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이장의 독백"
원작: 오유권 소설 농민과 시민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무대
(무대는 소박한 마을 이장 집을 배경으로 한다. 무대 중앙에는 낡은 책상과 나무 의자, 마을 회의용 벽보가 걸려 있다. 오른편에는 논을 상징하는 넓은 들판이 보이고, 무대 뒤편에는 노송나무를 상징하는 나무 모형이 서 있다. 무대 전체에 뜨거운 여름 뙤약볕을 상징하는 강렬한 조명이 비친다.)
프롤로그
(이장 등장. 등에는 들일을 마치고 돌아온 듯 지친 표정. 그는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 의자에 앉는다. 천천히 관객을 향해 입을 연다.)
이장의 독백
이장
(담담하게 입을 떼며)
"나도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오. 두루미 마을… 이름이 참 곱지 않소?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소남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이곳. 사람들 말로는 '천혜의 경치'라 하오. 그래, 강가에 노송나무까지 그늘을 드리우니, 도시 사람들이 피서 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소. 우리는 이 경관을 하늘이 준 복으로 알았소.
(잠시 멈추고 한숨을 쉬며)
하지만 그 경치가 화근이 될 줄은 몰랐지. 가뭄이 심한 이 여름,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야말로 죽을 둥 살 둥 물을 품고 있소. 논바닥은 갈라지고, 벼도 타들어가니 농사 하나로 먹고사는 우리들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요. 그런데 바로 그 옆에서…
(목소리가 살짝 격앙된다.)
그놈들 말이오. 강 건너 백사장에 관광버스 타고 몰려와선,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술판을 벌이니 참으로 가관이 아니겄소.
(잠시 침묵.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다.)
경천이 녀석이야 성질이 급하니까 ‘저리 가라!’ 고함을 지르고 톱까지 들었지. 민태도 곱게만 보이지만 속으로는 화가 쌓였소. 나라고 마음이 편하겄소? 이장 노릇이라는 게 뭔가. 사람들 중재하고 말리는 게 일이지만, 오늘같이 가뭄에 시름하는 농민들 눈에 피서객들이 노는 모습을 그대로 두고 보겄소? 아니요. 못 참는 게 당연하오."
농민과 피서객 사이에서
(이장은 책상에서 일어나 무대 한편을 향해 걷는다. 그곳에는 마을 사람들의 고단함을 상징하는 논이 있다. 논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간다.)
이장
“오늘도 들에 나가보니 경천과 민태가 물 품느라 땀에 절어 있더구만. 파고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잠깐 쉬어가는 그들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그런데 피서객들 말이요, 우리 농민들을 눈꼽만큼도 생각하질 않소.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장구를 치면서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한다고요? 그게 우리 마을 청년들에게 어떻게들리겄소?
(한숨을 내쉬며)
경천이 마침내 고함을 치고, 톱을 들었다 하더이다. ‘나무만 베면 저놈들이 안 오겄지’… 사실은, 그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데 있소. 우리 농민들이 힘겹게 일을 해서 즈그들 밥을 대주는 공을 모르고, 돈만 있으면 그게 다인 줄 아는 그 사람들…
(관객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소. ‘조용히 놀아달라’고 마이크로 말했소. 질서 있게, 농민들 사기 떨어지지 않게 조용히 해달라구요. 그런데도 그들은 듣지 않았소. 농민들 분노는 터져버렸소. 그리고 싸움이 벌어졌지요. 우리 마을 창년들은 그렇게 지서에 불려가야 했소.”
고뇌와 갈등
(이장은 무대 뒤편의 노송나무를 바라본다. 손끝이 떨린다.)
이장
“노송나무요. 우리 마을 그늘도 주고, 피서객도 불러오는 그 나무. 경천은 나무 몇 그루를 베었다 하오. 사실 내 마음은 아팠소. 그건 우리 마을의 역사이자 자랑인데… 하지만 베어낸다고 뭐가 달라졌소? 또 다른 사람들이 강가를 찾아오고, 또 다른 목소리들이 우리 논둑을 시끄럽게 할 테니까요.
(조용히 관객을 바라보며)
내일이라도 지서에 가서 강력히 말해볼 것이오. 단속 좀 해달라구요. ‘이 가뭄에 농민들 사기를 꺾는 행위는 안 된다!’고 말이오."
마무리: 이장의 소망
(이장은 천천히 걸어나와 관객과 가까워진다. 손을 모아 간절히 말한다.)
이장
“내 바람은 크지 않소. 우리 농민이 조금 덜 억울했으면 좋겠소. 우리가 물 품으며 지켜내는 이 밥 한 숟가락, 누군가 쉽게 먹을 때 한 번만 생각해주면 좋겠소.
이 땅은, 이 논은… 우리 것이오. 농사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이요.
댁들도 기억해주시오. 이곳 두루미 마을에도, 사람답게 살고 싶은 농민들이 있다는 것을… 땀 흘리는 우리들의 소리가 들리기를 바라오."
(이장은 다시 의자에 앉아 허리를 숙인다. 두레질을 하듯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이장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가 무대에 울린다.)
이장의 목소리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 했소. 그걸 꼭 기억해주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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