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권 원작, 농민과 시민 제3막
오유권 원작, 농민과 시민 제3막
# 제3막
해가 서산에 져서야 들에서 돌아온 경천이는 술에 취해 이장댁을 찾아간다. 이장 역시 들에서 물을 품고 들어왔다. 경천이는 이장을 향해 목례를 한다.
이장
자네는 오늘 물 얼마나 품었는가.
경천
민태하고 품앗이한 것이 두 마지기밖에 못 넣어졌는 것이요.
이장
어째 조금밖에 못 품었네.
경천
이장님이 갯머리들에 계셔서 못 봤을 것이요만 오늘도 한 패가 몰려와서 종일 확성기를 매놓고 떠들어라우. 그 바람에 어디 일손이 잡히요.
이장
거, 사고시. 정부에서도 요즘 그런 퇴폐풍조를 단속하고 있는데 아직도 그 모양들이시.
경천
우리 들이 외진데다 유흥지로는 단속 대상이 안된께 그런 것 아니요…
이장
그렇다 치더라도 노는 사람들 스스로가 체면이 있는 법이제. 농민들은 이 가뭄에 비지땀을 흘리고 물을 품는디, 옆에 와서 그러고 놀아서 될 것인가.
경천
앞으로도 물을 얼마나 더 품을지 모른데 어떻게 하실라우?
이장
낸들 도리 있는가?
경천
이장님, 노송나무밭 저것을 쳐버립시다. 나무를 쳐버리면 여름에 백사장만 보고는 그렇게 놀러 안 올 것이요. 우리 마을 소나무밭인께 우리가 쳐버립시다. 눈꼴사나와서 보겄소.
이장
아무리 우리 마을 나무라고 해도 허가 없이 벌목해서는 안 되지.
경천
그러니까 벌목 허가를 내가지고 치지요.
이장
요새 산림 단속이 얼마나 심한디 그래.
경천
그놈을 베어서 새마을사업 자금에 보태 씁시다. 새마을사업은 정부의 시정 목표인데 안 들어줄랍디여. 오백 주가 다 되니께 그놈을 베어 팔면 우리 마을 새마을사업은 뭐든지 하고도 남을 것이요.
이장
그러기야 그렇지. 하지만 새마을사업을 한다고, 새마을사업 목표의 하나인 산림녹화를 해쳐선 안 되지.
경천
그래도 한 번 신청해보십시오.
이장
그러면 피서객도 안 몰려오고 새마을사업 자금도 생기고 좋기는 좋겠네만 그렇겐 안 돼.
경천
그렇게 못하면 딴 방법이라도 써거 기어코 피서객을 못 오게 합시다. 기가 상해서 보겄소.
이장
그런 폐습을 막기는 막아야겠는데…
경천
오늘 물을 품다가 민태랑 오기로 술 한잔을 얻어먹으려 안 갔습디여.
이장
그래 얻어먹었던가?
경천
가서 술을 한잔 달란께, 노래가 한창인디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데 정신을 써선 안 된다고 않소.
이장
그래?...
경천
그렇잖아도 날이 가물어서 추수 생산고가 감소될 것이 예상되는데 우리들이 잘해야 한다고 하지 않소.
이장
그자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무식한 사람이지, 추수 생산고가 감소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이 가뭄에 그러고 와서 놀 것인가. 그런 돈 있으면 양수기라도 한 대 사서 기증할 일이지.
경천
우리 돈 가지고 와서 우리 노는데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고 않소.
이장
도의를 모르는 사람이시.
경천
요놈의 새끼들이 농민을 제 놈들 종만큼도 못 알아본다 말이요. 기어코 못 와서 놀게 합시다.
이장
그럼 자네들은 어떤 방법으로 제지했으면 쓰겄는가?
경천
저 소나무밭을 쳐버리자 말이요.
이장
그건 안 되네. 면이나 지서에 가서 일단 의논해볼라네만 어려울 것이네.
경천
벌목 허가를 안 내주면 지서에서 피서객들을 강력히 단속하라고 하시오. 이래 가지곤 농민들 사기를 높일 수가 없고 새마을사업도 추진하기가 어렵겠다고 하시오.
이장
그건 그렇게 건의할라네.
경천
만일 지서에서 단속을 못하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피서객들을 몰아낼라우.
이장
알겠네. 내일이라도 틈나는 대로 한 번 나갔다 옴세.
경천
실은 여름철만이 아니어라우. 가을에는 또 단풍이 좋다고 이웃 산으로들 얼마나 놀러 옵디여. 추수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싸대는데 단풍놀이들을 와서 어떻게 놉디여.
이장
그도 못 볼 일이제.
경천
그러니 일할 맛이 나겄소. 그들이 와서 추수를 거들어준다 해도 시원찮을 것인데, 농촌에서는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쪼개 쓸라는 판에 술처먹고 장구 치고 놀아서 될 것이요. 농사를 지어놓으면 쌀밥은 제 놈들이 다 먹으면서… (사이) 도회지에 가까운 풍치림은 전국 도처에서 그럴 것이요.
이장
그도 역시 시정되어야 하네.
경천
생각햐면 못 먹고 못 입고 농민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없어라우.
이장
그런께 근래 중농정책에 치중하고 안 있는가. 젊은 자네들이 잘하소.
경천
아무튼 이장님,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피서객을 꼭 좀 못 오게 해주십시오. 공일이 내일모레인데 이번 공일에는 한 사람도 못 비치게 해주십시오.
이장
알겄네.
경천
이장님도 고달프실 텐데 들에서 돌아오시자마자 떠들어서 죄송하요. 나 그럼 가는 길에 동네 청년들 좀 만나고 갈라우.
이장
어이 다녀가소.
경천은 이장 집을 나온다. 경천은 회관을 거쳐 삼동이네 집으로 향한다. 무대는 어두워진다.
& 삼동이네 마루
동네 청년들이 삼동이네 마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경천
웬 술인가?
청년 1
물 품고 고단해서 추렴했네. 앉소.
경천
나한테는 알리지도 않고…
청년 2
앉아.
경천은 오늘 있었던 일을 동네 청년들에게 얘기한다. 청년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천의 얘기를 듣고 같이 분개한다.
경천
만일 오는 공일날도 그렇게들 와서 놀면 우리들이 직접 나서서 몰아내세. 그렇게 노는 것 보고 일하겄던가.
청년 1
그러세 쫓아가서 산통을 깨버리세. 정말 눈 뜨고 못 보겄네.
경천(청년들을 둘러보며)
꼭들 그렇게 하세.