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원작: 오유권 소설 ‘소문’(1957. 5)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나주댁
떠벌네
나주댁 형님
선애: 나주댁 딸
머슴: 안골 반장네 머슴
어떤 아낙: 말을 물어낸 아낙
다른 아낙: 말대꾸를 한 아낙
동네 아낙 3, 4
사돈네: 시냇골서 사는 나주댁 형님 둘째 동생
대화 중에 나오는 인물
판례: 떠벌네 딸
주요 등장인물 성격
나주댁: 나주댁은 스무 살 때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딸 하나를 위하여 사는 중년 여인. 그녀는 결백증이 있을 정도로 딸 선애를 과보호한다.
떠벌네: 말 물어내기를 좋아하는 줌년 여인. 손버릇도 좋지 않아 머슴에게 약점이 잡혀있다.
나주댁 형님: 도량이 넓은 나주댁의 큰집 형님. 나주댁 딸 혼사를 도우려고 친정 동생에게 부탁해 혼인을 성사시키고 있는 중이다. 나주댁 딸 소문에 민감하지만 차분하게 대처한다.
머슴: 한때는 나주댁 머슴도 지냈던 일 잘하는 큰 일꾼. 지금은 안골 반장네 머슴으로 반장 대신 동네 납세고지서를 돌리기도 한다. 떠벌네의 약점을 알고 있어 막판 대세를 꺾는다.
때
1950년대
장소
영산포 근처 시골 마을 / 꺼꿀네, 또술네, 떠벌네 / 나주댁집
# 제1막
꺼꿀네 집 모퉁이로 안골 반장네 머슴이 동네 납세고지서를 배부하러 다닌다. 마침 물을 길러 나주댁 딸이 꺼꿀네 집 모퉁이를 돌다 두 사람이 마주친다. 안골 반장네 머슴이 ‘잘 됐다’ 싶어 고지서를 건네준다. 그냥 건네주면 고개(나주댁 집은 고개 위에 있음)까지 올라가지 않으니 좋다고 판단했다. 나주댁 딸은 받아서는 안될 종이로 알고 어깨를 비틀면서 받지 않으려고 한다. 꺼꿀네 집에서 떨어진 곳, 무대 반대편에 떠벌네가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몸을 숨긴다.
& 꺼꿀네 집 모퉁이
머슴(고지서를 흔들며)
아, 별것 아니어. 받어둬.
나주댁 딸(몹쓸 것을 피하듯, 몸을 피한다.)
…
머슴
개불알노무. 내우는 무슨 내우야. 나, 바쁜게 얼렁 받아둬.
나주댁 딸(말 없이 몸만 피한다.)
…
머슴
아, 염려 말고 받어둬.
그제야 나주댁 딸이 못 이긴 듯이 종이를 받아서 품속에 넣는다. 이것을 숨어 본 떠벌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그사이 머슴은 무대 왼쪽으로 퇴장한다. 나주댁 딸도 무대 오른쪽으로 물 길러 나간다. 얼굴을 숨겼던 떠벌네가 고개를 돌린다. 무슨 보물이나 찾은 듯한 뿌듯한 표정으로 두리번 거리면서 무대 중앙으로 나선다. 마침 어떤 아낙이 나타난다.
떠벌네(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내가 방금 꺼꿀네 집 외진 모퉁이를 돌아오자니께, 고갯집 나주댁 딸하고 그 전에 그 집서 머심을 살던 안골 반장네 머심이 무슨 편지를 가지고 주고 받고 하드랑께. 외진 모퉁이에서…(강조하느라 다시 되내고 잠시 뜸을 들인다.) 서로 받으라거니 안 받겠다거니 한참 찌우락거리고 있드란 마시.
어떤 아낙
그래이.
떠벌네(귀중한 것을 발설한다는 듯이)
나, 참, 우서운 일도 다 봤네잉.
두 여인 갈 길을 가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소문이 퍼지는 소리(음향)
음악은 모데스트 무소로크스키 - 전람회의 그림 중 ‘프롬나드(Promenade)’
https://youtube.com/shorts/pR9mftkNqPE?si=DXroudmnaKEagiDE
& 또술네 / 문 앞 / 눈오는 밤
나주댁 큰댁 형님이 문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떤 아낙(소리만)
아니, 나, 그런 줄 몰랐더니 고갯집 나주댁 딸이 안골 반장네 머심하고 뭣을 주고 받었다 하데잉?
다른 아낙(소리만)
금매 그런 말이 있데, 참.
어떤 아낙(소리만)
아, 그, 잡녀러 머심이 꺼꿀네 집 뒤꼍에 가 서 있다가 무단히 물 길러 가는 사람을 틀어잡고 그랬단 않든가.
다른 아낙(소리만)
그러니, 혹, 그 머심이 나주댁서 머심을 살 때부터 무슨 내통이 있었는지도 알겄는가.
어떤 아낙(소리만)
그래, 나주댁 딸에게 혼삿말이 비치는 것을 보고 방해를 할라고 그러는지도 모를네.
나주댁 형님은 차마 방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다시 귀를 기울인다. 아낙들 얘기가 계속된다.
아낙 3(소리만)
참말로 나주댁 딸이 그랬을께?
아낙 4(소리만)
하기사 옛날부터 점잖은 개가 부숭에 몬자 올라간다고들 않든가.
어떤 아낙(소리만)
참 사람의 속이란 모를네잉.
나주댁 형님이 치마를 추스리고 나주댁을 찾아 나선다. 종종걸음을 치면서 가는 것이 무척 서두르는 모습이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음악이 흐른다.
음악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 전람회의 그림 중 ‘프롬나드(Promenade)’
https://youtube.com/shorts/pR9mftkNqPE?si=DXroudmnaKEagiDE
& 나주댁 / 툇마루
나주댁이 누룩의 티를 추리고 있다. 나주댁 형님이 등장한다. 부리나케 나주댁을 향해 득달같이 와서 나주댁을 향해 말한다. 급하지만 숨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잠시 뜸을 들인다.
나주댁 형님
동새(동서를 의미), 티 추리는가.
나주댁
예. 성님 오시요. 어서 오씨요.
나주댁 형님(오만 인상을 찌뿌리며)
아, 그런디 동새… 저미 저 아이가 안골 반장네 머심하고 무슨 일이 있었드랑가?
나주댁
웬이라우! 일은 무슨 일이라우.
나주댁 형님
나, 또술네 집에 모실을 가자니께, 모다 그런 말들을 하고 있데.
나주댁(일어서면서)
나는 첨 듣는 말이요. 뭣이라고들 해쌉디여?
나주댁 형님이 나주댁을 향해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오디오 3배속으로 진행) 이야기를 듣는 나주댁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나주댁 형님
그걸 떠벌네가 봤다고 하는 모양이데.
나주댁(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서며 방문을 젖히며)
아가, 너, 안골 반장네 머심한테서 뭣 받은 일 있냐?
무대의 방문이 열리며 수를 놓던 딸이 얼굴을 감싼다.
나주댁 딸
없어.
나주댁
그럼 무슨 말이 그렇게 났다냐?
나주댁 딸
이전 날 고지서 받은 것 보고 그러는 것 아닌가? 그때 판례 어메(떠벌네)가 지내가다 봤어.
나주댁
그때 다른 것은 받은 일 없냐?
나주댁 딸
없어.
나주댁
말도 한 일 없지야?
나주댁 딸
말도 안 했어. 그때 엄니한테 얘기 했잖여.
나주댁 딸은 그날 고지서를 나주댁에게 넘기면서 자초지종을 말했었다.
나주댁(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며)
그런 사람 죽일 예편네가 다 있소?
나주댁 형님
빈총도 안 맞은 것만 못하다고 혼사조차 어울려지려고 하는디 안 들은 것만 하는가.
나주댁
가만있으시요. 나, 떠벌네한테 가서 댈라우.
나주댁이 일어선다. 전의를 다지면서 치마끈을 졸라맨다.
나주댁 형님
동새, 그렇게 욱하지 말고 앉게. 이런 일일수록 서서히 따져야제. 그렇게 욱하면 말만 더 나는 것일세.
나주댁
아니라우! 나, 지금 가서 댈라우.
나주댁 형님
금매, 그러지 말고 이리 앉게
나주댁은 스무 살 때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딸 하나를 위하여 살아왔다. 딸이 열다섯 때부터는 바깥심부름도 시키지 않았다. 근년에 들어서는 허드렛일 시킬 때도 구정물 나는 옷을 입히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 키우는 중이다. 딸 열여덟 되던 해부터는 머슴도 일체 들이지 않았다. 몇 건의 혼사일이 추진 됐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거절했다. 나주댁은 데릴사위를 원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세월이 흘러 딸의 나이가 스물둘이 됐다. 더 기다릴 수 없어 어울려지는 혼사가 앞산 넘어 시냇골 사는 홀아비 아들이었다.(큰댁 형님의 둘째 동생이 중간에 중매) 슬하에 외아들이라는 것이 걸리긴 하나, 두 집이 합의하에 혼사가 이뤄지면 두 집 살림을 합쳐 한집 살림을 하는 것으로 말이 됐다.
나주댁은 큰댁 형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혼사도 혼사지만 여태 마을 한 번 안 내보낸 딸에게 누명도 분수없다는 생각에 분이 솟구쳤다.
나주댁(혼잣말로)
이런 얼척 없는 일이 있다니!
이를 악물고 고삿길로 내달았다. 나주댁 무대에서 사라지고 무대는 어두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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