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막 싸전머리 윗녘 사내와 말라꽁이 사내의 갈등과 화해
& 싸전머리
술이 취한 말라꽁이 사내가 자신의 전에서 몸을 비틀거리면서 손님들에게 외친다. 윗녘 사내는 그런 말라꽁이 사내를 보면서 웃음을 머금는다.
말라꽁이 사내
자, 쌀들 사씨요. 막 싸구려 판이요잉… 한 되에 이백이십 환씩. 돌같이 깡깡한 쌀들 사씨요…
윗녘 사내가 웃음을 머금고 말라꽁이 사내를 쳐다본다. 그런 윗녘 사내를 보던 말라꽁이 사내가 화가 북받친다.
말라꽁이 사내(혼잣말로)
저놈의 자식이 웃다니?... 네가 오늘 온전한가 두고 보자!
그러나 달려들 염만은 나지 않는다. 딱 벌어진 어깨와 기어들어가는 자라 멱에서 자기 모르게 중압감을 느낀다.
말라꽁이 사내(다시 혼잣말로)
이놈이 웃다니?... 좌우간 두고 보자.
말라꽁이 사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를 내닫는다. 눈에는 눈물이 솓는다. 무대를 가로 질러 잡화상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옹기장 거리
잡화상을 지나 옹기장 거리까지 온 말라꽁이는 자기쪽으로 오는 억보를 발견한다. 억보는 키가 설렁하게 크고 무슨 일에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황새다리 유서방보다는 낫다고 말라꽁이 사내는 생각한다.
말라꽁이 사내(다가오는 억보를 보고)
억보, 자네 어디 가는 길인가?
억보
웬이요, 여까지 나왔습니다.
말라꽁이 사내
그럼 마침 됐네. 잠깐 이리 오게.
억보
……
억보는 말라꽁이 사내가 끄는대로 목노집으로 들어간다.
말라꽁이 사내
오소, 술 한 잔 들세.
억보
웬이요!
말라꽁이 사내
금매 나, 할 이야기가 좀 있어서 그러네. 앉게.
말라꽁이 사내는 그동안 일을 시종 이야기한다. 빠른 속도(5배속)로 녹음된 대화를 오디오로 들려주며 두 사람은 이야기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이어서 말라꽁이 사내 목소리가 들린다.
말라꽁이 사내
원 그런 놈이 다 있을 것인가?... 나 오늘 분해서 못 참겠네.
억보
…
말라꽁이 사내
(‘그러니 자네랑 같이 좀 가세.’란 말은 차마 못하고) 나 오늘 참 분해서 못 참겄네.
말라꽁이 사내는 억보의 동정을 살핀다.
억보(목청을 돋우며)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입디여? 그런 나쁜 자식이 있소…
말라꽁이 사내(기다린 대답을 들었다는 듯이)
아, 그 자식의 생긴 모양도 똑 죽어 들어가는 자래 쌍판 모양이드란 마시.
억보
그런 나쁜 놈이 어디 있고… 가만 있으시오.
말라꽁이 사내
어서어서 술을 좀 드시게.
말라꽁이 사내는 술을 따른다.
억보(술을 마시기 위해 잔을 들면서)
예.
말라꽁이 사내
하기사 나도 같은 장사꾼으로서 그만한 일이야 못 이해하겄는가만 그 자식 하는 짓이 괘씸하단 마시… 그러고도 가부간 미안타는 말 한마디가 없이 외려 비웃기까지 한단 마시… 사람이 안 그런가? 그러고라도 말일망정 미안하다고나 하면 낸들 무슨 원수졌다고 이럴 것인가?... 어서 그 술을 좀 들게
억보
예.
대답은 했으나 억보도 생각이 복잡하다. 한 마을 사람이 그런 봉변을 당했다는 데 가만히 있기만은 안됐다는 생각이 앞선다. 제물에 노여움이 북받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몇 달 전에 마을 덕구가 남에게 맞고 있는 것을 나섰다가 소송을 당할 뻔 한 일이 있었다. 그 생각에 선뜻 나설 생각이이 안난다.
억보
… 가만 있으시오?...
말라꽁이 사내
어서 몇 잔 더 들게
억보가 술을 석 잔째 들었다. 얼굴이 붉게 올랐다. 술이 더 오르는 것을 억보 스스로 경계한다. 덕구 사건 때 술에 취해 겁없이 덤볐다가 사고가 커진 것이 생각난 때문이다. 일어설 궁리를 한다.
말라꽁이 사내
어서 한잔 더 들게.
억보
웬일요.(잠시 뜸을 들이다가) … 나 잠깐 나갔다 오리다.(일어선다)
말라꽁이 사내
워이
말라꽁이 사내는 억보가 패를 짜러 나서거니 생각하고 이만하면 됐다 생각한다. 바야흐로 앙갚음이 시작된 것이다. 윗녘 사내가 당할 일이 떠올라 웃음을 머금는다
무대가 잠시 어두워진다.(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그러나 나간 억보는 나타나지 않는다.
말라꽁이 사내
올때가 됐는데…
말라꽁이 사내가 목노집을 나와 주변을 살핀다. 해는 기울고 장터 사람들도 뜸하다.
말라꽁이 사내
이놈도 말뿐이구나!
사실 억보는 그길로 돌아가고 말았다. 말라꽁이 사내 실망이 크다. 믿었던 억보마저 말을 안 따르고 가버리자 어디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한다. 더군다나 장사까지 망쳤으니 말이 아니다. 주머니를 더듬다가 주머니칼을 쥔다.
말라꽁이 사내(결연한 자세로)
이 자식을 배때기를 질러버리고 말아야지!
칼날을 새파랗게 세워가지고 퇴장한다. 전머리로 가기 위해서.
무대: 어두워진다.
& 싸전머리
말라꽁이 사내(싸전머리에 나타나며)
보자, 이놈!
말라꽁이 사내(기다리는 아이 덕수를 향해)
덕수야, 어서 그 푸대 몰아라
덕수가 짐을 싸는데, 윗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라꽁이 사내 싸전이 있는 곳으로 건너온다.
윗녘 사내
아저씨, 오늘은 많이 노하시게 해서 대단 죄송스럽니다.
말라꽁이 사내
…
윗녘 사내
아저씨 십분 양해하십쇼.
말라꽁이 사내
그래도 사람이 경우가 있어야 쓸 것 아니요!
윗녘 사내
타향에 와서 벌어먹고 산다는 게 그렇게 됐습니다.
말라꽁이 사내
허기야 그것은 피차 일반인 처지가 아니요만…
윗녘 사내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러면 우리 가 약주나 한 잔씩 나누십시다.
말라꽁이 사내
…
윗녘 사내
가십시다…
말라꽁이 사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집의 아이 덕수에게 넌지시 말한다.
말라꽁이 사내
아가, 그럼 우선 너나 먼저 집으로 들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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