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막
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마을 사람들의 귀마다 저와 같이 울리는 방아소리는 그것이 그대로 자연을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의미하는 복음이라고 생각했다. 기수네 이모는 오늘밤에는 기필코 밀린 이자를 받아내리라고 다짐한다. 방아소리를 유일하게 미워하는 사람은 태실이 할아버지다. 그는 기계방아가 마을을 망치는 원흉이라 생각한다.
& 태실네 / 마당
태실이 할아버지(혼잣말로)
에잇 툇!
(사이)
방아 좀 안 찧는 것이 그리 좋아서 팽팽한 육신을 놀려서 뭐 할라고.
에잇 툇툇툇!
태실네 할아버지는 아낙들이 기계방아에 맞기고 자신들 방아 찧는 일에서 해방된 것을 고깝게 생각한다. 결국 기계방아가 내는 먼지와 시끄러운 소리로 마을은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기수네 이모를 봤기에 기분이 더러워서 침을 뱉고 헛기침을 한다.
태실이 할아버지(집으로 들어서며)
애비 있냐?
덕수
이제 오십니꺼.
덕수가 방문을 열고 일어서서 나오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린다.
태실네 할아버지
그래 이놈아, 할 일이 그리 없어서 품삯도 없는 집 일을 하러 다니냐. 뭣이 좋아서 그 여편네 일을 갔냐.
덕수
빚진 죄인이라니 하는 수 있소. 일이라도 해주락 한께 해줘야줘.
할아버지
에잇 못난 자식. 여편네는 못 찾아주락 할망정 그런 종노릇을 하고 다녀야. 그래 너는 방아 소리가 듣기 좋으냐.
덕수
아버니, 일찍이 누우십시오.
할아버지
흥! 이러고 있은께 술 한잔 먹을 데가 없는 줄 아냐. 안 노인이 공술 한잔 줘서 먹었다.
덕수
잘 하셨습니다. 어서 누십시요.
할아버지
여편네를 안 찾아주면 그년 집에 가서 파고 살아라. 김장도 그년보고 담아주락 하고.
태실이 할아버지는 기수네 이모가 돈만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며느리가 나갔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수네 이모 때문에 며느리가 돈에 눈이 어두워서 나간 것이라고.
덕수
어서 들어가서 주무셔요.
할아버지
그년 때문에 며느리 생사도 모르게 됐는디… 죽지만 않았으면 오기는 올 것이다만.
태실이 할아버지는 며느리에 대한 믿음이 있다. 태실이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 마을 거리
방앗간 일꾼이 기계를 손보다 팔을 잘려 면소 간이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집 일꾼에 업혀 지나간다. 업혀가는 일꾼은 팔이 축 쳐져있고 신음 소리를 내면서 무대에서 사라진다.
아낙 1
오메 저런이라니!
아낙 2
어따어따! 어쩌다가 그랬당가.
아낙 3
기계는 항상 무섭다 마시. 일꾼도 일꾼이지만 기수네 이모가 되었는가.
사라진 일꾼 뒤로 부리나케 기수네 이모도 따라간다.
기수네 이모
이 일을 어째사 쓸고이.
(사이… 앞서서 떠난 일꾼을 보고)
피 더 안 흐르게 꽉 좀 붙잡으시요.
(사이) 피 덜 흐르게 꽉 좀 붙잡으란 말이요.
아낙 1
어쩌다가 그랬다우.
기수네 이모(건성으로)
일 하다가 … 기계 손보다가(말의 두서가 없다. 그리고 무대 밖으로 서둘러 사라진다.)
기수네 이모(소리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을 텐디… 누구보다 일을 하락할까?
일꾼 팔도 팔이지만 들어갈 비용에 앞으로 일할 사람 없는 것 등이 막막한 것이다.
& 주막
태실이 할아버지는 안 노인네 술집으로 갔다. 젊은이들 셋이서 술상을 받고 있다.
청년 1
나오십니껴.
할아버지(건성으로 말을 들으며)
들어보소들.
(사이)
툇!(가래를 뱉는다.)
청년들
…
할아버지
방앗간 차려서 좋다고들 하더니 좋은 것이 얼마나 있는가. 당장 절구질 좀 안 하고 물레 안 틀게 살지 알고들. 팽팽한 육신들 놔두고 얼마나 편할라고 기계방아 기계방아들 해. 팔 잘라지기 다행이지 만일 머리라도 감겼어보소. 대갈통이 달아나서 당장 죽었지. 방앗간 차린 뒤로는 시끄러워서 잠을 편히 잘 수 있는가.
청년 2(말 대접으로)
그러시고 말고라우. 올라앉으십쇼.
할아버지
자네들이나 들소.
청년 3
올라앉읍시다.(술을 따른다.)
할아버지(술청에 앉으면서)
금메 마시. 그놈의 먼지는 온 천지를 덮어서 희뿌옇고. 기계방아가 마을을 다 망친단 마시. (사이) 근디, 무슨 트럭을 산다고 하더만. 그것이 편하고 좋은 것 같지만 기계방아에 팔 잘리듯이 그것도 필경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랑께.
청년들
…
할아버지
발달 발달. 신식 신식, 해쌌지만 발달하고 신식이 돼서 뭐가 얼마나 좋아졌는가. 좋아진 것이 있다면 몸이 좀 편해졌을 뿐이제. 사람 사는 마을은 마음들이 편해야제…
청년들
…
할아버지
편히 살려다가 빨리 죽기 십상이여. 봐~ 방앗간 일꾼을. 그게 모다 저연을 배반하고 천심에 반역하는 결과여.
청년1
어서 잔 드십시다.
할아버지
들게들.
무대: 어두워진다.
& 태실네
태실네 식구는 일찍이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각각 나간 아내와 며느리 생각에 잠겨있다. 그때 밖에서 기수네 이모가 기척을 한다.
기수네 이모(소리만)
흐음!
덕수(심지에 불을 붙이고 방문을 연다.)
웬일이요?
기수네 이모
방앗간이 밀려서 그런디 손 좀 봐주실라우?
덕수
…
기수네 이모
기술자도 없고 죽겄구만이라우. 저녁만 나와서 거들어주쇼.
덕수
그럽시다.
할아버지(역정 난 목소리)
가기는 어디를 가야.
덕수(할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는 가만히 계시쇼.
할아버지
손 잘릴라고 가야.
덕수
빚이 원수지라우. 다녀 오께라우.
기수네 이모와 덕수가 무대에서 사라지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 기수네 이모 방앗간
세 사람, 네 사람이 싸댔는데도 정미는 첫닭이 훼칠 무력에야 가까스로 끝났다.(음향: 닭 우는 소리) 솜은 내일 타기로 하고 덕수는 대강 비질을 하고 마무리 짓는다.
기수네 이모
된 참 했소. 갑시다. 가서 막걸리나 한잔 하쇼.
기수네 이모가 안채로 향한다. 뒤 따르는 덕수가 손을 털고 머리 수건을 벗어 턴다. 기수네 이모는 사라졌다가 다시 안채로 들어서고 덕수는 옷을 털고 참을 들 준비를 한다. 기수네 이모는 그 사이에 세수까지 하고 들어온다. 수건으로 낯을 닦는다.
기수네 이모
앉으시요.
덕수
밤중에 안 되었소.(기수네 이모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는다.)
기수네 이모
안 되기는 뭣이 안 되라우. 집이하고 할 말도 좀 있고 해서 오시락 했소.
기수네 이모는 술상을 봐온다. 이미 준비됐는지 신속하게 들고 들어온다. 뚝배기에 남실거리는 탑탑한 막걸리가 군침을 돌게 한다. 덕수는 침을 꿀꺽 삼킨다.
기수네 이모(술을 따르면서)
드십시오.
덕수
미안하요.
덕수는 잔을 쭈욱 들이킨다. 그 모습을 기수네 이모가 빤히 쳐다본다.
기수네 이모
빚은 언제 갚으실라우?(내용에 비해 말투가 평온하다.)
덕수
갚을 날이 있제 없을랍디여.
기수네 이모
갚기 어려울 것 같으면 방앗간 일이나 쭈욱 봐주쇼. 일꾼도 그렇게 돼버렸겠다. 사람을 하나 써야겠는디 돈이 있소? 돈이. 병원비가 자그마치 만 원도 더 들 것 같다는디. 내일 도립병원으로 간다우. 어디가 병원비 뿐이요. 우리 일을 하다 그랬은께 퇴원을 해도 쌀가마니는 안 줘야겠지라우.
덕수
글쎄라우.
기수네 이모
차를 살라고 했는디, 다 글러부렀소. 이자 주시란 말 안 하께 방앗간 일 좀 봐주쇼.
덕수
우리는 누가 벌어묵고 살게라우.
기수네 이모(부드러운 말투로)
아따! 잘만 하시면 다 거기 있지 않소.
덕수
그럴라면 빚 대신 나를 아주 가져가시요.
기수네 이모(말꼬리를 흐리면서)
저 양반이 못할 말이 없다이.
덕수
그럴 것 뭐 있는가. 방앗집 돌봐주께 마누라 삼세.
덕수는 기수네 이모 손을 끈다.
기수네 이모(앙탈이 아닌 아양조로)
움마움마! 이 양반 봐야.
덕수
오라 마시, 이리.
덕수는 불을 훅 끈다. 그리고 기수네 이모 허리를 끌어 안는다.
무대: 어두워진다.
& 같은 장소 / 다음날
둘이는 늦잠을 자고 있다. 밖에서 성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음향)
할아버지(소리만)
이놈아, 뭣이 좋아서 잠까지 자고 있냐. (사이) 니 여편네 왔다. 어서 오니라.
덕수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선다. 기수네 이모는 옷 매무새를 고치고 사라진다.
할아버지
섬에 가서 미역장사하고 왔단다.
기수네 이모(소리만)
오메, 그럼 내 돈 받아야겄네.
할아버지
돈은 무슨 돈. 한 이불 속에서 잔 여자가 무슨 돈.
무대: 어두워지고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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