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그네
원작: 오유권 소설 ‘두 나그네’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큰 사내(46세)
작은 사내(40세)
주막주인1, 2, 3
주요 등장인물 성격
큰 사내(유재현, 46세): 키가 설멍하니 크다. 모시 두루마기에 감빚 중절모를 썼다. 한 손에 괴나리봇짐을 들었다. 검은 얼굴에 나룻이 한두 올 세어 있다. 성격이 호탕하고 술값을 계산할 때 망설임이 없다. 술값 계산은 남자의 호기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사내(한유홍, 40세): 큰 사내에 비해 키가 네치 정도 작다. 이마가 좁고 귀가 작다. 눈을 자주 끔벅거리는 버릇이 있고, 약간 궁색해 보인다. 하얀 두루마기에 괴나리봇짐을 들었다.계산할 때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치지만 한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때
1950년대 초반 늦가을
장소
고막원과 영산포 사이 어디
무대
후미진 길과 주막들
# 제1막(길 위)
& 조그마한 고개 / 후미진 길
두 사내가 후미진 커브를 돌아서 나타난다. 큰 사내가 설렁거리며 걷는다. 이어 작은 사내가 커브를 돌아 나타난다.
작은 사내(혼잣말)
곧 땅검이 지겠군!
큰 사내를 바짝 따라 붙으며
작은 사내
장형! 어디까지 가시요?
큰 사내(걸음을 서두르며)
서성리 넘어서 저어 대머리까지 가요. 노형은 어디까지 가시요?
작은 사내(서먹한 분위기를 지우려고)
아직도 오십 리 길이 짱짱하요. 그랴. 난 서성리 바로 밑에 오봉까지 가요. 동행 삼아 잘됐습니다.
작은 사내(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아! 이놈의 재가 작은 재지만 인공 시절로부터 소문이 흉흉한 디 아니요. 당초 여그를 지날라면 소름이 냉쪽 끼쳐집디다 그랴.
큰 사내는 ‘이 정도는 별 것이 아니’라는 듯, 과장된 몸짓을 한다..
큰 사내
지금이야 머 상관 있간디라우.
큰 사내(짬을 두고, 이어서)
헌데 노형은 오늘 어서 나서서 오시요?
작은 사내
요 며칠 전에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아들 면회를 갔다가, 오늘 고막원서 내려서, 차가 없어서 걸어오는 길이요.
큰 사내
나도 거까지 아들 면회를 갔다 온디요……
큰 사내가 작은 사내를 우아래로 훑어 본다.
큰 사내
그랴. 어서 본 듯하요. 그랴.
작은 사내(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깜박거리며)
그러고 보니 저도 어디선지 본 듯하요. 그랴.
작은 사내는 큰 사내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작은 사내
집이 아들은 몇 부대에 가 있습디까?
큰 사내가 잠시 두루마기를 젖히고 부대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를 꺼내 작은 사내에게 보인다. 그것을 받아든 작은 사내도 호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쪽지를 꺼낸다. 군대 소속까지 같은 것을 발견한다.
작은 사내(받았던 봉투를 큰 사내에게 돌려주면서)
같은 부대구만이라우. 더욱 반갑소이다.
큰 사내(대수롭지 않게)
반갑소이다.
두 사내는 잠시 말 없이 기억을 더듬는다.
큰 사내(생각 났다는 듯)
옳지, 가던 그 이튿날 장터거리 팥죽집에선가 본 듯 하네요.
작은 사내(자신도 생각이 난 것이 대견하다는 투로)
그리야, 논산 정거장에선가 차 탈 때 본 듯 하외다.
큰 사내가 아래쪽 주막을 가리키며
큰 사내
저기 주막에서 약주나 한 잔씩 하고 갑시다.
무대: 어두워진다.
& 길 / 주막
큰 사내(주막 주인에게)
멋 좀 있소?
주막주인
마치 다 떨어지고 소주하고 수루멧 마리밖에 없그만이라우.
큰 사내
아무거나 한 잔 따르시오.
주막주인이 각 사내에게 컵에 소주를 따른다. 두 사내는 거푸 두 잔을 마신다. 큰 사내는 그대로 잔을 놓는데, 작은 사내는 컵을 만지작 거리다가 주저하면서 놓는다.
큰 사내
노형, 아주 한 잔만 더 드시오.
작은 사내(손 사래를 치며)
아니, 난 퍽 취합니다. 장형, 한 잔만 더 드시요.
작은 사내가 한 손에 주전자를 들고 컵을 큰 사내에게 내민다. 큰 사내가 손 사래를 치며 그만하겠다고 한다. 작은 사내는 망설이다가 주전자를 놓는다. 컵은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그 사이 큰 사내가 술값을 치른다.
큰 사내
노형, 참 우리 아들들이 한 부대에 가 있다니……(잠시 생각하다가 생각이 떠오른 듯한 표정으로) 참! 인사치 못했소 그랴. 대머리 방죽골서 사는 유재현입니다.
작은 사내가 컵을 내려 놓으면서 당황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서며 두루마기를 걷어 잡는다.
작은 사내
전 오봉리 삼거리에 있는 한유홍이올시다.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큰 사내
노형, 참 우리 아들들이 한 부대에 가 있다니 형제간이나 다름없소. 그랴.
작은 사내
허다뿐입니까. 우리야 아들들이 싸우다가 약차해 죽은들 그 가족이나 보겠습니까. 저희들이 다 부모고, 형제간이지.
무대가 어두워지고 막이 바뀐다.
# 제2막(방앗골 가는 길)
큰 사내와 작은 사내가 나란히 길을 걷는다.
큰 사내(혼잣말이 불쑥 입 밖으로 새어 나옴)
대장부의 보짱이라! 요것 쪼끔에 죽고 사나!
다음 주막에서는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골몰해 있던 작은 사내 얼굴이 불덩이처럼 뜨거워 진다. 작은 사내가 당황해하며 걸음을 늦춘다.
작은 사내
장형! 소피 좀 보고 갈테니 앞서 가씨요.
뒤로 쳐진 작은 사내는 호주머니를 더듬어 150환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다. (아내 고무신 살 돈 100환, 애들 과자 살 돈 50환… 셈을 하면서 독백.)
작은 사내(혼잣말)
신발은 뒷날 사주지. (잠시 후) 방앗골에 가면 내가 내야지.(머뭇 거리다가) 아니, 신은 사고 과자를 그만 둘까? (잠시 자식들 생각에 머뭇거린다.) 닷새나 기다릴텐디… 50환으로는 소주는 어렵고, 막걸리는 될까? 저쪽은 소주를 샀는디…
큰 사내(앞서가면서 나룻을 쓰다드면서, 혼잣말)
술값정도는 내가 내야지. (두루마기 속으로 손을 넣어 여비 300 환을 재어 본다.) 술 한잔 더하고 서성리에서 하룻밤 자고 가지. 사내 대장부가 이 정도야.(호기롭게 거듭 나룻을 손으로 훑는다.)
뒤처진 작은 사내가 걸음을 재촉해 큰 사내 곁으로 따라 잡는다.
작은 사내
장형!
(큰 사내 대답도 떨어지기 전에 다급하게) 내 이번 면회 갔다 오면서 들은 얘기 하나 할까라우.
큰 사내
그럽시다.
작은 사내
참 전쟁 속이라니 별일도 있드만요. 그래 한 군인이 휴가를 왔다가 진작부터 말이 있던 큰애기와 사주 날받이를 보내서 택일까지 다 정해두고 갔던 갑디다. 그래 두 집에서는. 그 날짜로 예물까지 다 보내고 받고해서 준비를 다 해두고, 또 그날에 다쳐서 음식까지 다 만들어놓고 신랑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결혼 안 까지도 그 신랑이 오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별도 없드라나요. 그래 신랑 집에서는 행여나 하고 그날 밤 늦게까지들 기다리다가 통 잠 한잠도 못 붙였던 것 같습디다.
큰 사내
저런이라니!
작은 사내
그러고 나서도 그 이튿날, 날짜는 날짜기 땜에 채일을 치고 손님을 받으면서 곧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갑습디다.
큰 사내
그렇지 그렇지 암!
작은 사내
무슨 일이 있어도오늘이야 오겠지 하고…… 그래 신랑집에서는 신랑이 막 오기만 하면 차에 싣고 신부집을 쫒을 작정으로, 그 우인 대표다 친구들이 정거장에까지 나와서 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고, 또 신부집에서는 신부까지 멀쩡하게 다 입혀놓고 기다리던 갑습디다. 참 답답하지. 군대라 놔서 주소를 똑똑히 알겄습니까? 전보 한 장을 바로 쳐보겄습니까?
큰 사내
그러기야 그러기야.
작은 사내
하여간 거기 온 손님들까지도 모다 한마음이 되어서 답답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때가 다 돼서더라나요. 왠 우체부가 편지를 한 장 가지고 왔드랍니다. 우~하니 달려들어 까보니……
큰 사내(이야기를 막으며)
노형, 잠깐 여그서 우리 술 한잔씩만 더 들고. 가면서 합시다.
작은 사내는 기회를 놓쳤다고 ‘아차!’ 하였다. 방앗골에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을 뉘우친다. 이번에는 자기가 술값을 내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무대: 어두워진다.
& 방앗골 주막
큰 사내
쥔, 여기 빨리 술 한 잔씩만 주.
주막 주인(젊은 여인)
예!
주막 주인이 컵에 소주를 따른다. 두 잔을 거푸 마신다. 큰 사내가 손을 두루마기 속으로 가져간다. 그것을 본 작은 사내가 자신이 술값을 계산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호주머니로 손을 넣는다. 그런데 큰 사내가 두루마기에서 꺼낸 것은 곰방대와 담배쌈지다. 작은 사내는 돈을 꺼내려다가 담배쌈지를 꺼낸다. 다시 손을 호주머니에 넣는다. 이번에도 돈이 아니라 담배 말 종이를 더듬어 낸다. 그 사이에 큰 사내가 지갑을 꺼낸다.
큰 사내
에씨요. 아주머니. 술값 예 있소.(백 환 짜리 지폐를 주막주인에게 내민다.)
작은 사내가 놀란듯이 일어나 한 손으로 셈하려는 큰 사내 손을 막는다.
작은 사내
아니 장형, 거 넣어 두시오. 예 있소 예 있어. 아주머니! 거 놔두고 예 있소 예 있어.(손은 호주머니에 넣었으나 선뜻 손을 못 빼고 있다.)
큰 사내(손을 저으며)
웬웬 그런 말을… … 우리가 것 좀 누가 낸들 상관있간디라우. 아들들이 다 같이 그렇게 함께 있다니 제일 반갑지 않소!
작은 사내는 호주머니 안에서 망설이던 손에 잡은 지갑을 놓으며 한편 미안하고 한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봉리 가서는 내려니 다짐하고 스스로 위안한다.
큰 사내(돈 계산을 자기가 해서 호기롭게)
노형, 어서 또 이야기나 들으며 갑시다.
무대: 어두워진다.
& 오봉리 가는 길
눈치를 안 보이려 뒤쳐졌던 작은 사내가 큰 사내 옆으로 다가선다
작은 사내
참 장형! 번번이 미안하구만이라우.
큰 사내
웬웬, 그런 말씀을. 하던 얘기나 들읍시다.
작은 사내
그렇게 하시지요. 아 그래, 우~ 하니 달려들어서 그 편지를 까본 것이 아니오.
작은 사내가 술이 올라 가빠진 숨을 내 쉰다.
작은 사내
무슨 부대이동 관계론가 해서 적어도 한 달 이내로 못 오겠다는 말이었더랍니다.
큰 사내
저런.
작은 사내
그래 장형, 그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 신랑 집에서는 별 수 없다고 그만 그 우인 대표다 친구들이 나서서 차를 몰고 신부집으로 갔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가서는 그 편지를 내놓고 사실이 여차여차 되었으니 신부를 주겠냐 못 주겠냐 하고 담판을 짓게 되었던 갑습디다.
큰 사내
아, 저런 맹랑한 이라니.
작은 사내
참, 우스운 일도 다 있지요. 장형, 아 그래, 신부집에서는 어디가 그렇게 해서 딸을 내보낼려고 할 것입니까?
큰 사내
그러기야 그러기야.
작은 사내
그래 거기서 큰애기를 내놓으라느니 못 주겠다느니 한 장관이 벌어졌던 갑습디다. 그래 허다허다 못하고 종말엔 본인의 의사를 듣기로 했던 갑습디다. 그랬더니 아 이놈의 신부가 두말없이 치마 자락을 여며 잡고 나와서 차에 오르더란 것이 아닙니까? 그래 이것을 보고들 ‘신랑없는 결혼식’이라고들 했쌉디다.
큰 사내
참! 노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나도 실은 아들이 장가든지 꼭 사흘 만에 소집영장을 받고 나갔습니다. 그래 항상 어린 자부를 보기가 안타깝고 해서, 이번에 같이 데리고 갔다가, 자부를 한 며칠 더 쉬어 오라고 부대 근처 어느 장교 집에다 두고 오는 길입니다.
큰 사내(혼잣말처럼)
것도 남달리 독자라 놔서!
큰 사내 긴 한숨을 내쉰다. 나룻을 매만진다. 나룻이 센 것도 그 외아들 하나 때문이라는 듯.
작은 사내
글쎄요. 모두가 시국 탓이외다. 그랴!
두 사내 모두 말을 줄이고 생각에 잠긴다. 작은 사내는 이번에는 자기가 계산할 차례라고 다짐한다.
작은 사내
장형, 우리가 여기서 술 한 잔 씩만 더하고 갈립시다.
큰 사내
그럽시다.
무대: 어두워진다.
& 서성리 주막
작은 사내
쥔, 술 있소. (주인. 예 막걸리 한 잔 씩만 부우. 하려다가, 큰 사내를 보고) 장형, 어느 술 드시겠습니까, 막걸리도 있고 소주도 있다니… …
큰 사내
이왕이면 소주로 합시다 그랴.
…
쥔 여기 소주 한 고뿌씩만 부우.
주막 주인
야~
키 큰 주막 주인 사내가 소주를 따른다. 큰 사내가 소주를 마신다. 작은 사내는 술이 담긴 컵만 만지작 거리다가 큰 사내에게 자기 잔을 건넨다.
작은 사내
한 잔만 더 드시오.
큰 사내
아니, 퍽 취하요. 아직도 좀 더 가야겠는데 어서 노형이나 드시요.
작은 사내는 마침 잘 됐다 싶어 술값을 치르려고 서둘러 마신다. 그 사이에 큰 사내가 두루마기로 손을 넣는다. 큰 사내가 꺼낸 것은 담배쌈지가 아니고 지갑이다.
작은 사내
장형 웬, 거기 넣두시오. 예 있습니다. 예 있어.(주인을 향해) 쥔 게 놔두고 예 있소. 예 있어.(한 손으로 큰 사내 소매 깃을 잡아 말린다.)
작은 사내 지갑을 꺼내기 전에 큰 사내가 주인에게 돈을 건넨다.
작은 사내
웬! 장형, 거기 넣두시래도. 아, 번번이 이래서야! 거기 넣두시래도……
큰 사내
아! 노형, 것 좀 누가 낸들 상관있겠소. 우리 아들네들이 한 부대에 가 있다니 형제간이나 다름없소 그랴.
작은 사내
번번이 이래서야. 넣두시래도, 아니 넣어두시래도.
작은 사내의 눈앞에는 몹시 기뻐할 그의 아내와 아들들의 모습이 번개처럼 스친다. (빔 프로젝트가 가능한 경우)빔 프로젝트 영상에 작은 사내를 반기는 아내와 자식들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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