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와 희곡

모노드라마: "안경잡이의 독백"

바우네 2024. 12.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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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드라마: "안경잡이의 독백"


원작: 오유권 소설 농민과 시민
각색: 공노사노 김병한


무대


(무대는 백사장 피서지를 배경으로 한다. 노송나무 그늘 아래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고, 맥주병과 종이컵, 간단한 음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무대 한편에는 강가를 암시하는 푸른 배경이 펼쳐져 있다. 안경잡이는 깔끔한 양복 차림에 말쑥한 안경을 고쳐 쓰며 등장한다. 그는 느긋한 태도로 테이블에 앉는다.)


프롤로그


(안경잡이는 맥주잔을 들고 천천히 마신 뒤, 담배를 꺼내 물고 관객을 향해 독백을 시작한다.)


안경잡이의 독백

안경잡이

(비웃듯 웃으며)
“농민이 어쩌구, 농촌이 힘들다느니 그런 얘기, 솔직히 지겹지 않소? 도시 사람들한테 농민들이 땀 흘려 쌀을 지어 먹여준다? 그럴싸하긴 하오. 하지만, 농사꾼들이야말로 그게 자기 일이 아니오? 각자 자기 할 일 하는 건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랍니까?

(안경을 고쳐 쓰며 목소리를 날카롭게)
도대체 농민들 속은 왜 그리 좁단 말이오? 오늘도 강 건너 논두렁에서 누가 ‘저리 가라!’고 고함을 지르던데, 한심하기 짝이 없더군요. 우리 보고 뭐라구요? 자기들 일하는 옆에서 노는 게 그렇게도 꼴 보기 싫었답니까? 허허, 그럼 저 강가를 자기들만의 땅으로 만들어놓았어야지. 우리야 돈 들여 차 타고, 밥 싸들고 여기까지 온 거라오. 내 돈으로 내가 쉬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오?

(비꼬듯 웃으며)
‘쌀밥은 누가 지어 먹이느냐?’ 그놈이 참 우습더란 말이오. 농민들이 짓는 건 맞소. 하지만 그거 어디 가서 공짜로 나눠주기라도 하오? 내가 돈 주고 사먹는 거요. 비료값이 비싸다, 농사짓기 힘들다 징징대도 결국 그 돈, 우리 도시 사람들이 세금으로 내주고 있잖소. 자꾸만 손 벌리면서 자기들이 무슨 나라의 큰 은인이라도 되는 양, 목에 힘을 주니 가소롭기 짝이 없지 않소?"


농민과 도시인의 차이


(안경잡이는 천천히 일어나 강가를 향해 걷는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안경잡이

“솔직히 말해서 농민들은 한심하오. 물 한 두레 품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리도 티를 내는지. 오늘처럼 가뭄이 심하다고 쉴 새 없이 품어대더군요. 그래봤자 땅은 메마르고 벼는 타들어갈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우리야말로 열심히 일해서 그 값으로 쉬러 나온 거라오. 도시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없이 일합니다. 차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스트레스 받으며 돈을 버는 거라오. 그 돈으로 이렇게 나와서 한숨 돌리겠다는데, 왜 농민들이 화를 내는 거요? 그들이야말로 이해가 안 되는 족속이란 말이오."

(잠시 멈추고 관객을 향해 손가락질하듯 말한다.)

안경잡이

“여기 나무 그늘? 누구든 와서 쉬면 되는 것 아니오? 누가 농민들만의 그늘이라고 했단 말이오? 아니, 그들은 나무가 무슨 자기들 것인 양 여기 와서 노는 우리를 비난하니 웃기기 짝이 없지. 오늘 그 녀석, 뭐라고 했소? ‘당신들 쌀밥 먹여주는 건 우리라오.’ 하… 기가 막히더군요. 그럼 밥값 좀 더 내줄 테니 그 땅 팔아버리고 도시로 가보라지. 하루도 못 버티고 돌아올 걸?”


농촌에 대한 비아냥


(안경잡이는 다시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한숨을 내쉰다.)

안경잡이

“그런데 이런 사람들, 참으로 모순덩어리요. 입으로는 농촌이 중요하다, 농민이 고생한다 떠들지만 정작 그 고생이 자기들만의 일인 양 비뚤어져 있단 말이오. 피서객이 놀러오면, 좋은 경치를 자랑하면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게 아니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와서 여기서 밥도 먹고 돈도 쓰고 하면 그게 다 그 동네 살리는 일 아니겠소?

(목소리를 높이며)
하지만 그들은 그저 삐딱하게 구는 거요. 우리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면서 말이오. 자기들 땅에서 자기들만 고생하고 사는 줄 아는데,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도 없으면서 ‘우리만 힘들다’고 하니 참 답답하단 말이오."


비웃음과 결론


(안경잡이는 담배를 끄고 여유롭게 안경을 벗어 닦으며 말한다.)

안경잡이

“나 같은 도시 사람에게 이 농촌은 잠깐 쉬어가는 공간일 뿐이오. 당신들이 아무리 화를 내고, 나무를 베고, 우리를 몰아내려 해도 말이오… 세상은 달라지지 않소. 농민은 농민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살 뿐이지. 그게 세상이치란 말이오.

(차가운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보며)
그러니 쓸데없이 화내지 마시오. 당신들은 당신들 할 일이나 하시오. 우리야말로 우리 돈으로 쉬러 온 손님이라오. 그걸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으니 말이오.”

(안경잡이는 마지막으로 맥주잔을 비우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시 무대 전체를 둘러보며 비웃듯 웃는다.)


안경잡이의 목소리

"농사에 목숨 걸지 마시오. 세상은 돈 있는 놈이 누리게 돼 있는 거니까."

(안경잡이는 천천히 퇴장한다. 무대는 그의 뒷모습을 비추며 서서히 어두워진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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