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막(문평댁 집 / 겨울)
& 문평댁 집 / 창문 앞 / 밤
유복자네와 동강댁이 문평댁 집 뒷 창문 앞에서 눈을 맞고 서있다. 가끔 번갈아 창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본다. 두 여인의 눈에 불같은 질투가 이글거린다. 그러다가 서로 소근거린다.
유복자네
저 양반은 저러고 곧 나올랑 것 아닌가.
동강댁
그럼 내가 몬자 집으로 가께라우?
유복자네
자네가 남었다가 데리고 가소. 나는 몬자 집으로 가께.
동강댁
그럼 성님이 뒤에 보실라우?
유복자네
워이. 자네가 몬자 보소. 나는 집으로 가 있으께.
유복자네가 돌아간다
유복자네(돌아 나가면서)
인, 의뭉한 예편네!
동강댁이 다시 창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 본다.
문평댁(소리만)
나는 유복자네하고 동강댁이 담배랑 사다디리고 해서 그새 무슨 정분이 깊었나 했어라우.
뚝보(소리만)
아니제, 작은외짝이 오늘밤에 첨이제. 그렁께 작은외짝이 첫 사람이나 다름없제.
문평댁(소리만)
그렁께 유복자네하고 동강댁은 겉으로만 그랬제 속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만이라우.
뚝보(소리만)
그렇제. 겉으로들만 맘이 달아가지고 그랬제.
동강댁의 얼굴빛이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계속 방안을 들여다 본다.
문평댁(소리만)
그럼, 나하고 같이 삽시다잉.
뚝보(소리만)
하는 것을 봐서.
문평댁(소리만)
아따! 그냥 같이 삽시다거.
뚝보(소리만)
그럼 작은외짝이 나를 젤 생각할랑가.
문평댁(소리만)
생각하고 말고라우.
뚝보(소리만)
그럼 생각해봐서.
동강댁은 조용히 마당을 돌아서 사립문 밖으로 나온다.
& 동강댁 / 창문 앞
유복자네가 창구멍으로 안을 들여다 보다가 ‘의뭉한 예편네!’ 하다가 다시 들여다 본다.
뚝보(소리만)
거 작은외짝이 그래 뵈도 보통 내기가 아니야. 마구 찰거머리처럼 들어붙는디 그래. 큰외짝은 살림이 탐탁한디다 자식까지 있고.(침을 삼키고) 또 가운데외짝만 하드라도 친정이 버젓하고 하지만….. 자기만이 올데갈데 없는 외짝이라면서……마구 달라붙지 않아.
동강댁(소리만)
어따 거, 숭굴숭굴한 예편네네. 그럼 어떻게 하실라우?
뚝보(소리만)
생각해봐서.
동강댁(소리만)
뭣을 생각하고 말고 해라우. 그냥 여그서 같이 있습시다. 다른 사람들은 탈상만 지내면 다들 딴 디로 시집갈 것이요.
뚝보(소리만)
생각해봐서.
동강댁(소리만)
그럼 나도 친정에 가서 한 살림 장만해 오께라우.
뚝보(소리만)
살림이 큰외짝만큼이나 하것는가.
동강댁(소리만)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니어라우.
뚝보(소리만)
그럼 생각해봄세.
유복자네 얼굴빛이 변한다. 뚝보가 동강댁을 나온다. 유복자네가 뚝보를 붙든다. 깜짝 놀란 뚝보를 향해
유복자네(뚝보를 끌고)
그렇게 중정 머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우.
뚝보(놀란 표정으로)
어째서?
유복자네
어째서라니?......
아무리 남자가 귀하고 여자가 많다지만. 이 여자한테도 흥, 저 여자한테도 흥, 그렇게 주책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우.
뚝보
그럼 큰외짝은 왜 이때까지 슬슬 빼기만 하고 있는가. 쪼끄만 건들어도 툭 쏘고. 응? 그렇게 영리한 작은외짝들이 얼렁 채가버렸제.
유복자네가 뚝보 소매를 잡고 무대에서 사라진다.
& 세 여인 각각 제사상 앞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퍼진다.
유복자네
아이고오 아이고오 불쌍해라. 젊은 한때 못다 살고 어디 가서 안 오는고. 당신 혼자 가고 없으니 이 자식과 어찌 살꼬. 어따어따 불쌍해라 세상에도 불쌍해라.
유복자네가 코를 칭 풀어 상복에다 닦는다.
문평댁
어따어따 어따어따아. 나는 이제 못 살것네. 갈 곳 없어 못 살겄네. 어미 없고 아비 없이 어느 누가 반겨줄고. 당신하고 살자더니 어디 가고 안 오는고. 어따어따 우리 낭군. 무정함도 무정해라.
동강댁(속으로 흐느낀다)
흥- 흥- 아이고 흥- 흥- 흥- 아이고 흥-
뚝보(소리만)
이 외짝네들아. 뭣이 그리 서러워서 울어싸는가. 정 설우면 술이나 한잔 내놓소. 나도 몽땅 묵고 같이 한번 울어보게.
세 여인 더 서럽게 운다.
& 영산강가 / 갈대밭
마을 노인네들
이 사람들아. 이렇게들 가버리니 이제 누구를 의지하고 살께
유복자네(마을 노인들을 향해)
그래도 다들 살제 못 살랍디여. 저나 이 사람을 나루까지 데려자주고 오께 어서들 들어가이시요.
마을 노인네
그럼 문평댁네, 잘 가소웨. 아무데나 가서 복 많이 받고 잘 살소. 만리 같은 청춘 아닌가.
문평댁(옷 고름에 눈물을 닦으면서)
그럼 평안히들 들어스입씨다.
마을 노인네들은 돌아가고, 유복자네와 문평댁은 무대 한 곁으로 이동한다.
문평댁(유복자네를 향해)
성님, 차신디 그만 들어가이시요.
유복자네
워이, 나는 좋네. 어서 배에 오르소.
문평댁
참말로 이렇게들 다 가버리고 성님 혼자 적적해서 어쩌시께라우.
유복자네
나야 유복자 한나 기르고 살면 자네들 남편 얻어 가는 거나 별다름 있겄는가. 내 걱정은 말고 부디 가서 잘 살소.
나룻배가 뜬다. 영산포 개산과 앙암이 보인다. 달빛에 넘실대는 물살이 화면(빔 프로젝터)에 비친다. 멀리서 갈대 사이로 뚝보 얼굴이 잠깐 비친다. 배를 기다리는 뚝보의 얼굴이 페이드아웃 되면서, 편안한 모습의 유복자네가 미소를 머금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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