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오유권 읽기] 오유권, '혈(穴)' 읽기
[맨발로 오유권 읽기] 오유권, '혈(穴)' 읽기
소설 '혈' 줄거리
1950년대 영산강변 마을을 배경으로 한 '혈(穴)'은 묘지 분쟁을 둘러싼 가문 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엄씨 집안의 종손 엄시우는 자식이 없어 명당자리라 여겨지는 최씨 가문의 선산에 아버지의 묘를 쓰게 된다. 이에 분노한 최씨 가문의 종손 마포잠방이는 3개월 후 이장을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시우의 아내는 최씨 가문이 먼저 자신들의 묘를 파낼 것을 우려해, 남편 몰래 최씨 선조의 묫자리를 파서 장수산으로 이장시킨다. 이 사건으로 두 가문 간 갈등이 고조되지만, 시우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최씨 선조의 묘를 정중히 모신 것이 밝혀지면서 마포잠방이의 마음이 누그러진다.
결국 재판에서 시우의 아내는 자신의 행동이 자식을 갖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음을 호소하고, 재판관은 무죄를 선고한다. 이 작품은 가문의 자존심과 개인의 절실한 소망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인간적 이해와 용서가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답사 기획
영산강이 흐른다. 장수산 등 노령이 이어지는 곳, 그곳은 바로 백룡산이다. 백룡산 산 모퉁이 소재동에 삼봉 정도전 유배지가 있다. 정도전은 고려말에 이곳에 유배됐다. 이곳에서 일하는 촌부에게 가르침을 받는 내용이 정도전의 '답전부(答田父)'로 삼봉집 제4권에 실려있다.
답전부(答田父)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농부가 정도전이 귀양 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불의를 돌아보지 않고 재물에 욕심을 부리다가 얻은 죄인가? 벼슬을 위하여 권신을 가까이하고 세도에 붙다가 얻은 죄인가? 녹만 먹고 직책을 다하지 않은 죄인가? 장수가 되어 당파를 짓고 정작 외적을 만나서는 패퇴하여 국사를 그르친 죄인가?
경상(卿相)이 되어서 제 마음대로 고집을 부려 남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자기에게 아첨하는 이는 등용시키고 도를 지키는 바른 선비를 배격하였는가? 임금의 작록(爵祿)을 훔쳐 자기의 사사로운 은혜로 만들었는가? 국가의 형전(刑典)을 희롱하여 자기의 사용(私用)으로 삼다가 악행이 많아 걸린 죄인가?
정도전이 어느 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 농부는 그렇다면 가의(賈誼)처럼 큰소리를 좋아하고, 굴원(屈原)처럼 곧은 말을 좋아하고, 한유(韓愈)처럼 옛 것을 좋아하고, 관용방(關龍逄)처럼 윗사람에게 거스르기를 좋아한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면서 농부는 “이들 네 사람들은 다 도(道)가 있는 선비였는데도 혹은 폄직(貶職)되고 혹은 죽어서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대는 몇 가지 금기를 범하였는데도 겨우 귀양만 보내고 목숨은 보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국가의 은전이 너그러움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화를 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깨우쳐 주었다.
정도전은 농부를 은군자(隱君子)라 칭하고 글을 배우고자 청하였다. 그러나 농부는 농사 지어 나라에 세금을 내고 처자를 양육하는 일밖에는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정도전은 그를 장저(長沮) · 걸익(桀溺) 같은 사람이라고 탄식하였다.
정도전은 「답전부」를 통하여 나라에 죄를 짓는 유형을 열거하고 자신의 경우처럼 곧은 일을 하다가 귀양을 오게 되면 언젠가는 화를 면하게 되는 것임을 조리 있게 설명하였다.
주변 답사처
영산포에서 옛 도로(영산강변 목포길)를 따라 미천서원, 영모정을 들린다. 영모정 푸조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회진토성을 찾는다. 회진토성은 삼국시대 조성된 토성으로 그 흔적을 찾는 것이 답사의 별미다. 둔덕처럼 보이는 흙으로 쌓은 성, 삼국시대 조상들 손길을 느끼며 봄날 유채라도 즐기면서 주변 거마산을 살핀다. 최씨 선산이 있음 직한 명당자리가 눈에 띄지 싶다.
소설 '혈'이 명당 관련이기에 자연 영산강변 '복암리 고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옹관, 석실, 석관 등 다양한 양식의 다세대형 무덤이라 더욱 인상적인 이곳은 나중 보게 될 소설 '월광'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주변 보리밭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다시를 거쳐 백룡산 소재동을 들리고 영산강에서 잡아 올린 '웅어회무침'으로 한 끼를 때우면 남부러울게 없는 여유로운 답사가 될 것이다. 이곳 답사는 역시 여름이 제격이다. 강과 산 그리고 웅어가 어우러진 답사길, 기대가 되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나주 '동점문'에 들러 삼봉 정도전의 발걸음을 찾아보는 것은 답사의 우수리가 될 것이다. 삼봉이 이곳에 족적을 남긴 것만 해도 나주는 큰 복을 받은 것이다. 더 나아가 600년 후배들이 그의 글과 족적을 기린다는 것이 삼봉에게도 영광일 것이다. '답전부'에게 직접 배우지 못했던 가르침을 600년 후배들이 상상으로 이어가고 있으니...
맨발로 오유권 읽기, 혈(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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