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배기
원작: 오유권 소설 ‘옹배기’(1956. 5)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반촌댁
풍월댁
새집댁
오례: 풍월댁 딸
용애: 반촌댁 딸
장보는 노인1, 2
대화에서만 등장
선이네
턱골댁: 새집댁 이전 살던 아낙
주요 등장인물 성격
풍월댁: 반촌댁과 친한 친구이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시골 아낙. 반촌댁과 품앗이를 하면서 농삿일을 돕기는 하지만 서로 지지 않으려는 경쟁심이 있다. 일 욕심이 많은 점이 반촌댁과 같아 서로 품앗이 성사가 이뤄지고 다른 집보다 품앗이도 잘 진행된다. 신북으로 이사가는 새집댁 옹배기를 미리 잡아놓고 반촌댁에게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 반촌댁이 새집댁 옹배기를 넘보지 못하게 할 의도로.
반촌댁: 풍월댁과 친한 친구이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시골 아낙. 풍월댁과 마찬가지로 일 욕심도 많고 남에게 지기 싫어 한다. 딸 용애가 옹배기를 깨뜨려서 새 옹배기가 필요하던 차에 마을 새집댁이 이사가면서 넘기려는 옹배기에 욕심을 낸다. 풍월댁이 미리 찜한 새집댁 옹배기를 웃돈을 쳐주고 사려고 한다. 풍월댁이 찜했던 턱골댁 오동나무 반상도 웃돈을 얹어 먼저 가로챈 전력이 있어 매사에 풍월댁의 의심을 산다.
새집댁: 광주에서 재산을 날리고(광주에서 살 때 살림 규모가 좋았다는 정보가 두 아낙 얘기 중에 나옴) 영산포로 이사온 아낙. 다시 살 길을 찾아 신북(영산포에서 남으로 30리 거리)으로 이사를 간다. 이사 가면서 물옹배기를 처분하려는데 반촌댁과 풍월댁이 서로 경쟁하는 꼴을 본다. 결국 옹배기는 그동안 신세를 졌던 선이네에게 무상으로 양도하고 만다.
때
1950년대 전쟁 직후
장소
영산포 근처 농가
# 제1막(반촌댁 목화밭)
& 산 허리 밑 목화밭
반촌댁과 풍월댁이 목화밭에서 품앗이 밭을 매고 있다. 산골을 타고 꾀꼬리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음향)
풍월댁
용애네!
반촌댁
웨?
풍월댁
이웃에 사는 새집댁이 이살 간닥 않등가잉.
반촌댁
금매 마시, 집이 타져부러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신북으론가 안 간닥 않능가.
풍월댁
거, 됐는가! 그 집도 피란 오기 전에는 살림이 꽤 괜찮앴든 모양이데 그래.
반촌댁
참, 괜찮앴든 모양이데. 광주서 살 때는 왜(일본) 밥그릇 두 죽 같은 것은 언제나 찬장에 두고 지냈닥 않등가.
풍월댁
금매 마시
반촌댁
그러나 지금은 뭣 볼 것 있등가.
풍월댁
그래도 나는 아직 그 반동우들이 옴배기 하나만은 욕심나데 참.
반촌댁
참 그건 그렇데잉. 어짜면 그리 매끄롭고 이쁜지… 아 그런디, 요새는 어디 그런 옴배기 나등가?...
풍월댁
금매 마시. 요새 기술들은 하도 빌어묵어서 오백환을 줘도 그런 옴배기는 어디 사것등가?
반촌댁
천 냥을 주면 사고?... 그런디 오례네야! 나는 궂은 것이라도 불가불 옴배기를 하나 사야 쓰겄네. 아, 요 며칠 전에 집이 가시낙년이 쌀을 일다가 옴배기를 한 귀탱이 파싹 깨묵어서 그 으등가리(깨진 질화로) 같은 것으로 쓰고 있지 않능가.
풍월댁
그래도 자네는 그것이라도 있는가부네. 나는 또 집이 가시낙년이 지난 초여름에 한나 없애묵은 쌀옴배기를 아직까지 못 사주고 있지 않능가?... 나도 불가불 한나 사야 쓰겄네.
반촌댁
사세들.
반촌댁은 밭이 얼마나 매졌는가 보려고 뒤를 돌아본다. 풍월댁도 따라서 뒤를 본다.
반촌댁
오례네야. 이제 해도 다 됐네. 그만들 들어가세.
풍월댁
그러세.
반촌댁이 허리춤을 고치며 일어서고, 풍월댁도 호미에서 흙을 떨며 따라 일어선다.
무대: 어두워진다
& 풍월댁 집
풍월댁과 반촌댁은 일 못지 않게 살림 욕심도 많다. 한쪽이 쌀쥠씩이나 팔아서 아이들 옷감이라도 사오면 이편도 어느새 샘을 내서 어김없이 다음 장에는 옷감을 사오곤 했다.
풍월댁(장독대롤 보면서, 혼잣말로)
쓸 만한 옴배기 하나 없이…
물동이와 행주를 가지고 나와 장독대 그릇을 닦는다.
풍월댁(혼잣말로)
아야, 어서 옴배기를 한나 사야것다. 사야것다.(노랫조로 반복한다.)
풍월댁(오례에게)
아야, 옆에 새집댁이 언제 이사 간닥 하디?
오례(부엌에서 소리만)
한 닷새만 있으면 간닥 하등만.
풍월댁
그래야?...
무대: 어두워진다
&반촌댁 집
반촌댁(용애 들으라고, 항상 하던 투로)
이녀러 가시내야. 그렇게 깨묵고 나니 참 보기 좋다. (혼잣말로 이어서) 어서 옴배기를 하나 사줘야 쓰것다. 사줘야 쓰것는디.(뇌까리다 무심코… 용애에게) 아야, 돌아온 장이 언제냐?
용애
낼 아닌가?
반촌댁
참 그라구나. 그람 다음다음, 장에 나가봐야것다.
반촌댁 쥠쌀이 얼마나 모아졌나를 보려고 광으로 들어간다. 무대 어두어진다.
& 두 여인 밭매는 현장
검정 조바위를 쓴 두 노인이 옹배기 하나씩을 사들고 간다.
반촌댁
우리도 저만한 옴배기는 하나씩 사야 쓰것능가잉?
풍월댁
금매 마시.
반촌댁(노인을 향해)
거 얼마 줬소?
노인1
꼭 만 냥 줬소.
노인2
만 냥, 이백 환이라우, 이백 환.
풍월댁
그람 그보다 좀 더 큰 반동우들이는 얼마나 주락 합디여?
노인2
만오천 냥 주락 합디다.
풍월댁
그래라우잉.
무대 어두워진다.
& 새집댁
풍월댁이 들어선다.
풍월댁(새집댁을 향해)
아, 댁이 이사 가신다맹요?
새집댁
예, 오랫동안 신세를 많이 끼쳤소. 인제 한 사날만 있으면 신북 장터로 갈라우.
풍월댁
윳(이웃)에서 산 지는 오래 안 되지만 참 섭섭하게 되었소.
새집댁
하기야 그라긴 하것소만…
풍월댁(새집댁 눈치를 살피며)
하기야 그라긴 하것소만… 참, 이사가는 양반께 안됐소만, 혹 가실 때 짐이 되시것으면 저 반동우들이 물옴배기나 나 주고 갈라우?
새집댁
… …
풍월댁(다시 눈치를 살피며)
물옴배기가 없어서 그요. 웬만하그등 그냥 놔두고 가씨요.
새집댁
금매라우?...
풍월댁
그라씨요. (뜸을 들이다가 다짐을 받듯이) 그람 꼭 우리 주씨요잉.
무대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 하루가 지났다. 풍월댁은 암만해도 반촌댁이 나설 것 같아 불안하다. 새집댁을 차자간 풍월댁.
풍월댁(새집댁을 향해)
옴배기 얼마에 할라우?
새집댁
아직 날짜가 있응께. 그런 것은 더 천천히 있다 합씨다.
풍월댁
이러나저러나 마치 한가지 아니요. 지금 아조 말씀하씨요.
새집댁
……
새집댁이 생각에 잠겨 마당 한 구석을 멍하니 쳐다본다. 피란에 나와서 모두 없애 먹고 그나마 다른 데로 이사를 가는 살림인데 그렇게 보채는 것이 덜 좋다는 생각을 한다.
풍월댁(다그치듯이)
그 돈을 미리 준비해놀라고 그요. 지금 말씀하씨요.
새집댁(마지못해 나직히)
그람 이백오십 환만 주씨요.
풍월댁(놀란 척 하며)
새것도 그 돈이면 산디 너머 안 비싸요.
새집댁
좀 비싼 폭이기는 하제만 요새 것과 달라서 그 가바치가 넉넉하니 있어라우. 그라고 본래 물그릇 값은 새것과 헌것이 별 차가 없는 것 아니요.
풍월댁
그라지만 좀 비싸요. 한 이백 환만 합씨다.
새집댁
하기야 이백 환이 아니라, 백 환에 디린들 이태껏 지내던 정리로 봐서 못쓸랍디언만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집 형편이 그라지 않소.
풍월댁
그라지만 어째 한 이백 환만 해둡씨다.
새집댁(잠시 눈을 떨구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그람 그렇게 하씨요.
무대 어두워진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가 나른하게 흐른다.
# 제2막
& 품앗이 밭 / 풍월댁과 반촌댁
풍월댁
용애매.
반촌댁
왜?
풍월댁
새집댁의 그 옴배기 마시.
…(잠깐 사이를 두고)
내가 엔만하면 이사 갈 때, 나 주고 가락 했더니. 새 값을 다 주락 하드란 마시… 텀턱스럽게 삼백 환이나 주락 하드란 마시… 그래 어디 말이나 붙여 보것등가?... 그래 구만두자고 해부렀네.
반촌댁이 전에 턱골댁 반상을 중간에 가로챈 적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이번 옹배기는 살 염두가 나지 않게 풍월댁이 얄팍한 전략을 짠 것이다. 그러나 반촌댁은 ‘아차’ 싶지만 풍월댁이 얘기한 가격 ‘삼백환’에는 믿음이 없다.
반촌댁(심드렁하게)
그래잉.
풍월댁
암만해도 장에 가서 새것 산 것이 더 낫것데.
무대 어두워진다.
& 새집댁
반촌댁이 들어선다.
반촌댁
참 집이 이사 가신다맹요?
새집댁
예, 오랫동안 신세를 많이 끼쳤소. 한 이삼일만 있으면 신북으로 갈라우.
반촌댁
참 섭섭하게 되었소.
새집댁
말씀이라도 감사하요. 그라나 벨반 먼 디가 아니니까 종종 만날 테지라우.
반촌댁
암 그라시고 말고라우… 그란디 집이 저 반동우들이 물옴배기는 파실 것이요?
새집댁
옆집 풍월댁이 하도 폴라고 해싸서 이백오십 환만 주락 했드니 또 한사코 이백 환에만 달라고 해싸서 이태껏 지내던 정리도 있고 해서 그냥 그래 두라고 했소.
반촌댁은 자기 짐작이 어김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내 입을 갖다 넌지시 새집댁의 귀 가까이 대고 나직이 말한다.
반촌댁
돈 십 환 더 붙여디리께 나 주씨요.
새집댁(반촌댁을 힐끗 돌아보면서)
사람이 돈 십 환 사이에 그래서 쓴다우! 놈에게 인심 잃고 못 써라우.
반촌댁
아, 나, 다 깨진 으등가리 같은 것으로 쓰고 있응께 그라요. 나 주씨요.
새집댁
그래도 못써라우.
반촌댁
그람 삼사십 환 더 얹어서 집이가 말한 대로 다 디리께…
새집댁이 여전히 새침해 있다.
반촌댁
아. 그람 되지 않것소! 이백오십 환에 그냥 나 주씨요.
새집댁이 약간 누그러진다. 그것을 눈치챈 반촌댁이 다그친다.
반촌댁
예. 새집댁… 그렇게 하씨요. 나 이백오십 환 다 디리께. 이백오십 환.
새집댁이 더 누그러진 표정이 된다.
반촌댁(반 승낙은 받았다는 투로)
꼭 그렇게 하시게라우잉.
반촌댁은 돈을 가질러 나간다.
새집댁 입장에서는 오십 환이면 어린애들 감자 한 꼬챙이라도 더 사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들은 소문에 전에 살던 턱골댁네 반상을 돈 삼십 환 차이에 반촌댁에 넘겨 욕을 남겼다는 얘기가 생각이 나서 꺼려지기도 한다.
반촌댁이 돈을 쥐고 다시 돌아온다.
반촌댁
우선 이놈만 받아두씨요.
하는 사이에 풍월댁이 들어온다.
풍월댁
새집댁 진지 잡사겠소?
풍월댁 오는 소리에 돈을 내놓으려던 반촌댁이 손을 감춘다.
반촌댁
자네도 마실 나오능가?
풍월댁
워이. 일찍 나왔네잉.
두 여인 모두 때를 잘못 맞춰서 왔다는 생각을 한다. 풍월댁도 미리 계약금 조로 얼마를 준비해 온 것이다. 두 사람 엉거주춤 상대 태도를 보다가 반촌댁이 먼저 일어선다.
반촌댁(풍월댁을 향해)
나 먼저 일어서께 놀다 가소.
반촌댁이 나가자 풍월댁이 새집댁을 향해 다가서면서 돈 이백 환을 건넨다.
풍월댁
애씨요. 아무 때라도 디릴 것. 그렁께 우선 받어두씨요.
새집댁(손을 털며)
당장은 아숩지 않응께 거기 놔두씨요.(아직 받지 않을테니 그대로 갖고 있으라는 의미)
풍월댁
마치 한가지 아니요. 그냥 넣어두씨요.
풍월댁이 새집댁 손에 돈을 쥐어주려고 하고 새집댁은 그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새집댁
염려 말고 그냥 놔두씨요.
풍월댁
그람 꼭 믿소잉.
무대 어두워진다.
& 새집댁 / 이튿날
반촌댁이 들어선다.
반촌댁
애씨요. 우선 이 돈만 받어두씨요.
새집댁
있다. 갈 때 하게 거기 놔두씨요.
반촌댁은 새집댁 손에 돈을 쥐어주려고 한다.
반촌댁
아따! 마찬가지 아니요. 그냥 놔두씨요 그랴.
반촌댁이 건네려던 돈을 새집댁 앞에 휘딱 던지고 나가버린다.
새집댁(혼잣말로)
참, 억척스런 여자들도 다 보겠네.
새집댁은 생각을 한다.
새집댁(혼잣말로)
이렇게들 싸울 바에야 저 옴배기를 선이네를 주고 가야 쓰겄다. 꾸어 먹은 쌀 대신에…
무대 어두워진다.
& 반촌댁 밭 / 밭 매는 두 여인
맞은 산 소나무 그늘에서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잿골로 넘어가는 샛길 위에는 이른 장꾼들이 너더댓씩 짝을 지어 걸어간다.(새 소리 음향)
반촌댁
오례네야.
풍월댁
왜?
반촌댁
이제 새집댁이 그 옴배기 새 값을 다 주락 하데잉.
풍월댁
금매 마시.
반촌댁
그래 나도 엔만하면 사둘까 하다 그만둬부렀네.
풍월댁
금메 나도 그래서 그만둬부렀단 마시.
두 여인 모두 속으로는 그 옹배기는 자기 것이 됐다고 생각하면서 기쁨이 솟는다. 두 여인 모두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 새집댁 / 이사짐 싸느라 분주
반촌댁과 풍월댁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집댁에 들러 이삿짐 싸는 것을 돕는다. 이어서 풍월댁이 장독대 위의 예의 그 옹배기를 보고 선뜻 그리로 간다.
풍월댁
새집댁 나, 이 옴배기 집으로 갖다 둘라우잉?
반촌댁이 깜짝 놀란다.
반촌댁
이 사람아! 이 옴배기 내가 사기로 한 것일세.
반촌댁이 옹배기를 잡아 당긴다.
풍월댁
별말을 다 하네. 내가 사기로 한 것일세.(옹배기를 잡아 당긴다.)
반촌댁
아니, 내가 언제부텀 맞춰났다고 근가! 내놓소. 이리.
풍월댁
별소리를 다 하네. 자네는 그 깨진 옴배기라도 있지 않능가! 욕심 부리지 말고 내놓소, 이리.
말이 저절로 투박해진다.
반촌댁
내놓소, 이 사람아.
풍월댁
아니, 정 이라긴가!
두 여인 얼굴이 빨개진다.
반촌댁
놓게, 이 사람아.
풍월댁
아, 놓란 마시.
그러다 마침내 반촌댁이 장독을 비우고 있는 새집댁에게 말한다.
반촌댁
새집댁, 이 옴배기 누구한테 주기로 했소?
새집댁이 입을 뭉당해가지고 ‘한심하다’는 듯이 두 여인을 둘러본다.
새집댁
나는 집이들께 꼭 폴겄단 말, 안 했어라우. 꿔 묵은 쌀 대신 선이네 줄라우. 이리들 내놓씨요.
무대가 어두워진다. 로시니 -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이 흐른다. 풍월댁과 반촌댁이 서로를 쳐다 보면서 어이 없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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