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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젊은 홀어미들(전체_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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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홀어미들

원작: 오유권 소설 ‘젊은 홀어미들’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유복자네(26세)
동강댁(24세)
문평댁(24세)
뚝보(박선달네 머슴, 40세)

주요 등장인물 성격

유복자네(26세): 애송이골 세 여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맏언니이다. 전시에 남편이 같은 날 사망하여 처지가 같은 동강댁, 문평댁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면서 산다. 그녀는 유복자 아이와 함께 살면서 가세도 세 사람 중에서 제일 낫다. 언니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이해심이 많은 여인으로 나중에 문평댁의 새로운 삶을 도와준다.

동강댁(24세): 문평댁보다 생일이 두 달 앞서서 언니 노릇을 한다. 문평댁과 유복자네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면서 문평댁을 다독이고 위로하기도 하지만 질투도 한다. 동강(전남 나주에 있는 지역)에 친정 가세가 무난해서 문평댁의 부러움을 산다.

 

문평댁(24세): 가장 아랫사람으로 자처하고 항상 언니들에게 다감하게 대하는 말쑤가 많은 성격으로 활발하다. 두 홀어미보다 미모를 갖췄다. 친정에 부모가 없고 친척은 몇 있으나 의탁할 처지는 아니다. 남편이 죽은 후 가장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인으로 박선달네 머슴 뚝보에 대한 관심이 많아 적극적으로 뚝보의 관심을 끈다.

 

뚝보(40세): 박선달네 머슴으로 십년 이상 자기 일처럼 선달네 살림과 일을 보살피는 건강하지만 무뚝뚝한 전형적인 시골 일꾼이다. 세 홀어미들과 스스럼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순박한 듯 하지만 문평댁을 안달나게 만드는 영악함도 있다. 박선달네로부터 세밑이 되기 전에 세경을 치러 마을을 먼저 떠난다.

1954년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장소

영산포 근처 강 가까이 있는 애송이골

무대

유복자네 집을 비롯한 애송이골 여기저기

# 제1막(유복자네 집)

& 유복자네 / 안방

유복자네가 무릎의 아이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다. 자고 있는 유복자의 볼에 뺨을 가져다 아이의 볼을 문지른다.

문평댁(소리만)

성님 계시요.

유복자네

워이 있네.

문평댁(문을 들어서면서)

작은성님은 아직 안 왔겄소?

유복자네

곧 오겄제.

문평댁(아이가 눈을 뜨자, 아이를 정겹게 보면서)

유복자야아. 잠 많이 잤는가. 응? 잠 많이 잤어?
(아이를 웃기다가)
성님, 애기 자지 큰 것 보씨요예. 쉬 들었겄소. 쉬 시키씨요.

아이를 요강에 앉히는 유복자네. 아이가 벙긋이 웃는다.

문평댁

참, 성님은 이런 유복자라도 있응께 쓰것소만 우리는 남편이라고 만나가지고 씨 한나도 못 받아놔서 어쩌께라우.

유복자네

그렇지만 자네들은 아직도들 나이가 안 어린가.

문평댁

그래도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지라우.

유복자네

그럴 것이네.

문평댁(일견 무심한 듯한 빛을 띠고)

그런디 성님. 이 옆에 박 선달네 머심은 참 오래도 삽디다잉.

유복자네

그 집으로 봐선 그 머심이 보물 아닌가.

문평댁

일도 참 억척스럽게 잘한닥 합디다예.

유복자네

그런다고들 해싸테. 나이는 마흔 살이라고 하데만, 아직 일하는 것을 보면 한 서른댓 살배께 안 묵어 보여.

문평댁

머심이 부지런해서 그 집은 참 든든하겄소.

유복자네

그래 장차 머심이 나가게 되면 살림도 좀 덜어준닥 않든가. 자식들도 다 죽고 그 살림을 다 뭣할 것인가.

문평댁

그래라우잉. 그런디 그 머심 양반이 우리들 있는 디는 잘 와라우잉. 오늘 저녁에도 놀로 올란지 모르겄소.

유복자네

그 양반도 혼자 있기가 심심항께 그런 것 아닌가.

동강댁(소리만)

동생은 벌써 왔는가.

문평댁

예. 몬자 왔소. 어서 오씨요.

방으로 들어온 동강댁은 부산히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유복자네를 향해 아이를 보겠다고 나선다.

동강댁

성님. 나, 애기 좀 이리 주씨요.

동강댁이 아이를 받는다.

동강댁

유복자야아, 나하고 걸음마 한번 해보께. 응? 한번 해보세이~. 자아…… 걸음마. 걸음마. 에에 우리 유복자 걸음마 잘한다.

문평댁

아따 거 성님, 애기 다리 찢어지겄소. 쌀쌀 좀 걸리씨요.

동강댁

그래도 이 사람아, 잘만 걷네.

동강댁이 아이를 불끈 들어 안는다.

동강댁

그런디 성님, 탈상이 낼모레들인디 뭣 가지고들 지사를 모시께라우.

죽은 남편들의 제사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남편들이 난리통에 같은 날 사망해서 제삿날이 같다.

유복자네

닥치는 대로 하제 어째. 마을이 커서, 조문 올 손님이 있겄는가? 음식을 만들어도 묵을 사람이 있겄는가?

동강댁

그래도 새비(새우의 전라도 시투리)는 못 잡아도 개는 개대로 치드라고… 지삿상에 올릴 것은 다 안 올려야 쓰겄소.

유복자네

밤, 대추나 깎고 떡, 술이나 괴 올리면 쓰제 어째.

문평댁

대체 간단히들 합씨다. 지삿상 걸면 뭣한다우.

동강댁(문평댁을 향해)

그래도 이 사람아. 탈상인디 그래.

유복자네

탈상이고 뭣이고 정성껏들만 해두세. 죽은 혼령이 와서 밥을 묵겄는가? 조문 올 사람이 있어서 술을 묵겄는가?

뚝보(밖에서 소리만)

내가 조문 가서 묵어주께 많씩들 장만해놔.

박선달네 머슴 뚝보가 들어온다. 무뚝뚝하고 멍청하게 보인다고 해서 홀어미들이 부친 별명이다.

홀어미들

뚝보 양반 오시요. 어서 오씨요.

뚝보(문 열고 들어오면서)

밥들 처묵었는가. 이 외짝네들아.(홀로 산다고 해서 ‘외짝네’라고 여인들을 부른다.)

홀어미들은 자리를 비껴 앉고, 뚝보는 아랫목으로 가 덥석 앉는다.

문평댁(비꼬지만 귀엽게)

치이, 뚝보 양반은 외짝 아닌 온짝인께.

뚝보

그래도 내 짝은 아무 데나 있어. 봐, 여그만 해도 벌써 셋이 줄한 것.

유복자네(눈을 가볍게 흘기면서)

움마움마! 저 양반은 웃어운 소리를 다하더라이.

뚝보(빈 곰방대를 방바닥에 톡톡 때리면서)

큰외짝네야. 그렇게 흘겨보지 말고 담배나 한 대 내놔.

유복자네

아니, 이빼서 담배 주겄소.

뚝보

이쁘나 미우나 한 대 내놔.

유복자네(시렁에서 새 담배 한 봉을 내리면서)

인, 모개 같은 양반이 코가 노래지도록 담배만 필랑 것이네.

순간, 문평댁과 동강댁은 멈칫 놀래면서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문평댁(빈정대듯 웃으며)

성님은 뚝보 양반이 그렇게도 이쁜 것이요잉.

뚝보

우리 큰외짝이 나를 생각하제, 누가 나를 생각할 것인가.

유복자네(볼이 발그레하게 붉어지며 웃음이 가늘게 스치며)

움마움마!

무대: 어두어진다.

# 제2막(개울가)

& 개울가 / 고사리를 씻으면서

문평댁

성님은 이번 지사를 모시곤 어떻게 안 하실라우?

탈상 후에 개가를 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묻는다.

동강댁

금매 마시.

문평댁

우리도 저 옆에 성님처럼 그런 유복자라도 있으면, 이대로 늙는다는 것도 말이 될 것이요만.

동강댁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문평댁

금매라우. 나 역시 평생을 혼자 산다는 것도 말이 아니고, 참 어째야 쓸지 모르겄소.

동강댁

모다 차양난피양난(此兩難彼兩難)들이지. 남편은 고사하고 식구라도 한나나 있으면 함께들 낙을 붙이고 산단 마세.

문평댁

금매라우. 성님하고 나하고는 해필 식구 하나가 없어농께.

동강댁

허기사 나는 쩌 앞서 온 친정 동생 편에 아부니(아버지의 나주 사투리)가 삼년상만 지내면 곧 오라고 기별해 보냈데만.

문평댁

성님은 친정이라도 있응께 쓰겄소만 나는 아무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겄소예.
……(고사리 씻는 소쿠리를 정리하면서)……

문평댁(자못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성님.(새살스럽게 동강댁을 부른다.)

동강댁

워이.

문평댁

앞선 날 밤에요잉.

동강댁

어째?

문평댁

저 옆에 성님 말이요.

동강댁

…...

문평댁

아따, 그 머심한테 준 담배 말이요, 담배.

동강댁

오오. 뚝보 양반한테 준 담배.

문평댁

그, 새 담배를 멀라고 사다놨는지 모르겄습디다이.

동강댁

금매……

문평댁

나는 암만해도 이상합디다. 이상해…

동강댁

손님 오면 줄라고 객초로 사다놨던 것 아닌가.

문평댁

객초나니나. 누가 담배 피로 올 손님이 있어서라우.

동강댁(사소한 일에 신경쓸게 뭐 있냐는 투로)

자네는 그런 것에만 맘이 가는 것이네이. 접때는 갈쿠 매준 것을 보고 그런 말을 하더니.

문평댁

피로 올 사람이 누가 있어서 담배를 사놔라우. 그럼 성님도 객초를 사다놨는 것이요.

동강댁(입술을 삐쭉하고 웃으며)

움마움마! 자네는 꼭 그런 것에만 맘을 두는 것이네이. 내사 뭣한다고 객초를 사다논단가.

문평댁

그럼 왜 그런 소리를 하요.

동강댁

그래도 객초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좋제, 어째.

& 유복자네 / 안방

문평댁

성님, 애기 나 주고 가 그릇 서릊고 오씨요.

문평댁이 아이를 받아 안아 입을 맞춘다.

문평댁

어디, 나하고 걸음마 한번 해보께.

아이의 두 손을 잡고 걸음을 걸리는 문평댁

문평댁(전에 동강댁이 하듯이… 그때 동강댁 행동이 부러윘었다.)

자아, 걸음마 걸음마. 옛다 우리 유복자 잘 걷는다. 그렇제. 또 한 번…… 걸음마, 걸음마.

문평댁이 아이를 덥석 들어 안는다.

문평댁

아따, 우리 새끼이~~

유복자네가 그릇 설겆이를 하고 돌아온다.

문평댁

성님, 탈상이 이제 달포 남짓배께 안 남었지라우.

유복자네

금매 그런 것이네.

문평댁

참, 뭣들 가지고 지사를 모시께라우? 나는 아직 노물거리배께 안 장만해놨는디.

유복자네

어쨌든 머리, 몸이나 깨끗이 깜고 힘에 닿는 대로 정성껏들만 모시제.

문평댁

그런디 성님은 탈상을 지내면 어떻게 안 하실라우?

개가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묻는 문평댁

유복자네

금매 마시.

문평댁

성님은 이런 소생이라도 있응께 쓰겄소만, 우리는 어째야 졸찌 모르겄소예.

유복자네

나 역시 이것 하나를 믿고 평생을 늙는다는 것도 그렇고, 어째야 졸찌 모르겄네.

문평댁

참들 어째야 쓰게라우.

유복자네

……

문평댁(비밀스런 얘기를 꺼내겠다는 듯이)

그런디 성님예.

유복자네

문평댁

어저께 저녁에 내가 여그서 오래까지 노다 가지 안 했소잉. 그런디 내가 집을 나가 가지고 이 옆에 사립문께를 막 돌아선께, 뚝보 양반이 작은성님네 집에서 나오고 있드란 말이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유복자네가 힐끗 문평댁을 치떠본다.

유복자네

……

문평댁

그때사~ 거그서 무슨 일을 보고 나오는지 모르겠습디다.(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유복자네를 본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동강댁(밖에서 소리만)

성님.

동강댁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뚝보(소리만)

이 가운데외짝네야. 천천히 좀 들어가. 누가 불알을 떼 가나.

뚝보가 들어온다. 순간 유복자네가 힐끗 문평댁의 눈치를 본다.

유복자네(동강댁에게)

앉소.
(이어서 뚝보에게) 뚝보 양반 오시요. 어서 오시요.

문평댁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진다.

문평댁

작은성님은 저녁마다 늦소이. 어째, 오늘 나무는 많이 해겠소.

문평댁은 서먹한 감정을 지우기 위해 애쓴다.

동강댁

워이. 하도 꼬리가 느린께 늦은 것 아닌가. 자네는 벌써 왔는가.

똑보(농담조로 문평댁을 향해)

작은외짝네는 멋이 그리 바뻐서 혼자 와. 나랑 함께 좀 오고 하제.
(이어서) 인. 주리를 틀 작은외짝네. 혼자만 그러지 말고. 큰외짝이나 가운데외짝처럼 나를 좀 생각해봐.(잠깐 사이를 뒀다가) 담배랑 좀 사다주면서.

문평댁(당황하면서)

움마움마! 뚝보 양반이 뭣이라고 내가 담배를 사다주고 말고 한다우.

동강댁(얼굴을 붉히면서)

저런 속없는 양반 좀 봐야. 내가 언제 당신한테 담배를 사다주고 말고 합디여.

유복자네

담배고 뭣이고 그만들 두소워이. 저런 늙어빠진 양반 한나 가지고 뭣들 그렇게 야단인가.

뚝보

인, 버릇없는 큰외짝이로고…… 늙어빠즈기는 누가 늙어빠져.

뚝보가 유복자네를 향해 눈을 흘기고 곰방대로 방바닥을 두들긴다.

뚝보

여봐, 큰외짝네. 그러지 말고 담배나 내놔.

유복자네

못 주겠오

뚝보

그러지 말고 내놔.

유복자네

이뻐서 주겄소.

뚝보

허허이!

이윽고 유복자네가 시렁에서 새 담배 한 봉을 꺼낸다.

뚝보(만족한 투로)

그럼 그래야지.(턱을 쓰다듬으며) 작은외짝이네도 나를 이렇게 좀 생각해봐, 응? 혼자만 그러지 말고.

문평댁(입을 삐쭉 거리며)

피이. 그럼 우리 집에도 놀로 오고 그러씨요. 그럼 내가 사다디리께.

뚝보

함, 그래야지.

동강댁

아따! 그런 농담은 자그만이 하고 뚝보 양반, 이야기나 한나 해보씨요. 다 같이들 듣게.

뚝보

인, 알량한 가운데외짝이로고…… 아까는 누가 불알을 떼 갈까봐 그렇게 혼자 빨리 들어왔어.

동강댁

그런 말은 그만두고 이야기나 한나 해보란 말이요.

뚝보

그럼 하나 하까.

까마득한 옛날… 산골짝에 이쁜 외짝이 살고 있었다네. 첫날밤에 남편이 주당을 맞아 죽었어. 청상과부가 된 외짝을 탐낸 이웃마을 부자가 보쌈을 했다네. 보쌈 알아? 하인들이 그 외짝을 저녁에 쌈을 해와서. 곁방에 자고 있는 자기 딸 방에서 숨을 돌리기로 했다네. 근디, 다음날 보니까 이쁜 외짝이 아니고 외짝 남동생이 있드라네. 그래서 딸하고 외짝 남동생하고 혼인을 했당 안한가. 이쁜 외짝이 보쌈당할 것을 알고 남동생을 재웠다네 그려.

이야기를 들은 여인들 거의 동시에, 그러나 약간의 짬을 두고…

유복자네

참,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도 어두웠오잉.

문평댁

오매오매! 그 남자는 참말로 허망했겠네에.

동강댁

그럼 그 남자 대신 홀어미 남동생은 참, 오진 꼴도 봤겄소.

뚝보

그렁께 이 외짝네들아, 어서어서 시집을 가. 옛날 사람 모양 수절만 하고 있다 어느 놈이 와서 채가버리면 어떡헐텨.

문평댁(입을 삐쭉거리며)

피이

뚝보

그렁께 망설이지들 말고 어서어서 제 짝을 찾아가서 온짝들이 되랑께.

문평댁

그럼 뚝보 양반은 늙도록 외짝으로만 지낼라우. 여편네도 없이.

뚝보(유복자네와 동강댁을 번갈아 가리키며)

봐, 나는 여그도 있고 여그도 있제.

순간 유복자네와 동강댁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당황한다. 문평댁은 제법 당당한 자세로 두 여인을 번갈아 비웃는 투로 힐끗 본다.

무대: 어두어진다.

# 제3막(문평댁 집 / 겨울)

& 문평댁 집 / 창문 앞 / 밤

유복자네와 동강댁이 문평댁 집 창문 앞에서 눈을 맞고 서있다. 가끔 번갈아 창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본다. 두 여인의 눈에 불같은 질투가 이글거린다. 그러다가 서로 소근거린다.

유복자네

저 양반은 저러고 곧 나올랑 것 아닌가.

동강댁

그럼 내가 몬자 집으로 가께라우?

유복자네

자네가 남었다가 데리고 가소. 나는 몬자 집으로 가께.

동강댁

그럼 성님이 뒤에 보실라우?

유복자네

워이. 자네가 몬자 보소. 나는 집으로 가 있으께.

유복자네가 돌아간다

유복자네(돌아 나가면서, 혼잣말로)

인, 의뭉한 예편네!

동강댁이 다시 창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 본다.

문평댁(소리만)

나는 유복자네하고 동강댁이 담배랑 사다디리고 해서 그새 무슨 정분이 깊었나 했어라우.

뚝보(소리만)

아니제, 작은외짝이 오늘 첨이제. 그렁께 작은외짝이 첫 사람이나 다름없제.

문평댁(소리만, 만족스럽다는 투로)

그렁께 유복자네하고 동강댁은 겉으로만 그랬제, 속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만이라우.

뚝보(소리만)

그렇제. 겉으로들만 맘이 달아가지고 그랬제.

동강댁의 얼굴빛이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계속 방안을 들여다 본다.

문평댁(소리만)

그럼, 나하고 같이 삽시다잉.

뚝보(소리만)

하는 것을 봐서.

문평댁(소리만)

아따! 그냥 같이 삽시다이.

뚝보(소리만)

그럼 작은외짝이 나를 젤 생각할랑가.

문평댁(소리만)

생각하고 말고라우.

뚝보(소리만)

그럼 생각해봐서.

동강댁은 조용히 마당을 돌아서 사립문 밖으로 나온다.

& 동강댁 / 창문 앞

유복자네가 창구멍으로 안을 들여다 보다가 ‘의뭉한 예편네!’ 하다가 다시 들여다 본다.

뚝보(소리만)

거 작은외짝이 그래 뵈도 보통 내기가 아니데. 마구 찰거머리처럼 들어붙는디 그래. 큰외짝은 살림이 탐탁한디다 자식까지 있고.(침을 삼키고) 또 가운데외짝만 하드라도 친정이 버젓하고 하지만….. 자기만이 올데갈데 없는 외짝이라면서……마구 달라붙지 않아.

동강댁(소리만)

어따 거, 숭굴숭굴한 예편네네. 그럼 어떻게 하실라우?

뚝보(소리만)

생각해봐서.

동강댁(소리만)

뭣을 생각하고 말고 해라우. 그냥 여그서 같이 있습시다. 다른 사람들은 탈상만 지내면 다들 딴 디로 시집갈 것이요.

뚝보(소리만)

생각해봐서.

동강댁(소리만)

그럼 나도 친정에 가서 한 살림 장만해 오께라우.

뚝보(소리만)

살림이 큰외짝만큼이나 하것는가.

동강댁(소리만)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니어라우.

뚝보(소리만)

그럼 생각해봄세.

유복자네 얼굴빛이 변한다. 뚝보가 동강댁을 나온다. 유복자네가 뚝보를 붙든다. 깜짝 놀란 뚝보를 향해

유복자네(뚝보를 끌고)

그렇게 중정 머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우.

뚝보(놀란 표정으로)

어째서?

유복자네

어째서라니?......
아무리 남자가 귀하고 여자가 많다지만. 이 여자한테도 흥, 저 여자한테도 흥, 그렇게 주책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우.

뚝보

그럼 큰외짝은 왜 이때까지 슬슬 빼기만 하고 있는가. 쪼끄만 건들어도 툭 쏘고. 응? 그렇게 영리한 작은외짝들이 얼렁 채가버렸제.

유복자네가 뚝보 소매를 잡고 무대에서 사라진다.

& 세 여인 각각 제사상 앞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퍼진다.

유복자네(타령조로)

아이고오 아이고오 불쌍해라. 젊은 한때 못다 살고 어디 가서 안 오는고. 당신 혼자 가고 없으니 이 자식과 어찌 살꼬. 어따어따 불쌍해라 세상에도 불쌍해라.

유복자네가 코를 칭 풀어 상복에다 닦는다.

문평댁(하소연 하듯이)

어따어따 어따어따아. 나는 이제 못 살것네. 갈 곳 없어 못 살겄네. 어미 없고 아비 없이 어느 누가 반겨줄고. 당신하고 살자더니 어디 가고 안 오는고. 어따어따 우리 낭군. 무정함도 무정해라.

동강댁(속으로 흐느낀다)

흥- 흥- 아이고 흥- 흥- 흥- 아이고 흥-

뚝보(소리만)

이 외짝네들아. 뭣이 그리 서러워서 울어싸는가. 정 설우면 술이나 한잔 내놓소. 나도 몽땅 묵고 같이 한번 울어보게.

세 여인 더 서럽게 운다.

& 영산강가 / 갈대밭

마을 노인네들

이 사람들아. 이렇게들 가버리니 이제 누구를 의지하고 살께

유복자네(마을 노인들을 향해)

그래도 다들 살제 못 살랍디여. 저나 이 사람을 나루까지 데려다주고 오께 어서들 들어가이시요.

마을 노인네

그럼 문평댁네, 잘 가소웨. 아무데나 가서 복 많이 받고 잘 살소. 만리 같은 청춘 아닌가.

문평댁(옷 고름에 눈물을 닦으면서)

그럼 평안히들 들어스입씨다.

마을 노인네들은 돌아가고, 유복자네와 문평댁은 무대 한 곁으로 이동한다.

문평댁(유복자네를 향해)

성님, 차신디 그만 들어가이시요.

유복자네

워이, 나는 좋네. 어서 배에 오르소.

문평댁

참말로 이렇게들 다 가버리고 성님 혼자 적적해서 어쩌시께라우.

유복자네

나야 유복자 한나 기르고 살면 자네들 남편 얻어 가는 거나 별다름 있겄는가. 내 걱정은 말고 부디 가서 잘 살소.

나룻배가 뜬다. 영산포 개산과 앙암이 보인다. 달빛에 넘실대는 물살이 화면(빔 프로젝터)에 비친다. 멀리서 갈대 사이로 뚝보 얼굴이 잠깐 비친다.(빔 프로젝터) 배를 기다리는 뚝보의 얼굴이 페이드아웃 되면서, 편안한 모습의 유복자네가 미소를 머금고 돌아선다. 박선달네 머슴 뚝보는 며칠 전 세밑도 되기 전에 세경을 먼저 받고 마을을 떠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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