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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젊은 홀어미들(제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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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권 원작, 젊은 홀어미들(제2막)

# 제2막(개울가)


& 개울가 / 고사리를 씻으면서

문평댁

성님은 이번 지사를 모시곤 어떻게 안 하실라우?

탈상 후에 개가를 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묻는다.

동강댁

금매 마시.

문평댁

우리도 저 옆에 성님처럼 그런 유복자라도 있으면 이대로 늙는다는 것도 말이 될 것이요만.

동강댁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문평댁

금매라우. 나 역시 평생을 혼자 산다는 것도 말이 아이고, 참 어째야 쓸지 모르겄소.

동강댁

모다 차양난피양난(此兩難彼兩難)들이지. 남편은 고사하고 식구라도 한나나 있으면 함께들 낙을 붙이고 산단 마세.

문평댁

금매라우. 성님하고 나하고는 해필 식구 하나가 없어농께.

동강댁

허기사 나는 쩌 앞서 온 친정 동생 편에 아부니가 삼년상만 지내면 곧 오라고 기별해 보냈데만.

문평댁

성님은 친정이라도 있응께 쓰겄소만 나는 아무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겄소예.
……(고사리 씻는 소쿠리를 정리하면서)……

문평댁(자못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성님.(새살스럽게 동강댁을 부른다.)

동강댁

워이.

문평댁

앞선 날 밤에요잉.

동강댁

어째?

문평댁

저 옆에 성님 말이요.

동강댁

…...

문평댁

아따, 그 머심한테 준 담배 말이요.

동강댁

오오. 뚝보 양반한테 준 담배.

문평댁

그, 새 담배를 멀라고 사다놨는지 모르겄습디다이.

동강댁

금매……

문평댁

나는 암만해도 이상합디다. 이상해…

동강댁

손님 오면 줄라고 객초로 사다놨던 것 아닌가.

문평댁

객초나니나. 누가 담배 피로 올 손님이 있어서라우.

동강댁(사소한 일에 신경쓸게 뭐 있냐는 투로)

자네는 그런 것에만 맘이 가는 것이네이. 접때는 갈쿠 매준 것을 보고 그런 말을 하더니.

문평댁

피로 올 사람람이 누가 있어서 담배를 사놔라우. 그럼 성님도 객초를 사다놨는 것이요.

동강댁(입술을 삐쭉하고 웃으며)

움마움마! 자네는 꼭 그런 것에만 맘을 두는 것이네이. 내사 뭣한다고 객초를 사다논단가.

문평댁

그럼 왜 그런 소리를 하요.

동강댁

그래도 객초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좋제, 어째.

& 유복자네 / 안방

문평댁

성님, 애기 나 주고 가 그릇 서릊고 오씨요.

문평댁이 아이를 받아 안아 입을 맞춘다.

문평댁

어디, 나하고 걸음마 한번 해보께.

아이의 두 손을 잡고 걸음을 걸리는 문평댁

문평댁

자아, 걸음마 걸음마. 옛다 우리 유복자 잘 걷는다. 그렇제. 또 한 번…… 걸음마, 걸음마.

문평댁이 아이를 덥석 들어 안는다.

문평댁

아따, 우리 새끼이~~

유복자네가 그릇 설겆이를 하고 돌아온다.

문평댁

성님, 탈상이 이제 달포 남짓배께 안 남었지라우.

유복자네

금매 그런 것이네.

문평댁

참, 뭣들 가지고 지사를 모시께라우? 나는 아직 노물거리배께 안 장만해놨는디.

유복자네

어쨌든 머리, 몸이나 깨끗이 깜고 힘에 닿는 대로 정성껏들만 모시제.

문평댁

그런디 성님은 탈상을 지내면 어떻게 안 하실라우?

개가하지 않겠냐는 의미를 담고 무든 문평댁

유복자네

금매 마시.

문평댁

성님은 이런 소생이라도 있응께 쓰겄소만, 우리는 어째야 졸찌 모르겄소예.

유복자네

나 역시 이것 하나를 믿고 평생을 늙는다는 것도 그렇고, 어째야 졸찌 모르겄네.

문평댁

참들 어째야 쓰게라우.

유복자네

……

문평댁

그런디 성님예.

유복자네

문평댁

어저께 저녁에 내가 여그서 오래까지 노다 가지 안 했소잉. 그런디 내가 집을 나가 가지고 이 옆에 사립문께를 막 돌아선께 박 선달네 머심이 작은성님네 집에서 나오고 있드란 말이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유복자네가 힐끗 문평댁을 치떠본다.

유복자네

……

문평댁

그때사~ 거그서 무슨 일을 보고 나오는지 모르겠습디다.(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유복자네를 본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동강댁(소리만)

성님

동강댁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뚝보(소리만)

이 가운데외짝네야. 천천히 좀 들어가. 누가 불알을 떼 가나.

뚝보가 들어온다. 순간 유복자네가 힐끗 문평댁의 눈치를 본다.

유복자네(동강댁에게)

앉소.
(이어서 뚝보에게) 뚝보 양반 오시요. 어서 오시요.

문평댁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진다.

문평댁

작은성님은 저녁마다 늦소이. 어째, 오늘 나무는 많이 했겠소.

문평댁은 서먹한 감정을 지우기 위해 애쓴다.

동강댁

워이. 하도 꼬리가 느린께 늦은 것 아닌가. 자네는 벌써 왔는가.

똑보(농담조로 문평댁을 향해)

작은외짝네는 멋이 그리 바뻐서 혼자 와. 나랑 함께 좀 오고 하제.
(이어서) 인. 주리를 틀 작은외짝네. 혼자만 그러지 말고. 큰외짝이나 가운데외짝처럼 나를 좀 생각해봐.(잠깐 사이를 뒀다가) 담배랑 좀 사다주면서.

문평댁(당황하면서)

움마움마! 당신이 뭣이라고 내가 담배를 사다주고 말고 한다우.

동강댁(얼굴을 붉히면서)

저런 속없는 양반 좀 봐야. 내가 언제 당신한테 담배를 사다주고 말고 합디여.

유복자네

담배고 뭣이고 그만들 두소워이. 저런 늙어빠진 양반 한나 가지고 뭣들 그렇게 야단인가.

뚝보

인, 버릇없는 큰외짝이로고…… 늙어빠즈기는 누가 늙어빠졌어.

뚝보가 유복자네를 향해 눈을 흘기고 곰방대로 방바닥을 두들긴다.

뚝보

여봐, 큰외짝네. 그러지 말고 오늘밤에도 담배나 내놔.

유복자네

못 주겠오

뚝보

그러지 말고 내놔.

유복자네

이뻐서 주겄소.

뚝보

허허이!

이윽고 유복자네가 시렁에서 새 담배 한 봉을 꺼낸다.

뚝보(만족한 투로)

그럼 그래야지.(턱을 쓰다듬으며) 작은외짝이네도 나를 이렇게 좀 생각해봐, 응? 혼자만 그러지 말고.

문평댁

피이. 그럼 우리 집에도 놀로 오고 그러씨요. 그럼 내가 사다디리께.

뚝보

함, 그래야지.

동강댁

아따! 그런 농담은 자그만이 하고 뚝보 양반, 이야기나 한나 해보씨요. 다 같이들 듣게.

뚝보

인, 알량한 가운데외짝이네로고…… 아까는 누가 불알을 떼 갈까봐 그렇게 혼자 빨리 들어왔어.

동강댁

그런 말은 그만두고 이야기나 한나 해보란 말이요.

뚝보

그럼 하나 하지.

까마득한 옛날… 산골짝에 이쁜 외짝이 살고 있었다네. 첫날밤에 남편이주당을 맞아 죽었어. 청상과부가 된 외짝을 탐낸 이웃마을 부자가 보쌈을 했다네. 보쌈 알아? 하인들이 그 외짝을 저녁에 쌈을 해와서 곁방에 자고 있는 자기 딸 방에서 숨을 돌리기로 했다네. 근디, 다음날 보니까 이쁜 외짝이 아니고 외짝 남동생이 있드라네. 그래서 딸하고 외짝 남동생하고 혼인을 했당 안한가. 외짝이 보쌈당할 것을 알고 남동생을 재웠다네 그려.

이야기를 들은 여인들 동시에

유복자네

참,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도 어두웠오잉.

문평댁

오매오매! 그 남자는 참말로 허망했겠네에.

동강댁

그럼 그 남자 대신 홀어미 남동생은 참, 오진 꼴도 봤겄소.

뚝보

그렁께 이 외짝네들아, 어서어서 시집을 가. 옛날 사람 모양 수절만 하고 있다 어느 놈이 와서 채가버리면 어떡헐테.

문평댁

피이

뚝보

그렁께 망설이지들 말고 어서어서 제 짝을 찾아가서 온짝들이 되랑께.

문평댁

그럼 뚝보 양반은 늙도록 외짝으로만 지낼라우. 여편네도 없이.

뚝보(유복자네와 동강댁을 번갈아 가리키며)

봐, 나는 여그도 있고 여그도 있제.
순간 유복자네와 동강댁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당황한다. 문평댁은 제법 당당한 자세로 두 여인을 번갈아 비웃음을 지면서 힐끗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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