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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오유권 원작, 참외(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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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원작: 오유권 소설 ‘참외’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장사꾼 사내
과수댁
용산댁
신동댁
신동댁네 조카
신동댁네 머슴
참외장수 노인
과수댁 아이들

주요 등장인물 성격

장사꾼 사내: 되넘기(물건을 사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넘겨 파는 일) 장사꾼. 김평장을 볼 때는 장짐을 과수댁에 맡기고 다닌다. 과수댁 아이들의 허기를 때우도록 돕기도 하고, 나중에 참외값을 지불할 것을 마음먹고 참외밭에서 외를 따다 아이들에게 준다. 이 일이 과수댁에게 불리한 소문의 원인이 된다.

과수댁: 8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삼남매를 어렵게 키우는 과부. 품앗이도 하고 이삭도 주워 모으면서 열심히 산다. 김평장으로 향하는 길갓집이라 장사꾼들 짐도 간수해주기도 한다. 좋지 않은 소문에 병이 날 정도로 결백증도 있다. 잘못된 소문의 경위를 풀기 위해 장사꾼 사내를 기다리다가 결국 반가움만 표하고 만다.

용산댁: 김평에서 외밭 등 농사를 짓는 자작농 아낙. 시기심이 많고 말을 물어내는 여인으로 과수댁의 행실을 의도적으로 부풀려 소문을 낸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장사꾼이 나타나자 슬며시 몸을 숨기는 비겁한 행태를 보인다.

신동댁: 김평장으로 향하는 곳 참외밭 주인. 자신의 외밭에 도둑이 들었다고 자신의 조카를 대표로하는 조사단을 꾸린다. 머슴을 둘 정도로 등장인물 중 경제적 여유가 제일 낫다. 참외 도난 사건 조사 중에 용산댁의 부풀린 증언을 듣고 과수댁을 의심하고 과수댁 행실을 나쁜 쪽으로 몰아간다.

1950년대 초반의 여름 한때

장소

김평(가상의 지역)장 근처.
추정하건대 영산포장과 현재의 용산주공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주무대인 것 같음.

무대

과수댁집과 용산댁채전, 그리고 김평장

# 제1막(용산댁 채전)

& 과수댁 집 근처 용산댁 채전(채소밭)

용산댁과 과수댁이 참외밭을 매고 있다. 본래는 보리 재배를 하던 곳에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면서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용산댁

과수댁, 올해는 날이 어찌 이리 가문지 모르겠소예…… 그러니 없는 사람들이 어디 살아가겠소요.

과수댁

금매 말이요. 작년에는 물 쪄서들 채전들을 온통 떠날려 버리고 올해는 이렇게 가물어싸서 어디를 살겠소… …

용산댁

금매 말이요… … 그런디 과수댁 어제는 뉘 밭 매었소예? 내일도 수고스럽지만 우리 밭 좀 매께라우?

과수댁

다른 밭매기꾼만 없으면 같이 맵시다. 그런디 내일은 또 점골 풍동댁이 밭을 안 매로 나올란지 모르겠소.
(한숨 돌리고, 이어서)
어저께는 새터마을 송을 양반네 밭을 함께 맸어라우.

신작로에 되넘기 장사꾼이 나타난다.

장사꾼 사내

아즈머니!

과수댁

예?

장사꾼 사내

아까 맽겨둔 푸대 자루 좀 주실라우.

과수댁(자기 집으로 가 푸대 자루를 내어 사내에게 건네며)

그러세요. 참 그란디. 오늘은 일찍이 들어가시요잉.

장사꾼 사내

참, 장날마다 이렇게 맽겨싸서 미안스럽구만요.

장사꾼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감자 한 꼬챙이를 내어 과수댁에게 건넨다.

장사꾼 사내

작은 것이제만 집이 아이들이나 주씨요.

과수댁

웬 별 말씀을 다 하시요…… 길갓집에서 살면서 이런 거라도 맡았다 디리제 어째라우.

푸대 자루를 등에 메고 낡은 잿빛 중절모를 들어 부채질을 하면서 돌아가는 장사꾼 사내를 용산댁이 한참 바라본다.

용산댁

아야, 저 사람이 가끔 읍내 다리목께서 쌀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요?

과수댁(자신은 거기까지는 모른다는 태도로)

김평서 다니는 장사꾼인데 장날마다 우리집에 짐을 맽겨두고 다녀라우.

용산댁(접때 장거리에 나가서 쌀 두 되를 팔 때 거스름돈 10원을 덜 받았던 기억이 생각나서)

참, 같은 장사꾼이라도 오장이 그른 사람들이 따로 있습디다. (좀 머뭇거린다가…) 저 지난 장날이요. 내가 하도 시어머니가 닭 한 마리를 자시고 싶다해싸서 좀도리 두 되를 떠가지고 장으로 가지 안 했소. 가서는 방금 틀림없는 그 사람한테 폴았는디, 쌀 두 되를 이백오십 원씩에 백원짜리 넉 장, 십 원짜리 열장 모다 해서 꼭 오백 원을 안 받었소. 그래 가지고 방금 닭전으로 돌아와서 봉께 십 원이 비드란 말이요. 그런디 그 돈을 거기서 막 받자마자 종이에 꽁꽁 싸서 품속에 넣어가지고 왔는디, 그 돈이 어서 빠졌을 것이요? (뜸을 들이다가…) 틀림없이 거기서 덜 받았제… 그런 뒤에 가서 십 원 한 장이 덜 왔다고 주락 해도 끝내 안 주드란 말이요.
(말을 끊고 용산댁 반응을 살피다가 이어서)
같은 장사꾼이라도 그런 사람들이 따로 있습디다.

과수댁(저윽 무안해 하면서, 그리고 그런 말을 내게 뭣하러 하는냐는 투로)

그런 것이야 내가 알 일이요?

용산댁(속으로)

한속이군!(입을 삐쭉한다.)

과수댁 집이 김평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장날이면 이곳을 지나는 장꾼들이 짐을 맡기기도하고, 물로 목을 축이고 가기도 하는 집이다.

용산댁(화제를 바꿀 의도로)

내일은 뉘 밭을 맬라우?

과수댁

금매, 풍동댁이 내일 하루는 밭을 매달라고 했는디라우.

용산댁(무단히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과수댁에 대한 불만이 커져 불편한 기색으로)

내일 하루 더 매면 좋겄는디, 어쩔 수 없제……

무대: 어두워진다.

& 과수댁 마당

과수댁이 삼남매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멀건 죽을 쓰고 있다. 작년 홍수로 밭농사를 못해 가을내기 보리삯을 못 받은데다 올해 다시 가뭄이 심해 인심들이 사나워져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해 식량이 거의 없다.

과수댁(혼잣말로)

아야, 가뭄이 어서어서 풀려야지 이래서야 어디들 살겄냐.

과수댁이 죽 끓이는 불을 보는 사이, 김평장이 끝나고 돌아가는 장사꾼 사내가 나타난다.

장사꾼 사내

거참, 아이들하고 맨 죽만 자셔서 되겄소…
(이어서)
엣씨요. 오늘 마침 장에 가서 헐값으로 쌀 한 되 산 것이 있으니 내놓고 자시씨요.

돌아서 푸대 자루를 끄르기 시작한다.

과수댁(푸대 자루를 잡으며 말리면서)

웬 별 말씀을 다 하시요. 그대로 놔두씨요. 우리가 지금 무슨 돈 있다우.

장사꾼 사내

웬 그런 말씀 마시고 그냥 내놓고 자시씨요.

과수댁

아니라우! 우리는 지금 돈도 없단 말이요. 아이들하고 빚만 쳐져서 못써라우.

장사꾼 사내

아따, 올 같은 숭년이라 하제만 쌀 한 되 가지고 사람이 죽고 살랍디여. 돈은 있다 천천히 받기로 하고 우선 자시씨요.

과수댁과 사내가 이렇게 우기고 있는 것을 마침 뒤늦게 밭을 둘러보던 용산댁이 저만치서 보고 있다.

용산댁(혼잣말로, 입을 삐쭉거리며)

참, 무척도 생각해싼다.

과수댁은 사내를 떼 말리다 못하고 푸대 자루를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과수댁(혼잣말로)

요참, 먹기는 좋지만 큰일 났네.

장사꾼 사내는 갈 길을 가고, 용산댁은 한참을 지켜보다가 돌아간다.(무대에서 사라짐)

무대: 어두워진다.

& 용산댁 원두막과 과수댁 마당

무대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하면서 날의 흐름을 보여준다.

10여일 지나는 동안 여기저기 원두막이 들어섰다. 용산댁도 시아버지가 쳐주고 간 원두막에서 땀을 연신 뿌리쳐가며 연기를 불고 있다. 이때 과수댁이 읍내로 양식 두어 되를 두르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다. 때마침 장사꾼 사내가 푸대자루도 없이 술 냄새를 풍기면서 등장한다. 용산댁은 일보러 나간다.

무대에는 약간 비틀거리는 장사꾼 사내와 땀을 훔치는 과수댁만 있다.

장사꾼 사내(술 취한 목소리로)

아즈머니, 오늘 저녁 아이들께 멋 좀 끓여 먹였소?

과수댁(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예, 한 술씩 끓여 먹였소

과수댁 어린 아들(소리만)

엄니, 얼른 밥 조오.(우는 소리로)

장사꾼 사내

그랴! 그런 성싶어서 물어봤소.

장사꾼 사내가 지갑을 내서 떨어 보인다.

장사꾼 사내(푸념 하듯이)

허허이, 나도 오늘 장사에 갔다가 다 망했소 다 망해… 허허이!

과수댁이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황당한 상황에 당황해 한다.

장사꾼 사내가 갑자기 비척거리고 신작로로 나가서 신동댁네 밭에서 참외 세 개를 따가지고 와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장사꾼 사내

원, 산 입에 거무줄 치겄소. 집의 것은 아니지만 우선 배고픈디 이런 것이라도 하나씩 따먹여주씨요. 그랴~

과수댁이 깜짝 놀랜다. 아이들의 손만 나와 참외를 받아 간다.

과수댁(아이들의 손에 들린 참외를 뺏으며)

어따어따! 남의 것을 멋하러 이렇게 따겠소.

장사꾼 사내

아따! 그대로 줘두씨요. 돈은 이제 내가 밭 임재한테 말하고 주리다. (이어서…) 원, 사람이 운수소관이라니. 나 오늘, 깨, 장사를. 해서. 다 망했소, 다 망해. 허허이!(띠엄띠엄 말을 더듬는다.)

말을 끝내자 평상에 쓰러진다. 이내 코를 골고 잠이 든다.

과수댁은 난처한 입장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신작로로 나와 용산댁과 신동댁 외막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나하고 둘러본다.

무대: 어두워진다. 시간이 흐른다.

과수댁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마침 사내가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있다.

장사꾼 사내(미안한 기색이 완연하게)

실례가 많았구만이라우.

과수댁

조심히 가셔요~(얼굴을 외면하면서 조용히)

장사꾼은 무대에서 사라진다. 무대는 다시 어두워진다.

# 제2막

& 김평장 다리목께

신동댁네 조카와 머슴이 참외를 파는 노인을 탐문한다.

신동댁네 조카

노인양반. 이 외 어디서 사겠습디껴?

노인

저쪽 나루께 포전에서 샀소. 어째 외를 좀 쓰실라우?

신동댁네 조카

아니라우. 알아볼 일이 좀 있어서 그런디. 나루께 어느 외밭에서 사겠소?

노인

알아볼 일이 무슨 알아볼 일이요. 저 나무께서 샀소.

신동댁네 조카

금매 좀 알라고 그요. 어느 밭에서 사겠소?

노인(핏대를 올리며)

아니, 누구를 도둑으로 아요! 알아볼 일은 무슨 알아볼 일이요.

신동댁네 머슴

아니, 노인양반. 그렇게 성낼 필요가 뭐 있습니껴? 이 물건이 수상해서 그러니 그 외밭을 좀 대주씨요.

노인(얼굴이 빨개지면서)

염려없는 물건인디. 왜 이러시요.

신동댁네 조카(노인 손을 끌면서)

그럼 가 대봅시다.

노인(손을 빼면서)

아침에 물건을 받았소. 한 장사꾼이 참외 한 짐을 가지고 왔기에 받았단 말이오. 뭐가 잘못이오.

신동댁네 조카

그럼 한 접에 얼마씩 줬소?

노인

좀 싸게 해서 팔백 원씩 줬소.

신동댁네 조카

그럼 그 사람이 어디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디여?

노인

아마 이 근처 사람 같은디, 어디서 사는지는 모르겄습디다.

신동댁네 머슴

그럼 나이는 몇 살이나 묵고 얼국 같은 것은 어떻게 생겼습디여?

노인

스무 살 남짓 돼 보이는 청년이든디. 국방색 양복을 입고 얼굴은 누루퉁퉁합디다.

신동댁네 조카

나중에 그 사람을 만나면 알려주쇼. 아니면 영감님도 일 날 것이요.(겁을 준다.)

무대: 어두워진다.

& 과수댁 집 앞(3일 후)

신동댁이 새침한 표정으로 과수댁을 찾아온다. 과수댁이 마당에서 신동댁을 맞는다.

신동댁(과수댁을 다잡듯이)

아니 과수댁! 이 앞서 밤에 과수댁이 우리 외밭에 들어갔었다면서라우?

과수댁(깜짝 놀라면서)

웬이라우! 뉘가 그럼디여?

신동댁

다. 본 사람이 있습디다. 김평 어느 장사꾼 남자 한 사람을 끼고 했담서라우?

신동댁(입술을 몽당해가지고, 나직이)

한번 잊어묵은 것 도로 찾을랍디여만은 바른 대로 이야기나 해보쇼.

과수댁(무슨 그런 말이 있느냐는 듯 펄쩍 뛰면서)

어따어따! 신동댁, 뉘가 그런 말을 합디여 예?

과수댁이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이어서 생각났다는 듯이…

과수댁

나, 아닌 것 아니라 참외 세 개는 받은 일이 있소. 사실은 자주 다니는 되넘기 장사꾼이 아이들 굶기는 것을 보고 계산은 나중에 치르겠다고 참외 세 개를 따왔오. 말렸는디 기어이 아이들 손에 쥐어 줍디다. 계산을 한다기에 별 일 없겠거니 하는 일 밖에는 없소. (잠깐 쉬었다가) 그것도 나는 애당초 안 받을라다가 그이가 막무가내로 떠맡기는 바람에 헐 수 없이 받었소. 뉘가 그런 얼을 입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믿는 처지에 그래서는들 못쓰는 법이요.

신동댁(오만상을 찌뿌리며)

그것부터서가 벌써 의심받을 일 아니요. 그 남자가 멋 났다고, 집에다 외를 따다준단 말이요. 그것뿐만 아니라 그날 밤에 집이서 밤늦게까지 수군거리다 가는 것까지 봤다고 합디다. 그래, 그 뒷날 김평 장에까지 가서 다 뒷조사를 해보고 하는 말이요.
(이어서…)
과수댁도 알고 보니, 홀몸이 아니고 진작부터 그 남자와 내통이 있었다 합디다 그랴.

과수댁(경련을 일으키며)

오메!(중치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한다.)
(이어서…)
허허이! 내가 내통을 한다고라우. 내통을! 내통을 하고 지낸 남자가 있다고라우. 그리고 그 남자를 끼고 외까지 도둑질해 묵었다고라우. 이런 사람 죽일 소리 들어봐라~(주위를 둘러보며 소리를 친다.) 신동댁, 뉘가 그럽디여? 지금 당장 가서 대봅시다.(신동댁 손을 잡아 끈다)

신동댁(손을 뿌리치며)

허기는 뉘가 그래라우. 다 본 사람이 말하제.

과수댁

금매 뉘가 그럽디여? 신동댁~!(소리가 올라간다)

신동댁(참다 못해)

바로 윗밭 용산댁이 그럽디다. 그날 밤에 자기 외막에서 모깃불을 피다 우리 밭에서 외를 따다주는 것도 보고, 밤 늦게까지 수군거리다 가는 것도 봤답디다. 진작부터 내통이 있는 것도 잘 안닥 합디다.

과수댁이 가려는 신동댁을 붙잡으려하고, 그것을 피해 신동댁이 한마디 보탠다.

신동댁

과수댁이 그런 사람인줄 몰랐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드니.

과수댁은 용산댁 외막으로 부리나케 쫒아간다. 용산댁 외막은 비어있다. 돌아오다 밭두렁에 걸려 넘어진다. 다친 옆구리를 손으로 잡고 어렵게 되돌아온다. 거의 실신 상태로 돌아온 과수댁은 드러눕는다.

무대: 어두워진다.

# 제3막 과수댁과 장사꾼 사내의 재회

& 과수댁 집 / 방안

과수댁은 몸져 누워 있다. 옆구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다 다시 눕는다.

과수댁(아이들을 향해)

아야, 용산댁 아직 그 외막에 안 나왔냐?

과수댁(아이들을 향해)

그 장사하는 남자는 오늘도 안 지나가디야?

무대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하면서 날이 흐름을 암시한다.

& 과수댁 집 / 열흘 후

용산댁이 들에 나왔다. 그동안 친정아버지 상고를 치르고 오랜만에 나타난 것이다. 용산댁을 본 과수댁은 몸을 일으켜 용산댁에게 가려고 한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지나가는 용산댁을 향해 말한다.

과수댁(손을 흔들면서 오라는 표시를 하지만 말은 힘이 없다)

용산댁! 이리 좀 오씨요. 나하고 이야기 좀 합시다.

용산댁(눈을 흘깃거리며)

나는 집이하고 할 말도 없소.

용산댁은 무대에서 사라진다.

무대가 다시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면서 날이 흘러감을 암시한다.

& 용산댁 외밭

외밭 끝물을 정리하는 용산댁과 그 남편이랑 식구들이 있다. 한쪽에서는 과수댁 아이들도 이삯을 주우려고 한쪽에서 어물거리고 있다. 이때 김평장 쪽에서 장사꾼 사내가 신작로에 등장한다. 장사꾼을 본 용산댁이 당황해한다. 짐을 꾸려 자기 집 쪽으로 다급하게 사라진다. 사내는 과수댁 아이들에게 반갑게 ‘잘 있었냐고’ 하면서 호주머니에서 과자 몇 개를 꺼내 주고는 과수댁 집으로 향한다.

무대 어두워진다.

& 과수댁 마당과 안방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를 본 과수댁이 소스라치듯 놀라면서 일어난다. 문고리를 틀어 잡고 밖으로 나오려 하다가 주저 앉는다. 사내는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다.

장사꾼 사내

참 오랜만인디, 아니, 그동안 어디가 편찮았습디여?

과수댁

몸이 좀 불편해서 그라요. 우선 이리 좀 결쳐 앉읍시다.

과수댁은 젖어오는 눈시울을 한 손으로 가린다.

과수댁(더듬거리며)

그런디, 저, 사내 양반…

장사꾼 사내(걱정스런 태도로)

아니, 언제부터 앓아누웠습디여?

과수댁

한 달포 저쪽부터 옆구리가 좀 결리는디 대단치 않습니다. 그런디, 저 사내 양반…

과수댁은 종내 당신과 나 사이에 이러이러했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아니 나오지 않는다.

장사꾼 사내(안타까운 표정으로)

거참, 미음 한 그릇 끓여줄 큰아이도 없이 홀몸이 되었소…

과수댁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런디… 참, 그동안 어디 딴 디로 가셨습디여?

장사꾼 사내

예. 나, 그때 장사에서 실패를 본 뒤로 동행을 따라 여수로 어물 장사를 두어 번 갔다 왔었어라우. 그래, 또 밑천을 좀 잡었는디 다시 여기서 되내기 장사나 해야 쓰겄소.

과수댁(반가운 표정으로)

그래라우잉.

무대가 밝아진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흐르면서 무대가 어두워진다.

조명은 두 사람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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