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덕 「동승」 낭독극 계획안
— 도념의 눈으로 다시 읽는 전쟁 이후의 산사
1. 작품 핵심 정리와 낭독극의 방향
「동승」은 심산고찰에서 자란 14세 사미승 도념을 중심으로,
어머니 없는 아이의 결핍, 전쟁과 가난 이후의 혼란,
계율과 인간적인 정(情)이 부딪히는 순간을 섬세하게 그린 희곡입니다.

주지 스님은 “속세와 단절된 청정한 수행”을 지키려 하고,
도념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동네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을 숨기지 못합니다.
서울 안대갓집 미망인은 죽은 아들을 대신할 존재로 도념을 바라보고,
초부와 인수 부자는 산짐승을 잡으며 살아가는 가난한 민중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낭독극에서는 이 복잡한 사회·정신적 갈등을
“도념의 한 번의 겨울”이라는 시간 축 위에 올려놓고,
도념의 정서 변화를 따라가는 구조로 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① 기다림: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
② 유혹과 희망: “서울 가자”는 미망인의 제안
③ 죄와 발각: 토끼와 목도리, 법당 살생 사건
④ 단절과 거절: 주지의 단호한 거부와 지옥의 위협
⑤ 탈출: 눈 내리는 산길로 내려가는 도념의 뒷모습
이 다섯 단계를 중심으로 낭독의 호흡과 장면 전환을 설계합니다.
2. 등장인물 구성과 낭독자 배치
원작에는 인물이 많지만, 낭독극에서는 다음과 같이 압축합니다.
도념: 14세 사미승. 작품의 중심 화자이자 정서의 축.
주지: 강직하지만 완고한 스승. 계율의 대표.
정심(상좌승): 주지와 도념 사이의 중간 지점. 번뇌를 자각한 청년승.
미망인(서울 안대갓집 딸): 아들을 잃은 상실과 모성, 욕망이 섞인 인물.
초부 / 인수: 산짐승을 잡으며 살아가는 부자(父子). 살생의 현실.
도념의 어머니: 대사 없이도 지문·회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부재의 인물”
동네 사람들 / 참예인들 / 구경꾼들: 군중 합창처럼 처리, 2~3명이 겸함.
낭독자는 최소 6명 정도로 운영합니다.
내레이터 1인이 모든 지문을 담당해 산사의 분위기, 계절감, 인물의 작은 표정까지 읽어줍니다.
도념 역 낭독자는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맑지만 금방 울컥하는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주지·미망인·정심은 음색 대비가 뚜렷하도록 캐스팅하여
말만 들어도 “계율 / 속정 / 중간지대”가 갈라져 들리게 합니다.
3. 무대와 좌석, 공간 디자인
무대는 하나의 공간으로 두고, 조명과 낭독자의 자리 이동만으로 장소를 구분합니다.
뒤쪽 스크린/벽:
중앙 위쪽: 산문(山門) 방향을 상징.
왼쪽: 비탈길, 동네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 샘, 연못, 산신당이 있는 방향.
낭독자 배치 예:
도념: 무대 중앙 앞, 작은 방석 혹은 의자 하나.
주지·정심: 산문 쪽에 가까운 오른편.
미망인·친정어머니: 중앙 뒤쪽, 법당 쪽 위치.
초부·인수·동네 사람들: 비탈길이 있는 왼편.
지문 낭독자는 객석 한쪽 또는 무대 측면에 앉아
“산문으로 구경꾼들이 들어온다”,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다” 등
무대 전환을 말로써 그려 줍니다.
소품은 최소화합니다.
물지게 하나, 지게 하나, 깽매기(종 치는 채), 작은 바랑, 목탁.
토끼와 목도리, 잣 등은 직접 실물 대신 말로 묘사하고,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낭독극의 장점을 살리는 길입니다.
4. 장면별 낭독 구성
전체 공연 시간을 60~70분 정도로 설정하고,
다섯 개의 큰 장면으로 나누어 낭독합니다.
장면 1. “여섯 달을 또 어떻게 기다려요?” – 기다림의 산사
도념과 초부의 대사로 시작합니다.
보리 베고 나면 온다던 어머니,
키 재기 놀이로 여섯 달을 줄여 보려는 초부의 농담,
하지만 번번이 어긋난 약속.
동네 아이들과 구경꾼들이 올라오고,
도념이 “애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듣는 장면까지 연결합니다.
이 장면에서 도념의 결핍, 외로움, 세상에 대한 부러움을 충분히 들려줍니다.
낭독 톤은 밝고 빠르게 시작했다가,
구경꾼들의 잔인한 말이 나올 때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가라앉힙니다.
장면 2. “하얀 털목도리 아씨” – 희망과 유혹
안대갓집 미망인이 등장합니다.
“하얀 두루마기와 하얀 털목도리”,
목련을 받아 간 기억,
도념이 “어머니처럼 생겼다”라고 느끼는 순간을 살립니다.
미망인이 “우리 집에 와서 나를 어머니라 부르며 살자”라고 제안하고,
도념이 “정말이세요? 거짓말 아니시지요?”라며 들뜬 반응을 보이는 대목이 이 장면의 핵심입니다.
이 부분은 낭독극 전체에서 가장 따뜻하고 달콤한 장면입니다.
미망인 역 낭독자는 지나친 감상 대신,
슬픔 속에서 갑자기 솟는 모성의 혼란을 섞어 읽어야 합니다.
장면 3. “토끼와 목도리” – 죄와 욕망의 만남
도념이 인수와의 대화 속에서 토끼 덫에 관심을 보이고,
결국 토끼를 잡아 목도리를 흉내 내는 부분을 강조합니다.
주지의 첫 꾸중, “살생계”에 대한 설명,
그리고 초부·인수가 죄를 덮어쓰고,
다시 인수가 법당 뒤 토끼를 폭로하는 장면까지 이어갑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도념의 ‘동기’**입니다.
> “아씨 목도리 둘르신 게 어떻게 이쁜지,
나도 어머니가 데리러 오신다면 드리려고 만들었습니다.”
이 대사는 낭독극의 정서적 정점 가운데 하나이므로,
도념 역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또렷하게, 관객과 눈을 맞추며 읽도록 연출합니다.
장면 4. “토끼 목도리 사건” – 부처 앞의 발각
법당 관세음보살님 목에 걸린 토끼 목도리,
“재를 헛지냈다”는 구경꾼들의 아우성,
지옥과 죄를 강조하는 주지의 꾸짖음이 쏟아지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관객은 한 번에 세 가지 시선을 듣게 됩니다.
주지: 계율과 인과응보의 시선
친정어머니: 미신과 두려움의 시선
미망인: 아이에 대한 연민의 시선
낭독에서는 세 인물의 목소리 톤을 분명히 나눠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세 개의 가치관을 드러내야 합니다.
장면 5. “지옥을 가더라도 내려가겠어요” – 결별과 탈출
주지와 도념의 마지막 대립 장면이 이 낭독극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연못과 이무기, 오탁 사바의 비유,
도념이 “동네 사람들 말은 이무기가 없다고 한다”라고 반박하는 장면,
결국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내려가겠다”라고 선언하는 대목.
미망인 역시 주지의 “전생의 죄” 발언에 찔려
끝내 도념을 데려가지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달 밝은 밤마다 보러 오겠다”라고 물러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종소리, 목탁 소리, 초설(初雪) 묘사,
도념이 잣 한 줌을 법당 앞에 놓고 “스님,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절한 뒤
비탈길로 내려가는 지문까지 읽으며 막을 내립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모든 낭독자가 입을 다물고,
내레이터와 도념의 목소리만 남겨 두어,
관객이 도념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5. 음향·조명·영상 계획
1) 음향
종소리·목탁 소리: 실제 악기를 사용하거나, 녹음된 소리를 사용합니다.
장면 전환, 재 시작/끝, 마지막 탈출 장면의 울림에 배치합니다.
바람·눈: 가벼운 바람 소리, 조용한 설경의 느낌을 위해
너무 과하지 않은 앰비언스(ambient) 수준으로 깔아줍니다.
동네 아이들 노래(“새야 새야 파랑새야” 부분)는
간단한 합창으로 처리해, 산사의 고요와 동네의 살아 있음이 대비되도록 합니다.
2) 조명
초반: 차가운 흰빛, 낮의 산사 느낌.
미망인 등장: 살짝 따뜻한 톤을 섞어, 도념의 설렘을 반영.
토끼 사건 이후: 대비를 줄이고, 어두운 톤으로.
마지막: 무대 전체를 어둡게 하고,
도념에게만 은은한 스포트라이트를 남긴 상태에서
스크린/배경 쪽으로 눈 내리는 이미지를 비추면 좋습니다.
3) 영상
실제 눈·산사 사진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잿빛 산 능선, 헐벗은 나무, 얼어붙은 샘,
흐릿한 연등 사진 등을 간결하게 사용해
관객의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지원합니다.
6. 교육·낭독 모임과 연계 방안
「동승」 낭독극은 공연으로 끝내기 아까운 작품입니다.
낭독 뒤에는 짧은 대화 시간을 마련해 다음 질문들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도념이 정말 “절을 떠나야만” 했을까?
주지의 태도는 과연 잔인하기만 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책임감이었을까?
미망인의 모성은 사랑일까, 상실을 메우려는 자기 위안일까?
“지옥을 가더라도 내려가겠다”는 도념의 말은
오늘날 청소년·청년들의 선택과 어떻게 겹쳐 보이는가?
이 질문들을 중심으로 관객·낭독자가 함께
“계율과 인간성, 종교와 삶, 어른과 아이의 거리”를 이야기하면
낭독극이 한 편의 문학 감상회를 넘어
지역 공동체를 잇는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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