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후사(後嗣)』 - 상월댁의 독백
무대 설정
초라한 시골집 마루.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창호지가 불안한 분위기를 더한다.
상월댁은 낡은 광주리를 들고 앉아 허름한 짚신을 고쳐 신는다.
독백 시작
(상월댁은 광주리를 내려놓고 담배를 물다가 멈춘다.)
상월댁:
에그, 이놈의 시상에 살기가 참말로 팍팍하다.
(광주리를 만지작거리며)
이 광주리 하나 들고 산길을 헤매게 될 줄이야.
비누 몇 장 쥐고, 행상인 흉내를 내면서 아들을 찾으러 가야 하다니…
(한숨을 내쉰다.)
윤오야, 니가 그 산에 왜 들어갔냐.
애비 말을 좀 들었으면 이 꼴은 안 났을 텐데.
어미 속을 이렇게 태워서 어쩌자는 거냐.
(잠시 침묵. 고개를 흔든다.)
근데 니 애비는 또 뭔가.
후사, 후사, 대를 잇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니 아들 살리겠다고 딸을 팔아먹으라는 소릴 하다니…
(목소리가 격해진다.)
내 새끼 순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놈의 형사 손에 끌려다니냐.
술 따라주고, 웃음 팔고, 안주 물리면서,
겁에 질려 고개 숙이는 꼴을 봐야 하냐고!
(갑자기 광주리를 내던진다.)
아이고, 내가 미쳐서 살아있지.
그깟 후사 하나 지킨다고 딸 신세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라니!
아들이 살아야 한다고?
살아도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이냐?
(다시 광주리를 주워 담는다.)
그래도 어쩌겠냐.
애미가 나서야지.
윤오 찾으러 가서 산 밑자락이라도 기어 올라가야지.
남자들은 말만 번드르르하게 해놓고 앉아서 담배나 빨고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
(눈물을 닦는다.)
우리 윤오,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서 돌아오면 따귀를 때리든, 매를 때리든 하겠다.
산에 들어간 놈 끌어내서 자수라도 시키고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야 대를 잇든 말든 하지 않겠냐.
(다시 광주리를 메고 일어서며)
내 이 짚신 신고 가서 산속이라도 기어 올라갈란다.
그놈의 아들 살려서 내 손으로 다시 데려올란다.
순이는 내가 지켜야 하고, 윤오는 내가 살려야 한다.
그게 어미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본다.)
근데 참…
나만 이런 마음일까?
까치네댁도, 윤오를 숨겨주는 그 마을 사람들도,
다 나처럼 이 팍팍한 세상에서 지 새끼 살리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게다.
(고개를 숙인다.)
이놈의 난세가 원수다.
난세 속에서는 누구도 정직하게 못 산다.
죄가 없어도 죄인 되고, 죄인이 아니어도 벌을 받는다.
그래도 나는 갈란다.
이 늙정이가 윤오 하나 건져올란다.
(다시 광주리를 움켜쥐고 앞으로 나선다.)
윤오야, 기다려라.
이 어미가 간다.
살아서 너를 끌어내리라.
(무대 어두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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