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장수
원작: 오유권 소설 ‘쌀장수’(1956. 7)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말라꽁이 사내: 지역 상인
윗녘 사내: 타향에서 온 외지 상인
유서방(황새다리): 소금장수
억보: 마을 정의파 젊은이
순댓국집 아주머니
자물쇠 장수
덕수: 말라꽁이 사내 아들
장보는 사람들
대화에서만 등장
덕구: 억보가 소송건에 걸릴 뻔 했던 사건의 주인공
주요 등장인물 성격
말라꽁이 사내: 영산포장에서 쌀을 거래하는 장삿꾼. 키가 작고 빼빼하게 말랐다. 길목이 좋은 싸전 자리를 윗녘 사내에게 뺏겨 분해한다. 힘이 강한 윗녘 사내를 직접 상대하기가 버거워 주변 지역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한다. 결국 모든 사람이 말 뿐이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작정한다. 그러나 윗녘 사내의 사과를 듣고 모든 생각을 접는다.
윗녘 사내: 경기 사투리를 쓰는 체격이 좋은 장삿꾼. 목소리가 울리는 바리톤으로 주변 사람의 이목을 끈다. 사용하는 말투는 윗녘 말투로 끝에 ‘...그런뎁쇼’, ‘...저런뎁쇼’ 하고 끄트머리가 없이 흐르는 어투를 사용한다. 이 어투를 말라꽁이 사내는 싫어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넉살 좋은 윗녘 사내의 말투나 태도에 대해 호의적이다. 마지막에 말라꽁이 사내에게 먼저 사과를 하는 것으로 봐서 도량이 넓은 사람이다.
억보: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정의파 젊은이. 말라꽁이 사내가 마지막으로 협조를 기대한다. 억보는 심정적으로는 말라꽁이 사내를 도와 윗녘 사내를 혼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러나 몇 달 전에 있었던 덕구 사건으로 마음이 캥긴다. 술자리에서 핑계를 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유서방: 키가 설렁하니 커서 황새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림. 말라꽁이 사내와 같은 마을에 산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말대답은 하나 적극성은 없다. 말라꽁이 얘기를 듣다가 전거리를 가봐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한다.
때
1950년대 전반기
장소
영산포 근처 농가와 영산포 오일시장의 싸전머리와 순대국집
# 제1막
& 장터 / 싸전머리
장터거리는 일찍부터 쌀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으로 붐빈다.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오일장은 지역 축제인 셈이다. 장삿꾼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리다툼을 한다. 땀을 흘리며 쌀가마니를 비우는 사람, 싸구려를 외치는 사람, 쌀 금새가 비싸다고 깎으려는 사람, 자루를 입에 물고 쌀을 되어 받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간다.
무대 중앙에 윗녘 사내가 전을 열었다. 말라꽁이 사내는 무대 오른편에 작게 전을 벌리고 있다.
윗녘 사내
쌀은 제일 좋습죠. 몇 되나 드리깝쇼?
말라꽁이 사내
(분을 삭이면서, 목청을 돋우어) 자, 쌀들 사씨요. 한 되에 이백이십 환씩… 돌같이 깡깡하고 뉘 없는 쌀들 사씨요.
말라꽁이 사내 본인은 크게 소리를 지르나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목 안의 소리로 잠긴다. 윗녘 사내에 비하면 쌀 사는 사람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
윗녘 사내
아주머니, 쌀 사러 나오신뎁쇼.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다. 이어서) 다 봐도 쌀은 이보다 상품은 없는뎁쇼.
윗녘 사내는 쌀을 쥐어 넌지시 흘려 보인다. 그런 사내에게 말라꽁이 사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쳐다 본다. 말라꽁이 사내가 윗녁 사내에게 다가가 자리 요구를 한다.
말라꽁이 사내
여보, 자리 좀 아래로 지치씨요.
윗녘 사내
아저씨 자립쇼… 좋두룩 나눠봅시다.
말라꽁이 사내(얼굴이 붉어지면서, 멍석을 그러잡고 말한다)
좋게나 아니나, 사람이 경위가 있는 것 아니요.
윗녘 사내(멍석을 밟으면서)
아니 아저씨, 그렇게 화내실 게 뭐 있수?... 좋도록 논아봅시다.
말라꽁이 사내가 멍석을 당기지만 윗녘 사내가 밟고 있는 멍석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힘껏 당겨보는 말라꽁이 사내는 화가 더 치민다. 자신이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신경질을 부린다.
말라꽁이 사내(윗녘 사내 발을 보면서)
이놈의 발을…(엎드려서 멍석을 다시 한 번 당긴다. 멍석은 움직이지 않자 더 화가 치민다.)
윗녘 사내(약간 조롱조로)
어저씨, 왜 이러슈?... 왜? 누군 허수아빈지 아우.
윗녁 사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라꽁이 사내를 밀었다. 멍석을 밟지 않은 다른 발로 멍석을 움켜쥔 말라꽁이 사내 어깨를 밀어버린 것이다. 말라꽁이 사내는 휘딱 뒤로 나가쓰러진다. 말라꽁이 사내는 힘에 밀린 것이 창피하다.
말라꽁이 사내
아~ 참!
벌떡 일어서면서 눈에 눈물같은 이슬이 비친다 몸집이 차이가 나서 아무래도 주먹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다. 연장을 찾으러 두리번 거린다. 옆에 가마니 새끼를 자르던 주머니 칼 하나가 있다. 냉큼 그 칼을 집어든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우~ 하니 달려들어 만류한다.
말라꽁이 사내
네가 이놈아, 어서 궁글어온 놈이라고 본바닥 사람을 함부로 쳐! 응?... 아니, 이놈아! 그러고도 미안타는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본바닥 사람을 함부로 쳐? 쳐!(목소리가 올라가다 힘이 빠진다.)
말라꽁이 사내는 씩씩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목청을 돋우어 소리를 쳐보나 왠지 주눅든 목소리다.
말라꽁이 사내
자, 돌같이 깡깡한 쌀이요. 누구나 와서 한 번씩 깨물어보고 사씨요~
거의 동시에 윗녘 사내도 우렁차게 소리친다.
윗녘 사내
몇 되나 드리깝쇼? 쌀은 이보다 상품은 없는뎁쇼.
윗녘 사내는 쌀 사러온 사람에게 쌀을 되어주고 있다. 말라꽁이 사내는 아무래도 쌀이라도 더 보이게 쌓아야 되겠다 싶어 도매상으로 가기 위해 퇴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순댓국집
말라꽁이 사내
아주머니, 나 여기 술 한 잔만 주씨요.
말라꽁이 사내는 두 잔을 거푸 들이킨다.그리고 윗녘 사내가 맞짱을 뜰 궁리를 한다. 저놈 종아리를 돌려 감고 팔로 며가지를 감싸는 생각에 잠긴다. 술 잔을 놓고 혼잣말로 자신의 생각을 발설한다.(며가지를 콱~)
말라꽁이 사내
아주머니, 여기 술 한 잔 더 따시요.
순댓국집 아주머니
엣소.(막걸리를 따른다.)
말라꽁이 사내는 이번에는 연장을 쓸 궁리를 한다. 혼잣말로.
말라꽁이 사내
저 죽고 나 죽으면 고만이지?... 그래도 그건 안되지. 안되!(고개를 흔든다.)
말라꽁이 사내는 다시 잔을 들고 순댓국집 아주머니에게 술을 청한다.
말라꽁이 사내
아주머니, 한 잔 더 부으씨요.
순댓국집 아주머니
너무 과한 것 같은디. 천천이 드쇼잉.(하면서도 술을 따른다.)
행길 건너 포목전 앞에서 소금장사를 하는 유서방이 요기를 하기 위해 순댓국집에 들린다. 키가 설렁하게 커서 황새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유서방은 주근깨가 까맣게 끼어 있다.
말라꽁이 사내
자네 오는가? 어서 오게.
유서방
예, 오늘도 재미 보십니꺼?
말라꽁이 사내
이 사람아, 재미가 다 먼가?... 우선 이 술이나 한 잔 들게.(말라꽁이 사내가 술을 따른다.)
유서방
무슨 일이 있는가요?
말라꽁이 사내
아, 들게… 들면서 내 이야기나 좀 들어보게.
말라꽁이 사내가 유서방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는 표정만 나오고 소리는 음악으로 대신하다가 끝부분만 들린다.
말라꽁이 사내
칼로 배때기를 질러버릴라다가 모다 말리는 통에 그만 참았네.(씩씩거리며 진짜 찌를 번 했다는 것을 강조) 콱 그냥!
말라꽁이 사내
지까짓 놈이 어서 궁글어온 놈이, 본바닥 사람을 함부로 쳐!
말라꽁이 사내는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방망이 불림을 할 것처럼 팔을 걷어부치고 어깨를 올려붙인다. 말라꽁이 사내는 유서방의 조력을 얻을 속셈으로 동의를 구하듯이 말을 잇는다.
말라꽁이 사내
저런 놈은 모조리 달려들어 방망이 불림을 대가지고 이 바닥에서 쫓아내야지… 이 사람아 안 그런가?...
유서방은 국물만을 훌쩍거리다가 말 대접으로 가볍게 대거리한다.
유서방
글쎄라우?...
유서방은 너무 싱겁게 대꾸했디는 생각이 들어, 말라꽁이 사내가 적이 안됐다는 듯이 말을 꺼낸다.
유서방
어디 사람 같습디여?
말라꽁이 사내
그놈 말투도 방정맞어… 언뜻 윗녘 놈 말투데만. 거기 놈들은 원 다 그런가?... 아랫녘 물개 맛을 좀 보여줘야지.
순댓국집 아주머니
어깨가 벌어지고 자래 목아지 시늉한 사람 말이지라우? 그 사람이 서울 사람인디 하우동 동장네 조카라우… 육이오 때 피란 나와서 아직 못 들어갔다우.
말라꽁이 사내
동장네 조카면 그만이고 서울놈이면 그만인가?... 이 자식 여기 맛을 좀 단단히 보여줘야지… 이 사람아(유서방을 향해). 안 그런가?... 어서 술 한자 더 들게.(술을 따라 권한다.)
유서방
(그 술을 들고 슬며시 일어서면서) 전 자리 땜에…(말끝을 흐린다.)
말라꽁이 사내
아니, 이 사람아! 더 쪼금 앉어서 이야기 좀 듣게?
유서방
웬이라우~ 전 자리 땜에 가봐야 쓰겄습니다.
유서방이 일어서서 나간다. 말라꽁이 사내는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다. 또 한 사내가 들어온다. 자물쇠장수다.
말라꽁이 사내(혼잣말로)
에이, 못난 놈의 자식! 한동네서 사는 놈이 가서 한번이나 밀어붙일 생각은 안하고 이렇단 응변 한마디가 없이 일어서다니…
말라꽁이 사내(순댓국집 아주머니에게)
여기 소주 한 고뿌 주씨요.
소주를 타서 취기를 돋우리라 생각하고 소주를 청한다. 옆 자리에 있는 사람(자물쇠 장수)에게 응원을 구한다.
말라꽁이 사내(얼굴만 익은 자물쇠장수를 향해)
아, 그렇지 않소.
말라꽁이 사내는 다시 자물쇠장수를 향해 그간의 사정을 얘기한다. 말하는 말라꽁이와 듣는 자물쇠장수만 보이다가 마지막 부분만 음성이 들린다.
말라꽁이 사내
노형, 그렇지 않소?... 그런 놈들의 기를 살려두면 이 바닥을 만만히 보고 누구한테나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그런 놈들은 모조리 달려들어 방망이 불림을 대놔야지…
자물쇠장수(그저 말대답으로)
참, 벨 사람도 다 있소잉.
말라꽁이 사내(힘을 얻어)
그라고 그놈이 양심부터 틀려묵었지… 저도 자식을 가졌을 놈이 아무리 어린 것이 서 있었다고 그래서 쓸 것이요잉!
자물쇠장수(말대접으로)
참, 거, 무지한 사람도 있소잉.
아침에 자신의 아이를 시켜 전을 먼저 지키라고 시켰었는데, 윗녘 사내에게 밀렸었다. 자물쇠장수가 응대를 하자 한층 신명이 난 말라콩이 사내는 자물쇠장수에게 술을 권한다.
말라꽁이 사내(자기 잔을 내밀면서)
노형이 술 한 잔 드이씨요.
자물쇠장수(술을 사양하며)
나 물건을 폴다 와서 지금 갈랍니다.
자물쇠장수가 일어나서 나간다. 말라꽁이 사내는 믿었던 황새다리 유서방이 나서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것이 유감스럽다.
말라꽁이 사내(혼잣말로)
황새다리 그놈이 키만 껀정하지 동네일을 할 때도 별로 서둘고 나서는 법이 없긴 해.
말라꽁이 사내는 소주를 거푸 몇 잔을 들면서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푸념을 되풀이 한다. 무대에서 사람들은 말라꽁이 사내에게 대꾸하다 돌아가곤 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제2막 싸전머리 윗녘 사내와 말라꽁이 사내의 갈등과 화해
& 싸전머리
술이 취한 말라꽁이 사내가 자신의 전에서 몸을 비틀거리면서 손님들에게 외친다. 윗녘 사내는 그런 말라꽁이 사내를 보면서 웃음을 머금는다.
말라꽁이 사내
자, 쌀들 사씨요. 막 싸구려 판이요잉… 한 되에 이백이십 환씩. 돌같이 깡깡한 쌀들 사씨요…
윗녘 사내가 웃음을 머금고 말라꽁이 사내를 쳐다본다. 그런 윗녘 사내를 보던 말라꽁이 사내가 화가 북받친다.
말라꽁이 사내(혼잣말로)
저놈의 자식이 웃다니?... 네가 오늘 온전한가 두고 보자!
그러나 달려들 염만은 나지 않는다. 딱 벌어진 어깨와 기어들어가는 자라 멱에서 자기 모르게 중압감을 느낀다.
말라꽁이 사내(다시 혼잣말로)
이놈이 웃다니?... 좌우간 두고 보자.
말라꽁이 사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를 내닫는다. 눈에는 눈물이 솓는다. 무대를 가로 질러 잡화상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옹기장 거리
잡화상을 지나 옹기장 거리까지 온 말라꽁이는 자기쪽으로 오는 억보를 발견한다. 억보는 키가 설렁하게 크고 무슨 일에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황새다리 유서방보다는 낫다고 말라꽁이 사내는 생각한다.
말라꽁이 사내(다가오는 억보를 보고)
억보, 자네 어디 가는 길인가?
억보
웬이요, 여까지 나왔습니다.
말라꽁이 사내
그럼 마침 됐네. 잠깐 이리 오게.
억보
……
억보는 말라꽁이 사내가 끄는대로 목노집으로 들어간다.
말라꽁이 사내
오소, 술 한 잔 들세.
억보
웬이요!
말라꽁이 사내
금매 나, 할 이야기가 좀 있어서 그러네. 앉게.
말라꽁이 사내는 그동안 일을 시종 이야기한다. 빠른 속도(5배속)로 녹음된 대화를 오디오로 들려주며 두 사람은 이야기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이어서 말라꽁이 사내 목소리가 들린다.
말라꽁이 사내
원 그런 놈이 다 있을 것인가?... 나 오늘 분해서 못 참겠네.
억보
…
말라꽁이 사내
(‘그러니 자네랑 같이 좀 가세.’란 말은 차마 못하고) 나 오늘 참 분해서 못 참겄네.
말라꽁이 사내는 억보의 동정을 살핀다.
억보(목청을 돋우며)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입디여? 그런 나쁜 자식이 있소…
말라꽁이 사내(기다린 대답을 들었다는 듯이)
아, 그 자식의 생긴 모양도 똑 죽어 들어가는 자래 쌍판 모양이드란 마시.
억보
그런 나쁜 놈이 어디 있고… 가만 있으시오.
말라꽁이 사내
어서어서 술을 좀 드시게.
말라꽁이 사내는 술을 따른다.
억보(술을 마시기 위해 잔을 들면서)
예.
말라꽁이 사내
하기사 나도 같은 장사꾼으로서 그만한 일이야 못 이해하겄는가만 그 자식 하는 짓이 괘씸하단 마시… 그러고도 가부간 미안타는 말 한마디가 없이 외려 비웃기까지 한단 마시… 사람이 안 그런가? 그러고라도 말일망정 미안하다고나 하면 낸들 무슨 원수졌다고 이럴 것인가?... 어서 그 술을 좀 들게
억보
예.
대답은 했으나 억보도 생각이 복잡하다. 한 마을 사람이 그런 봉변을 당했다는 데 가만히 있기만은 안됐다는 생각이 앞선다. 제물에 노여움이 북받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몇 달 전에 마을 덕구가 남에게 맞고 있는 것을 나섰다가 소송을 당할 뻔 한 일이 있었다. 그 생각에 선뜻 나설 생각이이 안난다.
억보
… 가만 있으시오?...
말라꽁이 사내
어서 몇 잔 더 들게
억보가 술을 석 잔째 들었다. 얼굴이 붉게 올랐다. 술이 더 오르는 것을 억보 스스로 경계한다. 덕구 사건 때 술에 취해 겁없이 덤볐다가 사고가 커진 것이 생각난 때문이다. 일어설 궁리를 한다.
말라꽁이 사내
어서 한잔 더 들게.
억보
웬일요.(잠시 뜸을 들이다가) … 나 잠깐 나갔다 오리다.(일어선다)
말라꽁이 사내
워이
말라꽁이 사내는 억보가 패를 짜러 나서거니 생각하고 이만하면 됐다 생각한다. 바야흐로 앙갚음이 시작된 것이다. 윗녘 사내가 당할 일이 떠올라 웃음을 머금는다
무대가 잠시 어두워진다.(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그러나 나간 억보는 나타나지 않는다.
말라꽁이 사내
올때가 됐는데…
말라꽁이 사내가 목노집을 나와 주변을 살핀다. 해는 기울고 장터 사람들도 뜸하다.
말라꽁이 사내
이놈도 말뿐이구나!
사실 억보는 그길로 돌아가고 말았다. 말라꽁이 사내 실망이 크다. 믿었던 억보마저 말을 안 따르고 가버리자 어디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한다. 더군다나 장사까지 망쳤으니 말이 아니다. 주머니를 더듬다가 주머니칼을 쥔다.
말라꽁이 사내(결연한 자세로)
이 자식을 배때기를 질러버리고 말아야지!
칼날을 새파랗게 세워가지고 퇴장한다. 전머리로 가기 위해서.
무대: 어두워진다.
& 싸전머리
말라꽁이 사내(싸전머리에 나타나며)
보자, 이놈!
말라꽁이 사내(기다리는 아이 덕수를 향해)
덕수야, 어서 그 푸대 몰아라
덕수가 짐을 싸는데, 윗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라꽁이 사내 싸전이 있는 곳으로 건너온다.
윗녘 사내
아저씨, 오늘은 많이 노하시게 해서 대단 죄송스럽니다.
말라꽁이 사내
…
윗녘 사내
아저씨 십분 양해하십쇼.
말라꽁이 사내
그래도 사람이 경우가 있어야 쓸 것 아니요!
윗녘 사내
타향에 와서 벌어먹고 산다는 게 그렇게 됐습니다.
말라꽁이 사내
허기야 그것은 피차 일반인 처지가 아니요만…
윗녘 사내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러면 우리 가 약주나 한 잔씩 나누십시다.
말라꽁이 사내
…
윗녘 사내
가십시다…
말라꽁이 사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집의 아이 덕수에게 넌지시 말한다.
말라꽁이 사내
아가, 그럼 우선 너나 먼저 집으로 들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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