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의 산장
원작: 오유권 중편 ‘이역의 산장’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등장인물
여인(40대 여자, 집 주인)
노인(60대 남자)
사내(30대 남자)
색시(20대 새댁)
흰둥이(7년생 수캐)
작가(환생 오유권: 전지적 시점에서 작품 노트를 들고 설명하려 드는 주책 없는 노년 나레이터로서, 메타 극적 장치)
안채(안채의 변화를 담당하고 상황을 소개하는 무대 배경 1)
부엌(안채에 붙어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는 무대 배경 2)
사랑채(안채와 떨어져 상황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무대 배경 3)
거뭉이(3장에서 잠깐 등장하는 암캐)
그외 경찰 및 인민군과 산사람들(소리로 대체)
득쇠, 연희, 통바지 처녀(대화 중 소개되는 인물)
주요 등장인물 성격
- 여인: 전쟁으로 아들은 죽고 남편은 인민군에 끌려 갔다.(소설에서는 인민군 9명에게 윤간 당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비약이 심해 설정에서 제외.) 불쌍한 사람을 보면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 동정심이 많은 허리가 호릿한 40대 여인.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태극기와 인공기를 항상 품고 있으면서 상황에 대처한다. 농사짓는데 유리하다 싶어 노인 대신 사내를 택하는 영악함도 있다.
- 노인: 머슴 둘과 식모 침모를 부리던 62세의 월산리 부농. 1남 3여를 둔 비교적 유복하게 살면서 명심보감 정도 읽어 문자도 섞어 사용한다. 아들(득쇠)이 좌익 활동을 하다 여자 당원과 바람을 피우다 적발되어 도주시킨다. 자신도 도주하다 발에 총을 맞았다. 그 사이 집은 불태워지고 남은 가족은 불타 죽었다. 가족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산다.
- 사내: 머슴 출신으로 좌익 활동 중에 입산을 피하려다가 산사람들에게 쫒김.(약혼녀 연희는 사내가 입산한 줄 알고 산사람들 따라 입산함) 여인 집에 은폐용 이중 항아리에서 피신을 하고 다음날 돌아간다.(3장에서 본격 등장) 나중에 여인의 집으로 다시 피신하면서 나무를 해오는 것으로 여인의 환심을 사 안방을 차지하나, 젊은 색시의 등장에 변심한다.
- 색시: 25세 새댁으로 지하운동하던 남편이 인공치하에서 떵떵거리던 시절을 불안하게 생각했던 비교적 순리를 아는 활발한 새각시. 남편이 입산한 후 시댁에 혼자 살면서 경찰에 들볶여 친정에 갔으나, 친정은 우익으로 몰려 나간 집이 됐다. 억척스럽게 나무를 하고 노인과 함께 사랑채에 살며 노인의 아이를 잉태한다. 젊은 사내의 꼬임에 넘어가 노인을 여인과 다시 살게하려고 어렵게 말을 꺼낸다.
- 흰둥이: 7살 수캐로 아들과 남편을 잃은 여인의 충실한 벗(?)이 된다. 잠도 여인과 같이 잔다. 여인이 늘 경계하면서도 추위를 이기기 위한 보온 도우미 역할을 한다. 여인이 노인, 사내와 같이 지내는 데 질투(?)를 하면서 짖어대고 긁어댄다. 노인의 살해 기도에 가출했다가 이성(거뭉이) 개를 데리고 들어오는 실속을 챙기는 개다.
때
1951년 겨울(1장과 2장)에서 1952년 봄(3장)
장소
영암, 장흥, 강진에 걸친 산(국사봉과 주변 산 어디)
무대
무대는 크게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고 안채는 부엌이 붙어있다. 안채는 큰 변화는 없으나 상황에 따라 벽이 나타났다 없어졌다 한다. 부엌은 안채에 붙어 적절하게 변화를 한다. 부엌과 안채는 흰둥이(개)가 항상 지키고 있다. 사랑채는 대문 역할도 하면서 비교적 하는 역할이 많다.
안채와 부엌 및 사랑채의 소도구와 조명 등은 배경이 말로 설명하거나 대자보로 대신한다.
막이 오르면 멀리서 총소리가 들린다. 중년 여인(이하 여인)은 가슴에 태극기와 인공기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안채 뒤로 돌아 들어가 항아리에 숨는다.(안채는 항아리가 된다.)
# 제1막
노인(소리만)
사람 살리소오
여인이 머리만 내밀고 귀를 귀울인다. 가슴에 숨긴 인공기를 내어 들고 가만히 발길을 문쪽으로 향한다.
노인(목소리만)
에잇! 고얀놈들!(죽어가는 목소리로)
여인이 문 틈으로 내다보다가 인공기를 감추고, 문을 살며시 연다. 노인은 죽는 시늉을 하면서 살려달라고 신호하고 푹 꼬꾸라진다. 여인은 노인을 사랑채로 끌어들인다. 노인은 질질 끌려 들어간다(배경 사랑채가 끌려들어가는 노인을 거든다)
다시 총소리가 들린다(쿵쿵 쿵쿵 쿵쿵. 땅따르르. 라고 작가가 말한다. 작가는 상황을 설명한다.) 작가 설명은 소설을 기초로 설명하면서 위트를 보탠다.
작가(들고 있는 원고를 깃발처럼 흔들면서)
(원고를 뒤적거리다가, 소설 한 장면을 읽을려다 자기 소개를 한다)
내가 4년 만 있으면 백이여. 25년 전 3월 저승으로 거처를 옮겼는디 고향 사람들이 다시 불러내서 왔어. 보아하니 못난 내 작품으로 연극을 한다, 영화를 만든다 그러는디, 1994녀 영화 ‘만무방’ 처럼 만들라면 그만 둬. 제목까지 김유정 선배 단편 이름으로 바꿔가지고 오해가 많닿게. 게다가 내용도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달라분다시.
각설하고…
(원고를 다시 뒤적거리다가)
이때가 전시여, 여그 사람이면 다 아는 국사봉 아래 조그만 초가에서 생긴 일이여. 쓰다봉께 과장된 것도 많제.
(원고를 읽는다.)
… …
소리만
저 건너 집에 태극기 꽃아라아
여인
(노인의 다친 다리를 포목으로 감싼다) 오메! 많이 다쳤네요.
노인은 반응이 없다. 여인은 이불로 노인을 덮고 주위에 있는 짚덤불을 쌓아 올려 은폐한다.
안채와 부엌 및 사랑채가 무대를 모두 가린다.
인민군(소리만)
이게 뭐야?
노인(소리만)
아야야
여인(소리만)
저의 아부지올시다
인민군(소리만)
늙은 아버지가 왜?
여인(소리만)
방금 날아오는 총알에 발을 상했어라우~
인민군(소리만)
정말?
&사랑채 / 방 안
노인은 이불을 감싸고도 떤다. 여인이 발뒤꿈치를 본다
여인
(까만 고약 같은 걸 주면서) 남편이 나무 하다가 발 상해… 쓰다 남긴 것이니 붙이쇼. 곰 쓸개로 만든 겅께.
노인
미안하지만 방에 불 좀 때주시오.
여인
금매 말이오. 나무만 있으면 때 드리면 좋겄소만.
노인
이렇게 떨려서
여인
금매 말이오. 나무만 있으면……
작가
이곳은 비교적 산이 험악한 남도지방이지만 나무 사정이 좀 달랐다. 잔디 하나가 없는 순 흙메인 것이다. 어느 쪽이든지 이십리를 나간 곳에 비로소 마을이 있고 나무가 있었다. …(소설의 한 대목을 읽는다)
&사랑채 / 문 앞
노인이 창구멍에 눈을 대고 밖을 내다본다.
여인(일을 하다가, 개를 보고)
춘디 그만 들어가거라이.
개(기지개를 크게 켜고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들어간다)
노인(혼잣말로)
거, 자식 하나 있는 것이 꼭 원수로 생겨났던 것이로구나!
작가
상황 설명……
노인(식자라고 자랑하듯이)
무자상팔자(無子上八字)라드니 놈이 꼭 원수로 생겨났던 것이로구나!
…
(혼잣말로) 추워서 안 되겄다. 염치 불구하고 울목이라도 잠시 은신해야제.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 노인이 안방으로 건너간다. 하루 한 차례씩이라도 불을 때는 안방은 아무래도 덜 차고 푸근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안방 문을 살그머니 연다. 그리고 손으로 더듬으면서 들어간다.
&안채 / 저녁
노인(방 안을 더듬거리며)
이런!
없네.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노인은 오싹한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서둘러 몸을 돌려 사랑채로 돌아온다. 배경 사랑채가 노인을 가린다.
노인(목소리만)
오메! 뭐이당가?
여우에게 홀린 것 아녀…
& 다음날 아침 / 사랑채 방
여인이 밥상을 들고 들어온다. 노인은 어제밤 일이 궁금해 물어보려 한다. 나레이터가 입방정 떨지 말라고 신호한다. 노인이 말을 참고 밥상을 본다. 시커먼 짠지와…
여인
그새 발은 좀 나으신 게라우?
노인
예, 그저 그만하요.
여인
어째, 약은 자주 갈아붙이지요?
노인
갈아붙이구만이라우.
여인
겨울이라서 그것이 그렇게 쉬 안 낫은 것이요.
노인은 여인이 자꾸 말을 건네는 게 귀찮다. 어서 따순 밥을 떠 넣고 싶은데
여인
참, 난리도 난리도 그렇게 허한 난리는 첨 봤소예.
노인(밥을 한 입 삼키며)
나, 속이 떨려서 근디, 밥 좀 묵고 이야기 합시다.
여인
아니 이불이 저만한디 그렇게 춥습디여. 나는 엊저녁에도 별로 춘지 모르고 잤소예.
순간 노인은 어제 밤 상황이 궁금해 묻고싶다. 나레이터가 입에 손가락을 대서 말 말라고 한다. 노인은 물끄러미 여인의 얼굴을 보다가 뒷태도 살핀다. 혹시 꼬리라도 있나하고
여인의 뺨에서 붙어있던 흰 털 하나가 바람에 떨어진다. 노인이 그것을 의아한 듯이 본다.
& 저녁 / 안채
노인이 다시 안채 문을 열고 더듬거린다… 부엌 샛문이 열려 내다본다. 배경 부엌이 벽을 열고 여인과 흰둥이가 잠자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은 한편 괘씸하고 얄미우면서도 반갑다(여인이 있다는 사실이). 노인은 사랑채의 이불을 갖고 안채로 옮긴다.(사랑채 배경이 들고 노인에게 건넨다.)
노인(부엌에 귀 기울이며) / 부엌에서 숨소리(효과음)
에잇, 고얀 세상들!
(혼잣말로) 저 놈의 개나 따려 잡아 소복을 했으면…
노인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안방으로 가 잤다.
# 제2막
& 어느 날 / 낮
안채 등 배경이 무대를 가린 상태로 농짝을 부수는 소리가 들린다. ‘우지직’(효과음)
여인(소리만, 노인 들으라는 듯)
나무는 없고.
혼자 갈래도 왔다갔다 50리 길인디.
이 농짝을 때불면…
남는 것은 바구니 뿐이네…(한숨)
무대가 열린다.
& 사랑채 / 아침
노인
(배를 쓸면서) 멱을 달포나 안 했더니…끕끕해 죽겄네. 행산리에서는 귓속에 때꼽장이도 없었는디.
여인이 밥상을 가지고 들어온다.
노인
말씀 드리기가 쪼깐 미안한디. 몸이 하도 군지러워서 그러니…… 쪼끔만 멱물을 디워줄 수 없을게라우.
여인
……
노인
쪼끄만 디어주시오. 하도 끄끕해서 그요.
여인
글씨라우. 나무도 나무지만……
(조금 생각한다.)
성찮은 몸에 물을 묻히면 덜 졸 것인디 그요.
노인
상처에는 물이 안 가게 씻을라우. 쪼끄만 디어주시오.
여인
그러시요. 그럼.
노인은 나무보다 도리어 몸을 염려해주는 여인이 고맙다.
& 안채 / 저녁
노인이 오랜 만에 잠이 푹 들었다. (부엌에서 푸뜩 샛문 긁히는 소리……) 소리에 노인이 깬다. 계속해서 ‘삐드득 삐드득 삐드득’ 소리가 남.
노인
저놈의 개새끼가!
이놈의 개새끼야, 자빠져 자거라.
개가 허비기를 그만하고, ‘왕왕’ 짖어댄다
노인
고얀 놈의 개새끼 같으니라고!
퍼떡 일어서서 샛문을 두들기고 돌아서는 노인. 나무토막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질 듯 자기 자리로 온다. 발치를 더듬거린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 밋밋한 몽둥이 같은 것이 걸린다. 노인은 성냥을 그어 불을 켠다. 여인을 가리고 있던 안방 배경이 열린다.
노인
아하!(사정을 알았다는 듯이)
노인은 자는 여인을 방해하지 않게 발끝은 여인 발 쪽으로 머리는 여인과 기역자가 되게 눕는다.
노인
(혼잣말로) 워넌히 훈훈하네.
& 안채 / 저녁 다음날과 다음날
다음날도 다음날도 여인과 노인은 안채에서 잤다. 여인은 부엌 샛문 아래를 걸레쪽으로 막는다. 문도 걸어 잡근다. 안채 배경이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날짜 흐름을 암시한다.
여인
어디 발 좀 봅시다.
노인(바짓 가랑이를 올리고)
그새 많이 낫기는 낳은 것 같소만.
여인은 상처를 보살피고 잠자리에 든다. 노인이 살포시 여인 등 뒤로 손을 올린다. 여인은 조용하다.
안채 배경이 두 남녀를 가린다.
안채 배경이 방 안을 보여준다. 여인과 노인이 기역자가 아닌 나란히 누워 잔다.
&인채 / 밤
노인(등을 여인 쪽으로 돌리며)
옷을 갈아입어서 근지. 쿡쿡 쑤신 것 같네. 등 좀 긁어주소.(말투가 하게체로 바뀜)
여인(노인 등을 긁는다)
……
노인
시원하게 좀 뜩뜩 긁소.
여인
난 손톱이 없어서 그요.
노인
그래도 좀 뜩뜩 긁소.
여인
……
노인
바로 그 옆에 좀 긁소
여인
……
노인
쪼끔 우게.
여인
……
노인
엣다. 엣다 시원하다.
여인
당신은 늙었어도 나보다 더 등이 통통하요잉.
노인
나는 다 늙었제 뭘!
여인
그래도 아직은 한 십 년은 더 살겄소.
노인
그럼 자네 복이제 누구 복이여.
여인
피이.
노인(며칠 전 여인이 말한 남편 얘기가 생각이 나)
그럼 자네는 혹 남편이 안 죽고 살아오면 어쩔란가?
여인
…..
노인
나를 더 생각하소이.
여인(한참 만에)
그럽시다.
노인
대관절 자네 남편은 어쩌다가 그랬단가.
여인
……
여인(묻는 노인이 마땅찮아)
그런데 당신은 뭘라고 꼭 그런 것을 알락해쌌소. 자기 운이 나빠서 잽혀갔제 어째라우.
노인
치이. 이렇게 살면서 그런 말 좀 물어보면 못 쓴가.
여인
금매. 아나마나 소용없는 말을 뭘라고 물어싸라우. 그럼 당신은 어쩌다가 이런 디까지 쫒겨 왔습디여?
노인
……
여인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나 해주고 남의 이야기를 듣든가 마든가 하시요.
개가 샛문을 긁는 소리가 요란하다. 삐드득 삐드득(효과음)
여인
저놈의 개가 또 그런다이…… 예, 좀 뭐락 하시요. 예.
노인
자네가 나무라소.
여인
나는 무서워서 그요. 당신이 좀 나무라소.
노인
치이. 나도 막 달라들락 하네. 자네가 나무라소.
빠드득 빠드득(개 긁는 효과음)
여인
어서 좀 나무라란 말이요.
노인이 일어나 샛문을 두들긴다.
노인
내 이 빌어묵을 개새끼. 가만히 자빠져 자거라.
왕왕왕왕(개 짓는 소리)
노인
보소. 거?
여인
……
노인(이불 속으로 들어오며)
워이, 저놈의 개새끼 낼 잡아묵어버리세?
여인
……
노인
소복도 되고, 내 발도 안 빨리 낫겄는가. 그라고 저녁마다 저놈의 소리, 어디 시끄러워서 듣겄는가.
여인
……
노인
워이. 잡아묵자마시.
여인(머리만 파묻고)
……
노인
치이. 자네는 그렇게도 아까운 것이네이.
여인
……
노인
그러자마시.
여인(어쩔 수 없다는 듯이)
(힘 없는 목소리로) 당신 알아서 하시오.
개 짓는 소리와 샛문 긁는 소리가 요란하다.
노인
내 이 빌어묵을 개새끼. 낼은 뒈질 텐께 가만히 있거라.
& 마당 / 아침
노인(부엌을 향해)
워이. 거그 개 밥그릇에 밥 좀 푸고. 개를 이리 데리고 나오소 워이.
여인(부엌에서 소리만)
옴메! 개가 없구만이라우.
노인
(놀래) 응!
안에 까지 잘 좀 보소.
여인
안에도 없구만이라우.
노인
……
노인은 몸소 부엌으로 해서 광이면 뒤뜰까지 찾는다. 개는 없었다.(나레이터 해설)
노인(문 밖을 쳐다보며)
아! 저놈의 개가 저기 있네이.
여인(노인 따라서 밖을 보면서, 안심된다는 듯이)
(반갑지만, 반갑다는 눈치 뵈이지 않게) 대체 거가 있소이.
노인
아따 그놈의 개새끼, 눈치가 날쌉네이.
여인
저런 것도 다 제 목숨은 귀한 줄 아는 것 아니요.
노인
제놈이 배 고프면 아무 때라도 오겠지.
그러나 개는 밤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들어오지 않았다.(나레이터)
# 제3막
& 사랑채 / 안과 밖
노인이 외로움 중에 호주머니에서 할멈 이빨을 꺼내보다 헝겊에 다시 싸 담는다.
색시(소리만)
쥔 양반 잠 좀 잡시다아.
젊은 아낙 한 사람이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고 대문께에 서 있다. 노인은 문을 열고 묻는다.
노인
웬 사람이요?
색시
구걸하러 댕기다 길을 잘못 들어서 이렇게 늦었소.
노인
이 집이 잘 디가 마땅찮은디이……
색시
아무 디서라도 하루밤만 잡시다. 길이 저물어서 그요.
노인
그럼 우선 좀 들어오시오.
색시가 안으로 들어선다. 노인이 곱살한 색시의 얼굴을 보면서 흐뭇해한다.
노인
저녁을 못 대접해서 어쩌께라우.
색시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색시는 저고리 섶을 고쳐 여민다.
색시
이렇게 후한 할아버지를 만나서……
노인
편히 내려 앉으시오. 불을 못 땐 방이어서 춥소.
색시
이만큼이라도 얼마나 감사합니다.
노인
누추하고 찬 방이지만 인가가 없는 곳인께 하룻밤 같이 고생합시다.
색시도 이내 짐작이 갔다. 전쟁 통에 아들, 딸 잃고 혼자 고생하는 노인이거니 하는 생각이. 밤이슬을 피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윗목의 무명송이며 까만 이불 등속을 찬찬히 둘러본다.
노인
(윗목 젯상의 좁쌀떡을 가리키며) 차고 맛은 없지만 한번 띠어보시오.
색시는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떡은 먹지 않는다. 노인이 색시의 자리를 마련한다.
노인
고단한디 일찍이 누우시요.
노인은 색시가 자리를 보기를 기다려 불을 끈다.
색시
(어두운 잠자리에서) 이렇게 깊은 산 중에 노인 양반 혼자 사시오?
노인
예. 나 혼자 살고 있소.
색시
식구들은 다 어쩌시고 혼자 살고 계시오?
노인
……
색시
사변통에 어찌 되었소.
노인
예. 사변통에 이렇게 혼자 몸이 되었소.
…
나도 실은 이 집의 주인이 아니요. 우리 집은 저어 행산리란 디가 있는디 다 불타버려서 이렇게 피해 와 있소.
색시
그럼 이 집에 또 사람이 살고 있소?
노인
예. 안채에서 이 집 여인이 나처럼 피해 온 남자 한 사람하고 같이 살고 있소.
노인은 이야기에 굶주렸던 참이라 차근차근 , 자기의 처지를 얼추 말한다.(나레이터 소설 한 대목을 소개)
1장에서 생략했지만 노인이 피해 사랑채에 든 날 젊은 사내도 한 사람 피신 했었다. 여인은 자기가 숨어 지내던 은폐된 항아리에 사내를 숨겼다. 그 사내는 이튿날 여인에게 고맙다고 떠났다. 그런 사내가 다시 여인의 집에 피해 왔다. 처음에는 사랑채에 묵다가, 나무를 해오면서 힘없는 노인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했다.(노인은 열심히 설명하고 색시는 듣는 시늉을 한다.)
색시(노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노인 양반이 추위에 고생이십니다. 그런디 이런 깊은 골짜기에가다 집이 있소잉.
노인
순 무법한 골짝이요.
색시
그럼 이런 난리통에는 역시 이런 디가 피신은 할 만하겄소.
노인
그래 이렇게들 와서 힘을 가지고 사는 판들 아니요.
색시
그나저나 안방 남자가 참. 무지한 사람이요잉. 자기가 안방을 뺏았으면 이 방에 불이라도 좀 때 드릴 일이제.
노인
무법한 산골짝이라 하는 수 있소.
색시
그럼 여기는 이때껏 경찰 한 사람도 안 지내갔소?
노인
경찰은 커녕, 사람 한 사람 지나가는 것을 못 봤소. 나무만 있으면 피신처로서는 쓸 만한 곳 아니요.
색시
그럼 이 집에 양식은 묵을 만큼 있다우?
노인
양식은 웬만큼 여유가 있는 개비요.
색시
그럼 이 집 여인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고 마음만 선하제 주책은 없는 여자구만요잉? 여자가 중심이 있어야제.(자기는 안방 여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듯이)
노인
하도 산골에서만 오래 산 여자라 놔서 그런 모양입디다.
색시
그래라우잉.
노인
그런디 젊은댁은 오늘 어디로 가다가 이렇게 길이 저물었소?
색시
저도 실은 인공 때 식구를 잃고 이렇게 혼자 돌아댕기요.
노인
그래도 젊은댁은 그저 돌아댕기는 사람은 안 같는디라우.
색시
해도, 정처없이 돌아댕긴께 얻어묵으러 댕기는 사람이나 별다름 있소.
노인
그럼 젊은댁은 어쩌다 식구를 잃었소?
색시
…..
노인
인공 때 무슨 일을 해겠습디여?
색시
노인 양반 그런 이야기는 그만해둡시다.
…
그럼 노인 양반네는 좌익으로 몰렸습디여?
노인
그런께 우리는 어느 쪽으로 몰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라우. 자식 놈이 좌익을 하다가 그 좌익들에게 폐를 봤은께.
색시
내것 주고 뺨 맞는다더니 꼭 그 쪼요잉.
노인
이루 말할 수 있소.
색시
그래도 다 시국 탓이지. 이런 사람들이야 뭐 잘못이랄 것 있소.
색시는 비로소 자기의 정체를 이렇게 밝힌다.(나레이터 소설 대목을 읽는다.)
& 이튿날 / 사랑채
색시(갈 채비를 꾸리고)
노인 양반이 추위에 고생하시겄소. 그럼 평안히 계십시오. 내가 어쩌면 노인 양반을 한 번이나 더 만나게 될란지 모르겄소.
노인은 가는 색시를 배웅한다.
& 안채
여인이 물을 데워가지고 들어온다.
사내
어째. 개는 요새 어디 안 나가든가?
여인
안 나갑디다. 한 댓새 전에 나갔다 오고는.
사내
그럼 요새는 전 같은 꿩도 못 줏고 한께 저 암캐나 잡아묵제?
여인
더 조금 놔둡시다. 수캐 혼자서 심심해서 쓸 것이요. 그라고 혹 제 짝을 잡게 되면 수캐가 가만히 안 있을 것이요. 막 물라고 덤빌 것이요예.
사내
그래도 뭐 잡아묵제. 개가 설마 사람을 잡을라든가.
여인
그래도 봄까지나 더 기르고 봅시다. 수캐도 혼자서 있는 것이 심심해서 거뭉이를 데리고 왔는디 그렇게 해서 쓸 것이요.
사내
그럼 더 쪼끔 뒀다가 잡으까……
부엌의 수캐가 방을 향해 사납게 짖는다. 사내가 숟가락을 멈추고 여인을 바라본다.
여인
보시오 거. 저 개가 아주 눈치가 빠르다 말이요. 방금 한 말을 알아듣고 저렇게 짖어라우.
사내
지랄…… 그래도 제가 비수 한번 들어가면 꼼짝 못하제.(가슴에 숨긴 비수를 만져본다.)
여인
거기다 또 두 개의 사이가 이만저만 아닌디. 아무 놈이라도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놈이 가만히 안 있을 것이요.
사내
그나저나 날이 좀 풀리면 잡제.
여인
……
사내
꼭 잡아잉.
사내가 거듭 이렇게 다지고 밥상을 물린다.
사내
인자 참 나무도 못해 묵겄어!
여인
고생스럽지만 늦은 봄까지만 어떻게 좀 살아갑시다. 새보리만 나면 나무는 걱정 없을 것이요.
사내
참!
여인
하는 수 있소. 이런 산골로들 오신 것도 다 인연인 것 아니요.
사내
그래도 웬만큼 힘이 들어야제.
…
이제 노인을 내보내세. 몸이 고단해서 노인네꺼까지 못하겄당께.
여인
……
& 다음 날 / 사랑채
사내가 문간에서 건방진 태도로 사랑채 노인에게 말을 건다.
사내
이젠 추위도 거반 갔으께 노인 양반 다른 디로 좀 나가시요. 원체 나무하기가 사나워서 그요.
노인(맥 없이)
내가 가기는 어디로 가라우.
사내
그래도 나무가 없는디 하는 수 있소. 나도 인자 더 이상 나무를 못하러 댕기겄소.
노인
절후는 봄이지만 아직도 추위가 두 달, 석 달이나 안 남았소. 이왕 힘입는 김에 쪼끄만 더 입읍시다. 갈 디가 없어서 그요.
사내
그러드래도 어디로든지 좀 나가시요. 안 나가면 인자 밥을 못 드리게 될 것이요.
사내가 돌아가자 노인은 죽을 쌍을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나레이터: 노인의 속 사정을 소설 내용으로 소개한다.)
& 사랑채 / 밖 / 밤
문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노인(누가 들을까봐 겁내며, 나직히)
뉘?
색시
노인 양반, 저요. 그새 주무시요.
노인이 문고리를 젖혀준다
노인
아니!
색시
예. 나 또 왔소예.
색시가 짐을 싸고 이고 문 앞에 섰다.
노인(반갑게,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어서 오시오.
색시
예. 나 노인 양반한테 신세 좀 질라고 이렇게 또 왔소.
& 사랑채 / 안
색시 윗 작업복을 벗는다. 노인은 물끄러미 색시를 바라본다.
색시(한숨을 쉬면서)
어째 그 사이라도 편히 계셨소?
노인
예. 잘 있었소. 젊은댁도 무고하시요?
색시
예. 나는 무고하나마나 하마터면 큰일 날 걸 이렇게 왔소.
노인
그나저나 반갑소.
색시
저도 참 감사하구만이라우.
색시가 윗목의 무명송이 까만 이불 등속을 돌아보다가 으스스 몸을 떤다
노인
발 넣시요.(이불을 젖혀 주며)
그정. 지금 밤이 얼마나 되었소?
색시
이제 한 여덟. 아홉 시밖에 안 됐구만이라우. 내가 막 땅검이 드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은께.
……(한숨을 돌리고)
내가 그날 밤 여기서 자고 가지 안 했소잉…… 그래 그날 막 집으로 돌아간께 그새 또 순경들이 나를 찾아왔어라우. 그리고는 나보고 산으로 연락 갔다 온 것이 아니냐고 그냥 지서로 데리고 갑디다. 그러더니 또 막 장작개비로 내리치지 않소. 등이건 다리건 머릿박이건 할 것 없이 마구 내리치면서 어디로 가서 무슨 연락을 취했느냐고 한디. 내가 어쩔 것이요. 그래 막 뛰고 소리를 치면서 나는 친정에 밖에 안 댕게왔다고 해도 그래도 막무가내로 치드란 말이요. 아따아! 얼마나 아플 것이요. 그래 정신을 잃고 자빠지니까 구류간에다 처넣다가 사흘 만에사 내주지 않소. (한숨을 쉬고) 그러면서 또 기어이 저 사람(남편)을 안 찾아가지고 오면 이젠 경찰서에다 넘길 것이니 그리 알라고 하지 않소. 그러니, 자. …… 내가 저 사람의 간 곳을 알것소오. 또 설혹 간 곳을 안다드래도 찾아다주겄소? 그래 무서워서 더 있지 못하고 마침 노인 계신 곳이 생각나서 이렇게 왔소예.
노인(머리를 까닥이며)
……
색시
그래, 접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우선 내 옷벌하고 쌀하고 또 장작을 여나무 개피하고 가지고 왔소예. 어째 같이 있을 수 있으께라우?
노인(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죽을 약 젙에 살 약이 있다고 않습디여.(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색시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하게)
나레이터: 애동색시는 때로는 아버지를 받들 듯이 또 때로는 남편을 섬기듯이(소설의 내용을 읽어준다.) 활발한 애동색시 덕분에 한 두달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동안 소리는 들리지 않고, 네 사람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안채
사내
참 사랑방의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니여. 오늘도 나는 나무를 한 뿌리 패는디 그 여자는 막 두 뿌리 세 뿌리까지 패.
여인(뾰루퉁한 표정으로)
아 그럼. 그 여자하고 같이 사씨요. 응? 당신은 젊은께 그 여자하고 살어.(목소리를 높힌다.)
사내
참, 손놀림도 다기지고.
여인
아 그런께 잔소리 말고 그 여자하고 살란 말이요. 그럼 나무도 안 하러 댕기고 안 편하것소.(찬 바람이 인다.)
사내
그럼 말은 바로 말이제. 늙은 사람께 댈까.
여인이 눈물을 종종이 흘린다.
나레이터: 여인이 젊은 사내를 선택한 이유를 소설 대목을 인용하여 소개.
& 사랑채 / 안과 밖
여인
정말 인자 날도 따뜻해지고 했은께 그 여자랑 데리고 가치 나가시요예.
노인
우리가 첨부터 갈 곳이 있었으면 이런 디로 왔을 것인가. 아주 있는 김에 더 쪼끔 있세.
여인
노인 양반만 같으면 얼마든지 있어도 괜찮으라우. 그렇지만 그 여자 땜에…
노인
아. 그 여자가 어쨌단가?
여인
어쩌나마나 그런 눈치도 없소원.(어이 없디는 듯)
노인
왜?
여인
아, 거 보면 모르겄습디여? 안방의 남자가 늘 눈짓하는 것 보시요.
노인
치이, 그래도 걱정 없어. 다들 이녁 중심이 있은께. 중심이.(여인을 비웃듯 ‘중심'을 강조)
여인
어따어따! 그러다 혹 두 젊은 것들이 눈이 맞아 가지고 나가버리거나 또 저이들이 나무를 해 나른다고 늙은 우리를 쫓아내면 어쩔라우?
노인
아. 그래도 이녁 중심이 있은께 괜찮단께.
여인
어따어따! 힘 하나도 없는 노인이.
노인
아, 그러면 또 우리 둘이 살제 어째.(노인이 웃는다.)
여인
당신은 소용 없어라우. 당신이 뭐 나무 하나를 할지 아요? 농사 한 마지기를 질 힘이 있오.
노인
그래도 자네 혼자 사는 것보다는 낫제 어째.
여인
나나마나 늙은 노인도 나하고 사는 것보다 젊은 사람하고 사는 것이 더 낫을 텐께 어서 나가란 말이요.
노인
어쨌든 자네하고는 틀려서. 다들 이녁 중심이 있은께 걱정 마. 그라고 자네는 아무리 남자가 그런다고 이 방에 양식마저 안 주는가. 에잇 사람 같으니라고! 아무리 갈려서 살지만 사람의 정리가 그럴 수가 있단가.
여인
정리고 뭣이고 오늘이라도 당장 나가란 말이요. 양식은 절대 안 줄 텐께(표독스럽게)
노인이 말이 없자, 여인은 발밑에 와 있는 두 개를 쓰다듬는다.
여인
참 우리 개들 이이쁘다. 엣다. 참, 순하고 이이쁘다.
여인
이런 개들도 한번 의가 맞어논께 이렇게 안 나가고 같이 살어라우잉. 그런디 이 거뭉이는 어디서 온 갠지 갈 지도 모르고 이렇게 오래까지 사는지 모르겄소. 어쨌든 저의 집보다 여가 다 존께 이렇게 안 갈 테지라우.
노인
그럼. 그런 개도 한번 의가 맞으면 그렇게들 같이 사는디 자네는 왜 사람이 되어가지고 이 남자한테도 흥, 저 남자한테도 흥. 하는가.(전에 색시가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
여인
그런께 사람이 영리하다우. 늙은 당신하고 평생을 같이 살면 뭣할 것이요.
노인
그래도 사람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 사람이여.
여인
사람이나마나 그 통에 당신은 차라리 더 안 잘 되었소. 가만히 있어도 나무해다 밥 지어주고, 옷 빨아주고, 백날 묵고 땡 아니요. ‘묵고 땡!’
노인
……
여인(혼잣말 처럼)
엣다. 우리 개들 이이쁘다.
여인
그런디 노인 양반. 또 안방의 남자가 이 암캐를 잡아묵자고 해싸드란 말이요. 진작부터 졸라싼 걸 이때까지 막아왔소예.
노인
아. 잡어. 그럼 덕분에 개장국이나 한그릇 얻어묵께.
여인
당신들은 그렇게 괴기 묵는 것밖에 모르요. 당신은 그 전에 또 수캐를 잡자고 하더니…
노인
……
여인
인자 제 짝들이 있은께 절대 못 잡어라우.
여인은 부엌으로 돌아간다. 개도 여인 따라 간다.
& 안방 / 저녁
사내
자네는 사랑방의 노인을 안 생각하는가?
여인
……
사내
뭣하면 둘이 또 안방에서 살제. 내가 사랑으로 가께.
여인
(돌아 누우며) 알량한 소리 마시요.
사내
아. 그렇게 말할 것이 없어. 서로 상의대로 하자는 것이제.
여인
몰라요 몰라. 나는 몰라.
& 사랑채(나무하고 돌아오는 색시를 보는 노인)
노인
오소. 이리. 따순 디로 앉소.(저녁을 차릴 준비를 하며)
색시
놔두시오. 내가 갖다 묵을라우.
색시가 밥상을 가지고 온다.
색시
뭐라고 꼭 나 오도록까지 기다리고 계시오. 밥도 식고 한디. 먼저 자시제.
노인
별로 시장한 줄 모르겄네.
색시
어째, 양식은 얼마나 남았습디여.
노인
한 닷새 남짓 목제맨.
색시(한숨을 쉬며)
그럼 양식 땜에 큰 탈이요.
노인
그래 오늘도 안방 여편네보고 양식을 주란께 결코 안주겄다고 하드란 말이.
색시
탈이요. 거.
노인
왜 밥을 그렇게밖에 안 묵는가. 더 뜨소.
색시
별로 염이 없구만이라우.
노인
나무까지 해 갖고 와서 배 고프겄구만 더 좀 뜨소.
색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염이 없구만이라우.(목소리가 줄어든다.)
색시가 맥없이 등잔불만 보고 있다.(근심어린 표정으로)
노인
왜 오늘 안 존 일이 있었던가?
색시
아니라우.
노인
왜 그러 밥도 쪼끔밖에 안 묵고 그렇게 앉었는가?
색시
……
나레이터: 그사이 색시는 이중삼중의 괴로움에 빠졌다.
배경이 사랑채와 안채를 가가린다.나뭇간에서 오간 대화가 소개된다.
& 막이 가려진 상태로 소리만(사내와 색시가 나무간에서 나눈 대화)
사내
둘이 합의만 되면 양식은 절로 문제없이 풀릴 것이요. 노인 걱정도 할 것 없고.
색시
어떻게 해서라우.
사내
우리가 없으면 나무 때문에 밥을 못 지어 묵을 것 아니요. 우리 둘이 합이 맞으면 노인은 안방으로 갈 것 아니요.
색시
아무리 늙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만만히 보아서 쓴다우.
& 무대
나레이터 등장: 그간의 사정 설명(사내와 색시도 대화하는 모습으로 등장)
사내
(젊은 우리가 모신다는 얘기를 구구이 하는 모습, 말하는 모습만 보이고 나레이터가 괘도를 들고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프레젠테이션: 그림을 그려 소개. 노인과 여인은 부모, 사내와 색시 그들의 자식.
색시
…… 그렇다면?
그럼 생각해 봅시다.
사내
그럼 사랑에 양식도 없고 한디 되도록 빨리 안방으로 보내시오.
색시
……
다시 배경이 닫혔다 열린다.
&사랑채(색시가 맥없이 등잔불만 보면서)
색시(어렵게 말을 꺼낸다.)
한 가지 말씀 드릴 것이 있는디…
노인(나직이)
무슨 말인가? 해 보소.
색시
아무래도 우리가 따로 지내야만 안 굶구 살겄는디…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라우?
노인
……
색시
저를 그릇다고 하실란지 모르겄소만. 차라리 그렇게 하시는 것이 더 안 낫겄소? 서로 살기 위해서 말이요.
노인
……
색시
생각대로 말씀해보시요. 부당하시다 하면 내가 이곳을 뜨든가 할라우.
노인
……
색시
말씀해보시요. 나는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랍니다.
노인
사정이 그렇다면 별 수 있는가. 내가 안방으로 가제.
색시
참, 두루 말할 수가 없구만이라우.(울적해 한다.)
노인
그렇게 생각 마소. 다같이 시국을 못 만난 탓 아닌가. 어쨌든 자네는 내 은인일세. 섭섭이 생각 말고 같이 사소.
색시
내가 친정만 무사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하고 살 텐데…
노인
틀림없이 그렇게 위할란지 모르겠네? 그전처럼 쫓아내지 않고.
색시
내가 있는디 그렇게 될 것이요. 정성껏 모시도록 할 것이니 염려 마시오.
노인
그런디 안방의 여인이 승낙할란지 모르겄네.
색시
그이한테는 집이가 잘 좀 말하시오. 안방의 남자도 이야기하겄지만… 그이도 젊은 우리들이 받들고 섬긴다면 뭘라고 꼭 젊은 남자하고만 살라고 할랍디여…
나레이터: 마침내 이틀 만에 안방의 여인은 세 사람 의견에 찬동했다. 네 사람이 목숨을 살린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됐다가, 힘과 나이에 따라 부모와 자식 간이 된 셈이다.
& 막이 닫히고 소리만
사내(기분 좋게)
이노무 나무야 어서 넘어가거라. 빨리 가서 개 잡을란다.
…
통바지 처녀
예말이요 예
사내
오메!
통바지 처녀
옥바우 양반. 나 좀 만납시다예.
사내
……
통바지 처녀
실은 연희의 부탁이 있어 날마다 와서 기다렸소.
사내
예. 나 대강 짐작은 했소.
통바지 처녀
그래서 옥바우 양반을 데리러 이렇게 기다렸소.
사내
그래 지금 연희는 어디 있소?
통바지 처녀
낭이산에서 지리산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소.
& 목소리만 메아리지면서
사내
그럼 지금 낭이산에 십여 명이 있다고 하였지요?
통바지 처녀
열두명이 있습니다.
사내
그럼 당신의 직책은 뭐요?
통바지 처녀
임시 조책을 보고 있소. 제 위로 위원장 동무만 있소.
사내
그럼 내가 산으로 들어가는 대신 당신이 연희를 데리고 나올 수는 없소? 아주 말이오.
통바지 처녀
……
사내
내가 산으로 들어가는 대신 당신들이 나오시요.
'시나리오와 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곡] '트리트먼트'와 '완성화스토리 1부' (38) | 2024.08.21 |
---|---|
연극에서 막(Act)과 장(Scene) (3) | 2024.08.20 |
[이역의 산장] 웹툰 대본 만들기 (44) | 2024.08.17 |
[이역의 산장] 희곡 대본 작성 (90) | 2024.08.16 |
[이역의 산장] 시나리오 작성 (118) | 202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