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후사' 2인극, 장노인과 상월댁
연극 '후사' 2인극, 장노인과 상월댁

제1막 / 장노인의 집
(무대: 장노인의 집 안방. 어두운 분위기. 장노인과 상월댁이 앉아 있다.)
상월댁
담배통이나 좀 줘봐요. 손이 떨려서 못 견디겄네.
장노인
담배는 무슨 담배. 지금 담배 피울 땐가? 윤오 생각만 하면 가슴이 타서 못 살겄구먼.
상월댁
내 말이 그 말이라우. 담배라도 안 피우면 속이 터져 죽겄소. (담배를 채우고 불을 붙인다.)
장노인
윤오가 어찌되면 우리 집안 대가 끊긴다고 생각하니 밤잠을 못 자겄구먼은.
상월댁
대만 대여? 그놈의 대, 대! 딸도 자식이고 윤오도 자식이요. 순이 불려가서 그 형사놈한테 무슨 봉변이나 안 당했는지 걱정되서 미칠 지경이구만.
장노인
나는 순이가 그 형사놈한테 잘 보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우. 그래야 우리가 덜 잡혀가고 덜 고생하지 않겄소.
상월댁
당신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우? 가시내를 접대부 만들라고요? 그 형사놈이 순이를 희롱하려고 요정으로 끌고 간 건 생각 안 나요?
장노인
난세에는 참아야 살아남소. 윤오가 살아 돌아오려면 순이도 비위를 맞춰야 한다우.
상월댁
그런 게 다 필요 없소. 내가 직접 윤오를 찾아 나설 테니 당신은 순이부터 잘 지키쇼.
장노인
어디를 가서 찾겠다는 거여? 산속은 위험한디.
상월댁
까치네댁이 그 근처로 이사 갔다지 않소. 그 집에 가서 염탐이라도 해보려우.
장노인
그렇게까지 해야 쓰겄소?
상월댁
해야지요. 안 그러면 윤오도 못 살고 순이도 그 형사놈한테 또 불려갈 거 아니요.
(무대: 어두워진다.)
제2막 / 까치네댁 집
(무대: 까치네댁의 골방. 상월댁은 행상을 가장해 찾아왔다. 까치네댁과 마주 앉아 있다.)
까치네댁
아이고, 상월댁. 웬일이요? 이렇게 먼 데까지 오셨소?
상월댁
아들 찾으러 왔소. 윤오 봤단 말이요?
까치네댁
가끔 와라우. 어제도 와서 밥 멕이고 담배 한 갑 줘 보냈소.
상월댁
어메, 오메! 살았구나! 얼굴은 어떱디여?
까치네댁
살은 빠졌어도 본 얼굴은 그대로요.
상월댁
언제 또 올께라우?
까치네댁
모르겄소. 오면 꼭 만나게 해주께라우.
상월댁
고맙소, 고맙소. 이 늙정이, 살아야 할까 싶소.
(무대: 어두워진다.)
제3막 / 장노인의 집
(무대: 장노인의 집 안방. 장노인이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근심에 잠겨 있다. 상월댁이 들어온다.)
장노인
왔소? 윤오는?
상월댁
만났소. 살아 있었소. (한숨)
장노인
그럼 자수하고 내려오기로 했소?
상월댁
사흘 뒤에 마을에 나갈 일이 있다하우. 그때 빠져나와 자수하겠다고 했소.
장노인
그 말을 믿을 수 있소?
상월댁
믿을 수밖에 없소. 안 그러면 우리 모두가 다 죽게 생겼으니께.
장노인
(한숨을 쉬며) 천운이 있길 바라오.
상월댁
그 형사놈, 순이를 또 불러가면 어쩌겄소?
장노인
그래도 순이가 잘 대응해주니까 다행이오. 난 순이가 똑똑한 아이라서 그 형사놈도 쉽게 못 건드릴 거라 믿소.
상월댁
그 믿음이 깨질까봐 나는 더 무섭소.
장노인
(고개를 숙이며) 윤오만 살아 돌아오면 이 집안이 다시 평온해질 텐데…
상월댁
윤오만 돌아오면 우리도 숨 좀 쉬겠지요. 원센노무 전쟁!
장노인
(담배를 끄면서) 이 난세를 어찌 버텨야 할지 모르겠소.
(무대: 어두워진다.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