올망졸망한 보따리를 지고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선다. 조상 전래의 옥답들과 삼백 년 남아 지켜온 마을을 하직하고 어두운 고삿길을 주춤주춤 걸어 나선다. 그들은 표류족이 됐다.
음악: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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