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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희곡

모노드라마: 진오 아버지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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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진오 아버지의 독백

(원작: 오유권 소설, 『쑥골의 신화』 각색)


무대


낡은 오동나무집의 마룻바닥. 희미한 등불이 어두운 방 안을 비추고 있다. 무대 중앙에는 오래된 평상이 놓여 있고, 한쪽에는 짚신을 엮는 도구와 헝겊들이 흩어져 있다. 무대 왼쪽 구석에는 작은 담뱃대가 놓여 있다.

등장인물


진오 아버지 - 60대 중반, 굽은 등과 주름진 얼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시골 노인.


1막: 담뱃대를 물고


(진오 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앉아 짚신을 만지작거린다.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젖힌다.)

진오 아버지

"헛헛하다… 사는 게 헛헛해."
(담뱃대를 꺼내 불을 붙이려다 멈칫한다.)
"이놈의 전쟁이 사람 속을 다 헤집어 놓았구먼. 죄 없는 사람, 죄 있는 사람 다 뒤섞어 놓고는…"
(한숨)
"근데 내 자식, 내 진오는 그 무리들이랑은 다르다. 나는 알아. 눈물 많은 아이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아이란 말이지."

(손가락 사이로 담뱃대를 굴린다.)

"그래도 마음이 걸린다. 이놈아, 대피하라고 했잖냐. 피신해 있자고 했잖냐. 괜히 우직하게 버티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담뱃대를 꽉 쥔다.)
"진오야, 네가 뭘 알겠냐.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란다. 잠시 몸을 숨기고 다시 일어나는 거지. 누가 꼭 죄가 있어서만 도피하는 줄 아느냐."

(갑자기 일어나며 방 안을 서성인다.)

"어제도 봤다. 도망치는 사람들,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말이다. 너는 그 모습이 우습게 보였겠지. 아니야. 그건 겁쟁이가 아니란다. 그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란다."

(무릎을 꿇고 짚신을 손질한다. 잠시 침묵.)

"나도 무섭다, 진오야. 부모라는 게 다 그런 거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지만, 무엇보다 무사하길 바라는 게 부모란다."


2막: 과거의 그림자


(무대 조명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켜진다. 진오 아버지가 장작불 앞에 앉아 불을 바라본다.)

진오 아버지

"그래, 염동수네… 그집 아들 동수가 사람을 너무 무시하긴 했지. 마을 유지라고 행세한다고 나댔다고… (사이)  그렇다고 죽일 일은 아니잖냐. 더군다나 아이밴 며느리까지."

(고개를 떨군다.)

"나는 알았어. 진오도 그날 밤 그놈들이 설치는 걸 보고 나갔던 걸. 하지만 죽창을 들었다고 해서 죄인이냐? 사람 잡아 죽이지도 않았는데 그게 죄냐고."

(장작을 손으로 쓸어 넘긴다.)

"그때 내가 진오를 더 강하게 말렸어야 했어. 너 같은 놈은 사람들 사이에서 튀면 안 된다 했어야 했는데… 안일했어. 나는 안일했어. 내 자식이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믿었지."

(담뱃대를 다시 집어 들어 불을 붙인다.)

"이삐? 이삐한테 증인을 서달라 했다고? 아, 그 아이야 착하지. 순금이 친구니까 우리 진오를 감싸주겠지. 헌데 사람 마음이란 게 한 치 앞도 모르니 걱정이구먼."


3막: 아버지의 다짐


(무대의 조명이 점점 밝아진다.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담뱃대를 내려놓는다.)

진오 아버지

"진오야, 나는 네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네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면…"

(주먹을 불끈 쥔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억울한 죄는 기어코 밝혀야 한다. 죽은 동수네 사람들 원한도 그렇다. 무고한 사람도 살리고, 죄 지은 놈들도 벌을 받아야 한다."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이놈의 세상아, 다 가져가라. 집도 논도 가져가라. 하지만 내 자식의 결백만큼은 못 가져간다. 내 자식은 죄 없다. 내 자식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다.)

"하늘이시여, 부디 내 자식을 지켜주소서."


엔딩: 희미한 희망


(무대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아버지는 손에 짚신을 들고 천천히 손질을 시작한다. 조명이 완전히 꺼지면서 무대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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